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 나를 알리자.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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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나도 그냥 양산서 살면 안 될까?”
“졸업이 몇 달이나 남았다고. 어차피 대학 가면 다시 올라와야 하는데, 뭐하려고 왔다 갔다 해.”
“그래도 이제 혼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주말마다 내가 올라오든지, 아니면 새언니가 올라오든지 할게.”
입시를 목전에 둔 것이 아니라면 지수도 양산으로 데리고 내려가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괜히 학교를 옮겨 다니다가 입시에 지장이 생기기라도 하면 그보다 큰일은 없을 것이고, 자칫하면 지수가 앞으로 살아갈 삶에 어떤 식으로 지장이 생기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자기야.”
“응”
“내가 아가씨랑 서울에서 지낼까?”
“불면증은 어떻게 하고?”
“아가씨랑 한집에 있으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어차피 크랭크인 들어가게 되면, 당신이나 나는 당분간 서울에서 살아야 하잖아.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러니까 그러지. 어차피 자기도 조만간 서울에 올라와야 하잖아?”
“그럼 어쩌자고?”
“언니들하고 진수 씨 그리고 김영수 대리만 데리고 가고, 나는 그냥 여기서 아가씨랑 지냈으면 싶어.”
이게 웬 생이별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떨어져 지낼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겠지만, 결혼하고 얼마나 됐다고 벌써 서울과 양산에 떨어져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과, 수험생인 지수의 정신적인 안정을 놓고 갈등이 생긴다.
“그건 별로 안 내킨다.”
“그냥 자기가 주말에 서울에 올라오면 되잖아. 금요일 강의 마치고 바로 올라왔다가, 월요일 새벽에 양산으로 내려가면......”
“나 보고 싶지 않겠어? 난 우리 색시 보고 싶어서 잠도 못 잘 것 같은데.”
“치! 그럼 자기가 전화로 나 재워주면 되지.”
결국 예나가 지수와 함께, 서울에 남아 있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제수씨 한 사람 빠졌는데, 차가 텅 비어버린 느낌이네.”
“쓸데없는 소리 그만두고, 양산에 도착하면 우선 누나들하고 너하고 애들 살 집부터 찾아봐.”
“흔한 게 원룸인데 걱정도 팔자다.”
“원룸은 불편한 게 많잖아. 그냥 아파트나 단독주택으로 찾아봐.”
“아예 집을 사자고?”
“예나가 그렇게 하라고 하더라. 어차피 하루 이틀 살 것도 아니고, 내가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최소 5년은 양산에서 살아야 하잖아.”
그러면서 나는 예나가 나에게 준, 가방 두 개를 진수에게 전했다.
“이건 뭔데?”
“이 돈으로 집을 구하고 사무실 작은 것을 하나 구해봐. 나머진 생활비로 쓰고.”
“그러니까 이 돈이 어디서 나온 거냐고? 네가 집을 살만한 돈을 벌어둔 것은 없잖아.”
“예나가 주더라.”
“제수씨가?”
“그럼 내가 어디서 집을 살 돈이 나오겠어. 아파트 사느라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다 끌어 모았는데.”
“제수씨도 마음 단단히 먹은 모양이네.”
“참, 집을 살 때 명의는 진수 네 명의로 하고. 사무실은 네 명의든 아니면 상호 명의든 알아서 하고.”
“뭐?”
“너도 생각해 봐라. 그동안 아무리 예나가 돈을 많이 벌어뒀다고 하더라도, 서울에도 집이 있고 양산에도 이미 아파트가 한 채 있잖아. 그런데 아파트든 단독주택이든 한 채가 더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바로 투기라고 하지.”
“양산 촌구석에서 투기는 무슨.”
솔직히 지금 나는 빈털터리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이다.
물론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재산이야 그대로 남아 있기는 하자.
하지만 그것은 정말 더는 도망갈 구멍이 없을 정도의 다급할 순간이 아니면, 아예 손을 댈 생각이 없었고, 그 생각은 내가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하기로 하면서도 당분간은 혼자서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언제 챙겨둔 것인지 몰라도, 예나가 현금이 든 가방 두 개를 내게 주면서 당분간 그걸 쓰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게 얼만데 이렇게 무거워?”
“하나는 5억, 나머지 하나는 3억.”
“뭐? 8억이라고?”
“응.”
“미쳤어?”
“집을 구하고 사무실 유지하고 그리고 다섯 사람이 당분간 살아가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던데.”
“그럼 차라리 통장에 넣어서 주지 하필이면 현금이야?”
“일부는 네 통장에 넣어서 써도 돼. 하지만 앞으로는 가능한 한 흔적이 남지 않게, 현금으로 사용하도록 해.”
“왜?”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워낙 네트워크가 잘 되어 있는 나라이다 보니, 조금만 신경을 늦추면 그 사람의 행적이 드러나는 것은 순간이다.
휴대전화의 위치정보, 차에 설치된 내비게이션으로 움직인 동선, 그리고 아무 생각도 없이 식당이나 편의점을 이용하면서 사용한 카드로, 그 사람이 언제 어디에서 누굴 만났는지까지 추적이 가능한 나라가, 바로 이 대한민국이란 나라다.
거기에다 교통 상황을 체크하는 카메라, 또 인도에서는 골목 곳곳에 설치된 보안 카메라와 가게 곳곳에 설치된 상점들의 폐쇄회로 카메라를 더하면, 한 개인의 사생활은 여지없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랬기에 정치를 하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정치생명을 한 방에 날릴 수 있는 법이 바로 정치자금법이고, 가장 흔하게 당하는 것이 기부행위와 불법자금 수수다.
내가 진수를 사무국장으로 앉히겠다고 생각한 이유 중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점이다.
내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진수고, 그 믿음 덕분에 안심하고 돈을 맡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 내가 이 돈을 들고튀어도, 잡지 못한다는 말이네.”
“맞아. 그래서 몇십 억이 아니라, 겨우 8억만 맡기는 거고.”
“진짜 지랄한다. 8억이 뉘 집 애 이름이야?”
“아무튼 가능한 현금을 사용하는 것을 생활화 하도록 해. 특히 술자리나 밥 먹는 자리에서는. 우리 식구들 밥값 계산은, 상호나 김 대리에게 맡겨 보는 것도 괜찮고.”
난 진수에게 정치판에서 생활하면서, 돈 문제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에 대한 것과 또 어떻게 하면 돈을 쓴 흔적이 드러나지 않는지, 그것에 대해 설명했다.
“그런데 넌 어떻게 그런 것을 다 알고 있어?”
“뉴스만 주의 깊게 봐도 다 알 수 있는 일이고, 내가 예전부터 정치를 하려고 했으니까 그런 기사를 주의 깊게 봤던 거지.”
“잘났다. 그런데 이 돈을 당분간 어디 감춰두긴 해야겠는데, 어디에다 두지?”
“우선은 내 아파트에 놔두고, 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나가.”
“집을 산다고 하더라도 돈의 출처가 문제잖아?”
“예나 집을 담보로 대출받은 돈을, 네가 빌려 간 것으로 할 거야. 그러니 일단 담보 대출금이 나오면, 그날 날짜로 차용증을 만들어서 공증만 받아두면 돼.”
“새끼 해골 엄청 굴렸네.”
이미 대출 건에 관해서는 예나와 이야기를 끝냈다.
그래서 예나의 거래 은행에 예나가 사는 집을 담보로 대출신청을 하는 것으로, 5억에 관한 돈의 출처를 만들어 두기로 한 것이다.
돈이 없어서 하지 못할 뿐이지, 돈만 있다면 대한민국에서 죽는 사람을 살리는 일 말고는 하지 못할 일이 없다.
상호와 김 대리 그리고 스태프인 누나 둘이 한 차에 타고, 나는 진수가 운전하는 차에 따로 오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진수에게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학원이 아니라, 동호회 아니 동아리 성격의 모임을 만든다는 말이야?”
“학원은 회비를 받아야 하잖아.”
“그건 당연한 일이잖아.”
“그럼 이 사람도 얼마 되지 않는 양산에서, 돈을 내면서 영화를 공부하겠다는 사람을 찾을 수나 있겠어?”
내 현재 직업이 학생이기도 하지만 배우다.
그러니 배우라는 직업을 이용해서 유권자인 양산시민의 관심을 끌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비록 많은 숫자는 아니겠지만 감독이나 배우를 꿈꾸는 사람들을 찾아, 그들과 함께 단편영화를 제작해보기로 했다.
“그게 도움이 돼?”
“당연히 도움이 되지.”
“어떻게?”
“최소한 지역신문에 언론플레이는 할 수가 있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감독이나 스태프 중에서 콘텐츠 제작에 능력이 있는 친구들이 있을 거고, 배우 지망생들이야 나름 잘 생기거나 예쁘다고 하는 애들이 모일 거니까.”
“그러니까 그런 친구들이 왜 필요하냐고?”
정치 그중에서도 선거를 치르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사람이다.
오죽하면 정치를 오래 한 사람들 입에서, ‘정치는 사람장사’라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그리고 그 사람 중에서도 가장 필요한 사람이 대중들을 홀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고, 그렇게 대중을 홀리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바로 내가 하고자 하는 동아리 또는 동호회 형식의 영화제작 모임이다.
그리고 그 모임을 구성하고 추진하는 데는, 딱히 크게 돈이 들어갈 일도 없다.
예담기획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감독님을 섭외하고, 예나를 비롯한 예담기획 배우를 한 번씩 양산으로 초청하는 것만으로도, 지역민의 관심을 끄는데 충분하다.
그렇게 찾아온 사람들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엮는 것이, 양산서 내가 해야 할 첫 과제다.
“그래, 네 말대로 그렇게 하면 그 동아리든 동호회든 사람 모이는 것은 금방일 것이고, 또 그렇게 모여든 사람들이 만족해할 것이라는 사실도 충분히 이해가 돼. 그런데 그 사람들에게 몇 년씩이나 그렇게 투자할 가치가 있느냐고?”
“진수야.”
“뭐?”
“예나나 내 이름이, 양산에 사는 주민들 입에 오르내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너나 제수씨가 열심히 영화나 드라마를 찍고, 그때마다 회사에서 언론플레이를 해야지.”
“그렇게 하는 것 말고는?”
“그냥 네티즌들이 이따금 너희 부부를 어디선가 발견하고, 개인 SNS 계정에 올린다든지 하면 양산시민들이 알게 될 수도 있겠지.”
“그게 정답이다.”
“뭐?”
“그렇게 자연스럽게 노출이 되는 것이 정답이라고. 아무리 나나 예나가 영화나 드라마를 열심히 찍는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또 양산시민들하고는 직접적인 관계도 없잖아. 그런데 양산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어떨까?”
아직 진수는 내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인지, 표정이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얼마 전에 영화동아리 ‘장산곶매’가 출품한 작품 때문에, 학교가 떠들썩했던 것은 기억하지?”
“그거야 당연한 일이잖아. 제대로 아마추어 감독이라고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대학생이, 국내영화제 출품을 넘어서 국제영화제에 초청까지 받았으니까.”
“그럼 우리가 지금부터 만들려고 하는 그 동호회에서 제작한 작품이, 그렇게 되면 어떨 것 같아?”
“그게 가능한 일이야?”
“해외영화제에서 초청을 받긴 힘들어도, 국내영화제 출품은 가능하잖아?”
“열심히 제대로만 한다면, 그 정도야 충분히 가능하겠지.”
“그럼 된 거잖아.”
“되긴 뭐가 돼?”
“일단 그렇게 되면 최소한 지역신문에서는 취재를 나와서 기사를 실어줄 것이고, 잘만하면 부산에서도 취재를 나올 수도 있잖아. 지역방송 뉴스에까지 나온다면 대박이고.”
어차피 정치를 하든지 배우로서 인기를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대중들에게 노출되는 작업이 필요하다.
나를 드러내는 방법이야 꼭 기성언론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충분했고, 대중들이 주목하게 되면 굳이 언론사에 보도 자료를 보내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오거나 대충 베껴서 기사화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미 한물갔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연예인 중에서는, 소위 말하는 ‘어그로’를 끌려고 일부러 손가락질을 받고 비난받는 것까지 감수해가면서, 노이즈마케팅을 감행하기도 하는 것이다.
현실이 이런데 노이즈마케팅도 아닌 방법으로 대중의 시선을 끌 수 있다면, 그걸 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다.
거기에다 크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일도 없고, 또 돈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