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 김 의원의 딸, 현서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동쪽 하늘이 뿌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김 의원과 나는 밤을 지새우며 정치에 관한 서로의 생각을 교환했고, 또 서로에게 숙제를 남긴 밤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김 의원과 비교하자면, 나는 상대적으로 여유로울 수밖에 없다.
내가 이번 생에서 정치를 다시 하려고 마음먹으면서, 김영범 의원이란 변수를 염두에 두었던 것도 아니었을 뿐 아니라 나로서는 김 의원이 아니더라도 다른 선택지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김 의원이 큰 정치를 꿈꾼다면 그에게 부족한 대중성을 뒷받침해줄 존재가 필요하다는 점이고, 그런 점을 고려한다면 마음이 다급한 쪽은 김영범 의원이라는 점이다.
“의원님하고 둘이서, 밤새 얘기를 했던 거야?”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있었어.”
“그럼 오늘 학교는 어쩌려고?”
“수업시간에 조는 한이 있어도 출석은 해야지.”
도저히 운전할 상태가 아니었기에 상호를 불렀다.
“그런데 의원 사모님 정말 요리를 잘하시더라.”
“왜? 갑자기 요리 잘하는 분이 부러워?”
“솔직히 그렇잖아. 결혼한 새댁이 밥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손가락질할 거잖아?”
“누가 서예나 배우가 밥을 하지 못한다고 타박해. 그런 엉뚱한 걱정은 하지 마시고, 영화 준비나 제대로 해.”
사람이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아무리 타고나기를 재주가 없게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배우고 노력한다면 맛있게 하는 것을 모르겠지만 그냥 밥을 짓고 반찬 만드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배우로서 최고 상한가를 달리는 예나에게, 연기연습 대신에 요리를 잘하게 강요하는 것은 재능의 낭비다.
“나도 다른 여자들처럼 자기에게 된장찌개도 끓여주고, 맛있는 반찬도 만들어주고 싶거든.”
“연기는 어쩌고?”
“이번 영화만 하고 당분간 연기활동은 쉬고 싶어.”
“그 얘기는 지난번에도 했었다.”
“이번엔 경우가 다르잖아.”
무슨 말인지 대충 이해가 되는 말이었다.
사실 예나는 연기활동 대신에, 빨리 임신해서 아기를 낳아 기르길 원했었다.
그런데 내가 황우 감독님 영화에 오디션을 받으러 간다고 하자, 그 오디션에서 내가 캐스팅되지 못할까 봐 걱정된 것인지 예나가 먼저, 황우 감독님 영화에 자기도 출연하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예나는 내가 그걸 알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지만, 그 정도로 눈치가 없지도 않고 또 예나 도움이 없더라도 충분히 캐스팅될 자신이 있었기에, 그 문제로 크게 자존심 상해할 일도 아니었다.
“아빠하고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예? 일은 무슨 일이요?”
“아니 아빠가 후배님 가고 난 후에도 한참 동안 출근도 하지 않고 멍하게 계셔서, 두 분 사이에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가 해서요.”
3교시 수업을 마치고 잠시 쉬고 있는데, 현서 양이 찾아왔다.
“후배님.”
“예.”
“아빠가 선거 도와달라고 해서 거절했죠?”
“예?”
“솔직하게 얘기 해봐요. 솔직히 요즘 우리 아빠가 고민이 많았었거든요. 그런데 어제 후배님이 아빠 눈앞에 딱 나타났으니, 아빠로선 이게 웬 귀인인가 싶었겠죠.”
“귀인은 무슨. 제가 그 정도 수준이 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우리 아빠의 가장 취약점이 뭔지는 알죠?”
이 친구가 뭘 알고 나를 찾아온 것인지 아니면 아버지인 김 의원의 사주를 받아서 나를 간 보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의원님께 취약점이라도 있나요?”
“정말 그걸 모르고 그래요?”
“내가 모르는 약점이 따로 있나 해서요. 일단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서 기본을 하려면, 국방의 의무를 완수하셔야 하는데 병장 만기 전역을 하셨고, 음주 운전 전과도 없으시고, 그렇다고 세금을 떼어먹거나 연체하셨을 리는 없으실 텐데요.”
“정치인으로 매력이 없잖아요. 솔직히 요즘 애들이 보면 딱 ‘꼰대’ 그 자체가 우리 아빠니까.”
“왜 그렇게 생각해요?”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딱 보면 그렇잖아요. 생기기엔 희멀건 하게 생기기도 했고 웃는 모습도 호감 상이지만, 막상 이야기를 해보면 진지함 그 자체인데 그런 사람을 누가 좋아해요?”
“반대로 생각하면, 그런 면이 오히려 강점이 될 수도 있어요.”
김 의원의 생각인지 아니면 딸인 현서 양의 생각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현서 양의 말은 사실이었고 또 본질을 꿰뚫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요즘 시대에 진정성만으로는 성공한 정치인이 되긴 힘들잖아요. 지역구 국회의원에 만족하는 사람이라면 적당한 정치력과 커리어면 충분하겠지만, 그 이상을 욕심내는 것은 불가능하잖아요.”
“그 이상이라니요?”
“대통령!”
“예?”
현서 양 입에서 대통령이란 단어가 튀어나왔다.
물론 정치인 딸 입에서, 대통령이란 단어가 나오는 것이 딱히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농담처럼 이야기할 때와 지금처럼 진지한 분위기에서 내뱉는 단어의 무게는 확연히 다른 법이고, 또 그 단어가 가지는 무게를 생각한다면 쉽게 언급하기 힘이 드는 단어이기도 했다.
“후배님은 의원님이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쇼나 할 줄 아는 딴따라들보다는, 차라리 우리 아빠가 훨씬 더 국민과 우리 대한민국을 위해 이익이라고 생각해요. 막상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나란 개인은 한동안 죽은 듯 숨죽여가면서 숨어 지내야 하겠지만.”
“왜 숨어서 지내요?”
“그걸 몰라서 물어요? 만약 대통령에 당선이라도 된다면 저쪽 사람들이 가만히 놔둘 것 같아요? 별의별 소문을 만들어 내고, 정말 일반인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아닌 것을 침소봉대해서 죽이려고 난리를 칠거잖아요.”
“그런 것까지 알면서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막 해도 돼요?”
정치인의 자녀로 태어나서 삐뚤어지지 않고, 그렇다고 정치를 외면하기보다는 오히려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정치외교학과를 지원한 사람이라면, 그 정도 생각은 가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우리 아빠 종교가 뭔지는 알아요?”
“그것까지 알아야 해요? 솔직히 의원님에 대해서는 인물 검색에 나와 있거나 기사화된 것 이외에는, 딱히 관심이 없었습니다.”
“우리 아빠가 롤 모델이라면서요?”
“정치인 김영범이 롤 모델이지 개인 김영범이 롤 모델은 아니거든요.”
“그러시구나. 정말 갑갑할 정도로 닮았네요.”
“뭐가요?”
“나는 정치를 하는 사람에게, 종교도 선거전략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우리 아빠는 그건 아니라고 하시니.......”
“그건 또 무슨 말인가요?”
사실 김 의원의 종교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어젯밤 그의 집 현관에서 마주 보이는 벽의 십자고상을 보고서도, 김 의원의 종교가 가톨릭이라는 사실을 눈치를 채지 못했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종교까지 알고 있다고 인정하면, 내가 김영범 의원에 대해서 너무 세세하게 알고 있다는 뜻이 될 것이고, 자칫 그게 나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거짓말은 한 것이었다.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많이 믿는 종교가 뭔지는 알고 있어요?”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불교와 기독교 아닌가요?”
“그럼 그중에서 충성도가 가장 종교는요?”
“그거야 당연히 기독교죠.”
“잘 아시네요. 후배님이 나중 정치를 하실 생각이고 딱히 믿는 종교가 없다면,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종교는 무조건 기독교를 선택하세요.”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아니 아무리 정치인을 아버지로 둔 딸이라고 하지만, 이제 겨우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인 친구가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정치 아니 선거에 대해 제법 센스가 뛰어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나는 모르는 척 낚싯밥을 던져보기로 했다.
“그럼 의원님은 어느 교회에 나가세요? 서면 교회요?”
“하~아~ 아빠가 교회에 나가면 제가 이러겠어요?”
“그럼요?”
“정치와 종교는 다른 것이고, 종교를 정치에 이용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하는 분이니까 탈이죠. 학교 졸업하고부터 계속 정치를 하신 분이, 순진한 초등학생도 아니고......”
“종교야 의원님 말씀대로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 아닌가요? 굳이 정치하고 신앙을 연결시킬 필요까진 없고, 또 강요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요.”
“누가 진짜 믿으래요? 개신교회에 확실한 표가 많으니까 교회에 다니는 척하란 거죠!”
답답한 소리에 제법 뿔이 난 모양이다.
“다음 선거에서 당선된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금처럼만 하시면 다음 선거에서도 당선은 무난하실 거예요. 하지만 진짜 아빠가 원하는 큰 정치를 하시려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에서는 다 받아야 하는데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개신교회이잖아요. 그리고 그쪽 사람들은 목사님이 하는 말은 아예 하느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니.”
“......”
“도대체 똑같은 하느님을 믿는 곳인데, 하필이면 표도 되지 않는 성당을 고집하시는지.......”
구교인 가톨릭교회와 신교인 개신교회는, 성향에서 제법 많은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신자 숫자와 결집력을 생각하자면, 개신교회가 현서 양의 말처럼 훨씬 압도적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런 현서 양의 생각에 동의할 수는 없었다.
“종교가 꼭 선거 결과를 좌우하진 않아요. 물론 어느 정도 영향은 있겠지만 그 정도 차이는 극복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요?”
“왜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가요?”
“아무튼 그 문제에 관해서 괜히 속 끓이실 이유는 없습니다. 지금에 와서 개종하신다고 한다면 오히려 역풍이 불수도 있거든요.”
“누가 우리 아빠 얘기래요? 후배님보고 고민해서 종교를 잘 선택하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전 종교를 가질 생각이 없습니다만......”
“왜요?”
이전의 생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생에서도 나는 딱히 종교를 가질 생각이 없었다.
황당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사람들이 믿는 종교란 것이, 모두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고,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는 자들의 현실도피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어느 한 종교에 속해(?) 있으면,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배척의 대상이 될 수도 있으니, 종교를 가지거나 그 종교를 선거에 이용하려는 것은 오히려 어리석은 선택이라 생각하고 있다.
예전 4대강 사업으로 나라를 온통 뒤집어 놓은 대통령이란 작자가, 지나치게 자기가 믿는 종교를 내세운 덕분에 국민의 민심이 반으로 나뉘고, 그자가 믿는다는 기독교가 ‘개독’이라는 소리까지 듣지 않았던가 말이다.
결국 그것은 자기가 속한 종교집단을, 그리고 자신이 믿는 신을 욕보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말도 맞네요. 그런데 극렬한 Anti가 없으면, 적극적인 지지층 또한 없단 사실은 알죠?”
“당연히 그 정도는 압니다.”
“그럼 그 말을 거꾸로 하면요?”
아무래도 이야기가 많이 길어질 것 같았다.
그리고 아까부터 이야기의 주인공이, 자기 아버지가 아닌 나로 옮겨진 것 같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