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 세상은 넓고, 또라이는 많다.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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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명의의 성명서가, 불붙기 시작한 불씨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확실히 했다.
눈치만 보고 있던 배우를 비롯한 연예인들도, 너나 할 것 없이 개인 SNS 계정에 강 교수의 망언을 비판하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국민청원게시판의 청원인 숫자도 새로 고침을 할 때마다 몇 만씩 추가되고 있었다.
“여기 한강수가 누구야?”
“..........”
갑자기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이른바 요즘 친구들 표현처럼, 강의실에 앉아 다음 강의를 기다리던 학생들 모두가 ‘갑분싸’ 상태가 된 것이다.
“제가 한강수입니다만 누구시죠?”
“너 잠시 이야기 좀 하자.”
“이보세요. 말씀 좀 가려가면서 하시죠. 도대체 당신이 누군데 다짜고짜 반말입니까?”
“나? 음, 나 J 당 학생위원회, B 대학지부 지부장이야.”
“J 당 학생위원회 지부장이면, 아무에게나 말을 놓아도 됩니까?”
“인마. 4학년 선배가 1학년 후배에게, 말 좀 놓는다고 그게 큰 문제가 돼?”
솔직히 황당했다.
속으로 ‘이러니 J 당 애들이 싸가지가 없지.’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고, 더는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생각에 손을 저어 꺼지라는 손짓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야!”
“내가 말조심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 당신보다 나이 많아요.”
“뭐?”
“당신이 몇 살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이미 군 복무도 마쳤고 학부 졸업한 지도 제법 되었어요. 그러니 4학년이니 뭐니 하면서, 깝죽대지 말고 그냥 가요.”
“뭐?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 깝죽대다니?”
“그럼 내가 뭐라고 할까요? 이젠 내가 나이가 많으니 당신에게 ‘야!’라고 하면서, 말을 험하게 해볼까요? 그럼 당신 기분은 좋겠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자기들만 진보세력이랍시고 껄떡대면서, 입만 살아서 나불거리는 그 J 당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소위 학생위원회 지부장이라는 놈의 하는 짓거리가 가당치 않아서, 나도 잔뜩 열이 받아서 평소 속에 든 말을 그대로 내뱉었다.
아무튼 내 말에 J 당 대학생위원회 지부장이라는 친구는 분을 참지 못하고,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나가 주시죠.”
“넌 또 뭐야?”
“여기 우리 과 강의실입니다. 철학과 재학생이, 왜 남의 강의실에 와서 소란을 피우십니까?”
“이 새끼가! 선배도 몰라보고!”
“뭐라고요? 이 새끼? 야! 이 양반아. 내가 고딩인 줄 알아?”
‘퍽!’
엉뚱한 곳에서 불이 붙었다.
내게 험한 말을 내뱉다가 역공을 당한 지부장이란 놈이 씩씩거리고 있자, 우리 과 총대인 장훈이가 그 친구에게로 다가가 나가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예의 그 싸가지 없는 입을 놀렸고, 그에 장훈이가 울컥하자 대뜸 주먹질을 한 것이다.
“진수야 지금 우리 강의실로 빨리 와.”
더는 싸움을 키워봐야 나에게도 좋을 일이 없었기에, 한 덩치 하는 진수를 불렀다.
전화를 받은 진수는 상호와 함께 강의실로 달려왔고, 나는 진수에게 지회장인지 뭔지 하는 놈을 끌고 나가서 우선 경찰에 인계하라고 했다.
“장훈이 너 괜찮아?”
“괜찮아요. 형.”
“피 나네.”
“그냥 화장실 가서 물로 헹구면 돼요.”
“아니야. 일단 경찰관이 도착하면, 절마 경찰관에게 인계하고 병원부터 다녀와.”
“예?”
“저런 놈은 그냥 이대로 넘어가면, 또다시 찾아와 지랄한다. 이번 기회에 세상이 만만찮다는 것을 보여줘야지.”
“어떻게 하시려고요?”
“상해진단서를 떼서 고소해야지. 구속까진 몰라도 최소 벌금형은 받게 될 거다.”
그냥 피가 나오는 것은 뱉어버리고, 물로 헹구지도 말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12 순찰차량이 도착했고, 곧이어 상호가 올라왔다.
“진수는?”
“팀장님은 치안센터에 가셨습니다.”
“그래. 이 친구 병원에 데려가서, 상해진단서를 발급받도록 해.”
“어느 병원으로 갈까요? 양산으로 갈까요?”
“그냥 가까운 외과를 찾아가서, 진단서 양껏 떼 달라고 해. 고소할 거라고 하고.”
“형, 한국당 지지해요?”
“아니. 내가 보수적인 성향은 있지만, 한국당 지지자까지는 아니지. 왜?”
상호가 장훈일 데리고 병원으로 가자 놀랐던 가슴을 진정한 아이들이 제자리를 찾아 앉았고, 그때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동생 하나가 말을 건넨다.
“아까 그 형 되게 유명한 형이거든요. 총학에서도 함부로 못 하는데.”
“학교에서 유명하고 말고가 어디에 있어. 아무튼 나는 저런 싸가지 없는 놈은 싫어한다.”
“그럼 형은 어느 당을 지지하세요?”
“분명한 것은 한국당도 아니고, 또 저런 싸가지 없는 애가 지회장이라는 J 당도 아니야.”
“그럼요?”
“아직 확실하게 지지할 정당이 없다는 것이, 맞는 말이겠지.”
물론 당연히 거짓말이다.
하지만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내용만 거짓말이지, 한국당이나 혼자서 진보정당이라고 설쳐대는 J 당을 내가 싫어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한국당과 더불어 집권여당과 제1야당 자리를 서로 번갈아가면서 차지하는, 민국당 역시 내 성에 차는 그런 정당도 아니었다.
한국당이야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지만, J 당에까지 비호감인 이유는 내 전생의 기억 때문이었다.
전생에 내가 여의도에 입성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진보를 표방하던 J 당에 대한 내 시각은 아주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깨지는 것에는, 결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수구정당이라 불리는 한국당이나, 진보라 자처하던 민국당이나 유일한 진보세력이라고 나불대던 J 당이나 거기서 거기였다.
자기 당의 이익을 위해서는 원칙이라고는 없는 욕심으로 가득 찬 집단,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단지 교묘한 말로 국민을 현혹시키면서 국민을 농락하고 있는 집단이, 전생에서 내가 경험한 J 당의 민낯이었다.
“응.”
“알았어. 이번 수업이 끝나면 오늘 강의가 끝이니까, 그때 출석해서 진술하겠다고 해.”
수업시간이 다 되었기에, 길게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진수와 상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과 총대인 장훈이까지 차에 태우고 금정경찰서로 향했다.
“두 분만 오셨어요?”
“예.”
“아까 매니저란 분에게, 증인이 될 분도 같이 출석해달라고 부탁을 했었는데요.”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 양반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서요?”
“저희로서는 어느 쪽이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지요. 저희가 옆에서 지켜본 것도 아니니까요.”
당연한 말이었다.
지회장인가 뭔가 하는 친구는, 관할 경찰서에서도 처치 곤란한 존재일 것이다.
워낙 떼쓰기로 유명한 집단이고, 만약 조금이라도 억울한 기분이 든다면 경찰서 앞마당을 아예 집회장소로 사용할 정도로, 막무가내인 집단이 J 당이었으니 말이다.
“이건 뭡니까?”
이럴 때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자 확실한 방법이 있다.
내가 안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경찰관에게 휴대전화를 건네자, 경찰관은 이게 뭔가 하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거기 플레이 버튼을 클릭해보세요.”
내 말에 경찰관은 녹음 파일의 플레이 버튼을 클릭했다.
거기엔 그 친구가 우리 강의실에 와서 내게 시비를 건 그 순간부터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의 상황이 그대로 녹음이 되어 있었다.
[제가 한강수입니다만 누구시죠?]
[너, 잠시 이야기 좀 하자.]
[이보세요. 말씀 좀 가려가면서 하시죠. 도대체 당신이 누군데 다짜고짜 반말입니까?]
[나? 음, 나 J 당 학생위원회, B 대학지부 지부장이야.]
[J 당 학생위원회 지부장이면, 아무에게나 말을 놓아도 됩니까?]
[인마, 4학년 선배가 1학년 후배에게 말 좀 놓는다고, 그게 큰 문제가 돼?]
“이게 뭡니까?”
“계속 들어보시지요.”
결국 경찰관은 과 총대인 장훈이가 맞는 것과, 또 내가 다른 휴대전화로 진수를 불러서 그놈을 바깥으로 끌고 나가는 부분까지 듣고 난 후에,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런 상황을 의도하셨습니까?”
“의도하다니요? 그 양반이 누군지 뭘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의도하고 말고 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솔직히 저는 그 양반이 무슨 이유로, 절 찾아온 것인지 그 이유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떻게 처음부터 녹음하셨습니까?”
“제 직업이 학생이기도 하지만, 현재 활동 중인 배우입니다. 그리고 저 같은 연예인들은 오늘 같은 황당한 경우를 자주 겪는 탓에,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평소에도 사람을 만날 때는 항상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경찰관님께는 죄송한 이야기지만, 지금도 다른 휴대전화로 지금 상황을 녹음하고 있고요.”
“예?”
“경찰관님과 제가 1:1로 만난 상황에서의 녹음은, 불법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출석하기 전에 회사 법무팀에 자문을 구하는 것이 옳은 일이었지만, 오늘은 내가 물리적인 피해를 본 것도 없었고 또 역으로 걸릴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그냥 혼자 출석하기로 한 것이다.
대신 지회장이라는 그 친구가 정당 활동을 하는 친구여서, 경찰관으로서는 꺼릴 수밖에 없고 그 때문에 조서를 엉뚱하게 작성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나도 만만하게 볼 사람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하려고, 지금 녹음을 하고 있는 중이란 것을 미리 밝히는 것이다.
“한강수 씨. 지금 사법경찰관인 저를 협박하시는 겁니까?”
“협박이라니요?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시지요? 경찰관님께서 잊으신 것인지 몰라도, 저는 지금 피해자 진술을 하기위해 온 것이지 가해자 신분으로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녹음을 하고 있다느니 마느니 하고 그럽니까?”
“사실을 사실대로 이야기한 것뿐이고, 우리 회사 법무팀의 변호사님께서 알려주신 팁입니다.”
사법경찰관은 내 말에, 황당한 표정과 아울러 잔뜩 열 받은 표정이다.
하지만 열을 받아봐야,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어쩌겠는가?
결국 사법경찰관은 더는 나하고 상대하기가 싫다는 표정으로, 인적사항부터 확인하기 시작했다.
“확인하시고 지장을 찍으시면 됩니다.”
조서 작성이 끝나자, 사법경찰관은 작성된 조서를 출력해서 내 앞으로 건넸다.
그리고 나는 박 변호사님께 전화를 걸어, 카메라로 조서를 비춰가면서 변호사님이 읽고 확인하시게 한 후에, 조서에 날인했다.
“장훈 학생.”
“예.”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한 대 맞았다고 꼭 이렇게 고소까지 해야 하겠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무리 같은 학교에 다닌다고 하더라도, 우리 대학 재학생이 3만 가까이 됩니다. 그런데 같은 학교 재학생이라는 이유로, 얼굴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모욕을 당하고 폭행까지 당했는데, 그걸 참고 넘기라는 말씀입니까?”
조사를 담당한 경찰관이라는 자의 말이, 가관이었다.
혹시 이 양반이 지회장이란 친구에게, 뇌물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