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나를 알리자. (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오늘은 모두 여기서 자고 가.”
“됐어. 누나들을 모텔에서 재우긴 그러니까 상호 방에서 누나들보고 자라고 하고, 우린 모텔에 가서 자면 돼.”
“쓸데없는 소리 그만두고 올라가자. 어차피 예나도 없으니 당분간은 나도 혼자 있어야 하잖아.”
“그래도 신혼부부 사는 집인데, 우리가 어떻게 그래.”
“신혼부부 사는 집이라도 손님방은 있거든. 그리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아까 하던 이야기는 마무리 지어야 하잖아.”
진수와 스태프 누나들이 불편해했지만, 나는 등을 떠밀다시피 해서 집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스타 배우의 집을 처음 구경해본다는 누나 둘과 미선인, 집안이 궁금했었는지 이곳저곳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궁금함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김 대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나들도 구경 다 했으면 이리로 와서 앉아 봐요.”
“왜?”
“왜 누나들까지 양산으로 내려오게 되었는지는 잘 알죠?”
“당연히 알지. 강수 네가 정치를 하기로 해서, 이미지 관리 때문에 온 거잖아.”
비공식적인 것이긴 하지만 그 이유로, 회사에서는 이들을 양산으로 내려 보낸 것이 맞았다.
하지만 나는 이들에게, 내 개인적인 메이크업과 스타일리스트 역할로 국한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홍보 담당자인 김영수 대리와 미선이 역시 마찬가지다.
“뭐? 우리보고 강의를 담당하라고? 내가 어떻게 강의를 해?”
“어차피 회사에서도 신입이 들어왔을 때, 누나들이 신입을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쳐줬잖아요.”
“그거야 1:1로 데리고 다녔으니까 그렇지.”
“마찬가지예요. 그냥 1주일에 한 시간만 시간을 내서 해줘요.”
처음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동아리 구성을 논의하면서 전용 공간을 만들기로 했고, 그 공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이용할 방법을 찾다가 내린 결론이었다.
단순한 동아리 형태의 모임만으로는, 찾아오는 회원들에게 소속감을 크게 기대할 수가 없다.
그래서 회원들이 정기적으로 출석하게 만들 방법을 고민했고, 그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내린 결론이 바로 이것이었다.
누나 둘을 비롯해서 미선이 그리고 김 대리가 가진 능력을 이용해보자는 것이었다.
“와~ 강수가 우릴 철저하게 써먹으려고 하네?”
“놀면 뭐해요. 일단 그렇게 해주시면 강사료는 제가 드릴게요.”
“얼마나 줄 건데? 나 비싸다는 것 알지?”
농담이겠지만 나는 미정이 누나와 지민이 누나에게, 이 일을 부탁하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강사료는 챙겨줄 생각이었다.
금액이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대가를 챙겨줬을 때와 그냥 공으로 부탁했을 때, 그때 나타나는 결과물은 확실히 다르기 때문이다.
진수와 미선인 예전부터 가까이 지낸 친구였지만, 누나 둘은 단순히 업무로 만난 사이다
그러니 아무리 가족처럼 가깝게 지낸다고 하더라도, 한계는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영화제작 동아리 회원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화장법이나 옷 입는 걸 가르쳐주자는 말이네?”
“맞아요. 요즘은 화장품 회사에서, 여고생들을 대상으로 학교까지 찾아가서 기초화장법을 알려주고 하잖아요. 일반인 대상으로 기초화장에 대해 강습을 하면 젊은 아가씨들이 많이 찾아올 것이고, 나중 그 사람들을 써먹진 못해도 우호세력으로 확보할 수는 있잖아요.”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재료비나 그런 걸 생각하면 제법 지출이 많을 텐데?”
물론 공짜로 강습을 진행하진 않을 생각이다.
그 이유는 돈이 나가는 것 때문이 아니라, 나중에 공직선거법상 기부행위 제한에 저촉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수강하는 사람들에게 강습료는, 형식적인 금액만 강습료를 받을 생각이고,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하여 교습소 등록을 할 생각이다.
또 미정 누나가 걱정하는 재료비 문제는, 화장품 회사에 협찬을 요청하면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니, 어느새 밤이 이슥해졌다.
“형, 왔어요.”
“응. 그런데 장훈이 너 표정이 왜 그래?”
“별거 아니에요. 그냥 하는 짓거리들이 짜증이 나서요.”
“누가? 왜?”
“총학하고 J당 부산시당 조직국장이라는 인간이, 번갈아 고소를 취하해달라고 난리를 쳐서요.”
“그래서?”
“제가 미쳤어요. 그런 양아치 새끼를 그냥 놔두게.”
장훈이의 태도는 강경했다.
평소부터 J 당 지회장이란 놈을 양아치로 알고 있었으니, 장훈이로선 이번 기회가 그 양아치를 몰아붙일 기회다.
거기에다 박 변호사님께서 이번 사건을 전담하시기로 했으니, 장훈인 합의서에 도장만 찍어주지 않으면 귀찮아질 일도 없다.
“강수야, 아예 땅을 사서, 건물을 지어버리는 것은 어떨까?”
“갑자기 그건 무슨 말이야?”
오늘 들어야 할 수업을 모두 마치고 사회대 건물을 나서니, 진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다짜고짜 땅을 사서 건물을 짓자고 이야기를 한다.
“원동 넘어가는 쪽으로 좀 들어가니까, 위치가 괜찮은 곳이 한군데 있더라고. 거기에 2층 건물을 지어서 2층엔 우리가 살고, 1층은 강의실로 사용해도 괜찮을 것 같아서.”
“그게 5억으로 가능해?”
“대출은 좀 끼고 지어야지.”
“그런데 우리 식구야 거기 산다고 해도, 수강생은 교통이 불편하지 않겠어?”
“거기 버스 다녀. 물론 버스에 내려서 5분 정도는 걸어야 하지만.”
버스가 다니고 버스에서 내려서 5분 정도 걷는 것이라면, 그리 나쁜 입지는 아니란 생각이다.
“지금 가볼 수 있어?”
“당연하지.”
물금 외곽인 것은 맞지만, 진수가 이야기하는 것만큼 물금에서 많이 들어간 곳은 아니었다.
문제가 된다면 위치가 그 마을의 가장 외곽이어서, 밤에는 조금 무섭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다.
“이 땅을 그 돈으로 살 수가 있다고?”
“응, 지금 경매로 넘어가기 직전인 모양이야. 그래서 어차피 경매까지 갈 바에야, 경매로 넘어가기 전에 처분하는 것이 낫다 싶어서 내놓았다네.”
“등기부 등본에는 문제가 없고?”
“그건 아까 박 변호사님이 확인하셨어.”
변호사님이 확인하시고 문제가 없다고 하셨다면, 굳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선거를 생각하면 시내 중심에 건물을 얻어야겠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세력을 형성하고 키워가기에는 오히려 나을 것 같았다.
나중 선거를 치를 때는, 시내 중심에 다시 사무실을 하나 얻어서 사용해도 될 것이고.
이곳도 몇 년 지나지 않으면 분명 개발될 것이니, 장기적으로는 투자 효과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중에 이곳에서 시내 중심으로 사무실을 옮긴다고 하더라도, 손해가 날 일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내가 이곳 양산에서 터를 잡고 또 정치인으로 데뷔하기 위한 준비는,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예, 감독님.”
“다음 주에 크랭크인 들어가는 것은 알고 있지?”
“예. 금요일 밤에 올라갈 예정입니다.”
“그래, 월요일 아침에 보자고.”
드디어 ‘도시의 하이에나’ 크랭크인 날이 되었다.
나는 그동안 잠을 설쳐가면서 작성한 리포트들을, 하나하나 프린트해서 가방에 챙겨 넣었다.
“한 배우가 내방에 웬일이야?”
“리포트 제출하려고요.”
“벌써 다 했어?”
“예. 월요일에 크랭크인에 들어가게 되어서요.”
“영화 제목은 뭔데?”
“‘도시의 하이에나’라고, 황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으신 작품입니다.”
“액션이야?”
“맞습니다. 마약반 형사의 활약상을 그린 작품입니다.”
“설마 우리 한 배우가, 마약사범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겠지?”
“마약반 형사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 나중에 개봉하면 나도 꼭 보러 가겠네. 그런데 이건 어디서 본 내용인가?”
“어느 부분 말씀이십니까?”
교수님께서 지적하신 부분은 책에서 참고한 것이 아니라, 내 이전의 삶에서 선거를 치르면서 확인하고 느낀 부분을 기술한 부분이었다.
“한 배우 자네가 지적한 대로라면, 선거운동비용 보전에 허점이 엄청나다는 말인데, 이런 부분을 한 배우가 어떻게 알고 있어?”
“예전에 선거운동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거기서 선거사무회계를 담당한 분하고 친하게 지내게 되었는데, 그때 회계보고서 작성을 거들게 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영수증을 보면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가 했던 것과는 많이 달라서요.”
“어떻게?”
“제가 J 대 연극영화과에 다닐 때, 과학생장을 했었거든요. 그때 현수막 납품단가와, 선거 때의 현수막 납품단가가 턱도 없이 차이가 나서, 나중에 따로 조사했었습니다.”
“턱도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
“예. 현수막 단가가 보통 ㎡당 4천 원 정도인데, 선거 때 거리에 걸리는 현수막의 보전비용이 자그마치 13만 원이더라고요. 물론 현수막 설치와 수거비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지만, 제곱 m당 만 원이 넘어갈 수는 없으니까요.”
“그게 정말인가?”
나는 내가 직접 조사를 하고 확인을 했던 일이었기에, 자신 있게 사실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내가 쓴 리포트 하나로 우리나라 선거판의 풍토가 바뀔 수는 없을 것이다.
11m 현수막 제작비용이라고 해봐야 4~5만 원정도고, 설치와 수거비용 또한 장당 인건비가 만 원 정도다.
그러니 장당 5~6만 원이면 충분하고 남는데, 선관위에서는 그 배가 넘는 13만 원을 후보에게 지급하고 있었다.
거기에다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곳에 현수막을 걸 때에 동원되는 사다리차 비용은, 따로 청구하게 되어 있었다.
이 리포트에서 나는, 국민 세금으로 치러지는 국회의원과 지방의회의원 선거에서, 헛되이 빠져나가는 국민의 혈세를 줄이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물론 내가 이렇게 리포트 내용에 그런 사실을 적시해 두었더라도, 당장 그것이 개선될 일은 전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근거를 기반으로 기록해두고 또 그것이 조금씩 바깥으로 알려지게 된다면, 언젠가 우리 선거풍토에도 분명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고, 또 언젠가 누군가가 앞장서서 국민 세금을 도둑질하는 도둑들을 잡아내는 사람도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교수님 방을 일일이 돌면서 리포트 제출을 마쳤다.
“어~ 어서와. 한 배우”
“리포트 제출하러 왔습니다.”
“그래, 다른 교수님들께는 제출했고?”
“예. 학과장님께 제출할 리포트가 끝입니다.”
“그래, 그럼 내일 서울로 올라가나?”
“오늘밤에 출발할 예정입니다. 서울 집에 여동생이 혼자 있거든요. 여동생 얼굴 본지도 오래 되었고 해서요.”
“그렇구먼. 2학기에 등록은 할 거지?”
“당연하죠. 촬영 도중 시간을 빼서, 첫 수업을 들을 생각입니다.”
“됐어. 어차피 지금 크랭크인에 들어가면, 9월 말이면 촬영을 끝낼 수가 있다면서? 그럼 10월부터 출석해도 충분하네. 물론 그렇게 하려면 2학기에도 중간고사 전까지 리포트는 필수겠지만.”
“그런데 하나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학과장님을 마지막으로 찾아온 이유가, 바로 지금 할 이야기를 드리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