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 혼자 먼저 종강하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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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 감독님께서 내게 제안하신 것이 하나 있었다.
중국을 비롯한 외국에서 마약이 밀반입되는 루트 중에서 가장 빈번하게 이용되는 곳이 부산이니, 사실감을 더하기 위해 부산 로케를 확정한 것이다.
그래서 이왕 부산에서 촬영하는 김에, 내가 다니는 대학인 B대학을 촬영지 중의 한 곳으로 이용하는 말이 나왔다.
“우리 학교 캠퍼스를 촬영현장으로 이용하겠다는 말인가?”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학교에서 촬영허가만 내주신다면 감독님께서는 그렇게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학교에서 찍을 부분이, 어떤 내용인데?”
“마약 사범들이 학교 캠퍼스 내에서 거래를 하는 순간을 덮쳐서, 일망타진하는 그 장면입니다.”
“그럼 거기에 자네도 나오나?”
“당연히 나오죠. 제가 우리 학교 재학생이라는 점 때문에, 감독님께서도 시나리오를 수정하시겠다고 하신 걸요.”
“그럼 지금 나하고 학장님 방으로 가보세.”
사실 촬영협조를 구하는 일에 내가 나설 일도 없고, 굳이 학과장 교수님이나 학장님을 통할 이유는 없다.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촬영지를 섭외하는 팀이 따로 있는 법이고, 괜찮은 장소가 있으면 관련 기관에 협조를 요청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럼에도 내가 학과장님께 이 일을 의논하는 식으로 말씀드린 이유는, 학과장님이나 학장님의 면을 세워드리기 위함이다.
제작사가 학교 측 의사를 확인하고 협조공문을 보내 촬영허가를 받는 것보다는, 이렇게 학과장님과 학장님을 거치면, 학교 내에서 학장님과 학과장님의 입지가 조금이나마 올라갈 수가 있으니까.
“설마 우리학교 재학생이, 마약사범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겠지?”
“설마요. 대학 캠퍼스가 외부인 출입이 자유롭지 않습니까. 그리고 우리학교 캠퍼스가 다른 사람들 눈을 피하기 쉬운 곳도 많고요. 그래서 혹시나 하고 황우 감독님께 여쭤봤었습니다.”
“그래, 우리학교 재학생이 마약범으로만 나오지 않는다면야.”
“이왕이면 강의실에서 수업을 하는 장면도, 하나 있었으면 하시던데요.”
“강의 장면을?”
“마약사범이 학교 캠퍼스에 숨어 지내면서 마약을 거래하는 장면이다 보니, 자연 형사도 남들 눈에 튀지 않게 도서관도 가고 강의도 받으면서 감시하다가, 마약을 거래하는 그 순간을 덮치는 것으로 되어 있거든요.”
“강의실이야 얼마든지 사용해도 되네. 자네도 알다시피 항상 강의실 한두 군데는 비어 있으니까.”
“그게 아니라 이왕이면 자연스러운 장면을 위해서, 교수님과 학생들이 카메오 형태로 출연하는 그런 그림을 원하고 있습니다.”
내 말에 학장님보다 학과장님께서 더 좋아하시는 표정이었다.
아무리 짧은 장면이라고 하지만 강의실 장면이 영화 속에 나오면, 자연스럽게 강의를 진행하는 교수님의 모습도 나올 것이다.
그러면 우리 정외과의 수업장면이 나올 확률이 많아지고, 학과장인 자신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을 차지할 가능성이 클 것이니 말이다.
“자네 말대로라면, 우리학교 교수와 재학생이 영화에 출연한다는 말인가?”
“그게 가능하면 그림이 가장 좋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출연료가......”
“출연료도 주나?”
“그게 출연료가 아닌 상품권 정도가 될 겁니다. 보통 카메오 출연 같은 경우는, 예산에 들어가 있지 않은 가외 비용이어서요.”
“출연료가 무슨 문제인가. 그런 문제는 걱정하지 말고 추진해보게.”
학과장님도 만세를 부르고 계시겠지만, 나도 속으로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어느 교수님이 출연할 교수로 선택될 것인지는 학교에서 알아서 할 일이지만, 나는 그만큼 학교홍보에 신경을 써주는 학생의 이미지로 교수님들 사이에서 인식되게 될 것이니 말이다.
“한 배우님, 또 학교에서 지원해드릴 것은 없나요?”
“통제는 현장 지원팀이 하게 될 것이니, 크게 문제는 없을 겁니다. 대신 제가 대학방송국에, 미리내골 쪽에 있는 스피커에만 따로 방송을 틀어달라고 부탁할 예정인데, 그것은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겠지요?”
“학교 방송국 말입니까? 그건 왜요?”
“마약거래 시점이 점심시간쯤이거든요. 그런데 우리 대학방송국에서도 점심시간에 방송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프닝 정도를 노출시키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
당연하게도 홍보팀장님은, 학장님이나 학과장님보다 훨씬 적극적이셨다.
홍보팀장님 말씀이 아니어도, 나도 이왕이면 우리 학교에서 좀 더 괜찮은 그림을 뽑아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생색을 내기 위해서 뿐 아니라 학교 홍보를 위해서, 홍보팀장님께 새로운 제안을 한 것이다.
학생 중에서 외모가 준수한 몇을 섭외할 생각이라는 점과, 대학방송국(PUBS)의 오프닝 부분을 영화의 한 장면에 삽입시키겠다고 이야기 한 것이다.
물론 이 제안을 황우 감독께서 받아들이게 될지는 미지수다.
학교 내에서 범인을 덮쳐 체포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괜찮은 그림이 나올 것이니, 황우 감독님께서 받아들이실 확률이 높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내 말에 홍보팀장은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흔쾌히 동의했다.
팀장님은 바로 결재서류를 올리겠다고 난리를 쳤지만, 내가 황우 감독님과 이견을 조율한 후 제작사서 정식으로 협조 공문을 보낼 것이란 말로 정리했다.
“저희 방송국 점심시간 방송 오프닝을 따시겠다고요?”
“딴다는 것 보다는 자연스럽게 노출시키겠다는 말이죠. 그런데 촬영시간이 정확하게 오프닝이 나오는 시간이 아닐 수가 있어서, 혹시 미리내골 쪽에만 방송이 나오게 할 수 있을까 해서요.”
“당연하죠.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런데 형.”
“예?”
홍보팀을 나와서 문창회관에 있는 대학방송국을 찾아가 실무국장 학생과 만났다.
그런데 처음 본 실무국장인 친구 입에서, 뜬금없이 형이란 소리가 튀어 나왔다.
나는 이 친구가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형이란 소리까지 하나 싶어서, 이 친구 입에서 다음 말이 나오길 기다렸다.
“우리 PUBS에서 야외특집방송도 하거든요. 혹시 그날 미리내골 거기서 야외특집방송을 진행하는 것으로 하면 안 될까요?”
“야외특집방송이라니요. 그건 또 무슨 이야깁니까?”
“신입생을 모집할 때나 축제 때는, 캠퍼스 한 곳을 정해서 매년 공개방송을 합니다. 그러니 공개방송을 진행하는 것은 별 무리가 없으니까, 그때....... 그리고 그렇게 하면 화면도 풍성할 수도 있고요.”
무슨 말인지 짐작되는 일이다.
이 친구 역시 아무리 대학방송이라고 하지만 방송을 하는 친구이다가 보니, 이번 기회를 욕심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욕심을 나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야외방송이라고 하면 방청객도 있어야 하잖아요. 방청객이 적으면 오히려 썰렁해서 화면이 죽을 수도 있는데.”
“방청객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미리내골 전부를 꽉 채울 수도 있고, 현장 통제도 저희가 거들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우선 그 부분에 관해서는 감독님께 말씀드려볼게요.”
원래 성격이 적극적인지 아니면 욕심 때문에 적극적인 자세가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촬영하는 동안 현장 통제를 돕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실무국장이란 친구 말대로라면 제작사로서도 환영할 일이고, 제작비를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렇게 이야기를 끝내고, 실무국장이란 친구의 연락처를 받은 후에 대학방송을 나섰다.
이젠 영화동아리 ‘장산곶매’를 찾아가서, 은교와 다른 회원들을 만나야 할 시간이다.
“그 장면 우리가 할게요.”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우리가 방송국 애들 대신에, 거기서 영화를 찍어보겠다고요. picture in picture 그림 좋잖아요.”
화면을 장식할 예쁜 애들을 섭외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은교를 찾아왔다.
그런데 은교는 대학방송국 실무국장하고 했던 이야기를 듣더니, 그 장면을 대학방송국이 아닌 ‘장산곶매’에 달라고 난리를 친다.
물론 황우 감독님이 결정하실 문제지만, 야외공개방송이나 ‘장산곶매’의 촬영 장면을 스크린 속으로 밀어 넣는 것도, 그다지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마약사범과 마약전담 형사들의 살 떨리는 대치과정에서, 그것과는 전혀 상반되는 젊은 청춘들의 풋풋한 모습이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그것도, 관객들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만약 제대로 촬영이 진행되고 또 그에 대한 반응이 좋게 나타난다면, 황우 감독님도 그리고 내가 재학하고 있는 B대학으로서도, 전혀 손해가 날 일이 없는 서로가 Win-Win할 수 있는 그런 것이 될 것이다.
“오빠.”
“왜?”
“정말 꼭 해줘야 해요.”
“뭘?”
“방송국 애들 대신에 우리 ‘장산곶매’를 넣어주는 것이요.”
“그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감독님 영역이야. 나는 감독님 의견을 대신 전하고 의중을 타진하는, 중간 전달자 역할일 뿐이고.”
내가 가부간 결정을 내리지 않자, 은교를 비롯한 ‘장산곶매’ 여자애들은 입을 삐죽거렸지만, 그렇다고 감독도 아닌 내가 무언가 확답을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이건은 처음부터 예정된 장면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감독님께서 강의실 장면을 삽입하는 것이 어떨까 하시는 말에, 그 문제를 조율하러 왔다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일 뿐이다.
그리고 그 생각을 구체화하기 전에, 우선 그게 가능한지 아닌지를 타진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런데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도 없는데, 장산곶매와 대학방송국에서 서로 하겠다고 나서니, 이 문제를 어떻게 조율해야 할지 걱정이다.
‘김 선배, 10월에 봅시다.’
과제물 제출을 위해 교수님 방을 돌면서도, 김현서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물론 꼭 봐야할 이유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동안 제법 가깝게 지낸 사이인데, 아무 말도 없이 훌쩍 떠나면 서운해 할 것도 같아서 톡을 보냈다.
“형, 무슨 말이야?”
“응. 크랭크인 날짜가 잡혀서, 오늘 밤에 서울로 올라가야 하거든.”
“형은 몇 시에 가는데?”
“집에 가서 저녁밥 먹고 출발할 거야. 왜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그게 아니라 나도 아빠하고, 오늘 저녁 비행기로 서울에 갈 거거든.”
“비행기로?”
“아빠가 서울까지 운전해서 가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사적인 일에 비서님에게 운전을 시킬 수도 없으니까.”
톡을 보내자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그런데 김현서 또한 부친인 김 의원과 함께, 오늘 서울에 올라간다는 말이었다.
물론 혼자 서울에 올라간다면 의심스러운 일이지만, 부친인 김 의원과 함께 간다고 하니 지어낸 말은 아닐 것이다.
생각해보니 김영범 의원 모녀를, 우리 차에 태우고 가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서울에서 촬영현장을 오가기 위해서 밴이 필요했고 나와 예나가 같이 사용할 것이기에, 예나 전용 밴인 14인승 밴을 끌고 올라갈 것이다.
그러니 우리 밴에 두 사람을 더 태운다고 해도, 좌석 여유는 충분했다.
“비행기 티켓 취소하고, 우리 차로 같이 올라갈래?”
“형 차로?”
“응, 예나 밴을 가지고 올라가기로 해서, 좌석에는 여유가 많거든.”
“정말? 잠시만! 아빠한테 물어보고.”
그러더니 현서는 휴대전화를 들고 어디론가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고, 잠시 후 그렇게 하겠다는 잔뜩 들뜬 현서 목소리가 휴대전화를 통해 들려왔다.
그렇게 내 두 번째 대학생활의 1학기가 다른 친구들보다는 조금 빨리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