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타닥타닥.
모닥불이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작은 불씨들이 하늘로 솟아오른다.
주환 일행은 모닥불의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서 일렁이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의 격렬했던 싸움 탓인지 세 사람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했다.
“아슬아슬한 싸움이었다.”
데스티나가 나머지 두 사람을 둘러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무사히 잘 끝나서 다행이야.”
황야 유목민들의 거처에서 거대 전갈들과 싸움을 벌인 세 사람은 가까스로 그곳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주환의 수류탄이 없었다면 그들은 더 힘든 싸움을 했을 것이 분명했다.
죽지 않은 나머지 전갈들도 뭔가 위험을 느낀 것인지 더는 세 사람을 쫓아오지 않았다.
“진짜 피곤하다.”
루카는 하품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전갈들에게서 벗어난 세 사람은 그곳에서 한참 먼 곳까지 이동한 후에야 쉴 곳을 마련할 수가 있었다.
그들이 멈추었을 땐 해가 완전히 사라진 뒤였다.
세 사람은 모닥불에 둘러앉은 채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무언가 정말로 이상하군.”
데스티나의 말에 주환과 루카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뭐가 말이야?”
“별건 아니지만…… 아니, 큰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군.”
“그러니까 뭔데?”
“오늘 만났던 그 괴물들.”
데스티나의 말에 두 사람은 아까 보았던 거대 전갈들을 떠올렸다.
“오늘 봤던 그 거대 전갈들처럼 점점 정상적이지 않은 괴물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데스티나. 너도 그런 괴물들은 본 적이 없어?”
“물론 이전부터 인간들에게 해를 끼치는 괴물들은 존재해 왔다. 그런 괴물들을 퇴치하는 헌터들도 역시나 존재했었지. 그런 균형들을 통해서 인간과 괴물들 사이에는 서로가 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선 같은 것이 있었다. 그저 자신들이 속한 세계에서만 지내는 것. 그게 암묵적인 룰 같은 거였지.”
“확실히 그러고 보니까 그렇긴 해.”
루카는 데스티나의 말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마을에서도 가끔 괴물들이 내려올 때도 있었어. 길을 잃은 녀석들이나 가끔 인간을 얕보고 오는 녀석들이 있었지. 그런 녀석들은 대부분 마을 경비대나 자경단의 힘으로도 충분히 격퇴할 수 있는 수준이었거든.”
데스티나는 자신의 검을 뽑았다.
“보이나?”
데스티나는 두 사람에게 자신의 검을 보여 주었다.
루카와 주환은 다가가 데스티나의 검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모닥불에 의지해서 검을 살피며 주환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이가 많이 빠졌는데.”
그의 말대로 데스티나가 들고 있는 검의 날엔 군데군데 이가 빠져 있는 곳이 있었다.
“상대의 뼈를 베거나 검과 검이 맞부딪치면 검의 날에 이가 빠지고 만다. 지금까지 여러 번 좀비들과 싸웠으니 이가 빠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렇게까지 심하게 빠진 건 그 거대한 전갈들과 싸웠기 때문이다.”
“하긴 총알도 겨우 관통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주환은 루카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루카. 네 괭이는 괜찮아?”
“괭이?”
루카는 옆에 놓여 있는 괭이를 들어서 보여 주었다.
괭이의 머리 부분은 방금 만들었다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로 멀쩡해 보였다.
“대장장이 아저씨가 영혼을 갈아 넣은 수준으로 만들어 주셔서 그런지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는데?”
“그 정도면 이미 괭이의 수준이 아니잖아?”
주환은 스스로 만든 괭이에 의해서 머리가 날아가 버렸던 대장장이를 떠올리면서 속으로 잠시 묵념을 했다.
“아무튼.”
데스티나가 입을 열었다.
“옛날에도 저런 괴물들과 싸운 적이 있었다. 그때에는 검으로도 쉽게 상대할 수 있을 수준이었지. 그렇지만 지금은 달라. 아까 만난 놈들은 훨씬 더 호전적이면서도 잔인하고 강하다.”
데스티나의 진지한 말투에 주환 역시 진지한 얼굴로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것이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주환 너도 기억하잖는가? 대장장이의 집에서 봤던 그 괴물을.”
데스티나의 말에 주환은 그 이빨 괴물을 떠올렸다.
“그런 괴물은 근본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새로운 괴물이었다.”
“그럼 우리가 계속해서 이렇게 떠돌아다닌다면 저런 이상하면서도 강력한 괴물들을 계속해서 만나게 될 거란 말이지?”
루카의 물음에 데스티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셋의 전력이라면 좀비들 정도는 무리 없이 상대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방금 수준의 괴물들이 계속해서 출현한다면 어느 순간에는 목숨을 장담할 수가 없을 거다. 무슨 방법을 써서든 우리들의 능력을 올릴 수밖에는 없다.”
“그게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할까?”
“방법을 찾아봐야 하겠지.”
데스티나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
“말이 나온 김에 나는 수련을 이어 나가겠다. 두 사람은 쉬어 두도록. 전력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니까.”
그러면서 데스티나는 몸을 돌려 모닥불에서 멀어져 갔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주환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강해진다라.”
주환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루카는 몸을 숙여 텐트의 안으로 들어가며 주환에게 말했다.
“나는 좀 쉴게. 주환 너도 너무 머리 쓰지 말고 쉬어 둬.”
“그래. 먼저 쉬어. 나는 우선 데스티나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게.”
주환의 말에 루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텐트의 안으로 쏙하고 들어갔다.
타닥타닥.
주환은 데스티나를 기다리며 타오르고 있는 모닥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데스티나가 너무 늦는데.’
데스티나를 기다리고 있던 주환은 황야를 떠돌고 있을지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괴물들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는데.’
거기에 생각이 미친 주환은 데스티나를 찾기 위해서 몸을 일으켰다.
주환이 몸을 일으키려고 할 때 그의 주머니에 있던 물건 하나가 바닥으로 툭 하고 떨어져 내렸다.
“뭐지?”
그것은 이브가 주었던 작은 손거울이었다.
주환은 그 손거울을 집어 들었다.
혹시나 거울이 깨지진 않았는지 걱정된 주환은 거울을 살펴보다가 거울 안에 무언가가 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손거울에는 마치 ‘밀어서 잠금 해제’를 연상하게 하는 아이콘이 떠올라 있었다.
궁금해진 주환은 손가락으로 아이콘을 눌러서 오른쪽으로 밀었다.
‘스마트폰과 비슷한 느낌인데.’
그가 아이콘을 움직이고는 몇십 초가 지났을 때, 거울이 마치 스마트폰의 화면처럼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영상 통화처럼 한 사람을 비추어 주었다.
그것은 바로 이브였다.
“이브?”
이브는 저택의 벽을 배경으로 하여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이브 역시도 주환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환을 빤히 보던 이브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녀가 입을 열자 목소리가 거울을 타고 빠져나온다.
“저는 자고 있어요. 지금은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명백하게 깨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들켰네요. 귀찮게 할까 봐 넘기려고 한 건데 말이죠.”
“이브 씨가 준 거울에 재미있는 기능이 있네요.”
“너무 급한 일이 있을 때 이런 식으로 서로 원격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제가 기능을 넣은 거예요. 그때 깜빡 잊고 이야기를 못 했지만요.”
“굉장히 편리한 기능이군요.”
“그래요? 저는 잘 모르겠네요. 바깥사람들이랑 이런 교류를 할 일이 없으니까요. 아무튼, 이런 기능이 있다는 건 잘 아셨을 테니까 볼 일이 없다면 필요가 있을 때 연락을 주도록 해주세요. 그럼 이만.”
화면이 꺼지려고 했기에 주환이 그녀를 제지했다.
“잠깐만요.”
“무슨 볼일이라도?”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뭐죠?”
“오늘 정말로 강력한 적들을 만났었어요.”
주환은 검은 탑을 떠난 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이브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대장간에서 만났던 괴물에 관한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게 사실이라면 흥미롭네요.”
이브는 손가락으로 턱을 만지면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확실히 생명체를 변화시키고 있는 큰 흐름이 발생한 것은 확실한 것 같아요.”
“뭔지 좀 감이 잡혀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만약 그것에 뭔지를 알려면 고위 마족들이 어떤 방법을 써서 인간들을 좀비로 만들기 시작했는지부터 알아야 해요. 저도 타마두크에게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의 대답에 의하면 이번 좀비 사태는 단 한 명의 좀비에서 시작해서 네트워크를 타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가 말하기론 좀비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했었다고 하니까요. 일부의 사람들을 한꺼번에 좀비로 만들어 낸 방법이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감염이 퍼지기 전에 이미 다수의 좀비가 만들어졌다는 말이죠?”
“바로 그거예요. 아무튼,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저도 독자적으로 알아보도록 할 테니까 거기에 대해서 정보가 생기면 연락을 주세요.”
“알겠어요. 또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또 뭔가요?”
“전에 설명했듯 제가 살던 세계도 좀비 사태로 고통받고 있었어요. 이쪽 세계와 차이점이 있다면 어째서 좀비 사태가 일어난 것인지 아예 감조차 잡지 못했다는 거죠.”
“그래서요?”
“그래서 저는 저의 상황을 거꾸로 생각해 봤죠. 저는 알 수 없는 차원의 문을 통해서 이쪽 세계로 왔어요. 이브 씨는 그런 일이 가끔 일어난다고 말했죠. 그렇다면 우리 쪽 좀비 사태는 이쪽 세계의 좀비가 차원의 문을 통해서 우리 쪽 세계로 넘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주환의 물음에 이브는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그건…… 확실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군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말인가요?”
“그 과정을 따지지 않고 오로지 가능성만을 염두에 둔다면 그렇단 말이죠.”
“좋습니다. 그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걸 전제하고 이야기를 진행할게요. 좀비들은 이쪽 세계 마족들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하셨죠. 이브 씨는 아직 좀비를 인간으로 돌리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하셨지만 만약에 찾아낼 수 있다면…… 찾아낸 다음 제가 그걸 가지고 저희 세계로 돌아간다면 저희 세계 쪽의 좀비 사태를 끝낼 수 있지 않을까요?”
주환의 말을 듣고 있던 이브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에 잠겼던 이브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주환 씨는 새로운 목표를 모색한 모양이네요.”
“네. 정말로 그게 가능하다면 제 목숨을 다 바쳐서라도 그걸 해낼 생각입니다.”
“대단한 사명감이네요.”
“저는 군인이니까요. 그리고.”
주환은 자신의 팔에 감겨 있는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제가 이곳에 온 건 분명 어떠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주환의 모습에 이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여러분이 여행을 하면서 그에 대한 실마리를 찾는다면 저에게 알려 주세요. 저 역시도 좀비를 인간으로 돌리는 방법이 있을지 그 방법을 모색해 볼 테니까요.”
“고마워요. 하지만 의외네요. 이브 씨는 탑의 바깥세상에 그리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주환의 말에 이브는 어깨를 으쓱했다.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에요. 저는 사람들이 싫어서 이 세상이 멸망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살아왔어요. 하지만 그래도 주환 씨는 돕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어째서죠?”
“주환 씨가 말한 것처럼 당신이 이곳에 온 건 분명 어떠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 말만을 남긴 채 이브는 그와의 연결을 종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