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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29화 (29/182)

29화

이브는 계속해서 눈을 감은 채로 타마두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타마두크와 데스티나 두 사람이 탑을 떠난 후, 이브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를 가늠해 보려고 노력했다.

실제로 흘러간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브의 체감 시간으론 시간이 영원히 흐르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브는 안고 있는 인형을 꽉 쥐었다.

그녀가 잃어버렸던 인형.

아니. 의도적으로 기억들을 무의식 속에 집어넣고 망각했던 것처럼 그 인형 역시 숨겨 버린 후에 기억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해 버리지 않았던가?

죽은 아버지가 선물해 주셨던 인형.

그것을 타마두크가 가지고 있었다.

저벅저벅.

순간, 이브는 자신의 앞쪽에서 들리는 발걸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타마두크가 돌아온 것일까? 그렇지만 이브는 눈을 뜨지 않았다. 오로지 기다렸다.

그의 목소리가 자신에게 닿을 때까지.

“기다리셨습니까?”

이브는 자신의 귀에 들려오는 타마두크의 목소리에 비로소 눈을 떴다.

이브는 자신의 앞에 서서 미소를 짓고 있는 타마두크를 바라보았다.

“너무 늦었어.”

이브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난 이브는 들고 있던 인형을 타마두크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대체 어떻게 찾은 거야?”

“저는 주인님에 대한 것은 다 알고 있으니까요. 주인님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알아야 집사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럼 저 인형이 나한테 어떤 의미인지도 잘 알 거 아냐?”

“알기 때문에 찾아낸 겁니다.”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는 타마두크를 보면서 이브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무언가 말을 이으려고 하면서도 차마 그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이브를 보면서 타마두크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럼 주인님, 차를 준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알겠어.”

이브의 대답과 동시에 사라졌던 타마두크는 곧 차를 준비해 와 이브의 앞에 대령했다.

“말씀드린 대로 데스티나 님을 안전하게 모셔다드리고 왔습니다.”

타마두크는 이브에게 차를 따라 주면서 그렇게 말했다.

“정말로 안전하게 데려다주고 온 거야?

“글쎄요.”

타마두크가 짐짓 딴청을 부리면서 그렇게 말하자 이브는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글쎄요, 라니? 뭔가 숨기고 있는 거라도 있어?”

“딱히 숨길만 한 것은 아닙니다. 오랜만에 마족으로서의 장난기가 좀 발동해 버렸다고 해야 할까요?”

타마두크는 장난스러운 말투로 그렇게 대답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잠재 능력을 빨리 개발할 수 있도록 약간의 도움을 드린 것뿐입니다.”

“툴레오의 갑옷은 목숨을 건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잠재 능력이 개방되는 거잖아?”

“네. 맞습니다. 그렇지만 목숨을 걸 만한 상황은 항상 오는 것이 아니죠.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한 방법이 있어서 시도해 보았지만요.”

“확실한 방법?”

“데스티나 님을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 드리고 왔습니다.”

타마두크의 목소리는 섬뜩한 면이 있었다.

타마두크의 말에 이브는 놀라서 찻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설마 그 사람 죽은 거야?”

“그것까지 확인해 보지는 못했습니다. 만약에 잠재 능력이 있는 분이시라면 살아남으셨겠죠. 뭐, 데스티나 님에게는 반드시 살 수 있을 거라고 설득을 했지만요. 그렇게 말했더니 받아들이시더군요.”

“거짓말을 한 거네?”

이브의 말에 타마두크는 입꼬리가 한쪽만 올라가는 약간은 비틀린 미소를 띠었다.

“마족은 거짓말을 꽤 좋아한다는 거. 주인님도 잘 알고 계실 텐데요? 그래서 이번에도 무심결에 해버린 거고요.”

“만약에 데스티나란 사람이 죽었다면 주환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네가 아무리 마족이라지만 그런 장난은 과했어.”

“뭐,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완전히 거짓말이라곤 할 수 없죠. 살아남는다면 정말로 잠재 능력이 개방되는 거니까요. 차 한 잔 더 드릴까요?”

“그래.”

타마두크는 이브에게 차를 따라 주면서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주인님도 저만큼이나 짓궂은 부분이 있는 건 인정하셔야 합니다.”

“무슨 뜻이야?”

“툴레오의 갑옷. 사실 부작용이 있는 아이템인 거죠?”

“글쎄.”

“아까 제 대답에 이렇게 맞받아치시는 건가요? 하지만 주인님은 저와는 달리 거짓말을 하시는 분은 아니죠.”

“솔직히 말하면 툴레오의 갑옷에는 명백한 부작용이 있어.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은 거지. 때문에 스승님에게 받은 이후로 계속해서 한쪽에 처박혀 있던 물건이기도 하고.”

“역시나 그랬군요.”

타마두크는 궁금증이 풀린 모양이었다.

“그런 부작용이 있는 물건, 어째서 데스티나 님에게 넘기신 겁니까?”

“음. 그건.”

이브는 말하기 껄끄러운 듯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가 이윽고 말을 이었다.

“마법사로서의 탐구 정신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실제로 그 갑옷을 사용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보고 싶었거든. 때마침 나 대신에 그 갑옷을 입고 활동을 해줄 적임자가 나타난 거고 말이야.”

이브는 그렇게 말하고는 타마두크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말하면 좀 악녀 같나?”

이브의 말에 타마두크는 가볍게 손가락을 흔들어 보였다.

“흠. 저 마족이 봤을 때에 주인님의 수준은 그저 장난꾸러기 요정에 불과합니다. 그 장난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는 것을 빼면 그렇게 무서운 요정도 아니고요.”

* * *

챙!

좀비 오크의 참마도와 데스티나의 검이 부딪치면서 불꽃이 튀었다.

데스티나의 검이 참마도를 자르면서 중간까지 파고들어 가다가 멈추어 버렸다.

“이런!”

상황은 데스티나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검에 마나가 실리면 검과 갑옷을 한꺼번에 베어 낼 수 있는 예리함이 깃들기 마련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데스티나의 검에는 더는 마나가 깃들어 있지 않았다.

“크아!”

좀비 오크는 참마도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데스티나의 검이 참마도에 박혀 있었기 때문에 좀비 오크의 힘에 밀려 데스티나의 몸도 따라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으윽.”

데스티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서 다시금 검에 마나를 실어 보냈다.

그러자 검신에 다시 푸른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면서 참마도는 두부가 잘리듯이 부드럽게 반 토막이 나버렸다.

촤악!

그와 동시에 참마도를 들고 있던 좀비 오크의 몸도 두 동강이 났다.

“하악. 하악.”

데스티나는 숨을 몰아쉬면서 검을 지팡이 삼아서 몸을 의지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그녀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주환은 데스티나의 몸 상태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무시무시한 실력으로 좀비 오크들을 베어 내던 데스티나가 지금은 자기 몸 하나 가누는 것도 힘들어하는 지경이 된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데스티나가 숨을 고르고 있을 때 좀비 오크 한 마리가 그녀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위험해!”

주환은 잽싸게 달려가서 데스티나를 붙잡고 뒤로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한 손으로 샷건을 들고 좀비 오크에게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주환은 샷건의 반동을 느끼면서 데스티나와 함께 뒤로 구르며 넘어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좀비 오크도 뒤로 날아가면서 다른 좀비 오크와 부딪치면서 쓰러졌다.

“괜찮아?”

몸을 일으킨 주환은 데스티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나…… 난 괜찮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주환이 보기에 데스티나는 반송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검으로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힘든지 다리가 힘이 풀려서 비틀거리고 있었다.

“전혀 괜찮지 않잖아.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지금 입고 있는 툴레오의 갑옷 탓인 것 같지만.”

“툴레오의 갑옷?”

“그 이브라는 마법사에게서 받아 온 거다. 입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 있지만, 그 마법사가 말하지 않은 다른 게 있는 것 같군.”

그때, 루카가 다가와서 데스티나의 앞에 섰다.

“몸이 안 좋아 보이는데 내 뒤로 물러나 있는 게 어때?”

루카는 뒤를 살짝 돌아보면서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우리가 마무리할 테니까 말이야.”

“그럴 순 없다. 기사는 절대…….”

“기사는 절대 물러서면 안 된다. 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잖아? 네 마음 모르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물러나도 상관은 없어. 동료가 있으니까.”

“그런…….”

“루카 말이 맞아. 그리고 이번에 얻은 이 샷건이 있으면 너를 충분히 보조할 수 있어.”

“생각해 보니까. 너희 둘 다 새로운 무기들이 생겼네?”

루카는 그렇게 말하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럼 나도 새로운 무기를 사용해 볼까?”

루카는 쓰러져 있는 좀비 오크의 시체로 다가가서 떨어져 있는 참마도를 집어 들었다.

그것도 두 자루를 들어서 쌍검처럼 양손으로 잡았다.

그러고는 양팔을 활짝 펴면서 외쳤다.

“그립감 최고야!”

한 자루 한 자루가 자신의 키보다 큰 참마도를 양손에 든 루카의 모습은 주환의 눈엔 날개를 활짝 편 나비처럼 보였다.

“그럼 나 먼저 간다!”

참마도를 앞세운 루카는 질풍처럼 좀비 오크들에게 달려갔다.

좀비 오크들 역시 지지 않고 루카 쪽으로 몰려들었다. 좀비 오크들이 다가오자 루카는 점프하면서 마치 바람개비처럼 회전했다.

퍽!

회전력과 특유의 완력이 합쳐지자 루카는 참마도의 돌풍이 되어서 주변에 있는 좀비 오크들을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좀비 오크들을 쓰러뜨리는 루카를 보며 주환은 그 뒤를 따랐다.

주환 역시 자신에게 다가오는 좀비 오크들을 향해서 샷건을 난사했다.

탕!

주환은 일부러 가장 앞에 있는 좀비 오크의 다리를 쐈다.

그러자 샷건을 맞은 좀비 오크는 다리가 날아가면서 앞으로 쓰러졌다.

그러자 뒤에서 달려오던 좀비 오크는 바닥에 쓰러진 좀비 오크에 걸려서 바닥으로 넘어졌다.

주환은 곧장 넘어진 좀비 오크의 머리에 샷건을 발사했다.

그때, 옆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좀비 오크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주환은 곧바로 시간을 느리게 만든 다음 자신을 향해서 날아오는 좀비 오크의 팔을 개머리판으로 막아 냈다.

강한 완력에 튕겨 나간 주환은 바닥으로 쓰러졌다.

주환은 쓰러지면서 누운 상태로 샷건을 위쪽으로 겨누어 덮쳐 누르려고 하는 좀비 오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

얼굴이 없어진 좀비 오크의 사체는 그대로 주환의 위로 쓰러졌다.

그러자 주환은 양다리를 올려서 쓰러지는 좀비 오크의 사체를 받친 뒤 그대로 밀어 옆쪽으로 쓰러지게 했다.

한편, 루카와 주환 두 사람이 좀비 오크들을 쓸어버리는 것을 보고 있던 데스티나는 마음이 갑갑해졌다.

데스티나는 자신의 몸 상태가 원래대로 돌아오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그녀는 온몸에 점점 감각이 돌아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데스티나는 자신의 악력을 확인하듯이 손을 쥐었다가 폈다 하면서 계속해서 몸을 점검했다.

어느 정도 힘이 다시 돌아왔다고 느끼는 순간에 데스티나는 자신의 몸을 지탱하고 있던 툴레오의 검을 바닥에서 뽑아 들었다.

데스티나를 자세를 잡고는 최대한 마나를 검에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데스티나는 마나를 검에 모으면 모을수록 다시금 몸이 약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데스티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마나를 모으기 위해 집중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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