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정말…… 신기한 물건들이에요.”
이브는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는 주환이 물건들을 살펴보면서 감탄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특히 그녀는 돌격 소총과 권총 등 현대식 무기들을 가장 흥미롭게 관찰하고 하고 있었다.
“이것들을 어떻게 쓰는 거죠?”
“알려 드리죠.”
주환은 우선 돌격 소총을 집어 들어 사격 자세를 취했다.
“이렇게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탄환이라는 게 발사가 되는 구조죠. 파괴력이 어마어마해서 한 발이라도 맞으면 거의 즉사라고 보면 됩니다.”
“마치 쇠뇌처럼 말이죠?”
“쇠뇌와 비슷한 구조이지만 탄환의 원리는 대포와 비슷하다고 보면 돼요. 그것도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작은 대포알이라고 볼 수 있죠.”
주환은 설명을 마친 다음 이브에게 돌격 소총을 내밀었다.
이브는 순순히 돌격 소총을 건네받았다.
돌격 소총을 건네받은 그녀는 감탄했다.
“꽤나 무겁네요?”
“뭐. 금속으로 된 거니까요. 기본적인 무게는 있죠. 이제 제 자세를 따라 하면 돼요.”
주환이 온 힘을 다해서 포즈를 취하자 이브는 주환의 행동을 따라 하면서 어설프게나마 사격 포즈를 잡을 수 있었다.
이브는 아까 주환이 보여 준 대로 방아쇠를 당겨 보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질 않는데요?”
“지금은 총알이 다 떨어졌으니까요. 비유하자면 화살이 없는 활이나 마찬가지이죠.”
이브가 돌격 소총을 테이블에 내려놓자 주환은 이번에는 권총의 시범을 보여 주었다.
탄창을 삽입해서 슬라이드를 움직이고 조준한 뒤 방아쇠를 당기는 것까지.
물론, 안전장치를 걸어 놓았기에 총알은 발사되지 않았다.
“그것도 보여 주세요.”
이브의 요구에 주환은 탄창을 분리하고 약실에 남아 있는 총알까지 제거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이브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이 되었다.
“온전한 상태로 주세요. 제대로 확인하고 싶으니까요.”
“안 됩니다. 이건 위험해요.”
주환의 거부에 이브는 팔짱을 꼈다.
“원하는 걸 얻고 싶지 않은 모양이죠?”
이브의 말에 주환은 어쩔 수 없이 탄창을 다시 삽탄했다.
‘어차피 안전장치를 걸었으니.’
주환은 권총을 조심스럽게 이브에게 건네었다.
이브는 권총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
“아하. 이런 구조로구나.”
권총의 구조에 감탄하던 이브는 능숙하게 권총을 조작한 뒤 사격 자세를 취했다.
틱.
그리고 그녀는 갑자기 안전장치를 풀어 버렸다.
“잠깐!”
주환이 놀라서 일어났을 때.
탕!
그 순간에 이브가 들고 있던 권총이 발사되고 그녀는 그 반동을 이기지 못하며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발사된 총알은 어디 창문에 박혔는지 쨍그랑하고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때, 타마두크가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다시 홀에 나타났다.
그는 찻잔과 찻주전자가 올라가 있는 쟁반을 들고 있었는데 번개 같은 속도로 움직인 것치고는 쟁반 위의 물건들은 일말의 흔들림이나 떨림이 없었다.
“괜찮으십니까, 주인님?”
타마두크는 쟁반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뒤 이브를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이윽고 얼굴이 빨개지면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멋져요!”
주환은 재빨리 그녀가 들고 있는 권총을 빼앗았다.
“뭐 하는 겁니까!”
주환은 화를 냈지만, 이브는 흥분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진짜 진짜 너무나도 멋진 물건이요! 저 너무너무 감동했어요. 어느 정도로 감동했냐 하면!”
이브는 어느새 주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200년근 만드라고라를 발견했던 것보다 10배는 더 즐거웠어요.”
만약 그녀의 눈을 가리고 있는 앞머리를 치웠다면 그녀의 눈이 마치 은하수를 품은 것처럼 빛나고 있을 터였다.
“타마두크는 어땠어?”
이브가 묻자 타마두크는 가볍게 손뼉을 치면서 미소를 지었다.
“최고였습니다. 아주 아주 우아함의 극치라고 표현할 수 있겠군요.”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주환은 이브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나랑 이렇게 가까이 있어도 괜찮은 건가요?”
이브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주환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방금 빨개진 것의 몇 배 정도는 더 얼굴이 빨개져 갔다.
“아아.”
이브는 마치 기절하는 사람처럼 뒤쪽으로 쓰러져 버렸다.
“실례하겠습니다.”
이번에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움직인 타마두크가 쓰러지는 이브를 우아하게 받아 냈다.
“우리 주인님에게는 자극이 너무 강했던 것 같군요.”
“전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아, 난 괜찮아요.”
이브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빠른 속도로 주환과의 거리를 벌렸다.
“죄송하지만 저랑 절대적인 거리를 유지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한 5미터 40센티 정도?”
“무슨 그런 애매한 거리를.”
“아무튼 주의해 주세요.”
주환은 권총을 점검하며 이브에게 물었다.
“분명 제가 안전장치를 잠가 두었는데 그건 어떻게 풀어 낸 겁니까?”
“저는 기술 공학 쪽에도 일가견이 있어요. 오히려 마법보다 그쪽이 더 전공이랄까요? 그래서 어떠한 물건이든 적당히 만져 보면 그 구조를 금세 파악하죠. 그리고 시간을 주면 거의 같은 성능의 레플리카를 만들거나 더 뛰어난 성능으로 고치는 것도 가능해요.”
이브는 테이블 위에 있는 돌격 소총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이 물건들…… 아무리 봐도 엄청난 것 같아요. 이 정도 기술력이라면…… 혹시 드워프들에게서 받았나요?”
“아뇨.”
“하긴 그렇겠죠. 원래 드워프들은 인간과는 교류하지 않으니까요. 특히나 이 세상이 좀비투성이가 된 이후론 더욱 그렇고요. 이런 물건들은 어디서 구한 거죠?”
“그걸 설명하려면 우선 제 사정부터 이야기해야겠군요.”
주환은 이브에게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이브는 열기를 띠며 몸을 스윽 앞으로 당겼다.
“다른 세계에서 왔다면 이런 재미있는 물건들을 가지고 온 것도 이해가 가네요. 아주 재미있어요.”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타마두크가 찻잔에 차를 따라서 두 사람에게 각각 나누어 주었다.
집사 특유의 절도 있는 동작이 주환의 시선을 빼앗았다.
“데스티나도 그렇지만 이쪽 세계의 사람들은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에 대해서 꽤 익숙해 보이는군요.”
“물론이죠.”
이브는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이면서 대답했다.
“제 집사인 타마두크만 하더라도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인 걸요.”
“다른 세계?”
“네. 송구스럽지만 그렇습니다.”
타마두크는 그렇게 말하면서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타마두크는 마계에서 왔어요.”
“마계?”
놀란 주환은 타마두크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이쪽 세계의 사람들은 저희를 마족이라고 부르더군요. 물론, 저희끼리는 그렇게 부르지 않습니다만. 어쨌든 저는 이 가문의 조상분들과 계약이 있기 때문에 대대로 이곳 집 안의 일족분들을 모시고 있지요.”
타마두크가 설명을 마치자 이브가 설명을 이어 갔다.
“저희 같은 마법사들은 일반인들보다 다른 세계의 존재들에 더 익숙하죠. 정령계에 사는 정령들이나 마계에서 사는 마족 등. 그리고 더 연구해 본 결과 이 우주는 수도 없이 많은 평행 우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도 알아낼 수가 있었고요.”
“평행 우주.”
주환도 미디어를 통하여 평행 우주에 관한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지금 저희가 사는 우주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평행 우주들과 무한히 중첩되어 있는 상태라는 거죠. 정령계든 마계든 그 무한한 평행 우주 중에서 한 가지 단면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요.”
“흠.”
주환은 팔짱을 꼈다.
“그럼 제가 그런 평행 우주 중 하나에서 왔다는 건가요?”
“그것까지는 알 수 없어요. 그렇지만 평행 우주는 무한해요. 이곳과는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세계가 있을 가능성도 있으니 가능한 이야기이긴 하죠. 아무튼, 마법사들은 이세계에서 온 존재들에 좀 익숙해져 있다는 것만 말씀드리고 싶네요. 물론, 이런 물건은 처음 보긴 했지만요.”
“마음에 든 것 같으니 다행이네요.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저희의 용건을…….”
그때, 타마두크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말씀하시는 중에 죄송하지만 지금 식사를 하실 시간입니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요?”
“식사?”
주환은 놀랐다. 지금은 새벽일 터였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식사하기에 너무 늦은 시간이 아닌가요?”
“저는 낮에는 자고 밤에 활동하는 체질이에요. 그래서 식사 시간도 밤낮이 완전히 바뀌어 있죠.”
“혹시 이미 식사를 하셨다면 손님께는 간단한 간식거리들을 준비해 드리도록 하죠.”
“그럼 그렇게 부탁합니다.”
주환이 고개를 끄덕이자 타마두크는 곧 부엌 쪽으로 사라졌다.
부엌으로 나간 타마두크가 돌아온 것은 놀랍게도 나감과 거의 동시의 타이밍이었다.
타마두크는 곧 식사할 것들을 들고 와 이브의 앞에 내려놓았다.
스프와 샐러드, 샌드위치가 그녀의 앞에 놓였고 주환의 앞에는 건포도가 박혀 있는 쿠키가 놓였다.
“그럼 맛있게 드시길.”
타마두크의 말에 주환은 쿠키를 하나 집에서 입에 넣었다.
그러자 부드러운 달콤함이 입안에 가득 차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맛있는데요?”
“저희 집사는 모든 것을 다 잘한답니다. 그중에서도 요리는 수준급이죠.”
이브의 말에 타마두크는 황송하다는 듯 허리를 숙여서 인사를 했다.
“인간계의 요리는 제가 개인적으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마계의 요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풍미가 있거든요. 종류들이 많기도 하고 말이죠. 저는 인간계의 요리는 하나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은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쿠키를 하나 더 집으며 주환은 자랑스러워할 만한 실력이라고 생각했다.
샌드위치를 집어 한입 물고 오물거리던 이브는 냅킨으로 자신의 입을 살짝 닦은 뒤 주환에게 말했다.
“우선 여러분의 용건을 듣기 전에 먼저 여쭤볼 게 있어요.”
“뭐죠?”
“우선 가지고 있는 무기를 보나 그 사정을 보나 당신이 제법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건 알겠어요. 그리고 당신의 동료도 당신과 버금가는 능력을 갖추고 있겠죠?”
“그건 보증할 수 있습니다.”
“좋아요. 그럼 제가 제안을 하나 할게요. 이제 여러분들의 용건을 들어 드릴 거예요. 제가 그 용건을 해결해 드릴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장담할 수 없어요. 그렇지만 그중 한 가지라도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게 있다면 그 방법을 모색해 보도록 하죠.”
“조건은?”
“조건은 간단해요. 여러분도 제가 원하는 걸 해주셔야 하는 거죠. 그래야 서로 원활하게 문제가 풀리지 않을까요?”
“이브 씨가 원하는 거라면?”
“우선 여러분들의 이야기부터 들어보도록 하죠. 제가 해결해 드릴 수 없는 일이라면 제 용건도 여러분에게 제안할 수 없을 테니까요. 조건은 이 정도겠네요.”
이브의 제안에 주환은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분위기로 보았을 때 평범한 일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어떡하면 좋을까……? 그리고 데스티나와 루카의 의견도 들어보지 못했는데.’
고민을 하던 주환은 곧 마음을 정했다.
“알겠습니다. 이브 씨의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