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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7화 (7/182)

7화

눈앞의 사람을 분명히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격하지 않는 좀비의 모습.

좀비의 놀라운 반응에 할 말을 잃은 두 사람은 그들에게서 멀어져 가는 좀비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 좀비의 뒷모습에 무언가를 느낀 듯 데스티나는 롱소드를 다시 집어넣으며 주환을 향해서 말했다.

“저 좀비를 쫓아가도록 하자.”

“왜?”

데스티나는 손을 들어서 좀비가 들고 있는 괭이를 가리켰다.

“저 좀비. 아마도 그 대장장이인 것 같다.”

“그 대장장이라고?”

주환은 다시 한번 좀비의 뒷모습을 바라본 다음에 말을 이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

“저 좀비가 들고 있는 바로 저 괭이. 저 괭이가 심상치가 않다.”

주환은 대장장이가 루카라는 아이에게 괭이를 가져다주려고 했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하지만 우연일 수도 있잖아?”

“그때도 말했지만 나는 대장장이도 아니고 농부였던 적도 없다. 그렇지만 평생 수많은 검과 무기들을 보고 살았지. 대장장이가 온 힘을 다해서 벼려 낸 물건이 있다면 그것이 검이 아니라 농기구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그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

데스티나는 손을 들어서 두 사람에게서 멀어져 가는 좀비의 등을 가리켰다.

“저 괭이는 보통 괭이가 아니다. 나는 분명히 알 수가 있지.”

* * *

저벅 저벅.

달밤에 행진하는 두 명의 인간과 한 명의 좀비.

그것을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보아도 기묘한 광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좀비와 인간.

둘은 서로 적이지만 지금은 둘 중 누구도 서로 공격하지 않는다.

좀비는 앞서 가고 인간은 그 뒤를 따른다.

주환과 데스티나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둔 채로 대장장이로 추정되는 좀비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어째서 우리를 공격하지 않았을까?”

주환이 그렇게 물었지만 데스티나 역시 그 이유를 알 턱이 없었다.

“나도 저런 광경은 처음 보는군. 아직은 정확히 이유가 뭔지를 분간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인간에게 관심이 없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우리에게만 관심이 없는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아직도 기억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기억?”

“그래. 좀비라는 존재, 뇌가 활동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죽기 전의 기억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수가 있잖아? 만약 그가 정말로 그 대장장이라면 루카라는 아이에게 괭이를 가져다주어야 한다는 그 강렬한 기억이 남아 있었을 테고.”

“그렇다면 죽어서도 그 행동을 완수하려는 거다. 이 말인가?”

“그저 추측일 뿐이야.”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로군. 적어도 우리를 공격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니까. 좀비가 겁을 먹어서 그랬을 리도 없고. 이렇게 계속 따라가다 보면 그 루카라는 아이에게 닿을 수도 있겠군.”

“정말로 기억을 따라가는 거라면 말이지.”

좀비의 걸음은 느렸지만 두 사람은 참을성 있게 그 뒤를 따랐다.

좀비의 뒤를 따라가다 보니 로덴 마을의 중심지를 벗어나 그 외곽 쪽으로 나가게 된 두 사람은 이윽고 주변에 보이는 건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이 걷고 있는 곳은 마차 하나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넓이를 가진 길이었고 양쪽 경사면은 밭으로 이어져 있었다.

“저 좀비, 맞게 가고 있는 걸까?”

“사실 맞지 않을 거로 생각하는 게 더 현명하겠지만. 그나저나 주환. 아까 네가 한 말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을 좀 해봤다.”

“무슨 생각?”

“정말로 좀비들에게도 기억이 남을 수도 있다면, 어떤 좀비들은 다른 좀비들보다도 더 많은 기억을 가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럴 수도 있겠지. 지금 저런 좀비를 처음 보는 거긴 하지만 기억이 있는 좀비들이 많다면 개개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꽤 문제로군.”

데스티나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팔짱을 끼고는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뭐가?”

“정말로 그런 경우가 있다면 어떤 좀비는 좀비가 되어서도 좀비가 되기 전의 온전한 기억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데스티나 네가 하고 싶은 말은.”

“만약 그런 좀비를 보았을 때 우리는 그 좀비를 베어야 하는가?”

“그거야.”

데스티나의 물음에 주환은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몸은 좀비라도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의식이 있다면 그 좀비를 인간으로 인정해야 하는가?

그것은 주환으로서도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문제였다.

“잠깐.”

그때, 걷고 있던 데스티나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의 다급한 목소리에 주환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가 없어졌다.”

“뭐라고?”

데스티나의 말 그대로였다.

길을 걷고 있던 좀비는 어느새 두 사람의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두 사람은 허겁지겁 앞쪽으로 달려서 좀비가 어디로 사라졌는지를 찾았다.

주환이 앞쪽으로 라이트를 비추었지만, 좀비가 가고 있던 방향 쪽에는 아무도 없었다.

부스럭.

그때, 풀을 밟는 소리가 두 사람의 귀에 들어왔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소리가 나는 쪽으로 이동했다.

그들이 찾던 좀비는 길을 벗어나 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아래쪽 길로 내려가고 있었다.

“왜 멀쩡한 길을 놔두고 이쪽으로 가는 걸까?”

“혹시나 가장 빠른 루트를 찾는 걸지도 모른다. 우선 우리도 따라가도록 하지.”

두 사람은 둔덕을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밭에서 나고 있는 작물은 주환으로서는 전혀 알질 못하는 종류였다.

그 작물들은 무릎 정도까지의 높이로 나 있었는데 괭이를 든 좀비는 그 작물들을 밟으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익숙하지 않은 냄새인데.”

좀비의 뒤를 따르면서 주환은 킁킁거렸다. 마치 민트향처럼 청량한 향기가 그의 코를 자극했다.

“엄청나게 기분 좋은 향기인데.”

데스티나는 이름 모를 작물의 잎을 하나 따서 손가락으로 비볐다.

그리고 냄새를 맡아보더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잎에서 나는 향인 모양이다. 밟힌 잎사귀에서 나는 냄새인가 보군.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것 같은 향이다.”

파삭.

갑작스러운 소음에 두 사람은 걸음을 멈추었다. 여전히 괭이를 든 좀비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데스티나는 방금의 소리가 두 사람의 주변에서 났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주환에게 손짓을 했다.

“불을 꺼.”

주환은 들고 있던 라이트를 껐다.

라이트를 껐지만 이미 어둠에 눈이 익숙해진 상황이었기에 주변을 분간하는 게 가능했다.

라이트가 꺼짐과 동시에 사방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서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밭에 누워 있다가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모양이었다.

그들은 바로 좀비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데스티나는 검을 뽑아 들었고 주환도 곧장 방어 태세에 들어갔다.

일어선 좀비들은 일제히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괭이를 든 좀비는 두 사람을 보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만, 이들은 달랐다.

“키야악!”

소름 끼치는 비명과 함께 좀비들은 두 사람을 향해서 공격해 들어왔다.

탕탕!

주환의 총이 불을 뿜자 가장 가까이 있던 좀비가 바닥으로 널브러졌다.

그렇지만 좀비들의 움직임이 워낙에 날쌨기에 주환은 미처 다음 좀비를 쏘지 못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주환. 너무 떨어지지 마라!”

“그렇지만 이 녀석들이 너무 빨라!”

밤의 좀비들은 흉포하기 그지없었다.

데스티나 역시도 주환을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동시에 두 마리의 좀비들이 일사불란하게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데스티나는 심호흡을 한 후 거침없이 앞으로 돌진해 나갔다.

데스티나는 자신의 검을 단숨에 휘둘렀다.

순간, 주환은 데스티나가 휘두르는 검이 서늘한 하얀색의 빛으로 반짝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데스티나의 검은 마치 초승달처럼 긴 호를 그리면서 순식간에 두 마리의 좀비들을 베어 버렸다.

데스티나에게 베인 좀비들은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제자리에서 멈추었다.

데스티나가 마치 영화 속의 검객처럼 여유롭게 검을 칼집에 집어넣자 그제야 두 마리의 좀비들은 동시에 바닥으로 쓰러졌다.

데스티나는 자신의 긴 금발을 쓸어 넘기며 미소를 지었다.

“훗. 또다시 죽은 자들을 베어 버렸군.”

“그렇게 여유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밭의 한가운데에서 온갖 무게를 잡고 있는 데스티나를 보면서 주환은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총으로 한 마리를 쓰러뜨린 주환은 이어서 달려드는 또 다른 좀비들을 상대하는 중이었다.

“바로 가겠다!”

데스티나는 황급히 다시 검을 빼고는 주환을 돕기 위해서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주환은 총을 발사해 한 마리의 좀비를 쓰러뜨렸다.

그리고 그는 바로 옆에 있는 좀비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때.

틱!

그가 방아쇠를 당겼음에도 총은 발사되지 않았다.

총알 걸림.

사격 중 탄피가 배출되기 전에 약실이 닫혀 총이 발사되지 않는 현상.

‘이런 타이밍에!’

총알 걸림 현상으로 사용 불능이 되자 주환은 재빨리 돌격 소총을 놓아두고 권총으로 대응하려고 했다.

하지만 주환은 그 잠깐의 머뭇거림 때문에 바로 앞까지 좀비가 다가오는 것을 막지 못하고 말았다.

지금 좀비의 이빨과 손톱이 주환에게 닿기 일보 직전이었다.

“안 돼!”

자신이 제시간에 닿지 못할 거라는 것을 직감한 데스티나가 그렇게 외쳤다.

휙!

그때, 무언가가 주환의 머리 위를 훌쩍 뛰어넘었다.

놀라울 정도로 빠르면서도 가벼운 움직임이었다.

주환에게는 이 모든 것이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느껴졌다.

주환을 뛰어넘은 정체불명의 그림자는 덩치가 상당히 작았으며 손에는 막대기 비슷한 것을 들고 있었다.

‘대체 누구지?’

퍽!

정체불명의 작은 그림자는 들고 있는 막대기를 가볍게 휘둘렀다.

그 막대기는 주환을 공격하려는 좀비의 머리에 정통으로 명중했다.

그러자 그 충격을 못 이긴 좀비는 공중에서 정확히 두 바퀴 반을 회전하더니 바닥에 털썩 떨어져 내렸다.

막대기에 맞은 좀비는 바닥에 쓰러져서 몸을 부르르 떨더니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주환은 뒤로 물러서며 반사적으로 권총을 뽑아 앞쪽으로 겨누었다.

그와 동시에 좀비를 쓰러뜨린 작은 그림자도 몸을 돌리며 자신의 막대기로 주환을 겨누었다.

그건 단순한 막대기가 아니었다.

그건 바로 밭에서 사용하는 괭이였다.

“잠도 못 잘 정도로 시끄러워서 나와 봤더니. 남의 밭에서 무슨 짓들을 하는 거야?”

소녀의 목소리가 주환을 다그친다.

주환은 자신에게 괭이를 겨누고 있는 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괭이를 겨누고 있는 이는 어둠 속에서도 빛나고 있는 하얀색 머리칼을 한 소녀였다.

“당신들은 누구야?”

심드렁한 목소리로 묻는 그녀.

겉보기로는 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소녀는 푸른색의 작업복 차림이었다.

어둠 속이었지만 주환은 그 소녀가 꽤 귀엽게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암. 졸려 죽겠네.”

하품을 하면서 눈을 비비고 있는 모습은 막 잠에서 깨어난 어린아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우리는 나쁜 사람들이 아니야.”

주환이 권총을 내리며 그렇게 말했지만, 소녀는 괭이를 거두지 않았다.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는 내가 결정하는 거지.”

“잠깐.”

데스티나는 검을 집어넣고는 소녀를 말리려고 했다.

소녀는 데스티나를 돌아보았다.

“으흠. 기사님이시네? 아무리 기사라고 해도 나한테 명령할 생각은 하지 마.”

“명령하려는 게 아니다.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뭔데?”

“혹시 네가 ‘루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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