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12화 (12/182)

12화

세 사람이 이상함을 느낀 것은 마지막 야영지를 뒤로하고 이틀쯤 더 걸었을 때쯤이었다.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던 주환은 옆에서 걷고 있는 데스티나를 향해 물었다.

“잠깐만 데스티나. 지금 뭔가 엄청나게 이상하지 않아?”

주환의 물음에 데스티나는 느낀 바가 있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아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아무리 다시 계산을 해봐도 내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러니까 우리 지금.”

루카는 주변의 풍경을 둘러보더니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완전히 제자리걸음을 하는 거 아니야?”

“그런 게 가능해?”

주환은 루카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러닝 머신을 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지금 쉬지도 않고 계속해서 걸어왔잖아? 데스티나, 혹시 우리가 걷다가 방향을 바꾼 적이 있었나?”

데스티나는 두 사람에게 나침반을 보여 주었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 나침반을 이용해서 일직선으로 걸어갔다. 사실 나침반이 필요한 상황도 아니다. 우리의 목적지가 눈에 직접 보이고 있으니까.”

주환은 총의 스코프로 검은 탑을 주시했다.

검은 탑은 이틀 전에 보았던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문제는 탑의 크기도 이틀 전과 다를 바가 없이 전혀 커지질 않았다는 점이었다.

“저 탑과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은 느낌이야.”

“느낌만이 아닌 것 같은데.”

세 사람은 이 황당한 상황에 어리둥절해서 서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떡하지? 우선 여기서 야영을 할까?”

주환의 의견에 데스티나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정말로 헤매고 있는지를 알아야 할 것 같다. 좀만 더 참고 움직여 보자. 그래도 저 탑과 가까워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정말로 헤매고 있다고 판단을 해도 되겠지.”

“이번에는 확실하게 절대로 옆으로 빠지거나 하지 말고 일직선으로 가자.”

“알았어.”

서로 약속을 한 세 사람은 탑을 향해서 다시 한번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로부터 다시 하루 뒤.

“이건 불가능해!”

그렇게 외치면서 주환은 산길의 한쪽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 확실해졌어. 우리는 지금 명백하게 이 산속을 헤매고 있는 거야.”

데스티나는 주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도 이젠 정말로 지치는군. 그런데 도대체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데스티나는 산 위에 있는 검은 탑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탑은 그들을 비웃듯이 같은 크기로 고고히 서 있을 따름이었다.

“잠깐만. 여기 이쪽으로 와 봐!”

데스티나와 주환이 시선을 돌리자 근처에 있는 나무를 살펴보는 루카를 볼 수가 있었다.

루카는 놀란 얼굴로 두 사람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직접 보면 알 거야! 빨리 와 봐!”

루카가 재촉하자 주환은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일으킨 뒤 루카에게 다가갔다.

데스티나도 일어서서 주환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다가오자 루카는 나무의 껍질을 가리켰다.

“이걸 봐봐.”

나무에는 누군가가 상처를 낸 듯 크게 X자 표시가 새겨져 있었다.

“이걸 누가 새긴 거지?”

주환의 물음에 루카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내가.”

“왜?”

“설명해 줄게. 하루 전에 우리가 이상한 것을 처음 느꼈을 때, 아무리 봐도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 숲을 봐.”

루카는 그들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숲을 둘러보았다.

“뭔가 이상한 걸 못 느끼겠어?”

주환의 눈에는 그저 평범한 숲일 따름이었다.

그것은 데스티나의 눈에도 마찬가지였다.

“들어 봐. 나는 나무의 모양이나 자라고 있는 구역의 전체적인 형태를 봤을 때 내가 지나갔던 곳인지를 대충은 알아볼 수 있어. 그래야 길을 잃지 않으니까.”

“그럼 우리가 지금까지 같은 곳을 계속 돌고 있던 게 확실한 거야?”

“어느 정도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너무 말도 안 되는 일이라서 계속 걸어 본 거야. 확신이 들 때까지. 그리고 몇 개의 나무에다가 이런 표시들도 남겨 놓았어. 일직선으로 계속해서 걷고 있는데 이런 표시를 다시 만난다는 건 우리가 같은 자리를 뱅글뱅글 돌고 있다는 뜻이잖아?”

루카의 말을 끝으로 세 사람은 아무 말도 없었다.

모두가 다 알 수 없는 오한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누가 우리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는 걸까?”

먼저 입을 연 이는 주환이었다.

“그렇지만 누가? 무슨 목적으로?”

“그리고 이 정도의 거대한 장난을 칠 수가 있다니, 믿기가 힘들군.”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빠져나갈 방법이 없을까?”

“솔직히 지금 상황에서는 떠오르는 것이 없다. 단지 우리가 어이없는 방법으로 길을 잃은 건지 아니면 정말로 누군가 우리에게 장난을 치는 건지조차 구별을 할 수가 없으니까.”

데스티나의 대답에 잠시 고민을 하던 주환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럼 반대로 해보는 건 어떨까?”

“반대로?”

그의 말에 루카가 되물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완벽하게 일직선으로 걸었을 때 계속해서 같은 쪽을 돌았잖아? 그러니까 이번에는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이곳저곳으로 방향을 바꿔 보자는 거지. 어때?”

두 사람 다 주환의 말에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차피 이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까 뭐라도 시도해 보는 것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

“그렇지?”

“다들 지쳤을 텐데 더 걸어도 상관없겠나?”

데스티나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최소한 어느 정도 해결책의 실마리라도 잡고 쉬자고.”

주환도 꽤 피곤함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는 동료를 독려했다.

“좋아. 그러면 움직이도록 하지.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어서 걷도록 한다.”

데스티나의 말에 따라 세 사람은 지금까지 가던 길을 벗어나서 걷기 시작했다.

* * *

세 사람은 일부러 길을 벗어나서 숲이 우거진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길이 있는 곳은 왠지 함정같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들이 몇 시간쯤 걸었을 때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을 가장 먼저 눈치챈 사람은 바로 루카였다.

“저길 봐.”

루카가 가리킨 곳에는 큰 이층집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길도 없는 산 중턱에 턱 하니 세워져 있는 고급스러운 이층집은 누가 보아도 이질적인 면이 강했다.

“산장?”

“이렇게 길도 없는 곳에 산장을 세웠을 리가.”

“심지어 평범한 오두막집도 아니야. 정말로 고급스러운 집이라구.”

세 사람은 2층 건물의 앞으로 가까이 갔다.

불은 켜져 있지 않았고 사람이 사는 듯한 느낌도 없었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본 세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집의 문으로 다가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평범한 집은 아닌 것 같지?”

“이런 상황에서 이런 게 튀어나온다면 의심을 해보는 것이 정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은 잠겨 있어?”

루카의 물음에 주환은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손잡이는 꽤나 차가웠다.

문을 밀자 가볍게 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잠겨 있지 않아.”

“하지만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가는 것은 기사로서의 예절이 아니다.”

“이런 거 저런 거 따질 때가 아니잖아?”

그렇게 말하면서 갑자기 루카가 집의 문을 뻥 하고 걷어찼다.

그러자 문짝이 부서지면서 안쪽으로 스르륵 넘어졌다.

“이제 들어가자.”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루카를 보면서 주환은 한숨을 내쉬었다.

“집주인이 항의해도 나는 책임 못 진다.”

“그래서, 안 들어갈 거야?”

“이제 와서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집 안에서 아무런 낌새가 느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한 세 사람은 천천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의 사늘한 공기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집주인도 없고, 좀비들도 없는 것 같고. 그렇지?”

“여러모로 수상한 집이로군.”

세 사람은 집 안을 돌아다니면서 불을 켜기 시작했다.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는 초들이 남아 있었기에 그들이 집 안을 밝히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모든 불이 다 켜지자 그제야 세 사람은 집 안의 풍경을 제대로 볼 수가 있었다.

저택의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리는 고급스러운 가구와 실내 장식이 세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약탈을 당한 흔적이나 낡은 흔적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었으며, 모든 것들이 정갈하게 제자리에 놓여 있었다.

단지 누군가 사용한 흔적만이 없을 뿐이었다.

“이상해. 이상해. 이상해.”

루카는 집 안을 살펴보면서 이상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집 안을 다 둘러보고 온 데스티나가 계단을 내려오면서 입을 열었다.

“2층에는 방 두 개가 있을 뿐이다. 전부 다 침대도 있고 말할 나위 없이 고급스럽더군. 1층은?”

“1층은 거실 하나, 방 하나, 그리고 부엌과 욕실이 있어.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 있고 말이야.”

“여기 대단해!”

부엌 안에서 루카가 즐거운 비명을 질러댔다.

“상하지 않은 음식 재료들이 한가득이야. 심지어 막 짜낸 듯한 우유도 있다고.”

루카가 컵에 우유를 따라와서 데스티나와 주환에게 내밀었다.

주환은 컵을 받아들었다.

안에는 우유가 가득 차 있었다.

먹을까 말까 머뭇거리던 주환은 결심한 듯 우유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신선한 우유의 고소한 감칠맛의 그의 혀를 휘감자 주환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 굉장히 신선해.”

“정말로 막 짜낸 수준의 맛이로군.”

“그렇지?”

루카는 요리할 생각에 싱글벙글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 모습이었다.

너무나도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는 집 안의 풍경에 세 사람은 오히려 기묘한 공포심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 초대를 받은 게 아닐까?”

주환의 말에 모두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서 일직선으로 갈 때는 헤매다가 방향을 바꾸니까 이곳으로 인도되었다. 그리고 이 집 안의 비정상적인 상태. 아마 우리를 헤매게 한 사람은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오고 싶었던 모양이로군.”

“무슨 목적으로?”

“그건 알 수가 없겠지.”

“아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구.”

루카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팔짱을 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고. 요리할 수 있는 부엌이 있고. 씻을 수 있는 곳이 있으며 편안하게 잘 수 있는 침대가 있다. 누가 준비해 주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야? 며칠간 엄청 고생했으니까 오늘만큼은 푹 쉬자구.”

“그렇긴 하네. 이 상태에서는 아무리 생각을 해봐야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그럼 짐을 한쪽에다가 내려놓도록 하지. 오늘만큼은 야영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군.”

“그렇지? 우선 두 사람은 짐 정리를 좀 하고 있어. 나는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 줄 테니까.”

루카는 그렇게 말하면서 부엌 쪽으로 사라져 갔다.

그러자 데스티나는 주환에게 말했다.

“나는 욕실로 가서 다들 씻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하도록 하겠다. 주환, 넌 짐 정리를 해줘.”

“알았어.”

데스티나까지 욕실로 사라지자 혼자 남은 주환은 그들의 짐을 거실의 한쪽에다가 놓기 시작했다.

짐을 정리한 다음 거실을 둘러보던 주환은 문득 눈에 띄는 것을 발견했다.

‘거울?’

그것은 놀라울 정도로 큰 전신 거울이었다.

둥근 타원형에 주변에는 날개 모양으로 예쁘게 장식이 되어 있는 전신 거울이 보란 듯이 거실의 한가운데 배치가 되어 있었다.

“이렇게 큰 거울이 있었는데 왜 아까까진 몰랐지?”

주환은 전신 거울의 앞에 다가가서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군복 위에 방탄복을 걸치고 있는 후줄근한 모습.

제대로 씻지 못하고 면도도 하지 못한 그의 모습은 실제 나이보다 몇 년은 더 늙어 버린 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몸을 이곳저곳 관찰하던 주환은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어 시야의 초점을 옆쪽으로 두었다.

그러자 그는 배경이 거울에 비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뒤에는 정체불명의 여성이 서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