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 나한테 왜 전화를?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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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정말?”
“그래, 오늘 당신이 먹고 싶은 것 다 사준다. 떡볶이뿐 아니라 순대하고 튀김도 사줄게.”
마치 대단한 것 인양 포장해봤지만, 예나가 먹어봐야 얼마나 먹겠는가?
돈으로 따진다면 오늘 먹으러 가게 될 그 떡볶이 가게를, 그 자리에서 산다고 하더라도 눈도 깜짝거리지 않을 예나인데 말이다.
“떡볶이 먹으려면 신당동 쪽으로 가야잖아.”
“지수 아가씨를 데리고 같이 가야지.”
“지수는 뭐 한다고. 그냥 우리 둘이서 가자.”
“지수 아가씨하고 약속했단 말이야. 그리고 아가씨가 정말 맛있게 하는 집을, 알고 있다고도 했고.”
참 이런 걸 보면 여자들이란 존재는, 특이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떡볶이 만드는 것이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도 아닌 길거리 음식일 뿐인데, 무슨 특별한 맛집이 따로 있다는 말인가?
심지어 요즘은 떡볶이의 메인 양념이 되는 고추장을, 재료비를 핑계로 중국산을 사용하는 곳이 대부분인데 말이다.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둘이서 데이트 하려 했는데, 맛집이라는 이유로 지수를 픽업해서 같이 가기로 했다.
“오빤 웬일이야?”
“뭐?”
“나 오늘 새언니하고만 만나기로 했었는데?”
“나 없이 둘이서만 만나기로 했었다고?”
“응. 뭐 잘못된 것이라도 있어? 그런데 오늘 오빠 촬영이 있는 날이잖아.”
교문 앞에서 지수를 태우니, 지수는 내가 왜 같이 왔느냐는 타박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두 사람이 제정신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야 아직 알아보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예나는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매니저조차 없이, 여자 둘이서만 거리를 쏘다니게 한다는 말인가?
“두 사람 제정신이야?”
“뭐가?”
“오늘 나 아니었으면, 매니저도 없이 둘이서 움직일 생각이었잖아.”
“응. 그런데?”
“그러다가 사람들이 알아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에이~ 몰라. 지난번에도 언니랑 둘이서 분식집에 갔는데 사람들 전혀 눈치도 채지 못했거든. 혹시 누가 알아볼까 봐 겁을 집어먹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게 보여.”
그러면서 지수는 자신만만한 태도였고, 예나 또한 그렇게 스릴을 맛보는 것이 오히려 재미가 있었단 표정이다.
아무튼 그런 지수의 자신만만한 태도를 믿고, 나는 둘을 먼저 떡볶이 가게로 들여보내고 주차장을 찾았다.
‘어! 저게 뭐야?’
순간 내 머릿속에서 싸~한 느낌이 들었고, 나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길게 늘어서 있는 떡볶이 가게를 향해 달려갔다.
“죄송합니다. 좀 들어가겠습니다.”
“우리도 줄 서 있잖아요.”
“죄송합니다. 급한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우리도 급해요!”
“아뇨, 제가 떡볶이를 사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안에 만날 사람이 있어서요.”
“우리도 떡볶이 사러 온 것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사인을 받으려면 아저씨도 뒤에 줄 서세요.”
순간 돌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예나가 누군가의 눈에 뜨였고, 그 때문에 이 사달이 난 것이었다.
아무튼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주차를 마치고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이라고 해봐야 채 15분 정도인데, 그사이에 이렇게 일이 벌어져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설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나는 예나의 매니저라고 둘러댄 후에, 줄을 선 사람들 틈을 헤집고 떡볶이집 안으로 들어가니, 이번에는 종업원으로 보이는 친구가 앞을 막고 있었다.
“지금 자리가 없습니다.”
“예?"
“자리가 꽉 찼다고요.”
“나 서예나 배우 매니저입니다.”
“아, 그러시구나. 들어가세요.”
바깥과 달리 떡볶이집 안은 나름 조용했다.
다행히도 예나와 지수에겐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지, 둘은 서로 수다를 떨어가면서 떡볶이를 먹느라 바빴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 종업원 아가씨에게 들켰지.”
“그래서?”
“일단 주인아저씨하고 이야기해서, 떡볶이를 먹으러 온 손님들에게는 사인을 해주기로 했어.”
“지금 밖에 대기하고 있는 사람이, 백 명은 넘을 거다. 저 사람들에게 모두 사인해주려면.......”
“그 전에 도망을 가야지.”
“어떻게?”
그러자 지수가, 귀엣말로 주방 쪽으로 나가면 뒷길로 통하는 문이 따로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사장님 되십니까?”
“어!”
“쉿!”
“아, 예.”
“잠시 시간 좀 되십니까?”
나는 작은 소리로 조금 전 지수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했고, 그러자 사장님은 내게 주방으로 들어오라고 하면서 주방 뒤쪽의 출입구 쪽으로 나를 안내했다.
“저리로 나가면 바로 큰 도로가 있거든요. 그러니 거기에 차를 세워두신 후에 오셔서 태워 가시면 됩니다.”
“아무튼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무슨 말씀을요. 덕분에 우리 가게가 한동안 소문이 날 텐데요. 그런데 한 배우님하고 사진 한 장만 찍으면 안 되겠습니까. 서 배우님은 남자하고는 아예 사진을 찍지 않으신다고 알고 있어서요.”
“절 아십니까?”
“당연히 알죠. 저도 예전에 스턴트 일을 했었습니다.”
아무튼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만약 떡볶이집 사장님이 적절하게 통제를 해주지 않으셨더라면, 예나하고 지수 둘이서 감당하기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이곳에 미친놈이 있기라도 했더라면, 또 예전에 겪었던 그 비슷한 일을 겪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혹시 한 배우님 사진하고 서 배우님 사진을 저희 가게에 걸어 놓아도 괜찮을까요?”
“예.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이곳을 다녀간 것이 사실이고 사인을 해주고 같이 사진까지 찍었으니, 그런 사진 중 한두 장을 걸어 둔다고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것이다.
“다 먹었어?”
“응, 배 엄청 불러.”
“그럼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차 가지고 올 테니까.”
처음에는 상호를 불러낼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처럼 늘어지게 쉬고 있는 놈을 불러낸다는 것도 마음 편하지 않았기에, 나는 떡볶이집 사장님께 둘을 부탁하고, 뒷문을 통해서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도로 갓길에 비상등을 켜고 차를 세우고, 뒷문으로 나오라고 전화를 걸었다.
“오빠, 빨리 가!”
“왜? 사람들 이쪽으로 곧 올 거야.”
뭔가 또 상황이 바뀐 것 같았다.
나는 먼저 차로 달려가서 문부터 열었고, 둘이 차에 타는 것을 보고 운전석으로 향했다.
그때 사이드미러엔 수많은 사람이 우리 차가 있는 곳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비쳤고, 나는 그 사람들의 모습을 사이드미러로 지켜보면서 천천히 출발시켰다.
“갑자기 왜 저래?”
“우리가 일어서서 나오려고 하는데, 사장님이 집에 가서 먹으라고 또 챙겨주시잖아. 그런데 그걸 앞에 서 있던 사람이 보고 가게 안으로 밀고 들어오려고 하는 통에, 난리가 났어. 그래서 사장님이 빨리 도망가라고.”
대충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자기 차례가 되어서 사인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가, 예나가 도망가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갑자기 사람들이 흥분한 것이다.
덕분에 떡볶이집 사장님은, 지금도 곤욕을 치르고 있을 테고 말이다.
“어지간히도 좋겠다. 남의 영업장에 가서 완전 민폐만 끼치고 오고서는.”
“그래도 재미는 있었잖아. 사람들이 우릴 잡으려고 막 달려오는데, 우린 잡히지 않으려고 도망가는 것도 엄청 스릴이 넘치던데. 또 해보고 싶다.”
“그런데 아까 그렇게 먹고 그게 또 들어가?”
“엄청 맛있거든. 그리고 배가 불렀던 것은 아까였고, 조금 전에 도망치면서 달리기까지 했었잖아. 자기도 떡볶이 양념에 오징어 튀김을 한번 찍어서 먹어봐.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
음식에 대해서는 식탐이 있는 편이 아닌데, 예나는 떡볶이나 순대 그리고 튀김 앞에서는 평소와는 다르게 식탐을 보인다.
누구보고 저 많은 양을 다 먹으라고 그런 것인지 몰라도, 사장님께서 주셨다는 떡볶이와 튀김 순대가 담긴 그릇은 보기만 해도 질릴 지경이다.
하지만 둘은 지치지도 않는지, 정말 끊임없이 떡볶이와 튀김 그리고 순대를 입안으로 털어 넣고 있었다.
“자긴 그냥 집에 있어.”
“나 혼자 집에 있어 봐야 뭐하라고?”
“그렇다고 자기가 촬영장에 와서 있어 봐야 또 뭐해. 자기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내가 부담되니까 자긴 그냥 집에서 쉬고 있어.”
나는 오늘 촬영할 분량이 없고 예나만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예나는 새벽부터 일어나 분주하게 설쳤고, 나도 함께 가려고 준비를 하니 예나가 말린다.
“그래 고생해. 실장님도 고생하시고요.”
결국 예나하고 스태프들이 출발하는 것을 보고, 나는 다시 집으로 올라와서 침대에 누웠다.
‘찌~르~르~릉’
저장되지 않은 낯선 번호가 휴대전화 액정화면에 떴다.
이런 전화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처음엔 무시하고 넘겼지만, 상대는 고집스럽게 전화를 걸었다.
“한강숩니다.”
“선배님, 김소운이에요.”
“예? 누구시라고요?”
“소연이 역할을 맡은, 김소운이라고요,”
정말 뜬금없는 전화였고, 또 어제 처음 얼굴을 봤던 친구가 무슨 일로 전화를 걸었나 싶었다.
“예. 김 배우님. 그런데 어떻게 제 번호를 아시고요?”
“조감독님께 여쭤봤습니다. 혹시 오늘 시간이 되세요?”
“무슨 일이신지?”
아예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또 내가 알기로 앞으로도 몇 차례 촬영을 같이 해야 할 했기에, 무슨 일로 전화를 건 것인지는 확인해봐야 했다.
무슨 이유인지 물었지만 말을 얼버무렸고, 결국 만나서 이야기하기로 약속했다.
내가 오늘 촬영이 없다는 사실까지 알고 전화를 했다는데, 피한다는 것도 그리 현명한 일이 아니어서 집 부근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다.
전화를 끊고 예나에게 전화를 걸려다가, 휴대폰을 손에서 내려놓았다.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면 알게 되겠지만, 지금 만나려고 하는 여배우가 나하고 베드신을 찍었던 배우라는 점 때문에 망설여졌다.
괜히 예나가 아침부터 알게 되면, 예나의 속이 시끄러워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전화 거는 것을 포기했고, 그 순간 예전 진수가 내게 줬던 그게 생각났다.
서랍에서 진수가 내게 준 볼펜을 셔츠 주머니에 꽂고, 또 개인적으로 혼자 외출을 할 때는 꼭 걸치고 가라던 카디건을 걸친 후에, 나는 약속 장소인 커피숍으로 갔지만, 약속했던 김소운 배우가 도착해 있지 않았다.
“예, 저는 커피숍에 와 있습니다.”
“바깥으로 나오세요.”
“예.”
“갑갑한 커피숍보다는 시원하게 바람이나 쐬면서 이야기하자고요.”
약속 시간이 5분쯤 지난 후에 전화가 걸려왔고, 조금 마뜩찮았지만 바깥에서 시동을 걸어둔 채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커피숍을 나왔다.
커피숍을 나서자 빨간색의 국산 스포츠카에서 경음기가 울렸고, 김소운 배우는 조수석 창문을 내리고 나를 불렀다.
“타세요.”
“무슨 일인지 몰라도, 그냥 부근에 주차해두고 커피숍에서 이야길 하죠.”
“부근에 주차할 만한 곳이 없더라고요. 그리고 커피숍에서는 선배님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 수도 있잖아요.”
결국 나는 조수석에 탔고, 내가 안전띠를 매자 김소운 배우는 차를 출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