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 김 의원의 딸, 현서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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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예. 후배님.”
“제가 이 나이에 왜, 굳이 정치외교학과에 신입생으로 입학한 것인지 그 이유를 짐작하세요?”
“정치를 배우기 위해서 아닌가요?”
“정치이론 그딴 걸 배워서, 어디에 써먹게요?”
“배워야 출마를 하든지 말든지 할 수가 있으니까요.”
“땡!”
정치라는 학문은 따지고 보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학문이다.
사람들에게 정치가 무엇인지 질문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선거에 출마하고 당선되어서 국회의원 또는 지방의원으로 활약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선거에 출마해서 국회의원에 당선되기 위한 자격요건에, 정치를 전공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또 그 국회의원을 보좌해서 국회의원의 주된 업무인 입법 활동을 돕는 보좌진이나, 국회사무처나 정당의 중앙당에 근무하면서 국회의원 업무를 돕는 인력들 역시, 정치를 전공한 전공자보다는 오히려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를 더 많이 필요로 한다.
냉정히 이야기하자면 결국 정치라는 학문을 공부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말장난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는, 딱 그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랬기에 현서 학생의 답은 틀린 답이 되는 것이다.
정치를 전공한 졸업생들이 갈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직장은, 정치현장이 아닌 신문이나 방송 등의 언론사다.
“그렇게 우리 과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고 기자를 할 것도 아니면서, 후배님은 왜 우리 과에 입학했어요? 솔직히 우리 과가 대학 졸업장은 따야 하니, 성적에 맞춰서 아무 데나 가자고 지원하는 그런 학과도 아니잖아요.”
현서 학생은 내 말에 사뭇 억울한 표정이다.
아무리 대학이 많아지고 또 대학생 아닌 청년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국립대학의 정치외교학과라면 합격이 그리 만만찮다.
그런데 내가 한 방금 그 말은, 현서 학생뿐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정치를 전공하는 학과에 재학하는 대학 재학생 대부분이, 내게 달려와 돌팔매질을 할 정도로 정치외교학과를 까고 학생들을 무시하는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러니 대놓고 욕을 하진 못하고, 이렇게 억울함을 표시하는 것이다.
“김 선배. 쉽게 생각해보죠.”
“뭘요?”
“제가 아직은 크게 인기가 없지만 만약 제가 안성기 선배님 정도로 인기를 얻고 또 호감을 지닌 배우가 되어, 총선에 출마한다면 제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을까요? 아니면 낙선할 가능성이 클까요?”
“그건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죠. 안성기 아저씨 정도의 이미지를 가진 배우가 출마한다면, 그런 사람을 누가 떨어뜨려요?”
그래서 하는 말인 것이다.
국민배우로 불리는 안성기 배우가 정치하겠다고 나설 사람도 아니지만, 만약 그가 국민들에게 봉사하겠다는 명분으로 정치판에 발을 들이민다면, 그가 지닌 이미지 때문에라도 그가 낙선하기가 오히려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 정도 커리어의 배우라면 어느 정당에도 소속되지 않은 무소속으로 출마해도 당선될 것이며, 만약 어느 한 정당을 택해 그 당 소속으로 출마하게 된다면, 그가 선택한 정당 또한 반사이익을 보게 될 것은 확실하다.
물론 당선된 이후 국민 기대에 반하는 정치 행위를 하게 된다면, 재선이야 어렵겠지만 말이다.
“김 선배님. 난 당장 국회의원선거에 나설 생각이 없습니다. 우선 안성기 선배님처럼 대중들에게 사랑받으면서 ‘저 배우는 정말 진국이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른바 국민배우 소리가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배우가 될 거거든요. 그리고 그 이후에 정치에 도전할 겁니다.”
“그런 생각이면, 굳이 우리 과에 지원할 이유가 없잖아요?”
“오래오래 해먹을 거거든요.”
“예?”
“국회의원 노릇을 오래오래 해먹을 거라고요. 그리고 기회가 되면 대한민국의 대통령에 도전도 해볼 생각이고요.”
“..........”
“그래서 대부분 사람에게는 별로 필요가 없는 정치전공이지만, 저한테는 딴따라 출신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씻어낼 수 있는 간판이, 바로 이 정치학 학사란 간판이거든요.”
내가 연극영화를 전공한 학사이면서도, 굳이 다시 입학을 강행한 이유가 바로 저 이유였다.
내 전생의 삶에서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난 이후에도, 동료 의원을 비롯한 정치권의 사람들뿐 아니라 국민들 역시 나를 정치인 한강수로 인정하기보다는 국민배우 한강수로 인식했었다.
그 때문에 동료의원들은 나를 물 위에 뜬 기름 취급을 했었고, 심지어 나를 보좌했던 김성수 보좌관 또한 그런 이유로 나를 배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딴따라 출신이니, 조만간 한계를 보일 것이란 생각에서.......
그냥 정치인 한강수로서의 가능성을, 아예 염두에 두지조차 않았던 것이다.
그랬으니 내게서 더는 뜯어먹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었을 것이고, 뜯어먹을 것도 없는 먹잇감에 미련을 둘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게 정치외교학과를 지원한 이유 전부에요?”
“가장 큰 이유는 그게 맞고, 정치외교학과를 다니면 부수적으로 얻는 것도 많잖습니까.”
“어떤 것이?”
정치와 정치인의 운명은 여론에 따라 죽고 사는 길이 갈리기도 할 정도로, 정치와 정치인은 민심이란 것과 동떨어져서는 절대 존재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졸업생들이 가장 많이 진출하는 분야가 언론사이고, 그 언론사의 기자들이 사회 여론을 조성하고 주도하는 주역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 정치외교학과에 적을 두고 다니면서, 이곳에서 만든 인맥을 절대 무시할 수가 없다.
물론 그런 점을 고려한다면 지방인 이곳 부산에서 학교에 다니는 것보다는, 서울에서 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하지만 지방대 출신이 중앙 일간지나 공중파 방송에 취업하는 길이 아예 막힌 것도 아니니, 그들을 적절히 이용하고 내가 이용당해 준다면, 그 관계가 오히려 훨씬 끈끈해지고 더 큰 힘이 될 수도 있다.
기자와의 친소 관계 때문에 물을 먹고, 악의적인 기사 한방에 국민들 기억 속에서 사라진 정치인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일반 서민이 경찰서에 잡혀가게 되었을 때, 변호사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아예 입을 닫고 진술을 거부하라고 충고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말은 확실한 정답이다.
피의자 신분인 그 사람이 아무리 솔직하게 진실을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담당 경찰관이 상대측과 친분이 있거나 아니면 상대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든지 할 경우에는, 그 경찰관이 작성한 진술조서의 조사 하나만으로도 사건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사건이 검찰로 송치되고 난 이후, 뒤늦게 그런 사실을 깨닫고 그때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해봐야 그것이 쉽지도 않다.
그리고 그런 점은, 정치인과 기자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한 사안에 대해 기사를 내보내게 되었을 때, 처음 기사를 내보낸 기사의 논조에 따라 그 사건의 결과가 확연하게 달라지는 것이다.
[한강수 의원, 조 단역배우 권익을 개선하기 위해서 영화발전 기금 50억 증액 주도]
[한강수 의원, 국민 세금 50억, 영화인들의 집단 이익을 위해 투자한 것인가?]
만약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영화발전기금을 증액하는 일을 내가 주도했다면, 기사의 제목부터 저런 식으로 해서 뉴스 소비자인 국민이 정반대의 느낌을 받게 할 수도 있다.
분명 똑같은 사안임에도 몇 마디 단어에 따라 뉘앙스가 확 달라지는 것이고, 선의로 한 행동이 기자가 내게 가진 호의와 악의에 따라, 찬사가 되거나 비수가 되어 내 목을 노리게 되는 것이다.
“후배님 이야길 들어보면 정치가 만만한 것이 아니네요?”
“당연한 것 아닌가요? 정치가 쉽다면 그리고 정치를 하기 쉽다면 누구나 덤벼들었겠죠. 그리고 그만큼 권력을 쥐어주지도 않았을 것이고요.”
“그런데 정말 다른 학교에서 정치를 공부하고 온 것 아니에요?”
“저런 것을 가르쳐주는 대학이 있나요?”
“그러게. 도대체 저런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어요? 교수님들도 저런 이야길 하시는 교수님이 없으셨는데.”
이럴 때마다 난감함은 어쩔 수 없었다.
나란 놈이 너무 잘나고 똑똑한 덕분에 혼자서 정치에 대해 공부를 했다고 하면 재수 없는 놈이라고 손가락질할 것이고, 그렇다고 내가 다른 사람과는 달리 전생의 삶에 더해서 한 번 더 새로운 삶을 사는 두 번째 인생을 산다고 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냥 현서 양의 말에, 어색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선거에서 표를 얻는 능력은, 후배님이 우리 아빠보다 훨씬 더 낫겠네요.”
“의원님 생각이 조금만 바꾸시면, 의원님 득표력은 상상 이상이죠.”
“그건 또 무슨 뜻?”
“내가 아침에 의원님께 제안을 하나 드렸었거든요.”
“어떻게요?”
“제가 국회의원 김영범이 아닌, 대권후보 김영범의 참모 역할을 맡고 싶다고요.”
“그럼 서로 좋은 거잖아요?”
“그런데 그 앞에 숙제가 있으니 문제지요.”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내 도움을 받으시려면 일본과 척을 질 각오를 하셔야 한다고 했거든요.”
“아!”
내 말에 현서 양은 우스갯소리로 하는, ‘아!’하고 소위 말하는 ‘바보, 도 튀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정치인과 국가 고위관료들에게, 일본이라는 나라는 한 마디로 딜레마 그 자체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이라는 나라가 신뢰할 수 없는 나라이자, 그 나라의 국민들 또한 마찬가지다.
자기네들이 아쉬울 때는 마치 간이라도 빼내 줄 듯 살살거리다가, 그 상황이 끝이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나오길 일쑤고, 지네들이 힘을 가졌다 싶으면 언제든 우릴 핍박하려는 존재가 바로 일본이니 말이다.
차라리 그런 점에서 볼 때는, 미국이나 북한을 상대하기가 훨씬 쉽고 간명하다.
그들은 그냥 적대시하든지 아니면 우호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한 가지 생각만이면 되고, 그 판단에 따라 어느 한쪽의 지지는 포기하고 나머지 한 쪽 지지만 선택하면 충분하니까 말이다.
그 때문에 정치인들과 정부의 고위 관료들은, 대일 문제에 관해서 만큼은 대부분 일관성이 없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우리 정부의 고위관료와 정치인들의 그런 태도를, 일본은 아주 유효적절하게 이용하고 있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아예 처음부터 일본을 적성국에 준해서 대응하기로 한 것이고, 그런 나의 정치적 정체성을 확실하게 굳히기 위하여, 배우생활을 하면서부터 아예 일본이란 나라를 배척하는 구도로 그리기 위해 작품선택에까지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어! 김 선배! 나중에 이야기 계속해요. 수업에 지각!”
현서 양과 이야기를 하다가, 강의시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었다.
나의 갑작스러운 태도에 황당한 기색을 하고 있는 현서 양을 두고, 나는 마치 100m 달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강의실을 향해 내달렸다.
어제도 한 시간을 쨌는데, 오늘 또 수업을 쨀 수는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