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 크랭크인에 들어가다. (5)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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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토스트로 출출한 배를 달랜 스태프들과 단역배우들은 다시 촬영장으로 향했고, 황우 감독님 또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자네 차례는 언젠가?”
“서너 장면은 더 찍어야 제 순섭니다.”
“그렇구먼. 그런데 저 감독님 성함이 황우라고 했나?”
“예. 맞습니다.”
“저 양반 혹시 정치색이 강한 감독인가?”
“개인적으로 따로 뵌 적은 없어, 그것까지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문제가 있을 게 뭐 있겠나. 하지만 정치하는 사람 중에도 내가 그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영화감독이 그 일을 알고 있으니 신기해서 그러지.”
“당시 그 문제가, 영화인으로서는 밥줄이 걸린 일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때 우리 대한민국에는, 참담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참사가 있었다.
고등학교 학생들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길에, 그 학생들이 타고 있던 배가 침몰해 300명이 넘는 사망자와 실종자가 생겼던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6·25전쟁을 제외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이후 가장 큰 참사가 바로 그 사건이었다.
조금 전 황우 감독님께서 언급한 그것은, 그 참사를 다룬 영화 ‘다이빙 벨’을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상영하는 문제로 인해 벌어진 사건이다.
당시 집권세력이 영화의 상영을 막기 위해, 부산 국제영화제에 대한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등의 방법으로 영화제를 핍박했던 것이다.
당시 수많은 영화인들이 집권세력의 그런 치졸함에 분노하면서 영화제 참석을 보이콧하는 등의 반발이 있었다.
그리고 영화인 뿐 아니라 정치인 몇 명도 강하게 항의했었는데, 그 정치인 중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김영범 의원이었다.
당시 나로서는 김 의원의 그 발언을, 조금 뜬금없다고 생각했었다.
김 의원이 문화관광위원회 소속도 아니고 연관성이라고고 해봐야, 부산 18개 선거구 중 한 선거구의 지역위원장이었을 뿐이니까.
“그런데 의원님께서는 당시에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제 기억으로는, 당시 낙선하시고 야인으로 지내시던 때가 아니었습니까?”
“아무리 백수 신세라고 하더라도, 그런 참사를 외면하는 것은 국민 된 도리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그런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그걸 덮으려고 영화제를 탄압하는 것은 아니지. 그거야 한 배우 자네도 마찬가지 아니겠나?”
“하긴 그 말씀이 맞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미 벌어진 일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300명이 넘는 국민이 희생된 사건의 진상은, 제대로 밝혀야 하지 않겠는가?”
김 의원의 표정은 결연했다.
나도 김 의원의 말에 확실히 공감하고, 언젠가는 진실을 꼭 밝혀야 한다.
그렇게 해야 당시 그 참사로 희생된 희생자들이 편하게 눈을 감고 영면에 들 수 있을 것이고, 희생자 가족의 아픔 또한 조금이나마 덜어질 것이다.
“아무튼 한 배우 자네가 본격적으로 정치할 생각이라고 하니, 이 점만은 꼭 생각해줬으면 좋겠네.”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정치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일이고, 대한민국 정치인은 국민의 심부름꾼이라는 말. 이것만 항상 가슴에 새겨둔다면, 결코 국민들에게 지탄받는 정치인은 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네.”
교과서에나 나옴 직한 이야기지만 나 역시도 정치와 정치인은, 국민 위에서 군림하면서 다스리고 통제하는 존재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김 의원의 지금 저 말은 본심인 것 같았고, 또 저런 마음이 지금의 김 의원을 있게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빤 영화촬영 구경을 왔으면서, 무슨 그런 심각한 이야기만 하고 그래?”
김 의원님하고 만나기만 하면 정치 이야기가 주제가 되었기에, 항상 이렇게 심각한 분위기가 되고 만다.
그리고 그것이 현서 이 친구에게는 불만인 것인지, 지금까지 예나와 조잘거리면서 신기해하면서도 아버지인 김 의원을 향해 툴툴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영화를 찍는데, 원래 이렇게 사람이 많은가?”
“예.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상업영화는 항상 100명 정도는 됩니다.”
“인건비만 해도 만만찮겠구먼.”
“그렇죠. 그래서 하루 촬영이 연기되면, 제작사로서는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은 건물을 짓거나 도로를 닦는, 공사현장하고 비슷한 것 같구먼.”
“맞습니다. 공사현장에서도 공기를 당기려고 난리를 치는 이유가 비용 때문이고, 그것은 영화촬영에서도 마찬가집니다. 하루 촬영이 중단되면 아예 천 단위가 깨지거든요.”
“그래서 야간촬영을 강행하는 것인가?”
“분명히 그런 이유도 있지요. 하지만 예전만큼은 아닙니다. 물론 미국 할리우드 시스템을 따라잡기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선배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전보다는 촬영장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다고 하거든요.”
영화를 보러 다니지도 않는다는 김 의원이, 영화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의원도, 영화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영화에 관심이 많다는 것보다는, 영화산업에 관심이 많다는 표현이 옳겠지.”
“영화산업이라고요?”
“그래. 자네도 알다시피 내 지역구가 부산 아닌가? 그런데 부산 사정이 그렇게 만만치 않거든.”
“부산 사정이 만만치 않다니요?”
“부산이 대한민국 제2의 도시라고 하는 말은 들어 봤나?”
“맞지 않습니까. 그리고 대한민국 제1의 항구도시인 것도 맞고요.”
“그건 90년대 초반까지나 통하던 이야기지. 실상을 따지고 들어가면 그건 이미 지난 일일세.”
“예?”
“모르긴 해도 예전처럼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 그리고 제2 도시는 부산 제3 도시는 대구 이렇게 따지려고 한다면, 지금 대한민국 제2의 도시는 부산이라기보다는 인천이 맞을 걸세.”
“인천이라고요?”
“내가 알기로는 그게 맞을 걸세. 자네도 생각해보게. 부산에 항만시설을 제외하고는 내세울 만한 회사나 공장이 뭐가 있는지를.”
사실 부산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내년 국회의원총선거에서 출마할 양산에 관해서도 제대로 모르는 내가, 나와는 딱히 관련도 없는 부산에 대한 고민은 내게는 사치다.
하지만 김 의원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부산에는 정말 내세울 만한 공장조차 없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예전 70년대나 80년대만 하더라도, 동양고무니 태화고무니 하는 신발공장하고 동명목재가 있어서 부산 경제를 지탱했었네. 그런데 1980년에 동명목재가 해체되고, 한창 커 나가던 신발회사가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도약의 발판을 만들려 했었지만, 급격한 임금상승을 감당하지 못해 공장 대부분을 해외로 이전했다네. 그 이후 부산은 완벽한 소비도시로 변했지.”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1980년 전두환 군사정권 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른바 통치자금 때문에 정권에 밉보인, 동명목재의 강석진 사장과 국제상사의 김지태 회장이 회사를 전두환 정권에 빼앗기는 등의 고초를 겪었다는 것 정도는, 이미 5공 비리 청문회 과정에서 밝혀진 일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거의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그 사건과, 김 의원이 영화산업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 무슨 연관이 있을까 싶다.
“의원님 말씀이 무슨 말씀이신지는 약간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그런 공장들이 도산한 것과 영화산업에는, 딱히 공통점이 없는 것 같습니다만......”
“그건 자네가 잘못 생각한 것이네.”
김 의원은 단호했다.
대부분 정치인은 상대와 이야기를 하다가 의견 충돌이 일어나더라도,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완곡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국민들에게 정치력을 인정받고 있는 김 의원이, 내가 한 말에 대해 대놓고 나의 그 생각이 틀렸다고 지적하니, 솔직히 순간적으로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자넨 영화산업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성장 전망이 아주 좋은 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나라 경제에서, 제법 큰 축을 담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왜 그렇게 생각하나?”
“물론 흥행에 실패한 영화도 많지만,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투자 대비 효과가 엄청나니까요. 의원님께서도 기사를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G 같은 경우 200억 정도를 투자해서 자그마치 3,000억이란 수익을 창출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나도 그런 생각 때문에, 그런 쓸데없는 소릴 지껄였던 것일세.”
“쓸데없는 소리라니요?”
“몇 년 전에 내 주제도 모르고 한 소리 말일세. 다 죽어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해서 겨우 숨만 붙어 있는 부산경제에, 부산국제영화제란 것이 숨통을 틔워주고 있는데, 부산시장이란 사람이 그걸 죽이겠다고 설쳐대니,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는가?”
김 의원의 이야기 내용은 단순했다.
부산이 고향인 그가 서울 생활을 접고 부산에 천착하겠다고 내려왔는데, 막상 부산에 내려와서 부산 현실을 보니 막막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부족해서 부산을 먹여 살릴 유일한 대안인,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파행을 겪는 것을 보고 열이 받았던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정치색이 아닌, 부산시민으로서 부산과 부산시민의 먹을거리를 걱정하는 정치인으로서의 분노,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계속되는 김 의원의 이야기에 현서가 툴툴거렸지만, 정치 현안에 푹 빠진 김 의원에게는 아무 효과를 주질 못했다.
현서 역시 자기 아버지인 김 의원이, 정치와 관련한 문제에는 곁눈질 하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고 돌진하는 사람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지, 답답하다는 듯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촬영장에서는 예정되었던 신(scene)을 순차적으로 쳐내 가고 있었고, 황우 감독님의 ‘컷!’ ‘다시!’ ‘오케이!’ 소리는, 끊이지 않고 촬영장 곳곳으로 퍼져가고 있었다.
“한 배우님, 준비해야 할 시간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연출부 스태프 하나가 내 쪽으로 다가와, 내가 출연할 장면을 촬영할 시간이 되었음을 알려줬다.
나는 김 의원님께 양해를 구하고, 이번에 연기할 장면에 관한 내용을 머릿속으로 더듬으면서 촬영장으로 향했다.
“후배님, 원래 아까 그런 장면은 스턴트맨이 하는 것 아니에요?”
“스턴트 배우들이 하는 경우도 있지만, 직접 할 수 있다면 직접 연기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죠.”
“엄청 위험할 것 같던데.......”
“미리 합을 맞춰보고 그대로 하는 것이어서 크게 위험할 일은 없어요.”
황우 감독님의 '컷!' '오케이~'란 사인과 함께, 내가 연기할 부분의 촬영이 끝이 났다.
그렇게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니 김 의원뿐 아니라 현서까지, 잔뜩 긴장했던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아마 조금 전 스턴트 배우들과 찍었던 장면이 제법 실감났던 모양이고, 혹시 그 과정에서 다친 것은 아닐까 걱정했던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