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 상갓집 개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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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 조교 선생이 찾아왔다.
조교 선생은 법학과 강준철 교수가 나를 찾는다고 했고, 나는 조교 선생에게 강 교수가 어떤 인물인지를 물었다.
그런데 조교 선생은 설명대신에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 몇 개를 보여줬고, 그 기사를 보면서 조교 선생이 강 교수에 대해 설명하길 꺼려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자네가 한강수인가?”
“그렇습니다. 교수님.”
“내가 바쁜 사람을 오라 가라 한 것은 아니고?”
“괜찮습니다. 어차피 오늘 제가 들어야 할 수업은 끝이 났습니다.”
말로야 아니라고 했지만, 기분은 더러웠다.
아무리 우리 정외과 교수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명색이 교수가 부르는데 오지 않을 수도 없고.
내가 가장 경멸하는 부류가, 지금 내 앞에 앉아서 세상 누구보다 점잖은 척하면서, 뒷구멍으로는 갖은 협잡질을 일삼는 이런 인간이다.
현실정치에 관해서는 쥐뿔도 아는 것도 없으면서, 교수란 타이틀만 믿고 방송에서 마치 자기가 정치에 관해서 대한민국 누구보다도 잘 안다는 양 설쳐대는 인간.
괜히 엄한 정치인을 물고 뜯으면서, 상대적으로 자신의 도덕적 우월감을 과시하려는 인간의 유형 중, 가장 대표적인 인간이 내 눈앞에 있는 이 인간이다.
이런 인간 대부분의 행태는 대동소이하다.
소위 시민사회단체란 간판으로 선거 때가 되면 당선될 만한 후보에게 몰려가서, 남의 선거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면서 헛소리나 하는 족속들이다.
이젠 신조어라고 하기에도 빛바랜 폴리페서란 존재가 바로 이 인간들이다.
“한강수 학생, 자네는 졸업하고 정치를 할 생각인가?”
“이미 학사학위가 있으면서, 다시 정외과 수업을 받을 때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학사학위가 있다고?”
“예. J 대학교 연극영화 전공입니다.”
예전 80년대 까지만 해도 B 대학은, 내가 졸업한 J 대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차지했었다.
하지만 지방대 출신이 중앙 무대에서 배척당하기 시작하고부터는, 소위 말하는 ‘in 서울’ 대학에 B 대학이 비할 바가 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과거에 묻혀 사는 사람들이야, 아직 B 대학의 수준을 서울의 S 대학보다는 뒤처지지만 Y 대나 K 대와는 동급이라고 강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가 졸업한 J 대학은 놔두더라도, 이름조차 잘 모르는 수도권 대학보다 지방 국립대학인 B 대학을 낮게 치는 것이 현실이다.
그만큼 우리 대한민국의 모든 것들이, 서울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전공한 연극영화 전공만큼은, J 대학이 국내 어떤 대학도 비교 불가능한 우월한 지위에 있고 말이다.
“그럼 정치를 하려고 하면서, 왜 부산까지 내려왔나?”
“부산이 아니라 양산입니다.”
“그러니 말일세.”
“양산이 제 부모님 고향입니다. 그다지 큰 연고도 없는 서울에서보다는, 제 부모님 고향에서 정치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에서 양산으로 내려오게 된 겁니다.”
“그렇구먼. 자네 우리 그룹에 가입해서, 활동해보는 것은 어떻겠나?”
“그룹이라니요?”
이 인간 목적이 바로 이것이었다.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교수들이 모여 간판만 ○○ 연구소라 해두고, 자기네들 놀이터로 이용하는 곳에 나를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연구소 대부분은, 국가나 시에서 추진하는 국책사업 용역을 받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양아치 집단이기도 하다.
그곳에 배우인 나를 끌어들여 얼굴마담 노릇을 하게하고, 자기들이 체면 때문에 하지 못하는 일을 맡기려고 이러는 것이다.
“나하고 뜻이 통하는 교수들 몇이 모여서 활동하고 있는 그룹이 있네. 그 산하에 OO 정책연구소를 두고 있고, 거기서 정책을 개발하기도 하고, 정부나 지자체에서 연구용역을 의뢰받아서 그걸 처리하는 일을 하고 있지.”
“교수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제가 정외과 학생이기도 하지만 연기활동 또한 병행하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저에게 좋은 기회를 주신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제가 물리적으로 낼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나는 최대한 정중한 단어를 동원해서, 이 인간의 기분이 상하지 않을 수준으로 완곡한 거절의 뜻을 내비쳤다.
이 순간이 지나면 얼굴 맞부딪칠 일도 없는 인간이지만, 괜히 이 인간의 비위를 거슬렀다가는 다른 교수들에게, 나쁜 놈으로 인식이 박힐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자네보고 연구소에 출근하라거나 일을 하라는 얘기가 아닐세.”
“예?”
“그냥 우리 그룹에 합류해서 이따금 차나 마시면서 얼굴이나 익히자는 거지. 어차피 자네도 양산에서 선거에 출마하려고 하는 처지고 부산하고 양산이 하나의 생활권이다시피 하니, 우리 모임에 함께 하면 자네에게 득이 되면 되었지 손해날 일은 없을 것이네.”
속에서 ‘지랄!’이란 소리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오고 있었다.
제 놈 생각이야 그렇겠지만 만약 내가 선거에 출마했을 때, 이런 부류의 인간들이 내 선거사무소에 들락거리는 자체가 나로선 손해이다.
이런 부류의 인간들을 써먹을 곳은, 단 한 군데밖에 없다.
기자회견이라는 이름을 빙자하여 유권자들에게, ‘내 주변이 이러 이러한 사람들이 있다.’라고 광고를 하는 그것 말고는 써먹을 곳은 아예 없다.
결국 선거사무실에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 밥값이나 축내는 거치적거리는 존재일 뿐이다.
그리고 선거기간에 ‘누구누구를 만나서 밥을 먹고 술자리를 하면서, 선거를 도와달라고 접대를 했다.’라고 설레발치면서 돈을 뜯는 양아치일 뿐이다.
그런 놈들 중 하나인 이 인간이, 나를 제 놈들 그룹에 끼워 넣으려는 이유는 뻔하다.
배우인 내 이름이 가진 인기를 이용해서 제 놈들 값을 올리려는 것과, 나중 내가 출마했을 때 돈을 뜯어내기 위함이다.
“교수님 말씀은 고마운 말씀이지만, 아직은 제가 그럴 능력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저는 이제 겨우 정외과 1학년일 뿐이지 않습니까.”
“그냥 자네가 할 일은, 여기 가입신청서에 자네 이름을 적고 사인만 하면 되는 거라네.”
“그건 정말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회원 가입신청서에 사인하는 일이, 뭐가 어려운 일이라고?”
“제 개인이면 얼마든지 가능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제가 예담기획이라고 연예기획사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회사에 보고가 되고, 회사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일까지도?”
“예. 낯간지러운 표현이지만, 계약서 조항 중에 아티스트로서 지켜야 할 품위 조항에, 정치 또는 사회활동에 관한 규정이 있거든요.”
가장 쉽게 이 제안을 거절하는 방안이, 바로 회사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제 놈이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하더라도, 회사와 내가 계약한 서류에 어떤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지 알 방법이 없다.
그러니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업계에 관련한 일말의 상식조차 없는 인간이 무얼 알겠는가 말이다.
내가 회사와의 계약을 핑계 대자, 교수라는 이 인간은 자못 실망한 표정이었다.
“아무튼 교수님께서 이런 좋은 기회를 주셨는데, 함께 할 수 없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저는 다음 수업이 있어서 이만.......”
“한강수 학생 잠시만.”
“예. 말씀하시지요.”
“어차피 계약서에 그렇게 되어 있더라도, 자네가 말하지 않으면 회사에서는 모를 것 아닌가?”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제 매니저가 교수님들하고 같이 있는 것을 보게 될 수도 있고, 또 기자들이 알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자네에게 권하는 이 일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발전시키는 소중한 일일세.”
“그 점에 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회사와 계약이라는 이름으로 약속을 한 것은 지켜야 하고, 만약 그 약속을 위반했을 때는, 제가 회사에 위약금을 물어야 합니다.”
“어차피 위약금이라고 해봐야, 자네에겐 그리 큰돈이 아니지 않은가? 자네 부인도 지금까지 배우로 활동하면서, 엄청나게 벌었다고 알고 있네만.”
한마디로 미친놈이다.
선거 때면 선거판을 기웃거리면서 남의 돈을 빼먹기 위해서 눈이 벌게져 설치는 놈이, 남의 돈 귀한 것조차 모르고 헛소리를 나불거리고 있다.
“교수님, 교수님께서 어떻게 알고 계신지는 잘 모르지만, 제 몸값이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훨씬 이상으로 비쌉니다. 그리고 통상 연예계에서 계약을 위반하면, 위약금이 세 배정도 됩니다. 제 몸값으로 책정된 계약금이 5억인데, 제가 계약위반사항을 들켜서 문제가 되면 15억을 게워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그 회사가, 자네 부인되는 사람 부친이 대표로 있는 회사라면서?”
정말 이 인간이, 나를 끌어들이기 위해 내 뒷조사까지 한 모양이다.
물론 그 뒷조사라는 것이 뉴스에 보도되었던 기사 내용을 취합한 그것일 것이다.
하지만 연예계와 무관한 그리고 내 팬도 아닌 인간이 그런 사실까지 알고 있다는 것은, 내가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방금 말씀하신 그 말씀은, 제가 듣기에 조금 불편합니다. 아까 말씀하신 제 집사람이 배우활동을 하면서 벌어들인 수입은, 제 집사람이 밤잠조차 자지 못하면서 일을 한 대가일 뿐입니다. 그리고 제가 소속된 예담기획의 대표이사가 제 장인어른이란 것은 맞는 말씀이지만, 제 장인어른 역시 주주 중의 한 분일뿐입니다.”
“그래서 결국 자넨, 우리 모임에 들어오지 않겠다는 말인가?”
“들어가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라, 제가 그런 모임에 합류할 수 없는 신분이란 뜻입니다. 만약 제가 위약금을 물어야 할 상황이 된다면, 그때 교수님이나 모임의 다른 교수님들께서 도와주신다면 몰라도요.”
“겨우 15억이란 돈 때문에, 이 나라의 청년이 이 나라 민주주의 발전을 외면하겠다는 말인가?”
“민주주의도 우선은 먹고 살 수 있을 때나, 통하는 얘기가 아닙니까? 교수님께는 15억이라는 돈이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는지 몰라도, 저한테는 제 생계가 걸린 돈이고 서민 대부분은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거액입니다.”
이 미친놈이 내 말에 열이 받은 것인지, 얼굴이 벌게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한 말 중에서 딱히 문제가 될 발언은 없었기에, 나는 느긋한 표정으로 이 미친 교수란 작자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솔직히 내 마음속에서는 이 인간을 조금 더 열 받게 만들어서, 길길이 날뛰는 모습이나 구경해볼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일어나고 있었다.
“자네 이야길 듣다가 보니, 자네는 정치할 자격이 없는 것 같네. 자네 같이 돈 때문에 국가와 국민을 도외시하는 사람이, 어떻게 정치를 한다는 말인가?”
정말 어이가 없었다.
교수란 타이틀을 이용해서 상갓집 개처럼, 뭐 뜯어 먹을 것이나 없나 하고 정치판이나 기웃거리던 인간 주제에, 어디 남에게 정치할 자격이 있느니 없느니 하고 씨불인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