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확실히 들킨 것 같은데.’
우연이길 바랐지만,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자기를 보고 있는 좀비견을 보면서 주환은 자신이 들켰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왈왈! 왈왈!”
좀비견이 매섭게 짖음과 동시에 근처에 있던 좀비 오크들의 시선이 모조리 주환이 있는 쪽으로 집중되었다.
잠시간의 침묵.
“크아아아!”
그 침묵이 깨지면서 좀비 오크들이 그가 있는 곳으로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주환은 자리에서 일어선 후에 권총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주환은 경비탑으로 달려오는 좀비 오크들을 향해서 권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탕탕!
그가 발사한 총알들이 대부분 좀비 오크들에게 명중하였지만, 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인간 좀비들은 내구력이 좋지 않아 총을 맞으면 뒤로 물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좀비 오크들은 그것을 버티면서 계속해서 밀고 들어왔다.
“보통 좀비들과는 차원이 다른데.”
탄창을 교체한 주환은 계속해서 권총을 쏴댔다.
그렇지만 좀비 오크들은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그가 있는 경비탑으로 다가온 좀비 오크들은 탑의 사다리를 통해서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탑과 탑 사이의 흔들다리에 서 있는 주환은 양쪽으로 빠져나갈 수 없이 포위된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다.
견제하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기에 주환은 올라오는 좀비 오크들에게 계속 총을 쏘았다.
효과가 있는지 머리 쪽을 계속해서 맞은 좀비 오크 하나가 사다리를 놓치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좀비 오크들은 죽은 오크를 밟으면서 계속해서 밀어닥치듯이 위로 올라왔다.
주환은 멈추지 않고 반격을 했지만, 권총만으로는 확실히 화력이 부족했다.
어느새 두 마리의 좀비 오크가 경비탑에 올라섰다.
“이래서야 도망가야 할 상황인걸.”
주환은 급히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높이는 높지 않았지만 뛰어내리자마자 좀비 오크들에게 공격당할 것이 뻔했다.
주환은 조금 떨어져 있긴 하지만 천막의 지붕 위로 뛰는 것이 바로 아래쪽으로 떨어지는 것보다 더 안전할 것으로 생각했다.
‘밑져야 본전이니까!’
주환은 심호흡을 하고는 다리 위에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자신이 목표로 삼았던 천막의 위로 떨어졌다.
주환은 푹신한 천막 위에서 굴러 아래쪽으로 떨어졌다.
등부터 바닥으로 떨어진 주환은 등에 화끈거리는 고통을 느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서 몸 상태를 점검하려던 주환은 지축이 흔들리는 듯한 요란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수많은 좀비 오크들이 그를 잡기 위해서 달려오고 있는 소리였다.
“쿠아아악!”
좀비 오크들은 일제히 고함을 지르면서 주환에게 달려들었다.
주환은 좀비 오크들에게 붙잡히기 직전에 감각을 끌어 올렸다.
위잉!
시간이 느려지는 것을 느끼며 주환은 자신에게 손을 뻗는 좀비 오크 중 한 마리의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러면서 좀비 오크들에게 권총을 발사하면서 물러났다.
하지만 위기에서는 벗어났지만, 그 감각을 길게 이어 가는 것은 아직은 무리였다.
그때, 좀비 오크 중 검을 들고 있는 이가 주환을 향해서 그 검을 던졌다.
휘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좀비 오크의 손을 떠난 검이 주환에게로 쇄도해 갔다.
주환이 그것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주환은 그것을 막기 위해서 반사적으로 손을 들었다.
챙!
금속이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좀비 오크가 던진 칼은 회전하면서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있던 주환은 천천히 팔을 내렸다.
그는 자신의 앞을 막고 있는 익숙한 등을 볼 수 있었다.
“데스티나!”
어느새 왔는지 데스티나는 검을 든 모습으로 그의 앞에 서 있었다.
“걱정하지 마라. 여기는 내가 막는다.”
데스티나는 진지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 * *
“하압!”
루카는 기합을 내뱉으며 딛고 있는 벽을 박차고 위로 뛰어올랐다.
위로 몸을 날린 루카는 괭이를 휘둘러서 절벽에 박았다.
괭이의 끝이 벽에 박히면서 루카는 떨어지지 않고 벽에 매달릴 수 있었다.
괭이 하나에 의지한 채로 벽에 매달린 루카는 절벽의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거의 다 올라왔네.”
루카는 발을 디딜 만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발을 디딜 만한 곳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 부분을 밟고는 박차고 뛰어올라 괭이를 거는 것. 그게 지금까지 루카가 절벽을 올라온 방법이었다.
“영차!”
절벽의 끝부분에 도달한 루카는 몸을 날려서 위쪽으로 올라왔다.
그녀는 계획대로 족장의 천막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올라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제 어쩐다?’
루카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탕탕!
갑자기 들려오는 소음에 루카는 고개를 돌렸다.
‘저건 주환이 가지고 있는 무기가 내는 소리인데?’
루카는 지금 주환이 좀비 오크들과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루카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원래 계획을 폐기하고 그쪽을 도우러 갈 것인지, 아니면 계획대로 아티팩트를 가지러 가야 할 것인지.
‘저쪽에서 좀비 오크들의 시선을 끌어 준 지금이 기회이긴 하지.’
루카는 마음을 정했다.
원래의 계획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주변에 그녀를 막을 수 있는 좀비 오크들은 없었다.
루카는 곧장 족장의 천막으로 달렸다.
족장 천막의 입구에 도착한 루카는 안쪽의 동태를 살피다가 곧 그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것도 없잖아?”
천막의 안으로 들어간 루카는 허탈해져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분명 족장의 천막은 다른 천막들보다 2~3배는 컸다.
자연스럽게 그 안에 있는 가구들의 수도 많았지만 정작 그들이 찾는 아티팩트로 여겨질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잘못 안 건가? 아니면 다른 천막에 그게 있나?’
그때, 루카는 아래쪽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공간이 있음을 깨달았다.
천막의 바닥은 특이하게도 나무들을 짜 맞추어서 만든 제법 고급스러운 바닥이었는데, 그 한가운데에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저기에 있겠네.”
루카는 분명 그곳에 아티팩트가 있을 것을 직감했다.
루카는 구멍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구멍의 안은 꽤 넓었다.
그 안쪽은 불이 없었기에 상당히 어두웠다.
그렇지만 군데군데 발광 버섯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어둠 속을 분간하는 것은 가능했다.
‘대체 여기는 어느 정도까지 파낸 거야?’
어느 정도 내려갔다가 평평한 바닥이 나오자 루카는 걸음을 멈추었다.
지하 공간은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평평한 공간의 가운데에는 돌과 뼈로 만든 제단이 놓여 있었으며 그 주변은 원시적인 느낌의 장식품들이 둘려 있었다.
“바로 여기야.”
제단의 위에는 길쭉한 상자가 올라가 있었다.
루카는 제단으로 다가갔다.
상자는 다행히 잠겨 있지 않았다.
루카는 긴장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상자를 천천히 열었다.
상자의 안에는 길쭉하게 생긴 물건이 하나 들어 있었다.
“이게 대체 뭐야? 좀 어두워서 확실히 볼 수가 없는걸.”
루카는 근처 있는 발광 버섯을 따려고 움직였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루카는 지금 이 공간에 자신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챘다.
“누구냐!”
루카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그렇게 외쳤다.
동시에 어둠 속에서 거대한 실루엣이 스르륵 움직였다.
그것은 장식품의 뒤에 있었다. 실루엣은 장식품을 밀치면서 앞으로 걸어 나왔다.
“우와. 커!”
루카는 순수한 마음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장식품의 뒤에서 등장한 것은 큰 덩치를 자랑하는 좀비 오크였다.
원래 오크들이 덩치가 크긴 했지만 지금 루카의 앞에 선 오크는 보통의 오크들보다 훨씬 몸집이 컸다.
“아하. 네가 바로 이곳의 족장이로구나?”
루카는 그 오크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앞에 있는 좀비는 바로 마른 진흙 부족의 족장이었던 오크였다.
“너희가 신줏단지처럼 모시던 물건이지만 이건 우리가 가져가려고 해. 허락해 줄 거지?”
루카는 옆에 있는 상자의 뚜껑을 탁탁 치면서 말을 이었다.
“어차피 허락해 주지 않아도 힘으로 가져갈 거지만 말이야.”
“크아앙!”
좀비 오크는 괴성을 지르면서 루카에게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루카는 들고 있던 괭이를 휘둘렀다.
퍽!
루카의 괭이는 좀비 오크의 머리에 정확하게 명중했다.
괭이의 끝은 좀비 오크의 두개골 윗부분을 부수어 버렸지만 좀비 오크는 쓰러지지 않았다.
“괜히 오크 족장이 아니네. 이 정도로는 쓰러지지 않는다는 거야?”
루카는 다시 한번 괭이를 휘둘렀다.
이번엔 좀비 오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가 굵은 팔을 휘두르자 괭이와 팔뚝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탁!
순간, 루카의 괭이는 루카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와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루카가 당황하는 사이에 좀비 오크는 양팔을 펼쳐 루카를 덮쳐 누르려고 시도했다.
루카는 피하려고 했지만, 거리가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불가능했다.
“이야압!”
루카는 재빨리 자신을 향해서 쇄도해오는 좀비 오크의 손을 맞잡았다.
좀비 오크가 힘으로 눌러대자 루카는 온몸으로 힘으로 그것을 버텼다.
“나랑 힘겨루기하자는 거냐!”
루카는 그렇게 외치면서 오히려 좀비 오크를 밀어붙이면서 앞으로 밀고 나가려 했다.
만약 눈앞의 오크가 좀비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상황에 엄청나게 당황했을 것이다.
오크와 순수하게 힘겨루기를 할 수 있는 인간은 얼마 없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어린 소녀는 그것을 해내고 있다.
“으으윽.”
그렇지만 조금씩 힘에 부치는지 루카는 신음을 흘렸다.
그녀가 밀어붙이는 힘이 부족한지 좀비 오크는 더는 밀리지 않았다.
“이거나 먹어라!”
루카는 순간 좀비 오크의 손을 잡은 채로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그러곤 프로레슬링 선수처럼 양발로 좀비 오크의 얼굴을 걷어찼다.
퍽!
얼굴을 강타하는 충격에 좀비 오크는 손을 놓고 순간 뒤로 물러났다.
그렇지만 금방 회복한 좀비 오크는 양손을 들어서 루카를 향해 망치처럼 내리쳤다.
“하압!”
루카는 빠르게 옆에 있던 상자를 들어서 머리 위쪽을 방어했다.
무거운 상자를 단숨에 드는 루카의 괴력도 대단했지만 좀비 오크의 힘도 만만치 않았다.
좀비 오크가 상자를 내리치자 아티팩트가 담긴 상자는 과자처럼 부서져 버렸다.
“으윽!”
루카는 뒤쪽으로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넘어졌다.
그리고 상자 안에 들어 있던 아티팩트가 그녀의 앞으로 굴러떨어졌다.
“아프잖아!”
좀비 오크에게 고함을 지른 루카는 바닥에 떨어진 아티팩트로 시선을 주었다.
길쭉하게 생긴 아티팩트의 모양새는 루카가 봤을 때 왠지 주환이 쓰던 총과 닮아 있었다.
“이거 주환이 쓰던 것과 비슷한 무기인 건가?”
루카가 아티팩트를 집어 들었을 때 좀비 오크가 입을 벌리면서 루카에게 달려들었다.
단숨에 물어뜯겠다는 기세가 대단했다.
좀비 오크의 거대한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 루카는 아티팩트를 들어서 좀비 오크의 벌려진 입안에 처넣었다.
“끄엑.”
루카는 아티팩트를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밀어 넣으면서 좀비 오크의 입천장을 밀었다.
그러고는 주환이 무기를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떠올렸다.
“그러니까 이상하게 생긴 고리 같은 거에 손가락을 넣었었는데.”
루카는 아티팩트에서 기억 속의 고리를 찾아보았다.
루카가 온 힘을 다해서 밀어내고 있었기 때문에 좀비 오크는 루카를 공격할 수 없었다.
그저 루카를 움켜쥐기 위해서 손을 휘둘러댈 뿐이었다.
“아. 찾았다.”
루카는 고리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고리 안에는 휘어진 작은 막대가 있었다.
루카는 그 막대를 손가락으로 잡아서 뒤로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