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 상갓집 개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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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방금 하신 말씀은 취소하시지요.”
“뭘? 왜?”
“아무리 제가 교수님께서 재직하시고 계신 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학생이라고 하더라도, 아니 제가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 학생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인신공격하신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교수님과 저 사이는, 우리 B 대학에 소속된 교수와 학생이라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고, 또 얼굴조차 오늘 처음 본 사이가 아닙니까?”
브레이크 풀린 기관차는 멈추지 못하는 법이다.
아니 오히려 탄력을 받아서 낭떠러지에 추락하는 그 순간까지, 잠시 후 자기에게 벌어질 일조차 알지 못하고 미친 듯 내달리는 법인데,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교수라는 이 인간의 상태가 딱 그 형국이었다.
“인신공격? 지랄하네. 딴따라를 인간 취급 해줬더니, 진짜 인간이라도 된 것처럼 설쳐대네. 꺼져 이 새끼야! 너 같은 새끼 필요 없어!”
“교수님, 다시 한 번 말씀해보시지요.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 같은 새끼 필요 없다고! 그러니 빨리 꺼지라고!”
“그 말씀도 그 말씀이지만, 저보고 뭐라고 하셨습니까?”
“딴따라 새끼라, 말귀도 못 알아 처먹네. 딴따라라고. 됐어?”
“그 말씀 취소하십시오! 지금이 조선 시대도 아닌데, 엄연한 연예인을 두고 딴따라라니요. 교수님께서 딴따라라고 비하하신 연예인도, 교수님 이상으로 열심히 국가에 세금을 내는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자 직업인입니다.”
교수란 작자가 흥분한 탓에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교수로서 해서는 안 될 말까지 내뱉고 있었다.
이런 부류의 인간들에겐, 여론의 뭇매도 사치란 생각이 든다.
이런 인간은 내가 등을 떠밀 필요도 없이, 그냥 혼자서 제 분을 못 이겨 낭떠러지로 돌진할 수 있게 휘발유만 계속 공급해주면 될 일이란 생각에, 나는 또박또박 말대꾸만 이어나가기로 했다.
최대한 정중함을 유지하면서.......
“직업인 좋아하네. 사내새끼들은 희멀건 한 얼굴로, 돈 많은 여편네들에게 아양이나 떨면서 호스트바 종업원 같은 짓거리나 하고, 계집년들은 어디 재벌 놈이나 없나 하고 눈 희번덕거리다가, 그 새끼들 밑에 깔려서 고양이 울음소리나 내면서 돈이나 세는 것들이, 무슨 직업 타령이야.”
“강준철 씨! 당신 교수 맞아?”
“강준철 씨? 이 새끼가 미쳤나? 어디 교수한테 강준철 씨?”
“머리에 똥만 가득한 인간을 교수라고 알고, 무언가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불쌍하네요. 내가 보기엔 당신은 교수라고 불릴 자격이 없는 인간이야!”
“뭐 이 새끼가 돌았나? 야! 이 새끼야! 어디서 감히 교수인 나에게 그런 쌍소리야?”
이젠 내가 참을 이유가 더는 없었다.
막말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저런 더러운 말까지 듣고서도 참는다면, 그것은 나 자신을 스스로 모욕하는 것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 연예계 종사자 모두를 모욕하는 것이 될 것이니 말이다.
잘못된 것을 보고도 그것에 항거하지 않고 침묵한다는 것은, 자신도 은연중에 그것에 대해 묵시적으로나마 동조한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결국 그 말의 뜻은 그의 뜻에 동조하는 공범에 다름없으니까 말이다.
“당신의 껍데기는 교수인지 모르겠지만, 속은 썩어 문드러져서 더는 썩을 것도 없는 똥 덩어리일 뿐입니다. 세상에 더 없을 정도로 추악한 냄새가 진동하는 똥 덩어리!”
‘짝!’
순간 내 눈에서 불이 번쩍 튀면서, 내 코에서는 뜨뜻한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것으로 게임아웃!
그리고 게임아웃 신호에 맞춰 교수실의 문이 열리고, 이 상황을 말리려고 들어온 조교 선생의 당혹스러운 표정이 내 눈앞에 드러났다.
“교수님.......”
“나가 있어!”
“교수님 이렇게 하시면.......”
“너! 빨리 나가라고!”
말리려고 들어온 조교 선생은, 내 코에서 흘러내리는 코피를 보고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교수를 불렀지만, 강준철 교수는 조교 선생에게 나가라고 고함을 질렀다.
“강준철 씨. 분명히 오늘 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강준철 씨는 지금까지 이 학교에서 월급을 받으면서 우리 대학을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입학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나는, 학교를 위해서 내 집사람까지 동원해서 무보수로 학교 홍보 동영상을 찍기도 했고, 우리 학교 영화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학교 이름을 높이는 일까지 했습니다.”
“딴따라가 열일 하셨구먼. 정말 지랄도 가지가지 했네.”
“그렇지요. 정말 열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지랄을 두고, 학교에서는 제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잘했다고 현수막까지 대문짝만하게 걸어 두셨습디다. 그리고 한마디 하겠는데 강준철 씨 당신하고 나하고 관계는, B 대학 재학생과 B 대학에 교수란 신분으로 재직하고 있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관계입니다. 또한 아까도 말했던 것처럼, 내가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학한 미성년자를 갓 벗어난 처지도 아닌, 학부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다가 다시 입학한 성인이자 당신하고 똑같은 사회인이란 사실입니다.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아예 내 말에 딴죽을 걸지 못하게, 나도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그리고 더는 내 귀로 저 더러운 소리를 들을 이유가 없었기에, 인사조차 생략하고 교수실을 나왔다.
“한 배우님!”
“예.”
“죄송합니다. 저희 교수님이 화가 나면, 앞뒤를 가리지 못하시는 분이시라.”
“조교 선생님과는 무관한 일입니다. 저런 자가 교수로 있는 대학에, 제가 더는 다닐 생각이 없거든요.”
“예?”
“그냥 혼자 한 말입니다. 그럼......”
그렇게 조교 선생을 뒤로하고, 나는 우리 학과 사무실로 향했다.
지금부터는 나만의 단독 Show Time이다.
“한 배우님, 얼굴이 왜 그래요?”
“일이 좀 있었습니다.”
“학과장님 뵈려고요?”
“아니요. 자퇴신청서 양식을 하나 얻으려고요.”
“예?”
“제가 학교를 계속 다닐 상황이 되지 못해서 그러니, 우선 신청서 양식 하나만 출력해주세요.”
내가 자퇴신청서 양식을 부탁하자, 조교 선생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계속 내가 자퇴신청서 양식을 요구하자 더는 내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고, 파일에서 신청서 양식을 찾아 출력해서 내게 건넸다.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자퇴신청서 양식을 받아, 빈 곳을 채우고 사인까지 마쳤다.
아마도 지금쯤은 학과 사무실은 호떡집에 불이 난 것처럼 난리가 났을 것이지만, 나는 느긋하게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을 뽑아 마신 후에 학과 사무실로 향했다.
“선생님, 여기.”
“한 배우님, 과장님께서 잠시 들어오시랍니다.”
“아닙니다. 죄송해서 과장님 뵐 면목이 없습니다. 그러니 선생님께서 대신 말씀드려 주시고, 빠른 처리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뇨. 자퇴 서류가 처리되려면 학과장님 면담은 필수입니다. 학과장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자퇴서 처리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이미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알고 있었던 일이고, 학과장님으로서는 절대 내가 자퇴하는 것을 허가하지 않을 것임을 나도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 어느 대학에서, 나 같은 배우가 자퇴한다는데 그걸 말리지 않을 것인가?
조금 전 강준철이라는 이름의 교수에게 내가 당했던 사실이 알려지면, 학교에서뿐 아니라 아예 대한민국이 떠들썩해질 일인 것이다.
덤으로 학교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손가락질 받게 되는 것은 덤일 테고 말이다.
“한 배우, 들어오지 않고 뭐하나?”
“아! 교수님.”
“일단 들어오게. 자네가 무슨 이유로 자퇴하려고 하는지는 몰라도, 아직은 내가 자네의 교수가 아닌가?”
결국 기다리다 못한 학과장님께서는, 방문을 여시고 나를 부르셨다.
이것만으로도 첫 라운드부터, 내가 우세를 잡고 들어가는 일이 되는 것이다.
“뭘 마실 텐가?”
“괜찮습니다.”
“이 사람이 참. 한 배우 자네, 자퇴한다고 나한테까지 거리감을 둘 생각인가? 난 자넬 진짜 내 제자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학과장님의 저 말씀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전혀 관심도 없고, 또 저 말이 내 행동에 그 어떤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어차피 학과장님이나 단과대학 학장님 그리고 총장님께는 내가 배우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고, 그런 나를 어떻게 유효적절하게 학교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이용할까 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다.
그리고 나는 그런 교수님들의 욕심을 적절히 이용해가면서, 별문제 없는 범위 내에서 4년의 학사 과정을 무난하게 이수하고 졸업장을 받으면 되는 일이다.
물론 시간을 쌓아가면서 서로를 잘 알게 되고 신뢰가 쌓이게 되는 그 시기가 오면, 방금 학과장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학과장님은 나를 진짜 제자로 인정하시고, 나 또한 학과장님을 비롯한 학과 교수님들을 내 선생님으로 인정할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우선 한잔 들게. 물론 자네가 집에서 마시는 커피보다야 못하겠지만, 나도 제법 입맛을 따지는 편이거든.”
“저 집에선 믹서 커피 마십니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주로 자판기 믹서 커피 체질이고요.”
“자네가 믹서 커피를 마신다고?”
“예. 제가 달달한 맛을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그럼 자네 부인인 서 배우님은?”
“커피하고 별로 친하지 않고, 주로 과일주스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그런가. 그럼 믹서 커피를 한잔 뽑아오라고 할까?”
“아이고, 아닙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교수님.”
학과장님께서 친히 내려주신 커피를 거절할 일은 없었기에, 나는 잔을 들고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그러자 입안에서는 약간은 시큼하면서도 청아한 향이 퍼지기 시작했고, 동시에 찢어진 볼 안쪽이 쓰라렸다.
“맛이 괜찮습니다.”
“그렇지. 하~ 그런데 갑자기 자퇴라니 도대체 무슨 일인가? 혹시 내가 자네에게 서운하게 한 일이라도 있었나? 아니면 자네 지도교수가?”
“그런 일은 전혀 없습니다. 교수님들께는 충분하고도 넘칠 정도로 만족하고, 고맙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럼? 혹시 선배들이 자넬 괴롭히기라도 했나?”
학과장님도 순간적으로, 나를 이제 갓 입학한 신입생으로 착각하고 계셨다.
선배라고 해봐야 막내 동생뻘인데 누가 괴롭힐 수가 있으며, 설령 지네들이 날 괴롭힌다는 생각으로 무언가 액션을 취해봐야, 내가 눈 하나 깜짝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냥 귀엽게 논다는 생각으로, 재롱을 떠는 것을 구경하는 재미 그 정도 수준일 뿐이지.
학과장님 말씀에 난 ‘피식~’웃는 기분으로 얼굴에 미소를 띠었고, 그런 내 표정을 보신 학과장님은 사뭇 애가 타서 답답해하시는 표정이었다.
“교수도 아니고 또 학생들하고 문제도 없다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러시나? 뭐라고 속 시원하게 말이라도 해보시게.”
잠시 후면 기겁할 양반이, 답답하신 마음에 자꾸 내 대답을 강요하시고 있었다.
만약 내가 이 양반 앞에서 내가 자퇴를 하겠다고 하게 된 이유를 펼쳐놓으면, 그동안 젊잖게 학문 연구에 매진하며 살아왔던, 소위 이야기 하는 먹물 신분인 이 양반의 표정이 어떻게 나타날지 그게 궁금해졌다.
그런 잠시 후에 벌어질 상황에 대한 재미있는 상상을 하면서, 나는 안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