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 나를 알리자.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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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이 계속되었지만 진수는 여전히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 떨떠름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네 말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한다면 그다지 효율이 있는 일은 아니잖아? 무슨 지역사회에 봉사하려는 것도 아니고.”
“빙고!”
“빙고는 무슨. 어지간히도 좋겠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이번 일에 대해서 너처럼 생각하리라는 것이 정답이라는 말이지. 솔직히 실제로 내가 의도한 것은, 그 부분이 아니었거든.”
“뭐야? 그럼 네가 의도하는 것은 어떤 것인데?”
“진수 네가 생각하기에, 선거를 치르는 데 꼭 필요한 것이 뭐가 있어?”
“우선 공보물이 있어야 하고, 또 선거운동을 해줄 사람 정도?”
사실 선거를 크게 보자면, 진수가 이야기한 저 두 가지만 있으면 충분하다.
선거공보물이라는 것은 공약을 만들어 그것을 유권자들의 눈에 쉽게 들어오게 하여 읽게 하고, 또 그 공약을 보고 유권자들이 후보자를 믿게 만드는 작업이다.
하지만 유권자들 대부분은, 더는 그 선거공보물이라는 것을 제대로 보지도 않는다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까지 선거 때만 되면, 후보들은 자기를 당선시켜주면 지역과 유권자를 위해서 무엇이든 할 것이라고 큰 소리 친다.
그렇지만 그렇게 큰소리치던 인간 대부분은, 선거가 끝나면 자기가 언제 그런 소리를 했느냐는 식으로, 안면을 싹 바꾼다.
그리고 유권자인 시민은, 그들이 그렇게 할 것이란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다.
당선된 놈은 의정활동을 핑계로 서울로 이사 가고, 떨어진 놈은 낙선을 핑계로 다음 선거 때까지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 것이 후보란 족속들이다.
그런 사실을 나도 잘 알고 있기에, 선거공보에 관련해서는 딱히 신경을 쓰지 않을 생각이다.
회사에서 홍보기획사를 하나 소개받아 그들에게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한 후, 그 기획사 자체의 인력으로 선거공보 제작을 아예 맡길 생각이다.
한마디로 각 가정에 배포되는 선거공보는 보기에만 좋고, 유권자들에게 내 이름 석 자만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보름이란 기간 동안 유권자들의 눈에 보일 선거사무원, 그러니까 흔히 하는 말로 선거운동원은 정말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우선 지역에서 활동하는 당원들이 불만을 품지 않을 정도로, 선거 때만 되면 공돈이 생긴다는 마음으로 선거운동 대열에 뛰어드는, 전문 선거꾼들의 배를 채워줘야 한다.
많은 후보가 이 부분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선거가 끝난 후에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피소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선거 전까지, 지역의 당원 문제를 진수에게 맡겨둘 생각이다.
그리고 선거가 임박해서 그 일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다는 판단이 서면, 일부 표를 잃는 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역 당원들을 아예 선거사무원에서 배제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우선 정말 충성도 높은 선거사무원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서 내가 영화제작 동아리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솔직히 난 선거공보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그게 말이나 돼. 유권자들이 한강수가 출마했다는 것을 알게 하려면, 명함을 돌리는 하고 선거공보밖에 없잖아.”
“명함은 심히 돌려야지. 그런데 진수 네가 생각하기에, 선거공보를 대로 읽어보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 같아?”
“다 읽는 것 아니야?”
“넌?”
“나야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니까.”
“네가 다라고 이야기했던 그 사람들도, 대부분 너하고 같은 생각일 거다. 그리고 하나 더.”
“하나 더 라니?”
실제 지금 하려는 말이, 훨씬 더 중요한 말이다.
“선거 때 공보가, 몇 권이나 오는지는 알아?”
“몇 장이라니?”
“일단 후보들 개개인의 공보물이 모두 들어 있으니까, 최소 그것만 해도 서너 권이 되지. 그리고 각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들도 그 정도 숫자잖아. 그걸 누가 일일이 다 읽고 있겠어?”
국회의원총선거든 아니면 전국동시 지방선거이든지 간에, 선거 때가 되면 이름조차 처음 듣는 정당에서까지 후보를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니 내가 진수에게는 서너 권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그 숫자는 최소로 잡은 것이고, 현실은 최소 열 명은 충분히 넘는 후보자의 공보물이 한꺼번에 보내진다.
그러니 대부분 공보물은 귀찮다는 생각에 바로 쓰레기통에 직행하는 것이 보통이고, 정말 선거에 관심이 많은 유권자 중 일부만 그 선거공보 중에서 눈에 확 뛰는 한둘 정도를 확인한다.
그리고 그런 현상은, 선거운동 기간 보름 동안에 매일 거리에서 나눠주는 명함 역시 마찬가지다.
출퇴근 시간에 전철이나 버스에서 내리면서부터 받는 명함이 한꺼번에 수십 장이니, 그걸 자세히 읽어볼 겨를조차 없이 휴지통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나는, 다른 후보들에 비해 훨씬 큰 강점을 지니고 있다.
분명 이 양산에도 나를 알고 있는 유권자들이 있을 것이고, 평소에는 편하게 접근하지 못하던 유권자들도 선거 때가 되면 다가와서 악수를 하고, 또 사진을 같이 찍기를 원하는 유권자는 분명히 있을 것이니까 말이다.
“그래, 그건 그렇다고 쳐. 그런데 아까부터 내가 물어봤던, 영화제작 동아리와 선거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아무리 아마추어라고 해도, 배우를 하려는 아가씨들이 예쁠까 아닐까?”
“지랄, 그걸 질문이라고 해? 아마추어니까 당연히 예쁜 애들만 오겠지. 전문적인 극단이나 기획사라면 독특한 캐릭터라고 하더라도 써먹을 곳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지원하겠지만, 아마추어 동호회에 그런 사람이 오기라도 하겠어?”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나는 내년에 내가 출마한다면, 그렇게 찾아와서 같이 활동하던 친구들을 선거사무원으로 쓸 생각이야. 그럼 그것만으로도 일석이조잖아.”
“일석이조라니? 그건 왜?”
답답한 마음에, 운전을 하고 있는 놈의 뒤통수라도 후려갈기고 싶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선거사무실에 유권자 중 누군가가 방문하더라도, 50대 아주머니가 커피를 내오는 것과 20대 초반의 파릇파릇하면서도 예쁜 아가씨가, 커피를 갖다 주는 것 중에서 어떤 쪽을 선호하겠는가?
그리고 유세 차량 앞에서 율동을 하는 것도 그렇다.
30대 40대 아주머니들이 율동을 하는 팀과, 늘씬한 몸매의 예쁜 아가씨가 율동을 하는 팀, 두 팀이 있다면 유권자의 시선에는 확실한 차이를 생긴다.
그러니 지역당원들을 선거사무원으로 위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탈하는 표는, 저 방법으로도 충분히 만회하고 남음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선거사무원으로 위촉하지 못한 지역당원 중에서 진짜 믿을만한 사람이란 확신이 들면, 그 사람에게는 따로 활동비를 주고 지역에서 비공식적으로 홍보활동을 하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새끼, 짱구 많이 굴렸나 보네.”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나만 가질 수 있는 무기가 있는데, 그걸 활용하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멍청한 일이잖아.”
“그래, 니 똥 굵다.”
그리고 배우지망생뿐 아니라 스태프들도 쓸 곳은 많다.
스태프라고 해봐야 대부분 기계를 만지는 친구들일 것이고, 또 요즘 젊은 친구들 대부분은 개인적으로 SNS 활동을 한다.
그리고 그 친구들 중에는, 휴대전화의 애플리케이션만을 이용해서 동영상 제작까지 가능한 친구도 많다.
이런 친구들이 콘텐츠를 양산해 내는 생산 공장이고, 영화에 관심을 가진 친구들이라면 그런 생산 공장 중에서도 A급의 공장장이라고 할 수가 있다.
결국 영화제작 동아리를 만들고 거기에 청년들이 모여들게 되면, 그 친구들은 배우지망생이든 감독지망생이든 모두 내 선거에 써먹을 수 있는, 유용한 자원이 된다는 뜻이다.
그것도 아주 능력이 우수한 그런 인적자원이.......
“정말 그렇게까지 될까?”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야지.”
“어떻게?”
“우선 감독이 되겠다는 친구들에게는 노력하면 감독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고, 배우를 꿈꾸는 친구들에게는 배우가 될 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 거지.”
“그건 사기잖아.”
“뜬금없이 사기는 무슨 사기?”
“입봉을 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몇 년씩이나 조감독이란 이름을 달고 감독 뒤치다꺼리나 하면서도 결국 메가폰을 잡아보지도 못한 채, 이 바닥을 뜨는 사람이 얼마야? 그런데 이런 소도시에서 전업도 아닌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감독으로 입봉 한다고? 그걸 믿는 놈이 미친놈이고,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놈이 사기꾼이지.”
“지랄한다. 그럼 은교 걔 경우는 뭔데?”
솔직히 까놓고 이야기하면, 사기라는 진수 말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상대를 속이려면 우리 편부터 속여야 한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영화제작동아리의 실무를 담당할 진수가 이렇게 회의적인 생각을 하고 있으면 될 일도 안 될 것이기에, 진수에게조차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장산곶매’의 은교처럼, 전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툭 튀어나온 송곳이 있을 수도 있다.
은교는 지난 그 작품 이후로 이미 심심찮게 단편영화에 투자하겠다고 연락이 오고 있고, 지금처럼 계속 노력한다면, 조만간 상업영화에서 메가폰을 잡을 기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니까.
양산에서 운영하게 될 영화제작동아리의 구성원이 비록 아마추어들이기는 해도, 최대한 괜찮은 감독님을 비롯한 영화관계자들에게 지도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자극받아 본격적으로 영화인의 길을 걷기로 한 사람이 있다면, 그 길이 비록 험난한 길이 되긴 하겠지만, 그 사람에게 그 길로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지 거기까지는 알려줄 생각이었다.
“아무튼 네 말대로 한다고 치자. 그런다고 그 사람들이 네 선거를 열심히 도와줄까?”
“중간마다 세뇌작업을 해야지. 그리고 나도 일대일로 친한 척도 하고. 그럼 인간적인 면에서라도 도와줄 사람은 분명히 생기겠지.”
뭐 처음 사람을 모으기가 어렵지, 일단 모이게 하고 난 후에는 크게 걱정할 것도 어려울 것도 없다.
내가 현업에 있는 배우란 사실은 모두 알 것이고, 또 내가 나보다 훨씬 유명한 예나가 나와 결혼해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에게 접근해서 그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처음 마음을 열기가 어려운 법이지 일단 마음을 열면, 아예 둑이 터진 저수지의 물과 비슷하다.
그러니 내가 그들을 인간적으로 대하면 그들 역시 나를 형이나 오빠처럼 대할 것이고, 그런 관계에서 내가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그들 역시 나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인간에 대해 최소 그 정도만큼은 믿고 싶었다.
그렇게 떠드는 사이에, 어느새 진수가 운전하는 차는 양산 IC로 접어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