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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가 정치도 잘한다-94화 (94/132)

〈 94화 〉 롤 모델(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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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시간이.......”

“어! 아이쿠 이거 미안합니다. 젊은 분들을 잡고 내가 너무 떠들었네요. 오랜만에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났다 싶어서요. 서 배우님 정말 미안해요.”

“아니에요. 저도 사모님께 좋은 이야기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돌아가기엔 시간이 너무 늦은 것 아닌가요? 한 배우. 밤이 늦었으니 특별히 바쁜 일이 없다면, 우리 집에서 자고 가는 것은 어떤가? 비록 집이 옹색하긴 하지만 손님방은 준비되어 있으니 말일세.”

사실 나는 김영범 의원과 이야기를 좀 더 나누고 싶었다.

오랜만에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없었다고 김 의원께서 말하셨지만, 그 점에 있어서는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생과 이번 생에서 만난 사람 전부를 떠올려 봐도, 김 의원처럼 우리 정치현실에 관해 이렇게 깊이 고민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기에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예나가 문제였다.

어차피 양산 집으로 가봐야 누가 우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니, 이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는 것이나 집으로 돌아가서 잠을 자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잠자리 문제에서만큼은, 예나를 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나를 만나기 전까지 예나는 예전의 기억 때문에, 쉽게 잠이 들지도 못해서 불면증에 시달렸을 뿐 아니라, 심지어 가위에 눌리기까지 했었으니까.

앞으로 언제 또다시 정치에 관한 이런 좋은 이야기를 듣고 또 내 생각을 이야기 할 기회가 있을지 몰라도, 나의 이런 단순한 욕심 때문에 예나를 힘들게 만들 수는 없었다.

“의원님, 말씀은 고맙습니다. 저야 밤을 새우면서라도 의원님의 좋은 말씀을 듣고 배우고 싶지만, 제 집사람이 낯선 곳에서는 잠을 쉬이 들 수 없는 형편이어서요.”

“여보, 맞아요. 서 배우님 예전부터 불면증이 심하다는 기사가 나왔던 적도 있어요. 서 배우님이 국화차를 즐겨 마시는 이유도, 바로 그 불면증 때문이었다고도 했고요.”

대부분 여자는 예쁜 여자를 보게 되면 질투를 하게 된다.

그리고 여자들은 잘생긴 남자 배우에 대해서는 엄청난 관심을 보이고 열광하지만, 예쁜 여자 배우에 관해서는 관심도 별로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싫어하고 미워하는 경우까지 있다.

그런데 스스로 자기 얼굴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여자는, 그런 일반적인 생각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모양인지, 김 의원의 부인은 예나의 과거 인터뷰 기사 내용까지 기억할 정도로, 정말 예나의 열정적인 팬이었던 모양이다.

“자기, 난 괜찮아요. 나도 사모님께 좋은 이야기를 더 듣고 싶으니, 자기도 의원님과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다면 그렇게 해요.”

“정말 괜찮겠어?”

예나가 나를 배려해서 이러는 것인지 아니면 예나 말대로 정말 마음이 편해서 이렇게 이야기하는지, 그걸 확인하기 위해 예나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봤더니, 예나는 정말 편안하고 즐거운 표정이었다.

이렇게 편안한 상태라면, 굳이 이 새벽 시간에 양산까지 갈 이유는 없었다.

강의에 출석하기 위해 예나를 혼자 집으로 보내려면, 상호를 학교로 오게 하면 될 테니 말이다.

“자~ 이제 편한 마음으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보소~ 간단한 안줏거리 좀 없겠소? 이렇게 만난 것도 좋은 인연인데, 한 배우하고 와인이라도 간단하게 한잔 해야지.”

지역구 국회의원이 여의도 의원회관이 아닌 지역구에 내려와 있는 것을 보면, 김영범 의원 또한 크게 바쁜 일정이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김영범 의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뒤쪽 베란다 쪽으로 가더니, 와인을 한 병 가지고 나왔다.

그런 사이에 김 의원의 부인과 현서 양은, 주방으로 가서 우리가 집어먹을 안줏거리를 챙기고 있었다.

“한 배우 자네도 알겠지만, 국회의원이란 직업이 돈이 되는 직업은 아닐세. 자네가 마시던 와인보다는 격이 떨어질 테지만, 이게 우리 집에서는 가장 좋은 와인이니 이걸로 우리 인연을 축하하세나.”

예나야 어린 시절부터 아주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고 또 배우로서 인기를 누린 덕분에, 와인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또 어떤 와인이 좋은 와인인지 잘 알고 있겠지만, 내가 와인에 대해 아는 것은 크게 없다.

그리고 그것은 내 전생에서도 마찬가지였는지, 내가 주로 마시던 술은 가장 서민적이랄 수 있는 소주였기에, 와인이야 어떤 것이든 무방했다.

그냥 술이란 좋은 사람끼리 모여 앉아 즐거운 분위기에서 마시는 그것으로 좋은 술이 되는 것이고, 아무리 값비싼 술이라고 하더라도 불편한 자리에서라면 막걸리만도 못한 것이 술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두 분 말씀 나누세요. 우린 여자끼리 안에 들어가서 편하게 얘기하려고요.”

다섯이 모여 와인으로 건배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의원 부인은 예나와 현서 양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럼 한 배우 자네는, 지금 이 시국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나?”

“우리 국민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한 번은 또다시 강력한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재임 기간에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조금은 강력한 정책으로 국정을 주도해가면서 분위기를 쇄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네 말대로 한다면, 국민은 또다시 대통령 탄핵이니 뭐니 하면서 대통령을 아예 식물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할 텐데?”

“그러니 아예 그런 불만을 폭발시키지 못할 정도로, 헌법상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을 최대한 이용해서 권력을 행사한다는 쪽이 아닌, 휘두른다는 쪽으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현실 정치인인 김 의원으로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었다.

권력이란 것이 쓰기에 따라서는 주방에서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칼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살인 무기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독재자가 아닌 대부분 정치인은, 그 권력이란 칼을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흉기가 아닌 주방에서 가족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도구로 사용되길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부분에 관한 내 생각은 달랐다.

그리고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형성의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에서 기인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의원님께서는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제대로 된 민주주의라고 보십니까?”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예전 선배들이 민주주의에 관한 공부를 할 때,  ‘민주주의란 피를 먹고 자란다.’라는 말을 자주 듣고 그 말을 신봉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은 맞는 말이네. 그리고 신봉하기 보다는 민주주의 역사를 돌아보면,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도 하고.”

“그런 관점에서 우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올바르게 형성된 민주주의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게....... 음....... 자네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관해서,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나?”

김영범 의원은 분명 정치인이 맞았다.

그것도 지독할 정도로 정치적인 사고를 지닌 그런 정치인.

그랬기에 이렇게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조차 자신이 가진 속내를 완전히 털어내질 못하고, 오히려 내게 내가 왜 그런 생각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를 되물어오는 것이다.

“의원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지 몰라도, 저는 1990년 2월에 있었던 민정당과 민주당 그리고 공화당의 3당 합당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기형적 발전을 가져오게 한 원흉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지금 이 문제는,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김영범 의원에게는 아주 예민한 문제일 수가 있다.

어쩌면 지금 이 말로 인하여 김영범 의원과 아예 척을 지게 될 가능성도 있겠지만, 이 양반과 정치적 노선을 같이하고 함께 가려고 생각한다면, 우선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이 건에 관한 논의를 젖혀두고 넘어간다면, 화장실에 갔다가 뒤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나온 것처럼 찜찜함이 계속 남아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맞지나 않을까 하고 항상 뒤를 경계하는 그런 심정일 테니까.

그리고 어쩌면 지금 내가 이야기한 이 사건은, 김영범 의원의 정치 이력에는 옹이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한 배우 자네 생각 이상으로 과격하기도 하고, 남의 상처를 후벼 파는 재주도 있구먼.”

“그렇게 받아들이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먼저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이기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자네 혹시 담배 태우나?”

“자주 피우는 것은 아니지만, 이따금 피우기도 합니다.”

“잠시 밖으로 나가지. 갑자기 담배 생각이 간절해지는구먼.”

김영범 의원의 지금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기에, 나는 대답 대신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우시게.”

“괜찮습니다. 편하게 태우시지요.”

아무리 담배가 기호식품이라 강변한다고 하더라도, 처음 본 사이이기도 했고 나보다 연배가 있는 양반인데, 맞담배를 할 수는 없었다.

“후~우~ 이렇게 조용한 밤에, 혼자 담배 한 모금 빨아들이는 시간만큼 마음 편한 시간도 없지.”

“........”

“자네에게 내가 롤 모델이라고 하니, 내 정치 이력에 관해서는 대충은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네.”

“예. 바깥으로 알려진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알고 있습니다.”

“내가 정치판에 처음 발을 디딘 곳이, 당시 제1야당이었던 지금 내가 속한 이 당일세. 그리고 당시 내가 모셨던 분이, 우리 대한민국의 민주인사를 대표하던 두 분 중에서 한 분이셨고.”

당연히 잘 알고 있는 일이다.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지금 김 의원께서 이야기하는 그 사람을 모른다면, 그 사람은 뉴스조차 접할 수 없는 심산유곡에 사는 사람이든지 아니면 세상과 담쌓고 사는 사람일 테니까.

“예.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양반의 꿈이, 이 대한민국이란 나라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을 군사독재 정권의 마수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었지.”

“.......”

내가 알고 있기에도 김영범 의원이 지금까지 한 말은 맞는 말이다.

김 의원이 모셨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에서 절대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는 그 양반 또한, 1990년 당시까지 만해도 방금 김 의원님 이야기처럼 그 양반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3당 합당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 DJ와 YS는, 나 도한 존경하던 정치인이었던 것이 분명했으니까.

“지금도 난 그 당시의 선택을 후회하진 않네. 그때가 내가 정치에 입문하고 얼마 되지도 않았던 시기이자 또 내가 그 양반을 보좌하는 보좌진 중에서는 막내였기도 했기에, 내 의견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었던 때였기도 했지만 말일세.”

당시의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은 했지만, 후회 대신에 회한은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김 의원은 표정에서 읽히는 느낌이다.

후회와 회한의 어감이 비슷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분명 두 단어의 숨은 뜻이 똑같지는 않은 단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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