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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8화 (8/182)

8화

저벅저벅.

어두운 밤을 가르며 밭을 가로지르고 있는 세 사람.

주환과 데스티나, 두 사람은 괭이를 들고 앞장선 소녀의 뒤를 따랐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루카.

대장장이의 노트에서 언급되었던 소녀가 바로 그녀였다.

소녀가 자신의 이름을 루카라고 밝히고 난 뒤, 주환과 데스티나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루카에게 설명해 주었었다.

설명을 다 들은 루카는 곧바로 두 사람을 이끌었다.

아직도 밭을 거닐고 있을 대장장이 좀비를 찾기 위해서였다

앞장서서 성큼성큼 걷던 루카는 휙 돌아서면서 따라오던 주환의 발밑을 괭이로 가리켰다.

“그것들 밟지 마!”

루카의 화난 목소리에 놀란 주환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자 군화에 밟혀서 으깨진 풀이 드러났다.

“이것들은 다 내가 키우고 있는 것들이야. 이 밭은 전부 내 것이고. 그러니까 함부로 밟았다가는 죽을 줄 알아?”

“밭을 가로지르면서 밟지 않는 건 쉬운 일이긴 하지.”

주환이 비꼬듯이 대꾸하자 루카는 마치 몽둥이를 어깨에 멘 불량배 같은 포즈를 취하며 그에게 맞섰다.

“뭐라고?”

“자자, 진정해라.”

분위기가 살짝 험악해지자 데스티나가 곧바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지금은 그 대장장이 좀비를 찾는 게 우선이다. 어차피 좀비이기 때문에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다.”

데스티나의 말에 루카는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금 발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당신들이 말한 대로 정말로 그가 우리 집을 찾고 있는 거라면 찾는 건 어렵지 않겠지. 그냥 우리 집 쪽으로 돌아가면 되니까.”

어느 정도 걷던 주환 일행은 이윽고 여전히 괭이를 든 채로 걷고 있는 좀비를 발견할 수 있었다.

“네가 봤을 때 그 대장장이 아저씨가 맞는 것 같아?”

주환이 그렇게 묻자 좀비를 바라보고 있던 루카는 입을 삐죽이면서 쓰고 있던 밀짚모자를 매만졌다.

“틀림없어. 입고 있던 옷이 똑같아.”

루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바보 같은 아저씨. 그냥 우리 집에 같이 있을 것이지. 굳이 왜 나한테 선물을 해주겠다고 해서 저 모양 저 꼴이 된 거야?”

루카는 손을 뻗어서 주환과 데스티나가 더는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더 오지 마. 좀비가 되어서까지 나를 찾아오려고 했던 저 아저씨의 염원. 결국은 내가 풀어 주어야 할 테니까.”

“야. 잠깐.”

주환이 말릴 새도 없이 루카는 달려 나갔다.

달려간 루카는 좀비의 앞을 막아섰다.

루카가 막아서자 좀비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주환이나 데스티나를 보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반응이었다.

“아저씨. 그거 나 전해 주려고 여기까지 가지고 온 거야?”

루카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좀비는 천천히 떨리는 손으로 들고 있던 괭이를 루카에게 건네 주었다.

루카는 좀비가 건네는 괭이를 받아들고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

“이거 정말로 좋은 괭이네. 아저씨. 고마워. 잘 쓰도록 할게.”

퍽!

루카가 괭이를 휘두르자 좀비는 정확히 공중에서 두 바퀴 반을 돌더니 바닥에 철퍼덕 떨어져 내렸다.

넘어진 채로 몸을 부르르 떨던 좀비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뭐야?”

“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묻는 루카의 모습을 보면서 주환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니, 그러니까, 아무리 그래도 너를 위해서 선물까지 가져온 사람인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어차피 좀비잖아?”

“그건 그렇지만.”

“좀비가 되어 버렸다면 편하게 해주는 게 아저씨를 위한 길이겠지. 아무튼, 우리 집으로 데려다 줄 테니까 따라와.”

죽어 버린 좀비를 뒤로하고 루카는 두 개의 괭이를 양손에든 채 다시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 * *

“여기가 우리 집이야.”

루카가 안내한 곳은 그들이 떠나왔던 로덴 마을에서도 거리가 꽤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한적한 곳에 홀로 서 있는 나무 오두막.

주변에 집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오두막 옆에 큰 나무가 서 있어 또 하나의 지붕처럼 오두막의 위를 가려주고 있다.

철컥.

잠긴 문을 열쇠로 연 루카는 문을 당기면서 주환과 데스티나에게 손짓을 했다.

“빨리 들어와. 놈들이 보면 안 되니까.”

그들이 집 안에 들어가자 문은 조용히 닫혔다.

루카는 안에서 문을 잠갔다.

그러고는 성냥을 꺼내서 한쪽에 놓여 있는 초에 불을 붙였다.

“뭐. 누추하지만 밖에서 밤을 보내는 것보단 낫지 않아?”

초의 불빛이 오두막 안을 가득 채운다.

오두막의 안은 상당히 썰렁했다.

보이는 거라고는 식탁과 불을 피울 수 있는 화덕, 그리고 바닥에 깔린 작은 카펫이 전부였다.

“밤이슬을 맞으면서 노숙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주환은 오두막의 안을 둘러보면서 솔직한 감상을 내뱉었다.

“이런 곳에서 계속 버텼다는 건 좀 이해가 안 가는데.”

그의 말처럼 오두막의 안에는 생필품으로 쓸 수 있는 물건들이 전혀 존재하질 않았다.

“그야 당연하지. 진짜 문은 여기에 있으니까.”

루카는 바닥에 깔린 카펫을 한쪽으로 치웠다.

그러자 지하실로 통하는 정사각형의 나무 문이 드러났다.

“진짜 집은 이곳이지.”

루카는 나무 문을 열고는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쪽으로 쉽게 내려갈 수 있도록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었다.

루카가 먼저 내려가자 주환과 데스티나가 차례대로 그 뒤를 따랐다.

루카는 들고 있는 초를 이용해서 지하실 안에 있는 등불들에 불을 붙였다.

확.

위층의 살풍경한 모습과는 다르게 지하실의 안은 놀랍도록 잘 꾸며져 있었다.

지하실과 위층의 모습이 서로 바뀌었다고 해도 믿을 수가 있을 정도였다.

가구들은 잘 배치되어 있었고 사용할 수 있는 생필품들도 한쪽에 잘 정리되어 있었다.

벽에는 말린 약초들이 걸려 있었다.

“아유, 힘들다. 자다가 갑자기 뛰어나갔으니 힘들만도 하지.”

루카는 침대에 몸을 던지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두리번거리면서 지하실을 구경하던 두 사람에게 손짓했다.

“편한 곳에 앉아.”

그 말에 주환은 곧장 메고 있던 짐을 내려놓으면서 옆에 있는 의자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온종일 걷고 움직였으며 싸움을 했기에 그의 몸은 물먹은 솜처럼 너무나도 무거웠다.

“힘들어 죽을 지경이야.”

주환은 시체처럼 아주 축 늘어져 버렸다.

데스티나 역시 그의 옆쪽에 걸터앉았다.

피곤함에 찌들어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루카는 편하게 있을 것을 권했다.

“오늘만큼은 마음 놓고 쉬어도 돼. 적어도 지금까지 좀비들에게 이곳을 들킨 적은 없으니까.”

루카의 말에 주환은 자신의 장비들을 한쪽에 내려놓았다.

그가 장비를 내려놓는 동안에도 데스티나는 여전히 갑옷을 착용한 채 쉬이 긴장을 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주환은 손을 올려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제 긴장 좀 풀어.”

“나는 괜찮다. 무릇 기사라는 자는 쉬이 지치지 않는 법.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순간은 오로지 관에 누웠을 때뿐이다.”

데스티나의 반응에 루카는 피식 웃었다.

“이봐, 기사씨. 남의 집에 초대받아 놓고 그렇게 있으면 그것도 예의가 아니잖아?”

“루카의 말 들었지? 그렇게 계속 긴장하고 있으면 진짜로 싸워야 할 때는 싸울 수가 없게 돼. 우리 부대의 상관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

“무슨 말?”

“휴식도 전투의 일환이라고 말이야.”

주환의 말에 데스티나는 비로소 자신이 입고 있는 갑옷을 천천히 벗기 시작했다.

갑옷을 벗던 데스티나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좀 창피하군.”

“뭐가?”

“요즘 제대로 씻지를 못했으니 몸에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날 터이니 말이야.”

“서바이벌 상황에서 그런 사치를 누리기는 힘들지.”

주환과 데스티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루카는 두 사람에게 제안했다.

“그럼 다 같이 씻으러 다녀오는 건 어때?”

“오.”

루카의 말에 주환의 눈이 반짝인다.

“여기 씻을 수 있는 곳이 있는 거야?”

“물론이지. 이곳 오두막에서는 씻을 수가 없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냇가가 있어. 거기서 씻기도 하고 마실 물을 길어오기도 하거든.”

* * *

주환과 데스티나는 루카의 안내를 받아 오두막 근처의 시냇가에 도착했다.

시냇물은 넓이가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끝에서 끝으로 쭈욱 길게 이어져 있었으며 하얀 보름달이 검은빛의 수면에 둥실 떠 있었다.

주환과 데스티나는 씻는 동안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각자의 주요 무기만을 챙겨 온 상황.

시냇가에 도착하자 루카는 몸을 숙이곤 물의 안쪽에 손을 넣었다.

“여기야. 이 시냇물은 깨끗하니까 얼마든지 마셔도 상관없어.”

루카의 말에 주환은 곧장 손으로 물을 떠 목을 축였다.

시원하고 맑은 물이 메말라 있던 주환의 입과 목구멍을 적셔 주었다.

데스티나도 가까이 와서 물을 떠 마시기 시작했다.

“매우 시원하군. 전혀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이야.”

데스티나는 감탄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확실히 그러네. 돌아갈 때 여기서 물 좀 떠 가야겠어.”

풍덩!

그때, 옆에서 무언가 물에 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환과 데스티나는 반사적으로 물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루카가 옷을 입은 채로 시냇가에 들어가 헤엄을 치고 있는 모습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이리저리 자유롭게 헤엄을 치던 루카는 두 사람을 향해서 손을 흔들었다.

“빨리 들어와! 꽤 기분 좋으니까!”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데스티나는 미소를 지었다.

“저렇게 보니까 영락없는 어린애군.”

물에서 헤엄치고 있는 루카를 보며 주환은 몸을 풀었다.

“그럼 나는 이쪽에서 씻을게.”

“알았다. 나는 루카와 함께 저쪽에서 씻도록 하지.”

“멀지는 않은 곳에 있을 테니까 혹시나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소리를 쳐. 바로 갈 테니까.”

“신경 써줘서 고맙군. 하지만 네가 더 조심해야 할 거다. 우리는 둘이지만 너는 혼자이니까.”

데스티나는 그 말만을 남기고는 자리를 이동했다.

데스티나의 모습이 사라지자 주환은 곧바로 속옷만 남긴 뒤 옷을 다 벗어 버렸다.

그는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무기를 근처에 둔 뒤 시냇물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시냇물은 목욕하기에는 딱 좋은 깊이였다.

시냇물에 들어가 목욕을 즐기고 있던 그는 팔을 들어 자신이 차고 있는 시계를 확인했다.

옷은 벗을 수 있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 시계는 그의 팔에서 뗄 수가 없었다.

‘대체 이것의 정체는 뭘까?’

그는 그 시계의 정체에 대해 고민했지만,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때.

주환은 등 뒤에서 알 수 없는 살기를 느꼈다.

주환은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착각인가?’

그가 관심을 돌리려는 순간.

촤악!

무언가 수면에서 솟구쳐 오르며 주환의 얼굴을 잡았다.

“뭐야!”

주환의 얼굴을 잡은 존재는 그를 놀라운 힘으로 물속에 처박았다.

“푸핫!”

주환이 몸부림을 치자 상대는 그의 몸을 놓아 주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주환이 방어 태세를 취하려고 할 때.

“놀라지 마. 나야, 나.”

익숙한 목소리에 주환은 눈을 비비며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루카가 그의 주변을 이리저리 헤엄치고 있었다.

“루카?”

“혼자 있으면 심심할까 봐 장난 좀 치러 왔지.”

“장난이라니.”

루카는 장난이라고 했지만 주환은 놀라움을 느꼈다.

“설마 저 멀리에서 잠수로 여기까지 온 거야?”

“맞아.”

주환은 여유 있게 배영으로 자신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루카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좀비들을 한 방에 때려잡는 괴력과 오랜 시간 은밀하게 잠수할 수 있는 강철 체력.

주환은 루카가 평범하지 않은 아이임을 직감했다.

“루카, 너는 대체 정체가 뭐야?”

“내 정체라고 해봐야 별거 없어.”

루카는 배시시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난 그냥 평범한 농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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