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 크랭크인에 들어가다. (4)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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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별 대수로울 것도 없는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아예 출연자가 교체되는 사태로 번져버렸다.
진수정이라는 여배우와 인사조차 나누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고, 감독님도 신경을 쓸 일은 아니라고 하셨지만, 내가 전혀 관련이 없다고도 할 수 없었기에 그리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한 배우는, 한 배우가 잘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되네.”
황우 감독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나는 더 할 말이 없어서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한 배우님. 내일로 예정되었던 신(scene)을 지금 찍을 수 있겠습니까?”
“내일 찍을 거라면 12번 신(scene)말입니까?”
“예.”
“장수 형은요?”
“장수 씨는 한 배우님이 가능하시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올 수가 있다고 하거든요.”
내일 장수 형하고 1:1로 맞붙는 신(scene)을 먼저 찍기로 했고, 나는 입고 있던 옷을 움직이기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형, 어디 계셨기에 벌써 오셨어요?”
“우리 사무실서 여기까지 해봐야 얼마나 된다고.”
장수 형과 액션스쿨 투의 스턴트 배우 둘은, 조감독이 전화를 건지 20분도 되기 전에 촬영장에 도착했고, 나는 장수 형을 비롯한 셋과 가볍게 합을 맞춰보았다.
액션스쿨 투 멤버와는, ‘네 안의 야수’를 찍으면서 수도 없이 액션 합을 맞춰봤던 경험도 있다.
그리고 이번 ‘도시의 하이에나’를 찍기 위해 초반에 같이 합을 맞춘 적도 있었기에, 이렇게 간단히 합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레디~ 액션!”
“어디서 굴러먹던 똥 덩어리들이야?”
“하~참! 이 새끼 골 때리네. 너 우리가 누군지 몰라?”
“내가 너희가 뭐하는 놈인지 까지 알아야 해?”
“이 새끼 봐라. 여기 이 형님이 자갈치 파의 넘버 투이신 경호 형님이다.”
“지랄하네. 네놈들이 자갈치 파이든 대파든, 나하고 무슨 상관인데.”
“형님! 이 새끼 이거 말로는 되지 않을 놈 같습니다.”
그러더니 경호란 놈의 왼쪽에 있던 놈이 몸을 날렸고, 나는 돌려차기로 공중에 떠서 나를 향해 뻗어 오는 그놈의 무릎 부분을 걷어찼다.
“하! 저 새끼 봐라.”
왼쪽의 덩치가 바닥을 구르자 오른쪽에 서 있던 덩치가 나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나는 정해진 합대로 주먹을 주고받다가 얼굴을 한 대 얻어맞고 바닥에 쓰러졌다.
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나는 코를 쓱 훔쳤다.
그러는 내 손에는 시뻘건 코피가 묻어 나왔고, 그걸 확인한 순간 열이 확 뻗쳐올랐다.
“이런 시팔 놈이!”
하필 맞아도 쪽팔리게 코 부근을 맞았던 탓에, 쪽팔리게도 코피가 터진 것이다.
나는 한 손으로 한쪽 콧구멍을 막고는, 코피를 팽하고 풀어낸 후에 다시 자세를 잡았다.
“형님, 이 새끼 이거 독종인데요.”
“시발 새끼들. 쪽팔리게 2:1로 다구리를 까고 있냐?”
“아니꼬우면 너도 똘마니 몇 놈을 데리고 오든지.”
“야! 그 새끼는 정리하고 가방이나 가지고 빨리 뜨자.”
“예! 형님!”
한마디로 열나게 깨졌다.
한 놈이 내 허리를 잡고 나머지 한 놈이 나를 마치 샌드백이라도 두드리듯 두들겨 팬 덕분에, 정말 비가 오는 날 먼지가 나도록 맞고 서너 대를 더 맞았다고 할 정도로 모질게 맞았다.
“안 돼!”
“지랄한다.”
내가 완전히 뻗어 늘어지자 덩치 두 놈은 내 허리에 묶인 가방을 뺏기 위해서 다가왔고, 나는 가방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엉금엉금 뒤로 물러났다.
“더 처 맞기 싫으면 고이 내놔.”
이 가방을 빼앗기는 것은, 내 목숨을 잃는 것과 같았다.
10kg이나 되는 히로뽕이 든 가방을 잃어버린다면 10억이란 돈도 문제지만, 조직에서 공급하기로 약속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는 점 또한 심각한 문제였기에, 그에 대한 처벌을 받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처벌은 드럼통에 집어넣은 채, 바다 깊숙한 곳에 묻히는 신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이 새끼가! 그냥 가만히 있으면 더 처 맞지는 않을 것인데.”
결국 나는 또다시 두 놈의 무차별한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지만, 나는 목숨과도 같은 이 가방만큼은 절대 빼앗길 수 없었다.
“형님, 이 새끼 그냥은 안 되겠습니다.”
“처리해! 어차피 우리가 누군지도 알잖아. 괜히 후환 남겨서 좋을 일이 뭐가 있어.”
그게 정답이었다.
히로뽕이 든 이 가방을 빼앗긴다고 하더라도 경찰에 신고하진 못하지만, 난 조직의 눈을 피해 잠수를 타야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 조직에서 뽕을 빼앗아간 조직이 어딘지 모르게 되니 굳이 죽여야 할 필요성도 없지만, 내가 독 오른 살모사처럼 덤벼들까봐 뒤가 근질거리기도 할 것이었다.
결국 자갈치 파의 넘버 투라는 눔은 나를 처리할 것을 지시했고, 명령을 받은 놈 중에서 아까 왼쪽에 서 있던 놈이 잭나이프를 돌리면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내 손에 문득 잡히는 것이 있었고, 그것을 손에 쥔 나는 내게로 다가오는 놈의 사타구니를 강하게 후려쳤다.
“악!”
“뭐야?”
“이 개 같은 새끼가!”
“컷! 오케이!”
그렇게 황우 감독님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바로 이어지는 장면은 주변에 숨어 나를 감시하던 조직원의 연락으로, 우리 조직원이 떼로 몰려오는 장면이다.
우리 조직원이 떼로 몰려오자 자갈치 파의 행동대장이란 놈과 덩치 둘이 도망치는 장면이지만,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으로 그 장면에 필요한 엑스트라들이 없었기에, 이 부분에서 컷 사인이 난 것이다.
“형, 고생했어요.”
“맞은 데는 괜찮아?”
“어차피 비켜 맞은 건데요. 뭘.”
그렇게 감독님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 나는 몸을 일으켜 온통 흙더미가 된 옷을 털었고, 나를 다구리 놓았던 둘도 내 어깨와 등을 털어주느라 바빴다.
“강수 너, 일부러 아슬아슬하게 쳤지.”
“뭘?”
“내 물건이 왼쪽으로 살짝 휘어진 것 알잖아? 그런데 왜 왼쪽을 노려?”
“지랄한다. 그리고 보호대 댔잖아.”
“시발! 보호대 댄다고 거기가 안 아프더냐? 비켜 맞았어도 얼얼한데.”
그런데 그때 입구 쪽이 소란스러워 지고 있었다.
감독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를 향해 급히 걸어 나갔고, 잠시 후 예나와 그 뒤를 따르는 김 의원 부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왔어?”
“자기 옷이 왜 그래?”
“응, 방금 격투 장면이 하나 끝났거든.”
“오늘 격투 장면을 찍는 날이 아니잖아? 베드신 찍는다고 잔뜩 신이 나 있더니만.”
“내가 언제?”
“그랬었거든.”
감독님께 인사를 마친 예나는 흙먼지로 범벅된 옷을 보고 의아해했고, 나는 조금 전에 촬영장에서 있었던 일을 예나에게 설명했다.
그러자 조금 전 상황을 지켜봤던 누나 둘은, 잔뜩 조미료까지 쳐가면서 신나게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오셨습니까?”
“이거 괜한 내 호기심 때문에 촬영에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
“전혀 아닙니다. 감독님은 오히려 좋아하시는 눈치신데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여기 앉으셔서 편하게 구경하시면 됩니다.”
“아냐, 자기가 의원님 모시고 나가서 커피나 한잔해.”
“응?”
“의원님께서 커피트럭을 지원하셨거든. 스태프들도 토스트하고 커피로 배 좀 채우라고 하고.”
전혀 기대조차 없었던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정치하는 양반이 어떻게 촬영현장에 커피트럭을 보낼 생각을 할 수가 있었는지 신기한 일이었다.
“의원님께서 커피트럭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시고요?”
“현서 쟤가 그러더니만. 이런 곳을 찾아갈 때는 빈손으로 가면 욕 얻어먹는다고.”
“아이고 우리 김 선배가 어떻게 이런 것도 아시고?”
“치! 이제 제가 보여요?”
때맞춰 조감독이 메가폰으로, 커피트럭이 도착했다는 사실과 30분간 휴식을 알렸다.
오늘은 진수정 배우와 또 예정되지도 않았던 커피트럭 덕분에, 두 번씩이나 중간에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의원님 나가시지요.”
“이거 참, 괜히 주책을 부려서 촬영하는 걸 방해한 것은 아닌지?”
“어차피 조금 있으면, 지원팀에서 간식거리를 사서 와야 할 시간입니다. 대부분 아침을 거르고 온 상태거든요.”
황우 감독님 생각은 어떨지 몰라도, 제작진행을 담당한 제작 PD나 직원 그리고 단역배우나 스태프는, 만세를 부를 상황이다.
제작사로서는 제작비를 세이브 할 기회이기도 했고, 아침을 거르고 온 스태프나 배우들은 출출한 배를 채울 수 있는 시간이니 말이다.
[한강수, 서예나 부부를 좋아하는 팬이, 제공하는 커피입니다. 맛있게 드세요.]
갖출 것은 다 갖춘 커피트럭이었다.
커피 트럭의 옆에는 우리 부부가 같이 찍은 사진과 함께 응원 문구가 쓰여 있는 배너가 있었고, 그걸 본 배우와 스태프는 커피와 토스트를 손에 들고서 우릴 향해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당신은 의원님 모시고 가서 앉아 있어.”
“됐어요. 자기가 의원님 모시고 앉아 있으면, 내가 현서 씨하고 둘이 가서 커피 받아 올게.”
결국 현서와 예나에게 등을 떠밀리다시피 해서 나는 김영범 의원님과 함께 빈자리를 찾았고, 그런 우릴 발견한 황우 감독님이 나를 부르셨다.
“이렇게 찾아주신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커피트럭까지 보내주시고 정말 고맙습니다.”
“어이쿠! 무슨 그런 말씀을요. 제가 촬영에 방해되지나 않았는지 걱정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 배우하고 매우 가까우신 모양입니다.”
“알고 지낸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말이 통하는 친구여서요.”
“그러시군요. 그런데 평소에 영화에 관심이 좀 많으셨습니까?”
“솔직히 이야기 드리자면, 대학을 졸업한 후에 영화관에 가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 바로 정치를 시작해서, 영화를 보러 다닐만한 시간 여유가 없었거든요.”
유권자인 국민들 눈에는, 정치인들이 항상 밥이나 먹으러 다니는 직업으로 보인다.
그런 양반이 영화를 보러 다닐만한 시간조차 없다고 하니, 황우 감독님이 듣기에는 무슨 가당찮은 핑계인가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김영범 의원 같은 경우에는 저 말이 사실일 것이다.
정치인들에게는 사람을 만나 밥을 먹는 자리조차 일을 하는 시간이 맞았고, 정치인들의 일이라는 것이 국회에 출석해서 활동하는 것 이외의 시간은, 대부분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니 말이다.
그랬기에 정말 일을 하는, 국회의원과 아닌 국회의원을 구분하기도 쉽지가 않다.
그냥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사람을 만나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데 시간을 보내는 국회의원이 있는 반면에, 자기가 속한 상임위의 일을 하기 위해서 사람을 만나고 밥을 먹는 것을, 제삼자의 눈으로는 판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시군요. 그런데 예전에 부산 국제영화제에 관련해서는, 한 말씀 하신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아! 그 일이야, 굳이 영화가 아니어도 분명히 잘못된 행위였으니까요. 정치와 예술은 분리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황우 감독님 입에서,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옛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사실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김 의원의 그 발언은 잘 알지 못하는데, 정치와는 전혀 무관하게 살아온 황우 감독님이,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