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그의 등 뒤에 비치고 있는 정체불명의 여성.
“헉!”
주환은 깜짝 놀라며 재빠르게 뒤로 돌았다.
그러나 그의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주환은 다시 거울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거울 안에도 여자는 없었다.
“무슨 일이야?”
루카와 데스티나가 동시에 거실로 뛰어나왔다.
주환은 권총집에 손을 대며 두 사람에게 주의를 시켰다.
“조심해. 이곳에 우리만 있는 게 아니야.”
“뭐?”
주환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은 거실을 둘러본다.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데스티나는 의아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대체 뭘 본 건가?”
“정확히는 모르겠어. 거울에 비치고 있는 한 여자를 봤는데.”
“헛것 본 거 아니야?”
루카의 말에 주환은 권총집에서 천천히 손을 뗐다.
“내가 잘못 본 건가?”
그러면서도 주환은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에 비치는 것은 역시나 그들 세 사람뿐.
다른 사람은 누구도 보이질 않았다.
* * *
“잘 먹었다!”
간만의 행복한 식사가 지나가자 세 사람 다 식탁 의자에 늘어진 모습이 되어 버렸다.
“나는 이제 더는 못 먹겠어.”
주환은 그렇게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자신의 앞에 있는 접시를 밀었다.
루카가 준비한 저녁 식사는 풍성하다고 표현하기도 모자랄 수준이었다.
엄청난 두께의 스테이크와 신선한 채소로 만든 샐러드, 닭고기가 듬뿍 들어간 스튜까지.
세 명이 함께 실컷 먹고도 남을 정도의 음식이 식탁에 놓여 있었다.
“이렇게 좋은 음식을 실컷 먹은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
데스티나도 만족스러운 듯 루카가 내온 디저트를 먹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이 집의 주인한테 감사해야겠는걸. 요즘 같은 세상에 이렇게 신선한 재료들을 준비해 놓다니 말이야.”
“확실히 그건 그래.”
그들이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도 집주인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의 효능은 굉장해서 그들을 감싸고 있던 경계심은 이미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이젠 좀 씻고 자고 싶은데.”
루카가 하품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물을 덥혀 놨으니까. 지금 바로 씻으면 될 거다.”
“너희 먼저 씻어.”
다 먹은 그릇들을 정리하면서 주환은 말을 이었다.
“음식은 너희가 준비했으니까 설거지는 내가 할게. 나는 설거지 끝나고 씻으면 돼.”
주환의 제안에 루카는 반색하며 데스티나에게 물었다.
“데스티나, 나랑 같이 들어갈까?”
루카가 묻자 데스티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편하지만 않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지.”
두 사람이 식탁에서 일어나 욕탕으로 갔다.
데스티나와 루카가 먼저 씻으러 간 사이 주환은 곧바로 설거지에 들어갔다.
그가 살던 세계와는 설거지의 방법이 확연하게 달랐다.
꼭지를 돌리면 물이 펑펑 나오는 싱크대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물은 물통에서 떠서 사용해야 했고 그릇을 닦을 때는 수세미 열매로 만든 천연 수세미를 사용해서 닦는 방식이었다.
‘불편하네. 내가 살던 시대의 문화가 확실히 그리워지는고만.’
잡생각을 하며 그릇을 닦던 주환은 묘한 기척을 느끼며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아까 거울에서 보았던 그 정체불명의 여성을 다시금 떠올렸다.
‘분명 뭔가 있는데…….’
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기에 그는 다시 설거지를 이어 나갔다.
휘익!
다시 느껴지는 이상한 기분에 주환은 다시 또 뒤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계속해서 이상한 낌새가 있다는 건.’
주환은 닦고 있던 그릇을 내려놓고 손을 닦으면서 부엌의 밖으로 나갔다.
그가 거실로 나갔을 때, 거실의 가운데에 있던 거울의 위치가 조금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울이 움직였잖아?”
주환은 곧바로 거울의 앞으로 달려갔다.
거울의 위치가 조금 움직이긴 했지만, 그저 그뿐이었다.
거울을 잡고 제자리로 옮기려던 주환은 문뜩 거울을 보다가 숨을 집어삼켰다.
“헉.”
거울에는 아까 주환이 보았던 바로 그 여자가 비치고 있었다.
주환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주환은 이번에는 그 여자가 사라지지 않고 거실의 복도에서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주환은 거울을 놓고 살금살금 그 여자를 따라갔다.
복도를 걷고 있는 여자는 어느 문 앞에 딱 멈추었는데 그곳은 데스티나와 루카가 목욕하고 있는 바로 그 욕실의 문이었다.
정체 모를 여자가 그 욕실의 문을 열려고 하자 주환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이봐!”
그와 동시에 그 여자는 마치 유령처럼 욕실의 문을 통과해서 안쪽으로 사라졌다.
‘유령?’
주환은 빨리 달려가서 욕실의 문을 두드렸다.
“데스티나! 루카!”
그가 두 사람의 이름을 불렀지만, 안쪽에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주환이 난감해하고 있을 때, 끼익.
욕실의 문이 살짝 열렸다.
“대체 무슨 소란인가?”
문틈으로 옷을 걸친 데스티나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방금까지 씻고 있었던 듯 그녀의 머리칼에는 물기가 묻어 있었다.
“방금 안으로 들어간 여자는?”
“여자?”
주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던 데스티나는 주환이 언급했던 거울 속 여성을 떠올렸다.
“네가 말했던 그 거울 속 여자 말인가?”
“응. 이번에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보였어. 이 저택의 복도를 걸어가더니 너희가 있던 그 욕실 앞에서 멈췄어. 그리고 그 욕실 문을 통과해서 안쪽으로 들어가더라니까.”
“확실한가?”
“확실해. 너희들이 욕실에 있었을 때 누군가 들어온 걸 본 적 없어?”
“없다.”
데스티나는 다시금 욕실의 안쪽을 확인했다.
“여긴 우리밖에 없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루카의 목소리가 안쪽에서 들려왔다.
“두 번이나 보았으니 그가 헛것을 본 게 아닌 것은 확실해.”
“아무튼 이곳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느긋하게 목욕을 즐기고 있을 때가 아닌 것만큼은 확실하군. 잠시 기다려라. 금방 마무리를 하고 나올 테니.”
데스티나는 그 말만을 남기고는 문을 닫았다.
주환은 그 정체불명의 여자 유령이 두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렇지만 그 유령의 목적을 알 수 없다는 것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잠시 그곳에 서서 기다리고 있던 주환은 놔두고 온 설거짓거리를 떠올리고는 몸을 돌렸다.
몸을 돌린 주환은 깜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아까 보았던 그 정체불명의 여자 유령이 바로 그의 옆에 떡하니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왔다!”
여자 유령을 보며 그렇게 소리친 주환은 순간 발이 꼬이는 것을 느꼈다.
발을 헛디딘 주환은 자신의 옆에 있는 욕실의 문 쪽에 부딪혔다.
“큭.”
그가 문에 기대고 있는 동안 그의 뒤에서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등을 받쳐 주고 있던 문이 열리자 주환은 뒤쪽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쿵!
욕실의 안쪽으로 넘어진 주환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데스티나와 루카를 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목욕을 마치고 나올 채비를 하던 참이었다.
“무슨 일이야?”
루카의 물음에 주환은 손으로 밖을 가리켰다.
그러자 두 사람의 시선이 욕실의 밖으로 향했다.
밖에 있는 여자 유령을 발견한 데스티나는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유령!”
데스티나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들의 눈앞에 있는 여자는 일반적인 인간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형태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온몸이 반투명한 상태였기에 뒷배경이 비쳐서 보일 정도였다.
데스티나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루카는 곧바로 안쪽에서 바가지에 물을 퍼온 뒤 여자 유령에게 뿌렸다.
루카가 뿌린 물은 여자 유령의 몸을 그대로 통과하여 뒤쪽 벽에 뿌려졌다.
상대가 실체가 없음을 확인하자 세 사람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주환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두 사람에게 질문했다.
“너희는 귀신을 본 적이 있어?”
“아니. 처음이야.”
“나도 처음이다.”
주환 일행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여자 유령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 귀신이 아니에요.”
그녀의 목소리는 작고 힘이 빠진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인간처럼 보이지도 않는걸.”
루카는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모습은 제 진짜 모습이 아니에요. 지금은 마법의 힘을 빌려서 제 ‘영체’를 보냈을 뿐이죠.”
공격할 의사는 없어 보였기에 세 사람은 그녀에게로 점점 다가갔다.
여자는 검고 긴 머리칼을 하고 있었으며 나이는 스무 살 초반 정도로 보였는데, 특이한 것은 앞머리를 내려서 눈을 완전히 가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주환은 눈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보았을 뿐이지만 그녀가 상당히 미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법의 힘이라면 당신은 마법사?”
“맞아요.”
여자가 대답하자 이번에는 데스티나가 말했다.
“우리도 마법사를 찾고 있소.”
“어떤…… 마법사죠?”
“이름은 모르오. 다만 검은 탑의 마법사라고만 알고 있소.”
“역시…….”
“역시?”
“당신들은 저를 찾아오고 계셨던 거로군요.”
“그렇다면 당신이 바로 그 검은 탑의 마법사인가요?”
“맞아요. 저는 당신들이 이 탑을 향해서 오고 있는 것을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마법사의 작은 재주 중 하나일 뿐이에요.”
“우리를 계속해서 헤매게 한 것도?”
“그것도 맞아요. 마법을 써서 당신들이 탑 쪽으로 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죠. 그렇지만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이기에 이 집 쪽으로 오도록 유도를 한 거예요. 제 나름의 초대라고 생각해 주세요.”
“어째서 탑 쪽으로 가는 걸 막는 거죠?”
“그건…….”
여마법사는 말끝을 흐리더니 이윽고 말을 이었다.
“저는…… 손님이 싫기 때문입니다.”
“예?”
여마법사의 대답이 의외였기에 나머지 세 사람은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 투명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잖아?”
루카가 따지듯이 묻자 여마법사는 약간 겁을 먹은 듯한 걸음으로 물러섰다.
“아, 영체로 만나는 것까지는 견딜 수가 있어요. 영체가 아니라 진짜 육신 대 육신으로 만나는 것이 싫을 뿐이죠.”
계속해서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던 여마법사는 결심을 한 듯 말을 이었다.
“어쨌든 여러분을 이곳까지 모신 이유는 며칠간 헤매게 한 것에 대한 작은 보답 같은 거예요. 식사도 하시고 푹 쉬시면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시면 좋겠어요.”
“그럴 수는 없어!”
루카는 마치 멱살을 잡듯이 여마법사의 영체에 달려들었다.
루카가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손은 여마법사의 영체를 통과에서 허무하게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찾으려는 이유도 안 들어보고 이러는 법이 어디 있어!”
“이, 이러지 마세요. 저는 당신들이 가진 이유 따위에는 관심이 없어요.”
여마법사는 휘익 움직여서 한쪽 벽으로 물러났다.
주환은 특이한 말투라고 생각했다.
얼굴은 울상에다가 남은 걱정하는 표정이지만 말투는 꽤 차갑고 신랄했다.
“오늘 한 대접으로 여러분에게 충분히 사례했다고 생각해요.”
“잠깐. 우리 말 좀 들어 주세요.”
데스티나가 루카를 말리는 동안에 주환이 앞으로 나섰다.
“저희도 그 먼 길을 걸어온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라도 들어 주실 수 없습니까?”
“그럴 마음 없어요.”
주환은 손을 들어서 루카를 가리켰다.
“저 아이의 아버지가 검은 탑의 마법사를 찾으러 나서서 실종되었습니다. 그분을 만난 적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찾아온 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