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정치는 명분이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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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와 홍보팀에서 파견 온 김영수 대리 둘은, 양산에 남아 있기로 했기에 밴 운전은 상호가 맡았다.
이번 ‘도시의 하이에나’에서는 내가 예나와 함께 움직일 것이기에, 실장급 매니저로는 예나를 전담하던 김 실장님 한 사람이면 충분했다.
“고생해.”
“네가 돌아오기 전에 공사는 완전히 끝나 있을 거다. 그러니 여기 일은 신경 쓰지 말고 촬영에만 집중하도록 해.”
진수의 태도는 마치 자식을 서울로 유학 보내는 부모 같았다.
그런 진수와 악수를 하고 나는 밴에 올랐고, 상호에게 김 의원이 사는 부산진구로 가자고 했다.
“안녕하셨습니까. 의원님.”
“이거 본의 아니게 신세를 지게 되었구먼.”
“무슨 말씀을요. 어차피 좌석에 여유가 많습니다.”
“형, 나는 아예 보이지도 않나 봐?”
“아이고, 무슨 말씀을. 우리 위대하신 김 선배를 어찌.......”
잠시 인사를 나누고 김영범 의원님과 서현이가 밴에 올라탔고, 두 사람은 차 안에 있던 예나를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와! 대박! 형, 촬영할 때는 항상 이 차를 타고 다녀요?”
“이 차는 예나 차야. 나한테 배정된 차는 이 차보다 훨씬 적고.”
“엥? 왜요? 연예인 밴은 똑같은 거 아니었어요?”
“원래 이 동네가 그래. 인기가 벼슬이고 힘이거든. 인기가 많아야 회사에 벌어다 주는 돈이 많고, 그렇게 벌어다 주는 돈이 많을수록, 대접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잖아.”
소위 연예인 차량이라고 불리는 밴에도 급이 있다.
예나처럼 Top을 달리는 연예인 대부분은, G 사에서 출시되는 스타크래프트라 불리는 익스플로러 밴을 주로 탔다.
그러다가 요즘은 그것보다 한 단계 위라고 불리는, B 사의 스프린터라는 이름의 밴으로 바꾸고 있는 추세고, 지금 우리가 탄 밴이 바로 그 14인승을 9인승으로 실내를 개조한 스프린터다.
물론 차량 가격과 연비 등을 계산한다면 엄청난 낭비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연예인이란 존재가 ‘폼생폼사’라는 단어를 목숨같이 여기는 존재들이고, 대중들 또한 그들이 타고 다니는 차량의 등급과 협찬 받는 의류의 등급에 따라 급을 매기는 추세다.
그랬기에 회사로서도 소속 연예인과 회사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런 지출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다.
반면 같은 회사에 소속된 배우라고 하더라도 급이 낮은 배우, 그러니까 회사에 별다른 수익을 안겨주지 못하는 배우에 대한 대우는,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격차가 심하다.
그 가장 확실한 예로, 예나의 남편인 내게는 내 급에 맞는 국산 밴 승용차가 배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회사의 이런 방침은 소위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그 말을, ‘부러우면 출세하라!’는 말로 바꿔서 직접 눈으로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그랬기에 어느 회사를 불문하고 대부분 Top급 연예인들은, 소속사와 계약하기 전 자기에게 배정할 차량의 종류부터 따지고 드는 것이다.
자신에게 배정될 차량의 급에 따라서, 자기란 상품에 대한 회사가 매기는 상품가치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확인하게 되고, 그렇게 매겨진 상품가치가 대중들에게도 바로 보여 진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확실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한 배우 자네 차는 뭔가?”
“지난번에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지난번 댁을 방문했던 날 타고 갔던 차요.”
사실 내 앞으로 배정된 차는, 연예인 밴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9인승 국산 밴이다.
연예인 등급으로 따지자면, 국내 배우 중에서 Top으로 꼽히는 예나와는 아예 비벼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신세니, 그런 차가 배정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말이다.
“연예계도 우리 정치판 이상으로 냉정한 곳이구먼. 그런데 자네 장인이 회사 대표라고 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하지만 소속된 다른 배우들과의 형평성 또한 고려해야죠. 제가 회사에 벌어다 주는 돈이 없으니, 아무리 대표님이라고 하더라도 마음대로 하실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리고 차량 배정은 대표님 소관도 아니고요.”
사실 지금 내게 배정된 밴조차도, 내 급에서는 특혜라는 소리가 나올 수도 있는 일이다.
촬영장을 가든지 일 때문에 움직일 때는 회사 소유의 밴을 이용하지만, 아직 내 급으로는 전용 밴을 두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매니저뿐 아니라 스타일리스트와 메이크업 담당자까지 배정한 것은, 지금 내가 누리는 인기로 봤을 때 특혜가 분명하다.
그랬기에 그런 특혜시비를 피하고자, 서류상으로는 진수의 팀이 아닌 김 실장 팀으로 되어 있으니, 결국 예나의 팀이란 말이 된다.
“그런데 자네 꼭 졸업한 후에 정치할 생각인가?”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불이 붙었을 때, 장작을 들이미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어서 하는 말일세.”
“예?”
“의도한 바였든 아니면 우연히 벌어진 일이었든지 간에, 이번에 또다시 자네 이름이 화제가 되질 않았나? 그러니 이렇게 화제가 되었을 때, 본격적으로 나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네. 자네가 졸업한 후에도, 이번 같은 기회가 다시 벌어진다는 보장도 없고.”
역시 관록은 무시하지 못하는 법이다.
김 의원께서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 생각으로 정치입문을 권했고, 나는 그런 김영범 의원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의원님 말씀처럼, 저도 그런 생각에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일단 절 도와줄 사람부터 모으려고요.”
“주변에 사람은 있는가?”
“딱히 있다고는 말씀드리기는 힘든 상황이지만, 앞으로 1년 동안 열심히 모아볼 생각입니다.”
나는 요 며칠 사이에 팀원들과 함께 고민하고 의논했던 내용을, 김영범 의원에게 차분히 설명했다.
“그렇지. 자네로서는 그게 최선의 방법이 될 수도 있겠구먼.”
“어차피 1년 후라도 이런 방법이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사람을 끌어들일 방법이 없을 것 같아서, 선택한 방법입니다.”
“사람을 구한다는 것이, 처음 몇 사람을 모으기 힘이 드는 법이지. 그러니 일단 몇이라도 모으시게. 그렇게 되면 금방 탄력이 붙게 될 테니까. 그런데 입당은 언제쯤 할 생각인가?”
“우선 기반을 좀 다져둔 후에, 입당할 생각입니다. 빨리 입당하는 것이 유리할지 막판에 입당해서 공천신청을 하는 것이 유리할지는, 계산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아서요.”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당과 지역위원회에 소속된 당원들이야, 그간 지역위원회 소속으로 당 활동을 열심히 한 사람을 선호할 것이다.
반면 나처럼 출마를 염두에 둔 사람이 있다면, 자칫 타초경사 하는 격이 될 수도 있다.
그동안 십 수 년 동안 치러진 선거에서 당선된 적이 없는 지역이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고 당선을 기대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이런 상황에 내가 입당한다면, 출마를 꿈꾸는 사람은 분명 나를 눈엣가시로 여길 것이다.
“한 배우.”
“예. 의원님.”
“정치는 명분싸움일세.”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정치는 명분싸움이라는 김영범 의원의, 말은 분명 맞는 말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그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짐작되지 않았다.
입당 시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명분이 어쩌고 하면, 내가 어떻게 김 의원의 지금 생각을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한 배우 자네가 입당 시기를 저울질하는 이유는, 충분히 짐작하겠네. 하지만 어느 당에 입당할까 하고 저울질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입당을 서두르는 것이 옳다는 것이 내 생각일세.”
“........”
“물론 자네 생각처럼 자네가 입당하면, 자넬 경계하면서 날을 세우는 당원들도 있겠지. 하지만 그들까지 모두 안고 간다고 하더라도, 선거에서 이길 확률은 희박하네. 우리당의 세가 우세한 지역이라면 몰라도 우리가 속한 PK나 PK 지역에서는, 우리당 지지자들을 모두 안고 간다고 하더라도 이기기엔 쉽지 않은 싸움일세. 그런데 당 내부의 반발을 걱정해서 먼저 움츠리고 들어간다면, 그런 자넬 보는 당원들의 생각은 어떻겠나?”
솔직히 김영범 의원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김 의원님 말씀이 백번 지당한 말씀이다.
당 내부의 당원들조차 설득하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지역주민의 선택을 받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난 한 배우 자네가 양산지역에서 활동하는 당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네. 우리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양산에서도 우리당 소속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있다는 그런 확신을 주게 만들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한 배우 자네란 말일세.”
깜빡 잊고 있었다.
내가 다른 후보들과는 다른 강점을 지닌 존재란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지역위원회 내에서 경쟁이 귀찮다는 생각에, 그동안 내가 지닌 강점조차 잊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었다.
당원 중에서는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만 유일한 대안이라 생각하는 당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당원은 소수이고, 후보가 누구든지 간에 우리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당원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런 당원들에게, 대중에게 인기가 있는 ‘배우 한강수’가 후보로 나서서 출마한다면, 그 자체로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김 의원께서는 그 점을 내게 지적하신 것이다.
“의원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래, 알아들으셨다니 다행일세. 아무리 지역 유권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지역에서 활동하는 당원들의 적극적인 지지가 없는 인기는 모래성을 쌓는 일일 뿐이라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지냈으면 하네.”
김영범 의원이 부산으로 내려와서, 낙선 후에 3선에 성공한 이유가 바로 이 점일 것이다.
우선 지역 당원들을 한마음으로 묶은 후에, 그 기반 위에서 지역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는 그것, 바로 그것이 김영범 의원이 이야기하는 지역 천착이라는 것이고, 또 3선을 가능하게 만든 힘이었을 것이다.
“서울에 도착하면, 제가 수업료를 톡톡히 내야겠습니다.”
“수업료라....... 아닐세. 난 자네와 같은 사람이 우리당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는 지역에서, 함께 싸워줄 수 있게 된 점만 생각해도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네. 뭔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자네가 아닌 내가 치러야지.”
조금은 심각할 수도 있는 내용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 안의 분위기는 훈훈했다.
아무래도 오늘 서울에 도착하면 김영범 의원님 부녀와 우리 식구들이, 거한 술자리라도 가져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오늘은 저희 집에서 주무시지요. 안줏거리는 시원찮지만, 간단하게 한잔하실 수 있는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아닐세. 그렇게 하는 것은 나중에 다시 기회가 있겠지.”
“이 시간에 영등포까지 가시려면 시간이 꽤 걸리지 않습니까. 방이 많으니 저희 집에서 주무시고 가셔도 됩니다.”
결국 지난번에는 예나와 내가 김 의원님 댁 신세를 졌는데, 오늘은 김 의원님 부녀가 내(?) 집에서 자고 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