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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17화 (17/182)

17화

주환이 2층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는 아침의 햇살이 서서히 밤의 어둠을 밀어내고 있는 즈음이었다.

검은 탑의 거울 앞에서 이브의 배웅을 받은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2층 저택의 거실에 도착해 있었다.

저택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그가 떠나기 전에 거실을 밝히고 있던 촛불들도 지금은 전부 꺼진 상태였다.

주환은 2층으로 올라갔다.

그가 2층으로 올라가자 방문이 열리며 그 안에서 두 사람이 빠져나왔다.

“누구인가?”

방을 나온 이들은 손에 무기를 든 평상복 차림의 데스티나와 루카였다.

“주환이네.”

주환이 돌아온 걸 확인 한 두 사람은 무기를 거두었다.

“다녀왔어.”

주환의 말에 데스티나는 손을 들어 그의 어깨를 짚었다.

“수고했다.”

“그나저나 좋은 소식은 있는 거야?

루카의 물음에 주환은 쓴웃음을 지었다.

“반반이라고 해야 하나?”

“반반?”

“우선 차분하게 이야기를 좀 하자. 검은 탑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를 알려 줘야 하니까.”

주환의 말에 세 사람은 이 층에서 내려와 거실로 향했다.

세 사람이 모두 모이자 주환은 본격적인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간단하게나마 설명을 좀 해 줄게.”

주환은 검은 탑에서 있었던 일과 그녀와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두 사람에게 들려 주었다.

이야기가 다 끝나자 가장 얼굴에 화색이 돈 사람은 역시 데스티나였다.

“역시나 황제 폐하께서는 살아 계신단 말인가?”

“그래. 그 영원의 교차점에 갈 수 있는 이를 소개받으려면 자기 일을 도와 달라고 했어.”

“우리를 개인 심부름꾼처럼 부려 먹으려는 수작 아니야?”

루카가 그렇게 말했지만 주환은 굳이 그것을 반박하지는 않았다.

그는 루카가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럴 만하지. 이곳에 온 건 루카의 아버지에 대한 정보를 얻으러 온 거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 수 있었던 게 없으니까.’

주환은 루카를 보면서 대답했다.

“미안하다. 너희 아버지의 일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확인했지만 얻을 수 있는 게 없었어.”

“네가 사과할 필요 없어. 나는 그냥 그 여마법사란 사람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 뿐이야.”

“특이한 사람이긴 하지.”

“나 혼자 마을에 남아 있었을 때, 아버지가 돌아오시지 못할 걸 예감하고 있었어. 돌아가셨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니까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고 해도 별로 달라질 건 없는걸. 그리고 적어도 아빠가 원래 목표로 했던 곳에는 오지 못했다는 사실 정도는 알게 되었잖아.”

“아무튼 더 좋은 소식이 있을 거야.”

“괜찮아. 마음 쓰지 마. 나는 그 정도 일로는 끄떡없다고.”

루카의 얼굴이 좀 풀어지는 것을 보고 주환은 자신의 마음도 좀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 여마법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적은 단순히 좀비들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고위 마족들이라니, 마법사들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벌여 놓았군.”

데스티나가 팔짱을 끼면서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데스티나는 마족을 만나본 적 있어?”

“드물기는 하지만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마족의 강력함은 잘 알고 있지. 최하위 마족의 힘이 중급 마법사와 필적할 정도다. 그런데도 고위 마족을 제어하겠다고 달려들었을 때부터 그 계획이 실패할 것은 예정되어 있었던 거겠지.”

“마치 비대칭 전력을 연상하게 하네.”

주환은 검은 탑에서 보았던 타마두크의 모습을 떠올렸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이브를 보필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마족의 강력함을 떠올리는 것은 그로서는 힘든 일이었다.

“이번 일에 마족이 엮여 있다니. 모든 일이 그렇게 일사천리로 악화할 수밖에 없던 이유가 이해가 가는군. 그러나 무릇 기사라면 아무리 강대한 적이 있더라도 물러설 수는 없는 법.”

데스티나는 다짐을 한 다음 주환과 루카를 둘러보았다.

“주환과 루카, 솔직히 좋은 소식을 들은 것은 나로서는 기쁜 일이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해서 너희 두 사람은 이브라는 마법사가 내건 조건을 수행할 이유는 없다. 그러니 그 붐스틱을 찾는 의뢰는 나 혼자 수행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데스티나의 말에 루카는 손으로 거실 테이블을 내리쳤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쩌억.

루카가 테이블을 내리치자 테이블이 박살이 나며 바닥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박살 난 테이블을 내려다보며 주환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식으로 부수기 시작하면 이 집은 남아나는 게 없을 것 같은데.”

“내가 고치면 되잖아! 이런 테이블 금방 만들 수 있다구!”

루카는 큰소리친 뒤 데스티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 오크 부족에 너 혼자 가겠다는 말은 하지 마. 물론, 나는 이곳에 와서 크게 얻은 것은 없어.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설픈 마음가짐으로 그 지하실을 떠났다고 오해하지는 말아 줘. 나는 아빠를 찾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아. 그리고 그때까지는 너희랑 함께할 거고.”

루카가 자신의 다짐을 들려 주자 주환도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너 혼자 보낼 것 같았으면 내 독단으로 이브의 제안을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거야. 끝까지 함께할 거로 생각했으니까 받아들인 거야. 그리고 이브의 제안은 분명 나에게도 의미가 있어.”

“어떤 의미지?”

“이브는 다른 차원으로 갈 수 있는 마법사는 현재 없다고 했어. 하지만 황제의 측근 중에는 차원의 틈새까지는 도달할 수 있는 마법사가 있는 거지. 그리고 이브는 그에 준하는 인물을 알고 있고. 그러니 나도 데스티나 너와 함께하면 차원을 넘어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는 힌트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몰라.”

주환의 설명까지 끝나자 데스티나는 감격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너희들…… 두 사람 다 고맙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 * *

“마른 진흙 부족이라니. 재미있는 이름이네.”

황야를 걷고 있던 주환은 동료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브에게서 의뢰를 받은 뒤, 저택을 나선 세 사람은 현재 마른 황야를 걷고 있었다.

세 사람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검은 탑에서 꽤 거리가 있는 곳.

그곳은 ‘마른 진흙 부족’이라고 불리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오크 부족민들이 사는 곳이었다.

그의 옆에서 함께 걷고 있던 데스티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크 부족들의 이름은 대개가 다 그러한 식이다. 나름대로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뜻이라는 게 있겠지.”

오크 부족들은 인간들이 발을 들이기 힘든 험난한 곳에 사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그들이 찾아가는 마른 진흙 부족의 정착지는 붉은 황야라는 곳을 지나 그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야만 도달할 수가 있었다.

“그 이브라는 마법사가 오크들이 다 좀비가 되어 있다고 이야기했다면서?”

“그러면서도 정착지를 떠나고 있지 않으니까 골치가 아픈 거지.”

“그나저나 황야에서는 실수로 헤매기라도 했다간 물이 떨어졌을 때 큰일이 난다. 지금 우리 위치는 어떤가?”

데스티나의 물음에 지도를 펼쳐 위치를 확인한 주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도상으로는 맞게 가고 있는 게 확실해.”

“식수는?”

데스티나의 물음에 루카는 매고 있는 물통을 흔들어 보았다.

“찰랑거리는 소리 들리지? 아직 여유는 있지만 이런 황야에선 물을 먹는 양이 많아서 방심하면 안 돼.”

“혹시나 물이 부족해졌을 때 쓰는 방법이 있어. 군대에서 배웠던 건데 말이야.”

“뭔데?”

루카의 물음에 주환은 입을 벌려 혀를 올린 뒤 그 안쪽을 보여 주었다.

“이 안쪽에 물을 조금 머금고 가는 거야. 그러면 숨을 쉴 때마다 물이 분말 형태로 입안에 조금씩 들어오면서 훨씬 오래 버틸 수가 있는 거지.”

“오. 괜찮은 방법이네. 한번 해봐야지.”

루카는 곧바로 물통의 물을 혀 밑에 머금었다.

그러며 얼마간 걷던 루카는 만족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

“이거 정말 괜찮은 것 같은데.”

주륵.

그녀가 입을 열자 머금었던 물이 입 밖으로 주륵 흘러내렸다.

“우앗.”

루카가 당황하자 그 모습을 본 주환이 그녀를 놀렸다.

“방심하지 말라고 한 건 너 아니었냐?”

“이 정도 조금은 괜찮잖아!”

루카와 주환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데스티나는 무엇을 발견하였는지 한쪽을 가리켰다.

“잠깐. 저쪽을 봐.”

데스티나가 가리킨 곳엔 아주 멀리 옹기종기 서 있는 작은 건물들이 있었다.

“아마 황야에 사는 정착민들의 마을인 것 같다.”

“아직 사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렇다면 좋겠지만. 아마 무리겠지.”

세 사람은 멀리 보이는 건물 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에는 황야의 흙과 비슷한 색을 가진 건물들이 몇 채 서 있었는데 주환은 황토색을 한 이글루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신기하게 생긴 집들이야.”

주환은 건물들의 주변에 둘려 있는 나무 울타리 쪽으로 다가가면서 그렇게 말했다.

나무 울타리 안쪽으로 5개 정도의 황토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황야 유목민들의 집이다.”

“황야 유목민?”

“물을 찾아서 황야를 떠돌아다니는 집단이지. 금방금방 이동할 예정이라면 텐트를 설치하고 오래 머물 생각이면 저렇게 흙으로 움집을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세 사람은 울타리를 지나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용하네.”

“아무도 없다는 증거겠지.”

“아무리 봐도 이곳은 버려진 곳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야영하기에는 괜찮은 곳이지.”

인기척이 없었기에 그 정착지에 아무도 없는 것은 확실했으나 그들은 방심하지 않았다.

주환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랐기에 권총집에 손을 대고 있었다.

“집 하나씩을 맡아서 확인해 보도록 하자. 이렇게 좁은 집에서는 같이 들어가도 서로서로 엄호해 주는 것이 힘드니까.”

“알겠어.”

세 사람은 나누어져서 서로가 마음에 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주환은 가장 가까이 있는 흙집으로 다가갔다.

흙집에는 따로 문이 없었으며 카펫처럼 보이는 두꺼운 천이 입구를 막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주환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천을 걷어 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한낮이었지만 움집 안은 상당히 어두웠다.

창문은 작은 것 하나밖에 없었으며 화덕과 연결된 굴뚝에서 작은 빛이 새어 나올 뿐이었다.

‘확실히 아무도 없어. 심지어 화덕도 사용하지 않은 지 꽤 되었고.’

주환은 집 안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챙길 만한 물건도 보이지 않았다.

달그락.

뭔가 움직이는 소리에 주환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움직이는 것이 있는지 눈으로 좇았지만 별다르게 이상한 것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데스티나?”

대답이 없다.

“루카?”

역시나 대답이 없다.

그때, 주환은 그가 보고 있는 벽 쪽에 걸린 장식용의 천 뒤로 뭔가가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불룩 나와 있는 그 크기는 사람의 크기와 비슷했다.

“거기 누구 있습니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주환은 그 천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좀비가 숨어 있는 것일 수도 있기에 그는 언제든지 권총을 발사할 준비를 했다.

덥석.

그는 그 천을 조심스럽게 잡은 뒤 확 하고 옆으로 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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