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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27화 (27/182)

27화

“고민해 보고는 있지만, 지금은 생각나는 게 없네요.”

“아. 저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두 사람의 시선이 타마두크에게 쏠렸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제가 이 일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너 설마.”

이브는 타마두크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를 눈치챈 모양인 듯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예. 제가 데스티나 님을 모셔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타마두크의 말에 데스티나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게 가능한 건가?”

“물론 가능합니다. 이래 봬도 마족이라서 비행이 가능하거든요. 물론 주인님께서 허락하셔야만 이 탑을 나갈 수가 있습니다만.”

“그건…… 허락을 할 수 없어요.”

이브의 목소리는 벌써 불안감에 젖어 들고 있었다.

“네가 한순간이라도 이 성을 떠나 있는다면 난…… 난…….”

“걱정하지 마세요, 주인님. 저는 반드시 다시 돌아올 거니까요.”

“그렇지만…….”

“부탁한다.”

데스티나는 이브를 향해서 고개를 숙였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너의 집사가 이 탑을 나가는 것을 네가 무척 두려워한다는 것은 잘 알겠다. 그렇지만 이것밖에 방법이 없다면 꼭 허락해 주길 부탁한다.”

이브는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데스티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타마두크와 데스티나를 번갈아 가면서 보던 이브는 자신의 양 무릎을 꽉 쥐면서 고개를 숙였다.

“이건…… 계약에 어긋나는 일이에요. 만약에 그가 떠난다면 나는 또다시 혼자가 되어 두려움에 떨고 있을 수밖에 없단 말이에요. 그건…… 그건 이제 더는 싫어요.”

그 말을 듣고 있던 타마두크는 이브의 앞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가볍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저는 꼭 다시 돌아올 겁니다. 그리고 아시잖아요? 제가 진심으로 날면 얼마나 빨리 다녀올 수 있는지.”

바닥만을 보고 있던 이브는 살짝 고개를 들어서 타마두크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금방 다녀올 수 있나요?”

“그럼요. 우선 이걸 드리도록 할게요.”

타마두크는 어디에서 났는지 품에서 토끼 인형을 꺼내더니 이브에게 건네주었다.

“기억하시죠, 이 인형?”

“이 인형…… 보이질 않았었는데.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당신이 가지고 있었던 건가요?”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죠. 주인님은 이제부터 이 인형을 안고 가만히 눈을 감은 채로 기다리시면 됩니다. 그 상태에서 조금만 기다리시면 어느새 저는 돌아와 있을 겁니다. 제가 오면 곧장 식사 준비를 해드릴 거고요. 맛있는 차도 타드리죠.”

마치 아이를 달래는 듯한 모습이었다.

“정말이죠? 정말로 금방, 금방 다녀올 수 있는 거겠죠?”

이브는 불안한 듯 받아 든 인형을 품에 꽉 안았다.

마치 아빠를 찾는 어린 소녀의 모습처럼 퇴행한 이브의 모습을 보면서 타마두크는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죠. 저는 절대로 주인님을 버리지 않으니까요.”

* * *

“으윽.”

데스티나는 얼굴을 때리는 강풍에 그야말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괜찮으신가요?”

데스티나의 머리 위쪽에서 타마두크가 그렇게 물었지만 두 사람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에 데스티나는 그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조차 없었다.

“바람이! 바람이 너무 세다!”

지금 데스티나의 몸은 허공에 떠 있었다.

갑자기 마법적인 능력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데스티나는 지금 타마두크에게 의지해서 하늘을 날고 있다.

현재 타마두크는 데스티나의 몸을 잡은 채로 열심히 날갯짓하고 있었다.

타마두크의 등에는 거대한 박쥐 날개가 솟아올라 있었는데, 그 날개가 움직일 때마다 두 사람은 엄청난 속도로 가속하는 게 가능했다.

“아.”

데스티나는 무심코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산과 들판, 나무들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물론, 전부 다 작아진 모습으로 말이다.

이렇게까지 높게 올라온 것은 데스티나의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너무 높군.”

데스티나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두 사람이 날고 있었기에 아래쪽에서 보이는 장면들이 빠른 속도로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겨우겨우 이브에게 허락을 받은 후 타마두크는 데스티나를 데려다주기 위해서 성을 빠져나왔다.

그의 계획은 간단했다.

데스티나를 양손으로 든 채로 최대한 빠른 속도로 날아서 주환에게 다녀오는 것.

“어느 정도 후에야 도착할 수 있나!”

데스티나는 최대한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말이 들린 듯 타마두크가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금방 도착하겠지만, 지금보다 더 속도를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늦어지면 주인님이 걱정하실 테니까요.”

“잠깐! 이것보다 더 빨리 날 수가 있단 말인가?”

지금의 속도로도 몸이 버티기 힘든 것을 느끼고 있던 데스티나는 더 빨리 갈 수 있다는 말에 기겁하면서 그렇게 외쳤다.

“물론이죠. 너무 빨리 날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몸이 분해되어서 죽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저는 마족이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나는 인간일세!”

“그럼 꽉 잡으세요. 아. 생각해 보니까 그럴 필요는 없군요. 어차피 잡고 있는 건 저니까요.”

“내 말 듣고 있는 건가? 기다리게!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데스티나는 몸 전체를 압박하는 압력이 극도로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눈앞은 흐려지고 주변의 풍경들은 길게 늘여 놓은 추상화처럼 두 사람의 주변으로 번져 나갔다.

데스티나는 멀미를 동반한 어지럼증을 느끼다가 이윽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루카! 엎드려!”

주환의 외침에 루카는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다.

그러자 주환은 루카를 공격하던 좀비 오크에게 샷건을 발사했다.

탕!

샷건이 명중하자 좀비 오크는 뒤로 날아가 버렸다.

주환은 이어서 샷건을 빠르게 재장전한 다음 옆에 있는 좀비 오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

“하앗!”

루카는 자신을 향해서 다가온 좀비 오크의 다리를 걸어서 넘어뜨렸다.

그리고 마치 골프를 하듯 괭이로 좀비 오크의 얼굴을 갈겼다.

“쿠앙!”

루카의 괭이에 맞은 좀비 오크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곤 나가떨어져 버렸다.

데스티나가 타마두크와 함께 날아오고 있는 바로 그 시각.

주환과 루카는 자신들을 향해서 달려드는 좀비 오크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들이 발견한 아티팩트 ‘붐스틱’이 주환의 손에 들어간 이후 두 사람이 상대하던 좀비 오크들의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어 있었다.

“이제 얼마나 남았지?”

주환은 샷건을 장전하면서 루카에게 그렇게 물었다.

“이제 몇 마리 남지 않은 것 같아. 그런데 나 지금 느끼고 있는 게 있는데.”

“뭔데?”

루카는 배시시 웃으며 자신의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더니 팔을 풍차처럼 붕붕 돌렸다.

“이상하게 싸우면 싸울수록 점점 더 강해지는 느낌이 드는데 말이야.”

“그걸 이제 느낀 거냐? 나는 너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는데.”

“나 이제 보니까 농사보다 싸움이 체질인 것 같기도 해.”

“그렇다면 다행이네. 나는 이제 총알이 다 떨어져 가거든.”

주환은 남은 모든 샷건 탄환을 장전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달려드는 좀비 오크에게 샷건을 쏘았다.

샷건의 총알이 좀비 오크의 가슴팍에 박혔지만, 그 좀비 오크는 여전히 팔을 휘두르면서 주환에게 달려들었다.

주환은 초집중 상태로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고는 좀비 오크의 등 뒤로 돌아가서 등에 샷건을 발사했다.

탕!

샷건의 총알 세례를 두 번이나 받자 좀비 오크는 그제야 바닥으로 쓰러졌다.

‘샷건 탄환도 거의 떨어져 가는데.’

그사이 남은 좀비 오크들은 여전히 두 사람을 향해서 포위를 좁혀 오고 있었다.

쿠과과과광!

그 순간, 주환은 마치 제트기가 지나가는 것 같은 공기의 파열음을 들을 수가 있었다.

어리둥절한 주환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루카가 손을 들어서 허공의 한 점을 가리켰다.

“주환! 저길 봐!”

주환의 시선은 루카의 손가락을 따라갔다.

무언가 알 수 없는 비행 물체가 엄청난 속도로 두 사람 쪽으로 날아오고 있다.

주환은 순간 그것이 비행기가 아닌가, 생각했지만 가까워질수록 그것이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이 같이 붙어 있는 모습.

“대체 저게 뭐야?”

“나도 모르겠어…….”

주환과 루카 두 사람은 자신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좀비 오크들의 모습을 잊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볼 뿐이었다.

* * *

“으윽.”

데스티나는 신음을 흘리면서 겨우겨우 눈을 떴다.

그녀는 약한 기억 상실 증세가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어째서 지금 자신이 공중에 떠 있는지를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정신이 드셨습니까?”

데스티나는 타마두크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타마두크가 미소 짓는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금 데스티나의 몸은 여전히 타마두크에게 붙잡혀 있는 채로 허공에 둥실 떠 있다.

“대체 이게 어떻게…….”

“기사님은 잠시 기절해 계셨던 겁니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빠른 속도로 비행하면 뇌의 혈류가 빠져나가서 기절을 피할 수가 없거든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군. 여기는 대체 어디인가?”

“다 도착했습니다.”

타마두크의 말에 데스티나는 깜짝 놀라면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래쪽에는 그녀가 싸움을 벌였던 마른 진흙 부족의 정착지가 작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정도로 빨리 비행했으면 보통 인간은 몸이 파괴되었겠지만, 그 툴레오의 갑옷이 그걸 막아 주었습니다. 그것만 보더라도 데스티나 님이 잠재력이 없는 편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군요.”

“이 갑옷이 말인가?”

타마두크의 말을 듣던 데스티나는 자신이 입고 있는 툴레오의 갑옷을 살펴보았다.

그때, 그녀는 아주 얇은 푸른색의 에너지가 갑옷 전체를 두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도착했다면 빨리 내려 주게. 지금이라면 당장 아래에 있는 좀비들을 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으니.”

데스티나가 재촉했지만 어째서인지 타마두크는 계속 공중에 멈춰 있을 뿐이었다.

“어째서 내려가지 않는 건가?”

“이래 보여도 제가 마족이라서 말이죠.”

타마두크는 이빨을 드러내면서 사악하게 웃었다.

“상당히 재미있는 생각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의 미소를 본 데스티나는 섬뜩한 느낌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이…… 이 마족 녀석! 지금 본색을 드러내는 건가? 이렇게 무방비한 상태로 내몰리는 것을 기다리고 있던 건가?”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 저는 단지 데스티나 님의 잠재력이 개방되려는 것 같아 거기에 좀 더 박차를 가해 드리려는 것뿐이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

“지금 데스티나 님이 입고 계신 툴레오의 갑옷이 잠재 능력을 개방해 주는 갑옷이라는 것은 알고 계실 겁니다. 감각이 있는 사람은 갑옷을 입자마자 그 힘이 개방되지만, 아까 보니 데스티나 님은 그 정도까지 감각이 있으신 것 같지는 않더군요.”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내가 재능이 부족한 것은.”

데스티나는 툴툴거리듯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잠재 능력을 개방시킬 수 있는 상당히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바로 죽음의 순간을 넘기는 겁니다.”

“죽음의 순간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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