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 크랭크인에 들어가다.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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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들어가.”
“자기 일하는 것 조금만 보다가 갈게.”
“그러다가 지난번처럼 끝까지 남아 있으려고.”
“아냐. 오늘은 정말 30분쯤만 있다가 갈 거야.”
고사 음식을 나누어 먹고 스태프들은 촬영준비를 시작했다.
오늘은 예나 촬영분량이 없었기에 예나를 먼저 보내려 했지만, 예나는 굳이 촬영을 지켜보겠다고 고집한다.
촬영이라는 것이 딱히 정해진 시간도 없었기에, 예정대로 촬영이 진행되면 빨리 끝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예상 시간보다 늘어나기 마련이다.
심지어 예상치 못했던 NG로 날밤을 새우는 일도 비일비재하니, 촬영을 끝내고 같이 가겠다는 것은 서로에게 부담되는 일이다.
누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아니면 다른 이유로 시간에 쫓기면, 그 때문에 오히려 NG가 나기도 하니까 말이다.
“자! 준비됐죠. 첫 신(scene) 들어갑니다.”
슬레이트 소리와 함께, 황우 감독님의 ‘레디~ 액션!’ 소리가 현장에 울려 퍼진다.
“반장! 이번엔 난 못합니다.”
“시바! 누군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도 있어? 그럼 다 늙은 내가 할까?”
“애들도 많잖아요.”
“애들 누구? 어리바리한 신참 하나 밀어 넣어서? 3년 전 강철이파 때처럼, 드럼통에 담겨 수장된 시체나 꺼내서 국립묘지 안장식 치르자고?”
“아무튼 난 이번엔 못해요. 우리 호준이 입학식에도 가야 한다고요.”
“지랄하네. 대한민국 형사 중에, 자식새끼 없는 놈이 몇이나 돼? 또 그 자식새끼 입학식이나 졸업식에 가본 놈이 몇이나 된다고.”
“좆도! 그럼 나 때려치울 라요. 이제 나도 대한민국 경찰답게 좀 살아봅시다. 그늘에 순차 공가 놓고 봄바람 맞으며 낮잠 자는 놈도 많은데, 매일 같이 경찰이 아닌 뽕쟁이 노릇 하는 마약반도 이제 정말 지겹소.”
“시발 놈! 진짜 계속 진상 짓 할래?”
오늘도 마약 1반은 공 반장과 서열 2위이자 에이스인 장 형사, 두 사람의 실랑이로 시끄럽다.
“진상은 형님이 진상이지. 지금까지 내가 가짜 뽕쟁이 노릇한 것이 몇 번인데. 나도 이제 대한민국 경찰답게 살아봐야 하지 않겠소? 왜 알라들 줄줄이 세워놓고, 다 늙은 나만 뭐 빠지게 굴리는데?”
“인마, 너만큼 뽕쟁이 노릇을 제대로 하는 놈이 없잖아.”
“그렇다고 내 얼굴이, 대학생 애들 틈에 섞이면 튀지 않을 거로 생각해?”
지금 공 반장하고 승강이를 벌이는 장 형사는, 삶 자체가 뽕쟁이다.
대부분 히로뽕 중독자들은 아무리 감추려고 하더라도, 얼굴만 보면 알게 모르게 표시가 난다.
신분을 모르는 사람이 장 형사를 보면 보는 순간에, 딱 ‘저놈 뽕쟁이구나.’ 할 정도의 분위기를 지닌 사람이 바로 장 형사다.
그 덕분에 우리 청에서 잠입수사를 해야 할 일이 생기면, 1순위로 항상 꼽히는 사람이 장 형사인 것이다.
“형님, 이제 강수 쟤도 한번 키워봅시다.”
장 형사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폭탄 발언이 터져 나왔다.
‘키우긴 뭘 키워? 난 안 키워줘도 돼!’란 말이, 금방이라도 내 입에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렇다고 둘이 언성을 높여 싸우는데, 내가 끼어들 틈도 없었다.
“저런 어리바리를 밀어 넣자고? 너 혹시 강수 절마하고 원수진 일이라도 있나?”
“형님도 생각해 보소. 누가 절마를 짭새라고 생각하겠소. 거기에다 절마 저거, 깡순이 그년이 껄떡대기 딱 좋을 면상이잖소.”
내가 형사 같지 않은 얼굴인 것은 맞다.
보통 형사 노릇을 2~3년 정도 하면서 현장을 구르면, 조직의 중간보스나 최소한 조직에서 관리하는 나이트클럽의 부장 정도 분위기는 풍기는 법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나란 놈은, 마약반 형사 5년 차임에도 뽕쟁이 포스는커녕 파릇파릇한 대학생 분위기였으니, 걸핏하면 선배들에게 어리바리하다고 깨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장 형사 말처럼, 마약조직에 잠입해서 맹활약하면서 그 마약조직을 일망타진하고 싶다는 생각은, 단 1도 해 본 적이 없다.
적당히 모니터 앞에서 자판이나 두드리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정보과나 하다못해 경제팀으로 전출될 날이나 기다릴 뿐이다.
“강수 너 이리로 와봐.”
“예?”
“새끼! 꼭 두 번씩 말하게 할래? 이리 와 보라고.”
순간 ‘X 됐다!’란 생각 이외에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장 형사 저 새끼 때문에, 생각지도 않은 잠입수사를 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너 무술특채지?”
“예.”
“그럼 웬만한 상대면, 박 터질 일은 없겠네?”
“다구리엔 장사가 없는 법입니다.”
“지랄한다. 그냥 어리바리하게만 하지 않으면 돼. 총하고 신분증 반납해.”
“예?”
“강수 네가 이번 작전의 언더커버라고. 그런데 떡은 좀 치나?”
“하~아~”
정말 ‘시발! 좆 됐네.’란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 새끼 떡치면, 깔치들 반쯤 죽여 놓습니다. 전에 M 노래방 상미라는 년 말로는, 밤새 덤비는 통에 밑이 다 헐었다고 하더라고요.”
“이 새끼들, 대한민국 경찰관이 노래방 가서 성매매를 했어?”
“성매매를 한 것이 아니라 상미 그년이 강수 일마에게 홀딱 빠져서, 그년이 일방적으로 강수 일마를 잡아먹은 것이라고요.”
“하긴 맛을 아는 년이 우리 강수 물건을 보면, 질질 쌀만하긴 하지. 아무튼 강수 넌 신분증하고 총기 반납하고 준비해!”
“백업은 누굽니까?”
“지랄한다. 거기에 누굴 백업 세워? 너 깡순이 그년은 알지?”
“자료는 확인했습니다.”
“깡순이 그년 부근에서 알짱거리다가, 기회를 봐서 올라탄 후에 잠입하는 것으로 하자. 하긴 깡순이 년이 우리 강수 얼굴을 보면, 그년이 먼저 납치해서 바지부터 벗기려고 하겠지만.”
“저 시월에 결혼합니다.”
“그 전에 작전 끝이 나. 제수씨에게는 내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할게.”
대놓고 못한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공무원 조직 특히 경찰조직은 검찰과 더불어 상명하복에 충실한 조직이고, 그 상명하복이 지켜지지 않으면 자칫 동료의 목숨까지 위험할 수 있는, 임무를 수행하는 조직이니 말이다.
“우리 강수 좋겠다.”
“시파! 자꾸 아스팔트에 X 비비는 소리 할래?”
“지랄, 이런 일이 아니면 네가 깡순이같이 쌔끈한 년 배에, 언제 올라타 볼 기회가 있겠어?”
약혼자인 순미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솔직히 깡순이 파 보스인 깡순이 그년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내 중심이 묵직해지는 느낌이다.
깡순이 파를 감시하다가, 그년이 미소를 짓거나 몸을 비틀면서 애교를 부리는 것을 보면, 나뿐 아니라 팀원들 모두가 저절로 신음을 흘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컷! 오케이! 한 배우! 마지막 비릿한 표정, 그 부분만 한 번 더 따자.”
첫 신(scene)부터 징조가 좋은 것인지, 단번에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감독님 지시에 따라 나는 작전에 투입되기 싫어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보스인 깡순이를 내 배 아래 깔고 헐떡거리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비릿한 미소를 짓는, 조금 전 장면을 연기했다.
“컷! 오케이! 오늘 우리 한 배우 그림 잘 나오겠는데.”
감독님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 스태프들은 다음 신(scene)을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감독님 옆의 모니터에서 방금 연기한 부분을 확인했다.
감독님의 만족스러운 목소리처럼, 화면의 연기 장면은 아주 깔끔하면서도 자연스러웠다.
“형, 고생하셨어요?”
“겨우 몇 분 찍고 고생했다는 소리 들으면 남들 욕해.”
“아무튼요. 커피 드세요.”
“땡큐~”
방금 찍은 장면에 대한 모니터를 마친 나는, 감독님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놓인 의자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이제 보스인 깡순이 배역인 진수정 배우가 조직원들을 갈구는 장면을 찍을 순서였기에, 그 신(scene)이 끝날 때까지 잠시 쉴 수 있게 된 것이다.
“컷! 오케이! 모두 수고했습니다.”
촬영은 정말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로 순조로웠다.
감독님 눈에도 그렇게 비쳤기에 연신 오케이 사인을 내셨겠지만, 옆에서 지켜본 내 눈에도 오늘 연기자들은 하나같이 뭐에 씌기라도 한 것처럼 열연했고, 그 흔하게 나오는 NG조차 내지 않았다.
“감독님, 고생하셨습니다.”
“내가 뭘. 우리 배우들이 고생했지.”
“아무튼 이번 영화 괜찮게 찍힐 것 같습니다. 제가 아직 경험이 많지 않아서 많이 본 것은 없지만, 오늘처럼 NG 한 번 나지 않고 촬영을 끝내는 날은 처음이거든요.”
“맞아. 나도 그 점에 관해선 신기하게 생각해. 어떻게 우리 배우들이 모두 신이 들린 것인지. 아무튼 푹 쉬고 내일 보세.”
단 한 차례의 NG조차 없이 촬영이 끝이 난 덕분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일찍 촬영장을 뜰 수가 있었다.
“누나들은 왜 가지 않고 남아 있었어?”
“어차피 가봐야 할 일도 없잖아. 그리고 혹시 우리 손이 필요한 일이 있을 수도 있고.”
“여기에도 분장 담당이 있잖아. 앞으론 괜히 힘들게 남아 있을 일 없어.”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해. 그런데 강수 너 아까 보니까 엄청 음흉하더라.”
“엥? 음흉?”
“응. 아까 표정, 그러니까 진수정 배우를 생각하면서 짓는, 그때 표정은 정말......”
“자꾸 쓸데없는 소리 할래요?”
“아무튼 강수 너도 조심해. 진수정 배우 그 여자 소문 너도 알잖아.”
진수정 그녀에 대해서는 알아도 너무 잘 안다.
내 전생의 삶에서도, 그 여자는 영화에 출연하면 상대 배우와 염문을 뿌리는 것으로 유명했고,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섹스중독증 환자라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 역시도 신인 시절에, 그 여자의 몸을 경험해보기도 했고, 몇 달을 그녀의 육체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기도 했었다.
결국 그녀가 다른 영화에 출연하게 되면서 나는 헌신짝처럼 버려졌고, 덕분에 한동안은 공황상태에 빠져서 바보처럼 몇 달을 지내기도 했었으니까.
“벌써 마쳤어?”
“응. 희한하게도 오늘은 NG 한 번 없이 끝이 나던데.”
“그래? 그런데도 황 감독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고?”
“딱히 별말씀은 없으셨어. 그런데 왜?”
“이번 영화는 정말 대박 아니면 쪽박이란 말이 맞긴 하나 보네.”
“그게 무슨 말이야?”
“크랭크인 첫날에 NG가 없는 경우도 거의 없지만, 만약 그렇게 촬영이 진행되면 그 영화가 정말 대박이 나든지 아니면 쪽박을 차거나 엎어진다잖아.”
“뭐?”
“모르고 있었어?”
일찍 집으로 돌아온 예나는, 나를 반기기보다는 오히려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예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충분히 나를 긴장시키는 그런 내용이었다.
전생의 삶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 국민배우란 소리를 들으며 배우 생활했는데도, 나는 방금 예나가 한 말을 한 번도 듣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 업계에서 흘러 다니는 소문이나 징크스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은 나 역시도 잘 알고 있었다.
촬영 중에 귀신을 본다든지 하면 그 영화는 대박을 치고, 가수 같은 경우에 녹음하면서 귀신을 보면 그 노래가 히트한다든지 하는 소리가, 이 업계에서 정설처럼 되어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