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 미친개에겐 몽둥이가 약! (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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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철 교수란 자가, 인심을 잃어도 진작 잃었던 모양이었다.
나와 관련된 사건이 언론을 통해 수면으로 드러나자, 총학생회와 각 단과대학학생회에서는 학생회 명의로 강 교수에 대한 징계를 요구하는 대자보가 나붙기 시작했다.
심지어 영화동아리 ‘장산곶매’ 회원들은 인문대학 건물과 대학본부 건물 앞에서, 강 교수에 대한 파면을 촉구하는 피켓시위를 시작했다.
“지금 어디야?”
“단대 앞 벤치.”
“알았어. 바로 갈게.”
“뭐?”
아무리 상황이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이 시점에 강의에 빠지는 것은 아니었기다.
그러니 학교를 벗어날 수도 없어, 벤치에 앉아 시간을 때우고 있는데 진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넌 갑자기 무슨 일이야?”
“일단 인사부터 해. 홍보팀의 김영수 대리님.”
“안녕하세요. 김 대리님. 그런데 김 대리님께서는 어쩐 일로요?”
“대표님께서 지시하셔서, 당분간 한 배우님을 전담하게 되었습니다.”
진수가 서울서 부산까지 내려왔고, 진수는 홍보팀 직원까지 대동하고 있었다.
둘의 모습을 보니, 졸지에 내가 정말 유명인사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진수야 나를 전담하는 팀장이니 내려올 수도 있다고 하지만, 홍보팀의 김영수 대리까지 양산으로 내려 보내서 나를 케어 하게하는 것은, 오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학교는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하긴 뭔 어떻게 해. 기껏 수능 준비 열심히 해서 입학했는데, 이런 일 때문에 그만두라고?”
“자퇴서 제출했다면서?”
“그거야 쇼지. 학교 쪽을 협박하는데, 자퇴서만큼 효과가 있는 것이 뭐가 있겠어.”
“만약 학교에서 자퇴서를 받아 들였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럼 학교하고 거하게 한판 붙으면 되지. 내가 명분을 쥐고 있으니, 정면으로 맞붙는다고 해도 손해날 것은 없잖아.”
솔직히 이런 싸움은 꽃놀이패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상대가 가진 화투 패를 훤히 들여다보면서 치는 게임이다.
연예인에 대한 악감정을 지녔거나, 강 교수처럼 ‘딴따라 주제에......’라는 인식으로 연예인을 폄훼하려는 인식의 소유자가 아니고서는, 이번 싸움에서 강준철 그자의 편을 들어줄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강 배우님.”
“예. 대리님.”
“우선 총학생회부터 찾아가시지요.”
“예?"
“총학생회와 단과대학교 학생회를 찾아가셔서, 강준철 교수에 대한 징계촉구 대자보를 거둬달라고 요청하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벌써요?”
“어차피 불은 붙었습니다. 그리고 한 배우님께서 그렇게 요청하신다고 하더라도, 총학생회나 단과대 학생회의 간부들이 그걸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고요.”
“그러죠. 그런데 다음 시간에 오늘 마지막 수업이 있으니, 그 강의만 듣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불이라는 것이 붙이기가 어려울 뿐이지, 불이 붙고 난 후에는 잠시만 가만히 놔두면 그 불길이 어디에서 타오르고 번져갈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다.
그냥 바람이 부는 쪽으로, 세상을 삼킬 것 같은 기세로 달려가는 것이 불길 아닌가 말이다.
회사에서 어떤 의도로 나보고 그렇게 하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렇게 하는 척은 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준철 그자를 도망가게 돕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나는 불을 끄는 척하면서 오히려 그 불길을 더 확산시켜볼 생각이다.
원래 싸움이든 불이든 어설프게 말리거나 끄게 되면, 그 남은 불씨가 다시 발화해서 이전보다 훨씬 더 큰 불길을 만드는 법이니까.
애초에 싸움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모를 일이지만, 이미 이번 사건은 학내를 넘어 국내 언론에 기사로 도배가 되다시피 한 상황이다.
그러니 강준철 그자도 배수의 진을 치고 버틸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만약 버티기에 성공해서 학교에 남아 있게 된다면, 내 남은 대학생활에 지장이 생길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랬기에 나로서는 이미 기호지세란 생각으로, 강 교수 그 자를 쫓아내는 방법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아무튼 앞으로 대응은 저희 홍보팀하고 법무팀이 협력해서 처리하도록 하겠으니, 배우님께서는 회사를 믿고 맡겨주셨으면 합니다.”
적도 아닌 우리 편이 저렇게 나오는데, 굳이 내가 알아서 할 것이라고 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일 처리는 홍보팀 김 대리에게 맡기고, 오늘 마지막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로 올라갔다.
“강수 씨, 파이팅!”
“고맙습니다.”
“한 배우 힘내요.”
“고맙습니다. 선배님.”
사회대 건물 입구에서부터, 얼굴을 마주친 선배와 동기들은 나를 향해 격려의 말을 던졌다.
“오빠, 괜찮아요?”
“예. 괜찮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우리 과 애들도 모두 서명했어요.”
“예?”
“사회대 학생회에서, 강준철 교수 파면촉구 서명을 받기 시작했거든요. 우리 과는 한 사람도 빠진 사람이 없이, 모두 서명했어요.”
내가 진수하고 김영수 대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에도, 불길은 활활 타올라 거세게 번져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대학을 졸업한 선배들의 일이 떠올랐다.
내가 지금 적을 두고 있는 B 대학은 부산 지역을 대표하는 대학이기도 하고, 부산 사람들의 성향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냈던 대학이기도 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부마항쟁이고, 부마항쟁의 주체가 바로 B 대학의 재학생들이었다.
쉽게 말해서 B 대학의 학생들 성향 아니 부산 사람들의 성향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화끈하다!’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괜히 속에 두고 끙끙 앓는 법도 없이,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거지.’라는 표현이, B 대학 학생들의 성향이자 부산 사람들의 성향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말이다.
학과 학생들 뿐 아니라 강의를 담당하신 교수님까지, 이따금 나를 힐끔거리는 가운데 오늘 마지막 수업을 끝냈다.
“한 배우님, 어서 오세요.”
“선배님들께 부탁을 드릴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부탁이라고요? 총학하고 의논해서 아예 집회를 열까요? 그런데 오늘내일 당장은 힘들 겁니다. 우선 동력을 모아야하거든요.”
“그게 아니라, 대자보를 철회해주셨으면 하고요.”
“예? 철회라니요? 그건 안 됩니다!”
수업을 마치고, 먼저 사회대 학생회부터 들렀다.
그리고 김영수 대리 말처럼, 학내 곳곳에 붙여둔 대자보를 철회해달라고 부탁했다.
내 말에 사회대 학생장은 그게 무슨 말도 되지 않는 소리냐고 펄쩍 뛰었고, 나는 그런 그의 반응을 보고 고개를 숙인 후, 진수와 김영수 대리가 기다리고 있는 금정 회관으로 향했다.
“왜 이리 늦었어?”
“단대 학생회에 들렀다가 오느라고.”
“거기선 뭐래?”
“뻔하지. 그 친구들이야 자신들 존재감을 뽐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는데 어쩌겠어.”
학교 내의 정치도 정치다.
예전 80년대나 90년대 초반과 달리, 요즘의 대학의 총학생회는 학생들의 관심이 멀어진 탓에, 거의 존재감을 찾기 힘들다.
오죽하면 총학생장 선거에서, 재학생의 참여저조로 투표율을 달성하지 못해 선거가 무효화되기까지 하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단과대 학생회뿐 아니라 총학생회 역시, 이번 사건이 호재라는 생각에 서둘러 총학생회나 단대 학생회 명의의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다.
“한강수 배우님?”
“예, 정치외교학과 한강숩니다.”
“어서 오세요. 그런데 무슨 일로요?”
“총학생장님께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요.”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바로 연락해서 오시라고 할게요.”
총학생장은 자리에 없었다.
총학생회 임원으로 보이는 학생의 안내로, 나는 사무실 한 쪽에 있는 의자에 앉아 총학생장이 오기를 기다렸다.
“나 잠시 밖에 좀 다녀올게.”
“이야기 끝나면 전화할 테니까, 그냥 휴게실에 가있어.”
그렇게 진수를 내보내고, 나는 멍하니 창밖을 내려다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한강수 배우님, 커피라도 드세요.”
“아! 고맙습니다.”
“힘내시고요.”
“괜찮습니다. 별일도 아닌 걸요.”
“그런데 저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요?”
“예. 얼마든지요.”
어차피 사진 찍자는 사람들이야 한둘이 아니었기에, 나는 총학생회 임원으로 보이는 여학생과 V자까지 그려가면서 사진을 찍었고, 그 여학생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그때 어지러운 발자국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죄송합니다. 강의 끝나고 잠시 누굴 만나느라고요.”
“무슨 말씀을요. 사전에 약속도 없이 찾아온 제 잘못이지요.”
“그런데 배우님께서 무슨 일로요? 혹시 조금 전 사회대 학생장하고 하셨던, 그 말씀 때문에 절 만나자고 하신 것입니까?”
“예. 맞습니다. 오늘 있었던 일은, 그냥 단순히 교수님하고 학생 사이에 벌어진 해프닝 정도인데, 총학생회에서까지 이렇게 하시니.......”
“그건 잘못된.......”
순간 내 등 뒤에서, 카메라플래시가 번쩍이는 것이 느껴졌다.
“누구십니까?”
“S일보 사회부의 김정국 기자라고 합니다. 한강수 배우님께서 총학생회로 가셨다고 해서요.”
홍보팀 김영수 대리와 진수의 작품인 것 같았다.
그 둘이 아니라면 내가 총학생회를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사람이 없을 것이고, 또 중앙일간지의 기자가 찾아올 일도 없을 것이니 말이다.
“한강수 배우님, 총학생회를 찾아오신 이유를 여쭤도 될까요?”
“총학생장님께 강준철 교수의 파면을 촉구하는, 대자보 철회를 부탁드리려고 왔습니다.”
“왜 파면촉구 대자보 철회를 요구하시는 거죠? 한강수 배우께서는 피해자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더욱더 강한 처벌을 요구하거나, 최소한 침묵하면서 지켜보시는 것이 상식적인 것 아닌가요?”
“물론 제 판단으로도, 제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배우 한강수가 아닌, 정치외교학과 재학생과 교수님 사이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런 사건을 두고, 학생들까지 나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홍보팀의 김영수 대리가 펼쳐준 판이니, 나는 아닌 척하면서 신나게 놀면 충분한 일이었다.
회사에서 김 기자에게 따로 부탁한 것이 있을 것이니, 내가 웬만큼 말실수를 한다고 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생길 일도 없고, 결론 또한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다.
결론은 ‘강준철 교수 죽이기’가 될 것이고, 회사는 이번 사건을 나를 점잖고 합리적인 이미지로 각인 시킬 수 있는 기회로 삼을 것이다.
“총학생장님이시지요?”
“총학생회를 맡고 있는, 총학생장 장찬수입니다.”
“방금 한강수 배우께서 하신 말씀에, 총학생장님은 동의하십니까?”
“전 한 배우님의 생각이, 틀렸다는 생각입니다.”
“어째서죠?”
“분명 한강수 배우는 우리 대학 학생입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이 학생과 교수님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것도 맞습니다. 저희 총학생회는 학생의 인권과 권익을 지키고 대변하기 위해, 존재하는 학생자치기구입니다. 그러니 이번 사건을, 우리 총학생회가 주도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총학생장은, 총학생회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해 이번 일에 발 벗고 나설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적절히 이용하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