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5화 (5/182)

5화

데스티나가 발로 걷어찬 수류탄이 집의 안쪽으로 쑥 하고 들어가자.

쾅!

지축이 흔들리는 것 같은 폭발 소리와 함께 집의 문으로 엄청난 압력이 빠져나왔다.

“엎드려!”

주환은 곧바로 데스티나를 붙잡고 바닥에 엎드리게 했다.

문을 빠져나온 폭발 에너지는 두 사람의 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폭발의 압력은 단지 문뿐만이 아니라 집의 창문들을 모조리 박살 내고 말았다.

퍽!

창문을 빠져나오는 압력에는 집 안의 잡동사니와 압력이 자욱이 섞여 있었다.

집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의 강한 폭발이었으나 다행히 대장간이 무너지는 일은 없었다.

그렇지만 그 안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었을 터였다.

폭발의 소리가 워낙에 컸기에 데스티나와 주환은 자기들도 모르게 손을 들어서 귀를 막았다.

“이게 대체 뭔가!”

데스티나가 소리를 지르자 주환도 그에 맞추어 소리를 질렀다.

“그건 나중에 설명해 줄게!”

그 순간, 검은색의 형체가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지르면서 잽싸게 다락방의 창문을 빠져나왔다.

“쿠아악!”

창문을 빠져나온 괴생명체가 바닥으로 착지하면서 그 밑에 있는 데스티나와 주환을 짓밟으려 했다.

“피해!”

위험을 느낀 데스티나는 곧바로 양발로 주환을 밀었다.

퍽!

데스티나가 양발로 민 덕분에 주환은 한쪽으로 굴러갔으며, 그녀는 그 반작용을 이용하여 옆쪽으로 몸을 굴렸다.

쿵!

괴물은 두 사람이 몸을 피한 자리를 정확하게 밟았다.

몸을 굴린 데스티나와 주환은 몸을 일으켰다.

두 사람은 그제야 놈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군살이 하나도 없이 날렵하면서도 전신이 근육으로 이루어진 것 같은 어두운 색상의 몸뚱이.

마치 땀을 흘리는 것처럼 전신에 흐르는 끈적한 체액.

머리의 크기는 인간과 다를 바가 없으나 입은 마치 악어처럼 크게 벌어질 수가 있었으며 그 입 안쪽으로 톱날과도 같은 날카로운 이빨들이 가득했다.

“조심해라. 주환. 곧장 우리에게 달려들 기세다.”

데스티나는 바로 주환에게 경고를 날렸다.

수류탄이 아래층에서 터졌기에 다락방에 있던 괴물에게는 큰 타격이 없었다.

비틀.

그러나 살짝 비틀거리는 괴물의 움직임은 분명 조금이라도 피해가 있었음을 두 사람에게 보여 주고 있었다.

데스티나는 시선을 살짝 내렸다.

그녀의 눈에 바닥에 떨어져 있는 부러진 검이 들어왔다.

폭발의 여파로 그녀는 자신이 들고 있던 검을 놓치고 만 것이었다.

그녀가 빈손이라는 것을 눈치챈 것일까?

약간 비틀거리는 것처럼 움직이던 이빨 괴물은 이윽고 아까와 비슷한 비명을 지르면서 데스티나에게 달려들었다.

“조심해!”

주환은 이빨 괴물을 향해서 총을 갈겼다.

몇 발의 탄환이 이빨 괴물의 몸에 박혔다.

이빨 괴물은 충격을 받은 듯 휘청거리면서 뒤쪽으로 크게 물러섰다.

데스티나는 이빨 괴물의 움직임이 멎은 틈을 타서 빠르게 이빨 괴물과의 거리를 좁혀 들어갔다.

“주환! 나이프를!”

데스티나의 외침을 들은 주환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나이프를 뽑은 다음 데스티나에게 던졌다.

데스티나는 움직이며 자신을 향해서 날아오는 나이프를 잡았다.

한편, 이빨 괴물은 타격을 받았지만 금세 자세를 회복해 나가고 있었다.

몸을 바로잡은 괴물은 데스티나를 향해서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데스티나는 몸을 숙여 그 팔을 피해 냈다.

쉭!

그 순간, 데스티나가 휘두른 군용 나이프가 이빨 괴물의 가슴을 갈랐다.

“끼야악!”

데스티나의 나이프가 베고 지나간 자리에서 녹색의 끈적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하아압!”

데스티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이프를 움직였다.

데스티나의 나이프가 이빨 괴물의 가슴을 난도질해 나갔다.

계속되는 공격에 힘이 빠진 이빨 괴물이 흐느적거리는 움직임을 보이며 뒤로 물러섰다.

“여긴 너 같은 괴물이 있을 곳이 아니다!”

데스티나는 결정타를 날리듯 나이프를 크게 휘둘러 이빨 괴물의 허리를 베어 버렸다.

데스티나는 이빨 괴물의 허리 쪽을 베고 난 뒤.

주환의 예상과는 다르게 추가 공격을 날리지 않고 그대로 괴물을 지나쳐 천천히 걸어갈 뿐이었다.

이빨 괴물은 크게 벌어진 자신의 상처를 보고 당황한 듯했지만, 곧 뒤를 돌아보면서 자신을 베었던 데스티나 쪽으로 몸을 돌렸다.

데스티나가 이빨 괴물에게 등을 보이고 있었기에 주환은 급히 소리쳤다.

“조심해! 아직 놈이 죽지 않았어!”

주환의 경고에도 여전히 데스티나는 뒤를 돌아보질 않았다.

이빨 괴물은 멀쩡한 손을 들어서 데스티나의 등 쪽을 찌르려고 시도했다.

후둑.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빨 괴물은 힘없이 무너지면서 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괴물이 쓰러지면서 쿵 하는 소리가 들리자 데스티나는 그제야 손안에서 멋지게 나이프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진정한 기사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 법.”

주환은 쓰러져 있는 이빨 괴물이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

그는 총으로 괴물을 겨누면서 발끝으로 괴물의 다리를 툭툭 걷어찼다.

이빨 괴물은 미동도 하질 않았다.

“아마 죽었을 거다. 단 한 방에 치명상을 입었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데스티나는 기사답게 절도 있는 동작으로 빙글 돌아서 주환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온몸으로 자신의 멋짐을 인정해 달라는 의사 표시였다.

탕!

데스티나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주환은 총을 발사해서 이빨 괴물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그러자 괴물의 머리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으며 그 조각들과 체액 일부가 튀어서 데스티나의 머리칼과 얼굴에 붙었다.

“…….”

잠시 침묵을 지키던 데스티나는 얼굴에 묻은 체액을 손가락으로 닦아내면서 나지막이 물었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가?”

“죽은 척을 했을 수도 있으니 확인사살을 한 거야. 너도 방심하고 있다가 뒤치기 당하는 건 싫잖아?”

“분명히 내가 단 한 방에 치명상을 입혔다고 말했을 텐데.”

“이런 괴물은 처음 보는 타입이야. 그러니 방심할 수는 없잖아?”

바닥에 쓰러져 있는 괴물은 머리가 날아가 버렸으니 다시는 일어나는 일이 없을 터였다.

주환은 데스티나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이곳에는 좀비 말고도 이런 괴물들이 즐비한 거야?”

“아니. 이런 종류는 나도 처음 보는 괴물이다. 움직이는 속도나 칼에 베일 때 느껴지는 그 내구성. 다른 좀비들과는 차원이 다른 녀석이라는 생각이 드는군. 물론, 나의 실력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만.”

“이런 녀석들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건 꽤 위험한 일인데.”

“혹시 또 남은 괴물이 있을까?”

데스티나의 말에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았다.

* * *

데스티나와 주환은 천천히 대장장이의 집 안으로 다시금 들어갔다.

총구를 앞세운 주환이 앞장을 섰으며 나이프를 거머쥔 데스티나가 그의 뒤를 따랐다.

안으로 들어간 주환은 그의 눈앞에 펼쳐진 난장판을 둘러보았다.

수류탄의 여파인 듯 박살이 난 집 안의 가구들과 집기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으며 다락으로 통하는 천장 역시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수류탄의 폭발이 만들어 낸 그을음이 벽의 사방을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기척을 보니 이 안에는 아까 그놈밖에 없었던 것 같아.”

“그럼 수색을 재개할 수 있겠군.”

“그렇지만 멀쩡한 물건이 있었어도 다 망가졌을지도 모르겠는데.”

“아무튼 내가 쓸 수 있을 만한 검이 있다면 꼭 주워서 나에게 주었으면 좋겠네. 주환 자네도 같이 찾아 주게.”

“알았어, 알았어. 적당한 게 있으면 찾아볼게.”

주환과 데스티나는 대장간 안의 이곳저곳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대장간의 안쪽은 침실과 부엌 쪽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부엌이나 침실이나 최근까지도 사용하지 않은 흔적이 역력했다.

침실은 침대와 책상이 한 개씩만 있는 단순한 구조로 데스티나가 사용할 수 있을 만한 물건들은 보이지 않았다.

주환이 실망하면서 나가려던 차에 그는 넘어져 있는 책상에 시선을 두었다.

폭발의 여파로 넘어진 책상은 서랍들이 빠져나와 있었다.

주환은 서랍에서 쏟아진 물건 중 한 노트에 관심을 뒀다.

“노트라. 집주인이 남겨 놓은 건가?”

“이봐. 찾았다!”

주환이 몸을 숙여 노트를 펴 보려는 찰나에 밖에서 데스티나가 외치는 소리가 방 안쪽으로 들려왔다.

주환이 침실의 밖으로 나가자 데스티나가 바깥에서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어느새 밖에 나갔다가 방금 다시 돌아온 참이었다.

데스티나는 주환에게 군용 나이프를 던졌다.

“엇.”

주환이 그것을 반사적으로 받아들자 데스티나는 다른 손에 들고 있던 길쭉한 물건을 들어 보였다.

그것은 날카롭게 날이 세워진 롱소드였다.

처음에 데스티나가 가지고 다니던 검보다는 투박해 보였지만 무기로는 손색이 없어 보이는 상태였다.

“집의 뒤쪽에 만든 물건을 보관하는 곳이 있더군.”

“그래? 안쪽이 아니라 바깥부터 확실하게 둘러볼 걸 그랬네.”

“시골 마을의 대장간이라서 농기구만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겨우 한 자루 구할 수 있었군. 운이 좋았다.”

좋아하던 데스티나는 주환이 들고 있는 노트를 발견했다.

“그런데 주환. 손에 들고 있는 건 뭔가?”

“아. 이거?”

주환은 손에 들고 있던 노트를 데스티나에게 보여 주었다.

“방금 들어갔다가 온 침실에서 발견한 거야. 뭔가 의미가 있는 정보가 적혀 있지 않을까 해서.”

“아마 이곳에 살던 대장장이의 거래 장부인 듯하군. 이 집 상태를 보아 하니까 이 대장장이도 이곳을 떠났든지 아니면…….”

주환은 문득 자신들이 죽인 그 이빨 괴물이 사실 이 집의 주인인 대장장이가 변해서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곧 그 생각을 지워 버렸다.

장부는 숫자만 쓰여 있는 단순한 형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일기와 비슷한 형식으로 좀 더 자세하게 기록이 돼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가 장부를 펼치자 시계가 작동하며 그 글귀들의 위에 홀로그램 같은 번역문을 띄워 주었다.

주환은 보이는 글귀들을 소리 내어서 읽었다.

“오늘은 루실라의 호미를 고쳐 주고 3 론도를 받았다……. 아, 이쪽 세계의 돈 단위는 론도인가 보네. 그렇지만 이런 좀비 세계에서 돈이란 게 무슨 소용이 있나?”

“내가 듣기로는 금화들을 챙기려다가 행동이 늦어져서 좀비들에게 당한 사람들도 있다더군. 어리석은 일이지.”

“정말로 그러네.”

주환은 이 노트가 뒤로 가면 갈수록 거래 장부라기보다는 대장장이 개인의 일기처럼 변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령 후반부의 기록 중 하나는 아래와 같은 식이었다.

[이제 더는 손님은 오지 않는다. 하긴 그럴 것이다. 대부분 좀비로 바뀌었으니까.

살아남은 사람들도 다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나는 어디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난 평생이 마을에서 살았으니까. 살아도 여기서 살고 죽어도 여기서 죽는 게 도리겠지. 이 다락에 숨어서 언제 죽을지 모를 운명을 이어 나갈 뿐…….]

“이 대장장이, 생각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던 모양이로군. 안 그런가?”

“다락에 숨어 있어서 좀비들을 피할 수가 있었던 모양인데. 잠깐만. 여기 마지막 글을 봐봐.”

주환은 손가락으로 마지막 장에 쓰여 있는 글을 짚었다.

그러고는 계속해서 읽어 나갔다.

[루카에게 빵을 받아왔다. 정말로 똑똑한 아이다. 그 아이의 집까지 가는 건 위험했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도망치지도 않고 여전히 의젓하게 살아 있었다. 루카는 같이 숨어 있자고 했지만 나도 루카에게 무언가 답례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대장간으로 돌아왔다.

전에부터 루카가 가지고 싶어 했던 최고의 괭이를 만들어줄 거다. 저 화덕에 불을 지피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 되겠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