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 베드신은 어려워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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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이 보기에는 칼날이 불규칙하게 휘둘리는 것처럼 보였으니, 당연히 베이거나 찔릴까 걱정도 되었을 것이다.
“그럼 배우들 전부 후배님처럼 할 수는 있어요?”
“아닙니다. 한 배우님은 무술을 잘하시니까 직접 연기를 하시는 것이지, 대부분 배우는 저 정도 신(scene)을 찍을 때는 대역배우를 투입합니다. 자칫 칼에 스치기라도 하면, 영화촬영이 중단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무술이 도합 12단이라고 방송에 나왔던 것이 사실이었어요?”
“예. 강수 형이 12단인 것은 맞습니다. 태권도 유도 검도가 모두 공인 4단이거든요.”
현서의 질문에 상호가 신이 나서 나 대신 대답하기 시작했고, 현서는 상호의 설명에 아예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뭐 사실 도합 공인 12단이라면 그건 보통 이상인 것은 확실했고, 만약 내가 무슨 일이라도 생겨서 배우 생활을 하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 단증으로 체육관 사범 노릇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가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단증도 액션스쿨 투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종이쪼가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꼈다.
실전 무술과 보여주기 위한 무술은, 아예 접근방식부터 달랐으니 말이다.
아무튼 내 무술 실력은 액션스쿨 투에서 몇 달을 함께한 덕분에 두어 단계 성장한 느낌이다.
그리고 오늘처럼 액션스쿨 투 식구들과 액션 신(scene)을 찍을 때면, 시나리오를 보고 몇 번만 합을 맞춰보면 거의 NG를 내지 않을 수준까지는 됐다.
“감독님,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오늘 고생 많았어. 월요일부터는 본격적으로 액션 신(scene)이 들어가니까 컨디션 조절 잘하고.”
내가 찍을 분량은 끝이 났기에 감독님과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는 김 의원과 현서 그리고 예나와 함께 촬영장에서 출발했다.
“그럼 조심해서 내려가십시오. 조만간 부산에서 뵙겠습니다.”
“그러세. 한 배우 자네도 촬영하면서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시고.”
김영범 의원 부녀와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헤어졌다.
세상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김영범 의원 부녀의 지금 모습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예전 같으면 현역 국회의원이, 딸과 함께 고속버스를 타고 부산까지 내려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힘든 일이다.
지방에 지역구를 둔 대부분의 현역 의원은, 비행기를 이용하거나 아니면 기사가 운전하는 승용차로 지방으로 내려가지, 고속버스를 탈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요즘 세상에도 현역 국회의원 부녀가 고속버스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 사실을 SNS에 올린다면 한동안 이슈가 될 일이기도 하다.
“혼자서 지내는 것이 힘들진 않았어?”
“수험생이 힘들다는 걸 생각할 여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해? 그냥 기계 그 자체지.”
“그래 아주 현명한 생각이다. 이제 조금만 고생하면 그 고생도 끝이니까 열심히 해.”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바로 유학을 갈 것인지, 아니면 학부를 졸업하거나 2년 정도 수료한 후에 유학을 갈 것인지를 결정하지 못했다.
사실 나는 지수가 가능한 유학 대신에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했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랬기에 되도록 유학을 말리고 싶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자! 우리 수험생 많이 먹어.”
“많이 먹으면 살찌거든.”
“인마, 공부만 열심히 하면 살이 찔 여유도 없어. 뇌 활동이 얼마나 칼로리를 많이 소모하게 하는데.”
정말 오랜만에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집에 모여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아직 이 집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결론을 내리지 못해서 그냥 비워둔 상태다.
이렇게 계속 집을 비워두게 되면 집이 상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부모님의 흔적이 남은 이 집을 판다는 생각은 아예 할 수조차 없었고, 집 전체를 세를 내준다는 것도 딱히 내키지 않았기에 고민이다.
“신인배우 김소운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한강숩니다.”
“예. 선배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딱히 선배라고까지 할 일은 없습니다. 저도 신인인 걸요.”
“하지만......”
진수정 배우를 대신할 여배우가 캐스팅되었다.
아무리 소프트한 베드신이지만 신인 여배우가 베드신을 한다는 것은, 자칫하면 그 배우의 이력에 흑역사로 남겨질 수도 있는 일이기에, 용기가 대단하다 싶었다.
“컷!”
“죄송합니다.”
“한 배우, 조금만 더 욕정이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여 봐. 어떻게 유부남이 아가씨보다 더 얼어 있어?”
내가 NG를 내기 시작했다.
벌써 몇 번째 NG인지 모를 정도로, NG라 외치는 황우 감독님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었다.
남들은 어렵다고 하는 액션신에서는 NG 없이 잘만하던 내가 계속 NG를 내자, 황우 감독님의 목소리가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고, 촬영장 분위기는 점차 딱딱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잠시 쉬었다 갑시다!”
결국 황우 감독님께서는 속이 터지시는지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키더니, 휴식시간을 가지자고 지시하시고는 담배를 들고 촬영장을 벗어나셨다.
“강수야.”
“응, 누나.”
“너 예나 처음 자빠뜨리려고 했을 때, 그때 감정을 기억해 봐.”
“나 그런 적 없었는데.”
“뭐? 그런 적이 없었다는 말이 말이나 되는 소리야?”
“응, 나 예나를 어떻게 해보겠다고 생각했던 적 한 번도 없었어.”
“그럼 정말 결혼하고 신혼여행 가서 한 것이 처음이었다고?”
“누나는 나하고 계속 같이 살았으면서 그런 말을 해?”
“요즘 같은 시절에 그게 말이나 돼?”
“그럼 말이 되지 않으면?”
“하~아~”
지민이 누나가 답답했던 것인지 충고라고 해준다는 말이, 예나와 처음 관계를 맺기 전의 내 감정을 살려보라고 이야길 했지만, 솔직히 예나와 첫날밤을 치를 때의 그 감정이 욕정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관계를 하고 싶어 했던 사람은 나보다 예나였다는 것이 정답일 것이고, 설령 내가 예나와 잠자리를 가지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욕정보다는 기대감이라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럼 학교 다닐 때라도, 다른 여자를 어떻게 해보려고 마음먹었던 적은 없었어? 그때 생각을 떠올려 보든지.”
“나 모태솔로거든.”
“뭐? 모솔이라고?”
“응, 누난 모르겠지만 솔직히 부모님 돌아가신 후부터는, 여자한테 신경을 쓸 만큼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어. 우선은 지수하고 나하고 먹고사는 일이 우선이었으니까.”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내가 그런다는 것이 말이 돼? 20대에 한창 왕성할 나이잖아.”
“언니, 얘 말 맞아요. 고딩 때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얘가 고자가 아니냐는 말이 돌 정도였었거든요.”
“고딩 때도 그랬다고?”
“얘 얼굴이 고딩 때도 제법 튀는 얼굴이었거든요. 그러니 좀 논다는 애들 말고도, 얘하고 사귀고 싶어 하는 애들이 제법 있었어요. 그런데도 따로 여자애들을 만나고 그런 적이 없었거든요.”
“하~ 진짜 골 때리네. 너 어디 절에서 도를 닦다가 세상에 나온 거야?”
결국 미선이가 나서서 지민이 누나에게 내 고등학교 재학시절의 이야기까지 했고, 미선이 말을 들은 지민 누나와 미정 누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럼 얘는 지금까지 여자 친구를 사귄 적이 한 번도 없었어?”
“아마 그건 100% 확실한 사실일 걸요. 아니 아예 친구라곤 없었어요. 기껏 친구라고 있다고 한다면, 그때부터 강수 뒤만 졸졸 따라다니던, 진수가 고작이었으니까요.”
“얘 얼굴에 웬 왕따?”
“왕따는 강수가 아니라, 학교의 나머지 애들이죠. 강수 얘 얼굴 보고 누가 왕따를 시켜요. 그냥 쉬는 시간조차 자리에 박혀 있고, 수업 마치면 바로 아르바이트한다고 사라지니.......”
사실 고등학교 시절에도, 내가 인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내 머릿속에는, 지수를 대학에 보내고 시집을 보내기 위해서는 돈을 많이 벌어 놓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래서 남들이 모두 대학입시를 준비한다고 난리를 칠 때조차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고등학교 시절 대부분을 보냈다.
그 덕분에 우리 학교 여학생뿐 아니라 다른 학교 여학생도, 내가 근무하는 편의점에 진을 치게 되었고, 그런 여학생들 덕분에, 편의점 사장님은 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시급보다 많은 돈으로 나를 묶어두기도 했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는지, 나는 딱히 여자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이 없었다.
못된 소리지만 내가 손만 벌리면 여자는 내게 안길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고, 그리고 말만 하면 스스로 팬티를 벗어 내릴 것이란 오만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런 점은, 이전의 내 삶에서도 마찬가지였었다.
국민배우라고 불릴 정도로 영화판에서 입지를 굳혔던 나였지만, 배우에게 흔히 있는 그 흔하디흔한 스캔들조차 없었으니까.
그리고 분명 내 전생의 삶에서는 결혼이라는 것을 했을 것인데, 희한하게도 내가 결혼했었다는 사실과 또 나와 결혼한 여자가 누구였는지조차 기억에 없다는 것이다.
아니 내 전생의 기억에는, 아예 여자란 존재 자체가 없었다.
“강수야.”
“응, 누나.”
“나 솔직히 하나만 물어볼 테니까, 절대 화는 내면 안 된다.”
“무슨 이야긴데?”
“혹시 너 예나하고 하긴 해?”
“뭘?”
“잠자리를 가지긴 하냐고? 그냥 둘이 안고 자는 것이 아니라, 애 만드는 일.”
“누나!”
미정 누나가 아예 나를 고자 취급하고 있었다.
솔직히 예나하고는 내가 얼마나 미친놈처럼 열심히 하고, 예나도 내가 눈치만 주면 샤워하러 가기 바쁜데 말이다.
“하~아~ 진수 팀장이 올라와야 하는데.......”
“뜬금없이 진수는 왜?”
“그런 게 있어. 애들은 몰라도 되는 일.”
미정 누나가 뜬금없이 한마디 하더니, 상호를 옆으로 데려가 둘이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상호 얼굴에는, 곤혹스러운 표정이 여지없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상호가 휴대전화에 뭐라고 하더니, 감독님께로 다가가고 있었다.
“상호한테 뭐라고 했는데?”
“지금 상황에서 베드신 촬영은 불가능하다고. 그래서 1팀 팀장님에게 SOS 쳤어.”
“그건 뭔 말이야?”
“시나리오를 변경하든지 아니면 네가 갑자기 변하든지 하지 않으면, 절대 이번 신(scene)은 오케이 사인을 받을 수가 없어. 그러니까 방법을 찾아야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미정 누나가 대형 사고를 친 것 같았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할 방법은 없었기에, 감독님이 우리 예담기획 1팀장님과 통화를 끝낸 후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한 배우, 야동을 본 적은 있어?”
“이럴 때, 본 적은 있습니다.”
“그때 느낌은 어땠어?”
“그렇게 집중하고 본 적은 없고, 친구가 눈앞에 들이대는 통에.......”
“혼자서는 본 적이 없다는 뜻인가?”
“제가 야동을 볼 정도로, 시간 여유가 있게 살지를 못해서요.”
“하~아~”
황우 감독님도 난감한 모양인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뭉뚱그려서 표현하자면 연기력이 문제라고 하겠지만, 그렇다고 이 문제를 연기력이 문제라고 몰아붙일 수도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