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 김 선배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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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배, 집이 부산이 아니죠?”
“어떻게 알았어요? 억양 때문에?”
“예. 경상도 억양이 아니라 위쪽 억양이어서요.”
“맞아요. 나도 서울서 왔어요.”
“선배님은 무슨 이유로요?”
“공부를 못해서 in 서울 하지 못한 이유겠죠.”
“정말이요?”
어디 믿을 구석이라도 있는 것처럼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그 표정은, 김현서란 이름의 이 친구가 부산으로 유학(?) 온 이유가, 방금 본인이 한 말대로 성적 때문은 절대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성적 모자라서란 핑계까지 댈 때는, 진짜 이유를 가르쳐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뒤에 숨겨져 있을 것이기에, 더는 그 문제에 대해 알아보는 것을 단념했다.
“한 배우님, 우리 호칭을 좀 바꾸는 것이 어때요? 앞으로 서로 얼굴을 보지 않을 사이도 아니고, 싫든 좋든지 간에 1년하고도 반은 계속 학교 안에서 얼굴을 봐야 하잖아요. 또 내가 알기로 한 배우님 나이가, 저보다는 조금 많으신 것으로 알고 있고요.”
“예. 선배님보다는 아주 조금 많은 늙다리 맞습니다.”
사실 말하기 불편하다는 점은, 김현서란 이 친구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도 정말 불편했다.
내가 20대 초반에 초등학교 앞에서 떡볶이나 먹고 있었을 친구에게, 선배님이라고 부른다는 것이 영 거북했다.
그랬기에 김현서 이 친구가 호칭을 정리하자는 말은, 나로선 불감청고소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말을 넙죽 받아먹을 수는 없었기에, 슬며시 한 발은 뒤로 물렸다.
“하지만 선배님 말처럼 하려면, 먼저 서로에 대해서 기본적인 것은 알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인간관계가 제대로 유지가 되려면, 먼저 서로 간에 어느 정도 신뢰가 담보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좋아요. 한 배우님이 저한테 궁금한 것이 뭔데요?”
“김 선배님이 부산으로 내려오신 진짜 이유요.”
“하~아~ 우리 한 배우님, 집요한 성격도 있으시네요.”
내 말에 김현서란 이 친구는, 나이답지 않게 한숨까지 내쉰다.
그리고 어투 또한 보통의 대학 3학년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정도로, 흔히 이야기하는 ‘노숙하다’고 하는 분위기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답이 곤란하시다면 억지로 요구하진 않겠습니다.”
“알았어요. 우리 아빠 때문에 부산으로 내려왔어요. 그리고 대학을 서울로 가려니까 서울대 갈 것이 아니라면, 부산에 있는 대학에 입학해서 학교에 다니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강요도 받았고요.”
“아버님 때문이라고요? 직장인이 지방으로 발령을 받더라도, 가족까지 이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나요?”
지방에 근무하다가 서울로 발령을 받아가는 사람 중에는, 서울에 집을 구할 정도만 된다면 가족 모두가 이사를 하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반대로 서울 근무자가 지방으로 발령을 받는다면, 불편하더라도 혼자 내려가 지내지 가족까지 이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이 집은 어찌 된 일인지 가족이 이사를 왔을 뿐 아니라,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이 가능할 성적의 딸을 부산에서 다니게 했다는 점이다.
솔직히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김현서 이 친구의 말에 약간의 과장이 있거나, 아니면 아버지 되는 사람이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서울에서 살 형편만 되면 너나없이 서울로 가기 위해 눈이 벌게져 설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자식을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방학이면 강남에 있는 입시학원에 보내려고 있는 돈 없는 돈을 끌어대는 것이, 우리 대한민국 현실이다.
“회사에서 보낸 것이 아니라, 아빠 스스로 부산으로 내려오려고 하셨거든요. 그게 문제죠.”
“예? 아버님이 스스로 부산으로 내려오셨다고요?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죠?”
“솔직히 말하자면 그러네요.”
“충분히 이해해요. 저도 우리 아빠지만 정말 무슨 마음인지 이해가 되지 않으니까요.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있으면 맞는 말씀을 하신다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지는데, 막상 그 순간만 지나면 화가 나기도 하고......”
“혹시 선박건조나 물류 쪽 일을 하고 계십니까?”
서울에 본사를 두고 부산에 그럴싸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는 업종이라고 해봐야, 조선소 아니면 항만물류를 취급하는 회사 말고는, 대부분의 부산지사는 허울만 지사일 뿐이지 껍데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본인이 자청해서 부산에 내려왔다면, 완전히 현장체질인 사람이거나 자기가 전권을 쥐고 어떤 일을 처리하겠다는 욕심이 강한, 그런 사람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치요.”
“예?”
“정치인이라고요. 한 배우님이 정치에 관심이 많으시니 알 수도 있고, 또 그다지 대중성이 있는 정치인이 아니어서 모를 수도 있고......”
“혹시.......”
정치인이라는 말에, 김현서 이 친구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서울에서 재선 국회의원까지 지내고, 당내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이유로 불출마 선언을 하고서는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와, 지역에 천착하는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살겠다고 선언한 사람.
바로 그 사람이었다.
당시 그 양반이 부산에 내려오면서 일가족을 모두 끌고 이사를 한 덕분에, 지역신문에 그 내용이 제법 상세하게 소개되었던 적이 있었다.
물론 나는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기사로 그 내용을 접했던 것뿐이었지만.
하지만 그의 정치 행보가, 내가 결혼 후에 양산으로 내려오게 된 계기로 작용한 것도 맞다.
“왜 웃으세요?”
내가 그 생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내 얼굴에 미소가 돌았던 것인지, 김현서 이 친구가 뾰족한 목소리를 낸다.
“김 선배님. 제가 왜 양산으로 내려온 것인지, 그 이유를 아세요?”
“거기에도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당연하죠. 김 선배 아버님에 관한 기사를 보고, 나도 내 부모님 고향인 양산에서 양산시민으로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 내려오게 된 겁니다.”
“정말이요?”
“예. 양산으로 내려온 이유가, 오롯이 김영범 의원님이 말씀하신 지역 천착이란 그 단어 때문이거든요.”
김현서 이 친구의 부친인 김영범 의원은, 부산으로 내려온 후 한 차례의 낙선의 고배를 마시고, 두 번째 도전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리고 이제는 한 번만 더 부산에서 국회의원총선거에서 당선된다면, 차기 대권 주자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는 잠룡이다.
그리고 나는 이 양반이, 현재 우리 대한민국 국회에서 몇 남지 않은 제대로 된 정치를 하는 정치인이라 평가한다.
김영범 의원이 죽어가는 부산을 살리겠다면서 부산으로 지역구를 옮긴다는 기사를 접한 나는, 그때부터 이 김 의원에 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그의 정치 행보 중에서, 우리 정치가 가장 화려하게 꽃피웠던 이른바 3김 시대에 정치를 제대로 배운, 몇 남지 않은 사람 중 하나임을 알게 되었다.
“정말 우리 아빠를, 그렇게 생각하시고 계신다는 거예요? 제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요?”
“집사람에게 직접 확인시켜 드릴까요?”
“예? 집사람이라면 서예나 배우님이요?”
“그럼 제 집사람이 예나말고 누가 있습니까. 결혼하기 전에 예나를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김 선배님 부친이신 김 의원님이시고, 그분이 제 롤 모델이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제 집사람이니까요.”
“정말 배우님같이 그렇게 생각하시는 사람이 있을까요?”
“당연히 많이 있죠. 만약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다른 지역도 아닌 부산에서 김 의원님이 3선에 성공하셨겠습니까?”
내 말이 내심 반가웠던 것인지, 표정이 아까보다는 훨씬 많이 풀어져 있었다.
“그런데 서예나 배우님은 정말 화면에서만큼 예쁘세요?”
“예쁘고 예쁘지 않고는 상대적 아닌가요? 제 눈에야 예나 눈에 눈곱이 껴 있어도, 예쁠 테니까요.”
“그렇긴 하겠네요. 나중에 나도 서예나 배우 얼굴을 볼 수가 있다면 좋겠다.”
“제 팬이 아니셨어요?”
“팬은 무슨 팬이요. 내 나이가 몇 갠 데. 그냥 앞으로 잘 나갈 가능성이 있는 배우가 갑자기 왜 부산으로 내려와서, 다른 과도 아닌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는지 그게 궁금해서.......”
“그런데 집사람은 보고 싶으시다는 그 말이죠?”
“대한민국 사람 중에서, 서예나 배우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있기나 하겠어요?”
“오늘 강의 몇 시에 끝나세요?”
“나 오늘 수업은 끝났어요. 왜요?”
“그럼 도서관에서 한 시간만 기다려주세요. 다른 약속이 없으시다면.”
“오늘 친구하고 오후에 영화 보러 가기로 했는데.......”
예나를 좋아한다는 말과 또 이 친구가 내 롤 모델인 김영범 의원의 딸이란 사실 때문에, 갑자기 기분이 업 되어서 집으로 초대할까 했더니 친구하고 영화를 보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왜요? 왜 한 시간만 기다리라고 하셨어요?”
“약속이 없으시다면 우리 집에 초대할까 했었거든요. 다음에 하면 되죠.”
“정말이요? 한 배우님 집으로 가면 서예나 배우를 볼 수가 있어요?”
“집사람이 집순이여서요.”
그러자 이 친구가 허겁지겁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고, 그 전화를 받는 대상이 같이 영화를 보러 가기로 한 친구였는지, 오늘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던 약속을 미루자고 한다.
“됐어요! 우리 가요!”
“예?”
“방금 전화 통화하는 것 들으셨잖아요. 친구하고 약속 쨌으니까 한 배우님 집으로 가자고요.”
정말 조금 전까지 조신한 모습을 보였던 그 친구가 맞는가 싶었다.
조금 전 내가 한 말은 귓등으로 들었던 것인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기더니 우리 집으로 가자고 떼를 쓰고 있는 것이다.
“김 선배님. 저 아직 강의가 한 시간 남았습니다.”
“그냥 한 시간이야 째면 되죠.”
“이미 2교시 쨌거든요. 자칫하면 저 학점 날아갑니다.”
“에이~ 한 배우님 정도면 교수님들이 알아서 잘 봐줘요. 아예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알아서 길 교수님이, 얼마나 많은 데요.”
“그게 특혜이자 비리 아닙니까?”
“그건 맞죠. 그래서 저도 가능한 한, 학교에서는 아빠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아무튼 김영범 의원께서, 자식 교육은 제대로 시켰다는 생각이다.
명색이 3선 국회의원의 딸이면서, 그것을 감추고 아르바이트를 해가면서 용돈을 충당하는 것이 생경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사실 재벌이나 잘 나가는 정치인을 비롯한 가진 자들의 경우, 바쁘다는 핑계로 대부분 가정을 등한시한다.
그런 이유로 자식들이 어긋나는 경우가 많은데, 최소한 김현서 이 친구는 그런 일반적인 경우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았다.
아무튼 이 친구를 집에 데리고 가기 위해서는, 우선 예나의 허락부터 받아야 했다.
“여학생 한 명이라고?”
“응, 학과 선배인데 당신을 엄청 보고 싶어 하던데?”
“그럼 자긴 앞으로도 날 보고 싶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들을 모두 집으로 초대할 거야?”
“일이 그렇게 되나? 그럼 일이 생겼다고 핑계를 대고 오늘은 안 된다고 거절할까?”
“치! 이미 약속을 해놓고선 그걸 깨면 어떻게 해. 그런데 어떻게 알게 된 아가씨인데?”
괜히 오해받을 일을 만들지 않으려면 가능한 한 상세하고도 솔직하게 설명하는 것이 현명했기에, 진호에 관한 이야기까지 예나에게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