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화 〉 나한테 왜 전화를(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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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제부도요.”
“예?”
“한 시간이면 충분하잖아요. 가시 시원한 바닷바람이나 쐬고 와요.”
도대체 무슨 의도로 제부도까지 가자고 하는 것인지 몰라도, 일단 이 친구가 하자는 대로 해보기로 했다.
아직 두어 차례 더 함께 촬영해야 할 친구인데, 나의 섣부른 예단으로 삐걱거리는 관계는 만들지 않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가 벌어지더라도, 나 스스로를 방어할 무기는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
“선배님, 여기 어때요?”
“조용하기도 하고 앞이 탁 트인 것이 괜찮네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절 만나자고 하셨어요?”
“어제 촬영하면서 느낀 건데, 선배께서 너무 거친 것 같아서요. 여자들은 부드러운 것을 좋아하는데.......”
“예? 시나리오에는 욕정에 눈이 뒤집혀서, 거칠게 하라고 되어 있잖아요.”
“그런 거침과는 조금 다르잖아요. 거친 가운데서도 부드러움이 있어야 하는 법인데.......”
“그래요? 앞으로 그 부분에 관해서 신경을 써볼게요. 김소운 씨!”
내가 그렇게 대답을 하고 있는데, 이 친구의 손이 슬며시 내 가슴으로 다가와서 내 가슴을 슬며시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집 앞까지 찾아와서 만나자는 전화를 받고, 어느 정도 이런 식으로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노골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고는, 아예 짐작조차 하지 못했었기에 깜짝 놀란 것이다.
“봐요~ 여자가 이렇게 하면 파트너는 그냥 은근히 즐겨야 하는데, 선배님은 이 정도에도 깜짝 놀라잖아요.”
“하지만 여기가 촬영장도 아닌데 갑자기 그러시면.......”
“저는 선배님이 지금 여기가 촬영장이라고 생각하시고, 저를 대해주셨으면 해요. 그럼 저란 여자가 어떤 분위기를 원하는지 자연 아실 수 있을 고고, 그렇게 되면 촬영장에서도 훨씬 나아질 거잖아요.”
“하지만 여기가 촬영장도 아니고, 또 이렇게 환한 대낮에 지나가는 사람이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그럼 자리를 옮길까요? 제가 잘 아는 곳이 있는데.”
“아닙니다. 됐어요. 김소운 배우께서 이야기한 그 부분은 제가 고민해볼게요. 이만 돌아가죠.”
하지만 이 친구가 요지부동이다.
내가 운전을 해서 이곳까지 왔다면, 이 친구가 뭐라든지 그냥 출발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타고 온 차가 내 차도 아니고 운전대 또한 김소운이란 친구가 잡고 있기에, 나로서는 이 친구가 출발하기만 기다려야 했다.
더는 내가 말을 하지 않고 입을 꾹 닫고 있자, 결국 김소운 배우는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돌아 나오는 길에, 갑자기 도로 옆에 있는 모텔 입구로 차를 밀어 넣었다.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뭐가요? 아까 거기는 선배님께서 사람들 눈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고 하셨잖아요. 여기 들어가면 다른 사람이 볼일도 없으니, 얼마든지 편하게 연기연습을 할 수 있잖아요.”
“자꾸 이러면 저 화냅니다.”
“치! 선배님께서 뭐라고 하시든지, 저는 오늘 선배님하고 모텔에 들어가서 연습을 해야겠으니 마음대로 하세요. 제가 있는 방이 501호거든요.”
그러더니 이 겁 없는 여자는, 차문을 쾅 닫고 씩씩하게 모텔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501호라고 방의 호수까지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오늘의 이 일은 사전에 계획된 일인 것이 확실했다.
어차피 지갑을 들고 나왔기에 서울까지 가는 것은 걱정할 일이 없었다.
차에서 내린 나는 모텔 주차장 밖으로 걸어 나와 걸으면서, 택시라도 오는지 살피기 시작했다.
결국 30분 가까이 걸어 제부도에 있는 버스 종점을 찾았고, 거기서 나는 속 편하게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선배님 어디세요?’
‘서울 가는 중입니다.’
‘정말 그러실 거예요?’
‘그럼 어쩝니까. 저는 모텔까지 가서 연기연습을 할 생각이 전혀 없고, 김소운 씨는 모텔을 고집하시니 혼자 돌아갈 밖에요.’
‘제가 선배님께 추행을 아니 강간이라도 당했다고 하면, 그때는 어쩌시려고요?’
‘그렇게 하실 수 있으면 해보세요. 세상이 그렇게 김소운 씨가 생각하는 만큼 녹록하지는 않거든요.’
‘알았어요! 각오하세요!’
뭔가 사고를 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결국 톡을 끝내고, 나는 갑자기 마음이 급해져서 버스에서 내려 택시로 갈아탔다.
결국 괜한 일에 엮여서, 택시요금만 된통 뒤집어쓰게 된 것이다.
“한 배우님 혼자서 어떻게 오셨어요?”
“그냥 이걸 확인하시고 어떻게 해야 할지 검토를 좀 해봐 주세요.”
“이게 뭡니까?”
이번 일은 나 혼자 처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회사에는 이런 일을 처리할 전담 직원이 있다.
그래서 나는 바로 회사로 향했고, 홍보팀장님께 지금까지 상황이 녹화된 만년필처럼 생긴 초소형 카메라와, 카디건에 부착되어 있던 카메라를 떼서 전했다.
그리고 타고오던 버스 안에서 받았던, 톡의 화면을 찍은 파일을 홍보팀장 톡으로 전송했다.
“얘, 완전히 미쳤네요.”
“무슨 이유인지 제정신이 아닌 것은 맞는 것 같습디다.”
“어떻게 할까요? 황우 감독님께 이 사실을 통보하고, 당장 이 친구 하차를 요구할까요?”
가장 안전하고 편하게 해결하는 방법은, 홍보팀장님 말대로 황우 감독님께 말씀드리고 그 친구를 하차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직전에 그 역을 담당했었던 진수정 배우 건도 있었기에, 그 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팀장님 말씀도 맞는 말씀이시긴 한데, 또 교체를 요구하게 되면 감독님으로서도 부담스럽지 않겠습니까?”
“그럼 어떻게 하시려고요?”
“이 친구에게 지금 상황을 알려주고, 앞으로 이런 헛짓거리를 하지 못하게 회사 차원에서 경고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물론 한 배우님 말처럼 한다면 그렇게 잘 풀릴 수도 있지만, 보통 이런 단역 애들은 막가파가 많아서요.”
“하~아~ 그럼 어쩌지요?”
“이 문제는 제가 의논해본 후에, 감독님께 통보하든지 말든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팀장님께 이번 일은 모두 일임하겠습니다.”
이런 일은 회사 차원에서 대응해야 할 사안이기에, 나는 파일을 홍보팀장님께 넘겨주는 것으로 손을 뗐다.
이제 홍보팀과 법무팀에서 그 친구를 만나게 될 것이고, 그 만남의 결과에 따라 적절한 타협점을 찾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했음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결국,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게 되든지 아니면 법적인 책임까지 지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생에 수십 년을 배우로서 살면서도, 단 한 번도 이런 일은 경험해보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 생에서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된 그런 날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전생의 한강수보다 훨씬 잘생긴 얼굴이 되어서, 여자들이 내 얼굴만 보면 오줌을 지릴 정도도 아닌데 말이다.
“고생했어.”
“자기 혼자서 심심했었지?”
“심심한 것이 아니라 스펙터클한 하루였었다.”
“응?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김소운이라는 여배우가, 오늘 일을 왜곡해서 퍼트리고 그런 이유로 내가 곤혹스러운 처지가 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 여자가 상태가 정상적이 아니니, 헛소리를 나불대고 다니면서 헛소문을 낼 수도 있다.
그리고 언젠가 그 소문이,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예나 귀에 들어가게 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그런 상황이 된다면, 예나의 기분이 어떨지 충분히 짐작되기에 먼저 사실을 이야기해주기로 했다.
“정말? 뭐 그렇게 미친 애가 다 있어. 그래서 어떻게 했어?”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한 30분 걸어 나와서 버스를 타고 오는데, 쓸데없는 톡을 보내기에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싶어서, 택시로 회사에 찾아가서 홍보팀장님께 처리를 부탁했지.”
“그런데 그걸 녹화할 생각은 어떻게 했대? 내 신랑 정말 똑 소리가 난다.”
“진수가 예전에 혹시 그런 미친 인간들이 있을 수 있다면서 사서 준 거였어. 나는 단순히 들고 나간 것뿐이고.”
“나중에 양산 내려가면, 정말 진수 씨한테 맛있는 밥이라도 사야겠다.”
예나는 오늘 나의 대처가 마음에 쏙 들었던 것인지 나를 안고서 뽀뽀를 해댔고, 그러다가 보니 자연 어제 하지 못했던 일이 내 머릿속을 헤집어오기 시작했다.
“뭐해?”
“뭘?”
“그냥 내 신랑이 예뻐서 뽀뽀를 해주려고 하니, 그새를 참지 못하고 늑대처럼 행동해?”
“당신이 먼저 나를 흥분하게 만들었잖아. 그런데.......”
“내가 그랬었잖아. 촬영하는 동안에는 체력을 비축해둬야 한다고. 특히 자긴 액션이 태반인데, 체력이 달려서 실수라도 하게 되면 크게 다칠 수도 있잖아.”
사람 약 올리는 일에도, 예나는 천부적인 재질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에 어떤 사내가 예나처럼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자가 입술을 먼저 부딪쳐 오는데, 덤덤한 상태를 유지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우리는 법으로 허락된 합법적인 부부 사이인데 말이다.
“통화 가능하세요?”
“예. 팀장님.”
밤이 이슥해서 홍보팀장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까 그 건은 그 친구 분량을 빼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그래요? 그럼 나머지 분량은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시나리오를 수정하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혹시 몰라서 황 감독님과 제작사에서 혹시 그 이야기가 소문으로 돌게 된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그 친구 소속사와 그 친구에게 묻기로 통보했다고 합니다.”
결국 두어 차례 예정되어 있던 베드신을 없애고, 다른 내용으로 대체하기로 결론이 난 모양이다.
그 일이 공론화되면 영화의 흥행에 타격이 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제작사는 금전적인 손해를 입게 된다.
그러니 이런 상황을 알고 가만히 있을 제작사는 없을 것이고, 감독님 또한 마찬가지다.
누가 자기 작품에 똥물을 뿌리는 것을, 나 몰라라 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렇기에 이런 문제는 우리보다는, 연출을 책임지고 있는 황우 감독님과 제작사의 입장이 더욱 강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다.
나나 우리 회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봐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것이 전부지만, 제작사와 황우 감독님 쪽은 영화의 흥행여부에 따라 엄청나게 큰 금액이 왔다 갔다 하니까.
“괜찮아?”
“예?”
“걔한테 좀 시달렸다면서?”
“딱히 신경 쓰실 일 아닙니다. 어차피 그런 여자들 한둘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아무튼 감독님께는 죄송합니다.”
“괜찮네. 그림을 조금 더 재미있게 만들어 보려고 했던 탓이지. 그런데 포기하고 나니 오히려 바꾼 것이 훨씬 더 깔끔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튿날 촬영장에 도착하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온해보였다.
감독님 또한 일과성 해프닝 정도로 치부하시는 것인지, 그리 심각한 표정도 아니셨다.
그렇게 촬영은 다시 재개되었고, 이곳 세트장에서 찍을 분량에 대한 촬영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