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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26화 (26/182)

26화

“대체 왜 당신이 이곳에 있는 거죠?”

데스티나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이브가 그렇게 물었다.

데스티나가 탑의 응접실로 안내된 후 이브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는 데스티나를 응대할 수 있었다.

물론, 두 사람의 사이에는 꽤 먼 거리가 있었다.

두 사람은 커다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했다.

타마두크가 어느새 데스티나의 앞에 차를 가져다 두었지만 데스티나는 차에 손을 대지는 않았다.

“사정을 설명하도록 하지.”

데스티나는 탑을 떠난 뒤에 있었던 일들을 이브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까의 충격이 너무 컸는지 이브는 데스티나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타마두크가 차가운 물수건을 가져다주자 이브는 물수건을 자신의 얼굴에 덮었다.

“이제야 조금 살 것 같네.”

“아무튼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내가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다.”

“무슨 말인지는 잘 알겠어요.”

이브는 물수건을 타마두크에게 건네면서 말을 이었다.

“요컨대 어쩔 수 없는 긴급 상황이었다는 말이잖아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말이죠, 이렇게 아무나 들락날락하라고 그 아이템을 준 건 아니란 말이에요. 솔직히 지금 당신이 내 앞에 있는 건 저에겐 혼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죠.”

“솔직히 나는 그 물건이 무슨 힘이 있는지를 전혀 몰랐다. 그렇지만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실례를 범했다면 사과를 하도록 하지.”

“사과할 필요까지는 없어요. 사과를 받으려면 주환 씨에게 받아야 하겠죠.”

둘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이브는 자신의 탑에 타인이 들어왔다는 것에 대한 불쾌감을 애써 감추려고 하지는 않았다.

데스티나 역시도 지금 이브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사과도 사과이지만 그곳에서 살아남은 건 그 아이템의 덕이 확실하니 감사를 표하는 게 옳은 일이겠지.”

“그런 거추장스러운 건 별로 필요 없어요.”

데스티나는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 동료가 위험에 처해 있을 테니 이만 가봐야 하겠군.”

“거기까지 간다고 해도 시간이 꽤 걸릴 텐데요?”

“그래서 당신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브는 무슨 부탁인지 알 것 같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텔레포트 말이겠죠?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그곳까지 보내는 것은 불가능해요.”

“어째서지?”

“일반인들은 마법과 기적을 혼동하곤 하지만 아무튼 매개체 없이 당신을 텔레포트시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에요. 언제나 매개체가 필요하죠.”

“내가 깼던 그 거울처럼 말인가.”

“그래요. 그 거울은 매개체로서는 그다지 강력한 매개체가 아녀서 단 한 번 사용하면 더는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긴 하지만요. 제가 초대했던 그 별장에 있는 거울을 기억하나요?”

데스티나는 하얀색 테두리의 전신 거울을 단박에 떠올렸다.

“기억한다. 그곳이 네 별장이었던 건가?”

“맞아요. 당신이 봤던 그 거울, 그게 매개체에요. 그 거울이 포탈의 역할을 해서 텔레포트를 가능하게 하는 건데 제가 텔레포트 시킬 장소에는 반드시 그 거울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최대한 그곳에 가까운 장소에 거울은 없는 건가?”

“굳이 찾아보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거쳐 가도 늦을걸요? 중간부터는 뛰어가야 할 테니까.”

“방법이 없는 건가……?”

데스티나는 분하다는 듯 주먹을 꽉 쥐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브가 말했다.

“거기까지 가는 것도 가는 거지만 더 큰 문제가 있지 않아요?”

“더 큰 문제라니?”

이브는 손을 들어서 데스티나가 차고 있는 검을 가리켰다.

“그거 부러졌죠?”

데스티나는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그러자 부러진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데스티나는 그 검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싸우다가 부러지고 말았지.”

“그냥 보아도 썩 좋은 검으로 보이진 않네요. 어차피 부러지지 않았어도 좀 쓰다가 금방 무디어질 검이었을 거예요.”

“내가 가진 무기는 이것뿐이다.”

“그것만 있어서는 가봐야 도움이 되질 못할 거예요. 차라리 제 별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게 어때요? 남은 두 사람이 일을 끝내고 돌아올지도 모르잖아요.”

“그럴 수는 없다.”

데스티나는 양손을 테이블에 내리쳤다.

“놀랐잖아요.”

이브는 뒤로 살짝 물러나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내가 오기 전의 상황을 기억해 보았을 때 그 상황은 도저히 주환이 타개할 방법이 없었다. 운이 좋았다면 도망쳐서 목숨을 부지했을지도 모르지. 그런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편하게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이 상황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죠?”

“그건…….”

이브는 한숨을 내쉬었다.

“뭐. 계속해서 당신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런 식으로 들렸다면 어쩔 수 없긴 하지만요. 저도 이번 일에는 책임을 느끼고 있어요. 주환 씨에게 그 아티팩트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 게 다름 아닌 저니까요.”

“그럼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건가?”

“아아. 글쎄요.”

이브는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귀찮은 건 질색이지만 이번에는 도와드리는 걸로 하죠. 그래야 그 아티팩트를 볼 수 있는 거겠죠.”

“부탁한다.”

데스티나가 그렇게 말하자 이브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흐음. 우선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보도록 하죠. 첫 번째 당신의 무기 말인데요.”

“부러진 검 대신에 쓸 만한 것이 있는 건가?”

“어차피 그냥 일반적인 검이나 무기를 줘 봐야 당신들이 겪었던 문제를 똑같이 겪을 뿐이겠죠. 쓸 만한 정도가 아니라 수많은 검사가 탐내던 물건을 보여 드릴게요.”

“그게 무엇인가?”

“타마두크.”

이브가 나직하게 말하자 뒤에 서 있던 타마두크는 무엇을 원하는지 알겠다는 듯 데스티나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몇 초 뒤 타마두크가 가지고 나타난 것은 갑옷과 검 한 세트였다.

“이건.”

데스티나는 갑옷과 검 세트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로서는 완전히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갑옷과 검, 둘 다 하얀색을 띠고 있었는데, 검은 심지어 검신도 눈에 띌 정도로 환한 하얀색을 뽐내고 있었다.

“이건 제 스승님이 저에게 주신 물건이에요. 이름은 ‘톨레오의 갑옷’이라고 해요. 제 스승님이 우연히 손에 넣으신 물건인데 저한테 연구용으로 주신 거예요. 지금까지 창고에 있었지만요.”

갑옷은 어깨 보호대와 흉갑만이 있었으며 투구나 다리 보호대는 보이지 않았다.

어깨 보호대와 흉갑의 한가운데, 그리고 검의 손잡이 윗부분에 전부 같은 크기의 푸른색의 보석이 박혀 있다는 게 특이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 갑옷은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힘이 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별 특이할 것도 없는 갑옷이 될 수도 있어요.”

“이해하기가 힘들군.”

“그럴 거예요. 이 갑옷은 착용자의 잠재 능력을 이끌어 내주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잠재 능력을?”

“그래요. 그래서 잠재 능력이 강력한 사람은 대단한 힘을 얻을 수가 있지만, 잠재 능력이 보잘 없는 사람은 큰 도움을 얻을 수는 없죠.”

“이렇게 말하면 속물처럼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그럼 이 갑옷을 그냥 나에게 주겠다는 건가?”

“이야기의 흐름은 그렇게 되겠지만, 세상에는 공짜가 없죠.”

“지금 나에게는 돈이 없다. 무엇보다 이런 세상에서는 더는 돈이라는 것이 가치가 없어졌으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돈으로 준다고 해봐야 제 쪽에서 거절했을걸요? 물론, 금화나 은화는 다시 녹이면 연구에 쓸 만한 금속을 좀 얻을 수는 있지만요.”

“그러면 무엇을 원하지?”

“딱히 무엇이라고 정해져 있지는 않아요. 가치가 있는 것을 저에게 주면 되는 거예요.”

“가치?”

“네. 예를 들어서 주환 씨는 그 존재 자체가 가치의 증명이라고 할 수 있죠. 누가 뭐래도 이세계에서 온 사람이니까. 그래서 제가 이 탑에 초대하고 거래를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는 연구할 것투성이죠. 그에 비해서 당신은.”

이브는 데스티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듣자 하니 성전 기사단의 단장이라고 하지만 그 정도로는 저에게 아무런 가치를 보여 줄 수 없어요.”

성전 기사단의 단장이라는 직책은 데스티나가 가진 모든 것이었기에 그것의 가치를 부정당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데스티나는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부탁해야 하는 처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다음 이브가 입에 담은 말은 데스티나의 자존심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만약에 부단장인 데미안 님이 왔다면 좀 다르긴 했을 테지만 말이죠.”

데스티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브의 말은 계속해서 데스티나의 신경을 건드렸지만, 그녀는 필사적으로 참아 냈다.

이브의 말을 듣고 있던 데스티나는 자신이 걸고 있던 목걸이를 빼서 이브에게 건넸다.

“그건?”

이브가 직접 받으러 오지는 않았기에 타마두크가 대신 받아서 이브에게 넘겨 주었다.

그 목걸이를 받아 든 이브는 작게 감탄의 목소리를 내뱉었다.

“가문의 증표네요? 솔직히 놀랐어요. 구국의 12 가문의 일원 중 한 명이었다니.”

“가문의 증표를 넘긴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잘 알 거로 생각한다. 증표에 들어간 금과 보석. 이젠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거기에 담긴 가치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 봐 줄 수는 없는가?”

“흐음. 글쎄요.”

사실 이브로서는 딱히 대가를 바라지 않고 툴리오의 갑옷을 넘겨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툴리오의 갑옷의 가치가 낮기 때문은 절대 아니었다.

그녀가 말했듯 툴리오의 갑옷은 수많은 검사와 기사들이 탐내던 물건인 것이 사실이었다. 아티팩트는 아니었지만 아티팩트의 가치와 맞먹는 수준은 되었다.

‘그냥 좀 놀려 줄 생각이었는데.’

주환 일행이 자신의 의뢰를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 툴리오의 갑옷을 대가 없이 줄 생각이었지만, 그녀가 데스티나에게 심하게 대한 것은 갑작스럽게 자신의 탑에 함부로 들어왔던 것이 괘씸했기 때문이었다.

“이건 제가 맡아 두도록 하죠.”

이브는 그렇게 말하고는 타마두크에게 다시 목걸이를 건네주었다.

이브는 진지한 눈빛으로 데스티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대가는 받았으니 저도 약속을 지키도록 할게요.”

* * *

“가볍군.”

갑옷을 입어본 데스티나는 몸을 움직여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마치 맞춘 것처럼 몸에 딱 맞는군.”

“툴레오의 갑옷은 일반 금속이 아니라 특수한 금속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벼우면서도 신축성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 맞춤복처럼 느껴질 거예요.”

툴레오의 갑옷을 걸친 데스티나를 보면서 이브는 제법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데스티나는 검을 뽑은 다음 앞쪽을 향해서 겨누어 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아까 이 갑옷이 착용자의 잠재 능력을 이끌어 낸다고 했는데 그게 대체 무슨 뜻인가?”

“말 그대로예요. 그 사람이 갖춘 잠재 능력을 끌어 올려 준다. 그것보다 더 좋은 표현 방법은 없네요.”

데스티나는 시험 삼아서 허공에 검은 휘둘러보았다.

“손맛은 다른 검과 다를 바는 없는데.”

“그 갑옷의 능력은 나중에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예요. 그리고 이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두 번째 문제가 남았잖아요?”

“두 번째?”

“잊었어요? 주환 씨 일행이 있는 곳까지 가는 문제 말이에요.”

“아…… 그렇군.”

데스티나는 굳은 얼굴을 하며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건 도저히 해결할 방법이 없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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