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 끝을 향해서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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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해? 저 새끼 이제 힘 다 빠진 것 안 보여? 쳐!”
입에선 ‘시발!’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여유가 2~3분만 있더라도 조금이나마 기력을 회복할 수도 있을 것인데, 놈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그러니 서로 번갈아 나를 공격해왔고, 덕분에 이제는 손조차 올리기 힘들 정도로 체력이 완전히 고갈되었다.
맞지 않으려고 바닥을 굴렀지만, 나를 빙 둘러싼 놈들의 발길질을 피할 수는 없었다.
나는 머리와 장기만 다치지 않겠다는 생각에,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몸을 달팽이처럼 말고 놈들의 발길질을 감당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내 머릿속에는 ‘와~ 더럽게 아프네.’라는 생각과 함께, 드디어 내 인생이 오늘로써 쫑 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순간 내 눈 앞에는, 그동안 살아왔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고 있었다.
‘탕! 타~다~다~탕!‘
“경찰이다! 모두 손들고 꿇어!”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경찰이라는 소리가 들려왔고, 잠시 후 우르르 내가 쓰러져 있는 곳으로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려 왔다.
“강수야! 괜찮아?”
“장 형사! 빨리 앰뷸런스 호출해!”
“괜찮아? 눈 좀 떠봐!”
“시팔! 흔들지 마! 아파!”
온몸이 죽을 만큼 아팠다.
등짝에 닿는 모래알갱이조차 내 온몸을 찌르는 듯했고, 공 반장이 나를 부르는 소리조차 귀를 할퀴는 느낌이다.
순간 나는 까무룩 잠에 빠져들었다.
‘삐!’ ‘삐!’ ‘삐’
눈을 뜨니 하얀 천장이 내 눈에 들어왔고, 내 머리맡에서는 규칙적으로 삐삐거리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잠시 후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들이닥쳤고, 의사 양반은 내 눈을 까뒤집고는 펜처럼 생긴 플래시로 내 눈을 비춰보고, 또 몇 군데 내 몸을 쿡쿡 찔러대기 시작했다.
“한강수 형사, 아프지 않아?”
“니미! 아저씨 같으면 그렇게 찔러대는데 안 아프겠소?”
“이 새끼 이거 살아난 모양이다. 빨간약 발라서 내일 당장 내보내도 되겠네.”
“아저씨가 의사요?”
“그럼 의사지. 경찰병원에서 하얀 가운을 입고 돌아다닐 사람이, 의사 말고 또 있겠냐.”
“니미, 무슨 의사가 입에 걸레를 문 것도 아니고.”
“인마, 병원에선 의사가 왕이야. 너희 청장이 와도 마찬가지고.”
무슨 의사란 인간이, 나보다 나이가 10년은 훨씬 더 살았을 것 같은 양반이, 입에 걸레를 문 것인지 입이 우리 형사들 이상으로 거칠었다.
그렇게 한 마디 던지고 의사 양반은 병실을 나갔고, 바로 공 반장과 우리 팀의 팀원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새끼 살았네.”
“시팔! 나 죽고 나서 오려고 했소?”
“미안하다. 오다가 길이 막혀서 돌아오느라 늦었다. 그래도 말하는 것을 보니 살아 있긴 하네.”
“조까!”
“이 새끼가 돌았나. 인마, 나 공 반장이야!”
“공 반장이고 지랄이고 난 몰라! 사람을 호랑이 아가리에 처넣고는, 나 몰라라 하는 인간들이 뭐가 예쁘다고.”
“이 새끼 또 꼴통 짓 하는 걸 보니, 진짜 살만한가 보네.”
“맥주는?”
“우리 가고 난 뒤에 마셔.”
“알았어. 알았으니까 침대 밑에, 잘 숨겨 놓기나 해.”
“침대 밑에 두면 꺼내긴 하겠어?”
“왜?”
“너, 늑골 금 갔잖아.”
그러고 보니 온 삭신이 쑤시는 듯했다.
하긴 그렇게 반쯤 죽을 만큼 맞았었으니, 부러지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한다면 그게 거짓말일 것이다.
“강수, 미안하다.”
“뭐가?”
“내가 그 일을 해야 했었는데.......”
“시팔! 됐어. 호준이 입학식은 잘 갔소?”
“하~ 그날 사건 터져서 비상대기했다.”
‘킥!’
“으~윽!”
저절로 내 입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고, 그렇게 웃음을 내뱉는 순간 가슴이 찌르는 듯 아파져 왔다.
아무튼 이 경찰관이라는 직업이, 더구나 형사라는 짓거리를 할 짓이 못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형사 노릇을 하는 인간들은, 거의 매일같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불만을 표시하면서도 결코 이 짓거리를 때려치울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목숨을 걸고 범인들과 대치하다가, 걸핏하면 찔리고 부러져서 병원 침대 신세를 지는데도, 다른 부서에 비해 월급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고 승진기회조차 오히려 밀리는데도 이 짓거리를 그만둘 수가 없는 것이다.
그냥 숙명인 것이다.
“그런데 넌 애인도 없냐?”
“요즘 세상에, 우리 같은 짭새 좋아할 여자가 있겠소?”
“지랄! 우리 팀에 총각은, 너 하나밖에 없는 것 몰라?”
“형님들이야 사기결혼 아니오. 나는 장가를 안 갔으면 안 갔지, 사기까지 쳐가면서 결혼할 생각은 없거든.”
“지랄~ 그러다가 진짜 평생 장가 못 간다.”
대놓고 악담이다.
솔직히 결혼상대자로, 경찰관이라는 직업 자체가 별로 호감을 주는 직업이 아닌데, 걸핏하면 잠복근무를 밥 먹듯이 하는 형사를 좋아할 여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바로 눈앞에 있는 장 형사 역시 경찰 출입기자라고 거짓말을 해서 결혼에 골인한, 사기결혼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아닌가 말이다.
물론 처음부터 거짓말을 할 생각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
장 형사 말로는 어쩌다가 경찰서 마당에서 맞부딪치게 되었고, 그냥 한번 보고 말 인연이란 생각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잠복근무가 끝나고 노숙자 같은 자신의 꼬락서니를 변명하느라, 사건 취재를 위해 경찰서에서 뻗치기를 하는 중이라고 거짓말 한 것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바깥에서 그 여자와 마주치게 되었고, 예전에 했던 거짓말을 실토하지 못한 채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
덕분에 형수의 가족뿐 아니라 신부인 형수조차도, 결혼식 당일에야 실체를 알게 되어 결혼식장이 난리가 나기도 했었다.
경찰서 출입기자와 형사들의 생활 패턴이 비슷한 것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 아닌 해프닝이었다.
결혼식 당일 우리 청의 출입기자들도, 떼로 결혼식장에 몰려 왔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인마, 내가 분명히 얘기하지만, 내가 사기를 친 것은 아니었어. 처음에는 출입기자라고 거짓말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다음부터는 범인 검거를 위해서 잠복한다는 이야기까지 다 했거든. 너도 생각해봐라. 기자가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서, 잠복한다는 것이 말이나 돼?”
“그땐 형수 눈에 뭔가 씐 상황이었으니, 혼자서 오해를 한 것일 뿐이고.”
“아무튼 그건 우리 마누라 잘못이지, 내 잘못은 아니란 거지.”
아마도 세상 물정을 잘 알지 못했던 당시의 형수는, 기자란 직업이 엄청 판타스틱한 직업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형사들이 범인 검거를 위해서 잠복근무에 들어가면 기자도 옆에서 같이 잠복하고, 형사가 범인 검거에 들어가면 기자 역시도 범인 검거 과정을 취재하는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니 말이다.
“표창장. 경사 한강수, 위 사람은....... 이에 본 상장을 수여합니다.”
그렇게 청장님께 직접 표창장을 받았고, 순간 카메라 플래시 불빛과 함께 동료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왼쪽 어깻죽지에 목발을 짚고, 다른 한 손으로는 표창장을 흔들면서 단상을 내려왔다.
드디어 다시 경사 계급으로 복귀했다.
예전 범인 검거를 하면서 과잉진압 어쩌고 하면서 언론의 질타를 받았던 이유로, 징계를 받아 강등조치를 당했다가 이번에 세운 공로에 대한 포상으로 특진이 되었기에, 원래 계급으로 복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짝!’
‘짝!’
‘짝!’
“에이~ 쪽팔리게 이건 또 뭐요?”
“인마, 네 경사 특진을 축하는 케이크지.”
“니미, 내가 경사를 처음 다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불부터 꺼!”
동료들이 고맙긴 했다.
그냥 말로만 축하한다고 해도 될 일인데, 이렇게 케이크까지 준비했으니 말이다.
나는 케이크에 붙여둔 촛불을 끈 후에, 마치 내가 경사계급 두 번째란 것을 상징이라도 한 것처럼 꽂아둔 초 두 개를 케이크에서 뽑았다.
‘퍽!’
“에이~ 시팔! 인간들이 맘에 들 만하면, 이런 지랄을 하니....... 휴지!”
내가 초를 뽑으려고 고개를 숙이고 안심하고 있던 순간에, 앞에 있던 놈 하나가 케이크를 위로 치올렸고, 덕분에 내 얼굴과 케이크가 한몸이 되어버렸다.
더는 화를 내 봐야 나 혼자만 바보가 되기에 나는 눈을 감은 채 휴지를 달라 소리를 쳤고, 우선 눈 주위의 생크림을 닦아낸 후에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복도를 나서자, 눈만 뺀 얼굴 전체에 생크림 범벅이 된 얼굴을 확인한 동료 경찰관들은 입을 가리고 킥킥거리기에 바빴다.
나는 창피한 마음에 화장실로 달려갔지만, 하필 이 순간에 ‘청소 중’이란 팻말과 함께 화장실 문이 안에서 걸려 있었다.
어쩔 수 없이 2층으로 올라갔지만, 무슨 놈의 청소를 동시에 한다는 것인지 2층 화장실 역시도 청소 중이라는 팻말과 함께, 문이 안에서 걸려 있었다.
“한 경사님, 축하해요.”
“어~ 그냥 오늘은 못 본 거로 하자.”
하필이면 오늘이 일거리가 없는 날인지, 화장실을 찾아다니느라 우리 서의 동료 경찰관들 절반은 만난 기분이다.
“충성!”
“너 얼굴에 그게 뭐야?”
“그게......”
“새끼! 경찰이라는 새끼가, 해가지고 다니는 꼴이라고는......”
“시정하겠습니다!”
“시정하긴 뭘 시정해! 너 자꾸 꼴통 짓이나 하고 다니면, 치안센터로 보내 버린다!”
돌아버릴 지경이다.
씻을 곳을 찾다가 결국 간부들이 근무하는 3층까지 절뚝거리며 뛰어 올라갔더니, 평소에는 얼굴을 보는 것조차 쉽지 않은 서장님에게까지 이 우스꽝스러운 꼴을 보였으니 말이다.
이래저래 재수에 옴 붙은 날인 모양이었다.
“컷! 오케이! 그런데 우리 한 배우, 혹시 예전에 다친 적이라도 있어?”
“아뇨, 다쳐본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계단 오르면서 절뚝거리는 것은,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러워?”
“아, 예전에 액션스쿨 선배 한 분이, 다쳐서 절뚝거리는 것을 봤거든요.”
아무튼 그렇게 내가 마약반 형사로서의 분량이 막바지에 다다랐다.
어느새 회식자리에서의 모습과 다음 사건 때문에 출동하는 장면, 그 두 신(scene)만 남겨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보니, 벌써 여름이 깊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형, 고생했어요.”
“빨리 집에 가자. 얼굴이 끈적거려서 돌겠다.”
“대시보드에 물휴지 있으니까, 그걸로 우선 닦으세요.”
상호 말에 대시보드를 열어 물휴지를 끄집어내 얼굴을 닦으니, 그나마 좀 살만했다.
“양산은 요즘 어떻다고 해?”
“난리가 났답니다.”
“왜?”
“형수님 양산 내려가셔서 강의를 한 차례 하신 후부터, 지원자가 떼로 몰려들고 있답니다.”
그러고 보니 예나를 본 지도 제법 되었다.
예나는 지난번 마약사범 일당이 일제 검거되는 것으로 촬영이 끝났고, 촬영이 끝나자 바로 양산으로 내려갔던 것이다.
“어디야?”
“촬영 마치고 집으로 가는 중이야. 당신은 요즘 바쁘다면서?”
“딱히 바쁘다기보다는, 사람들하고 자주 어울리는 중이야. 여기 사람들 되게 많이 찾아온다.”
“서예나 이름값이 어딜 가지 않는 모양이다.”
“피~ 그런데 자긴 언제 와?”
“모레면 크랭크업 될 것 같으니, 촬영 끝나면 바로 내려가야지.”
“아가씨 또 울겠다.”
사실 지수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수능을 앞둔 지수를 양산으로 전학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고서도 한참을 통화한 후에, 나는 샤워를 위해 욕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