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 기본은 갖추자.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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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진호가 내 충고를 듣고 고깝게 여긴다면, 3년 반 정도 남은 내 학교생활이 조금 많이 거북할 것이다.
하지만 미래의 나를 위해서도 그리고 진호를 위해서도, 꼭 해야 할 말이었다.
“진호야, 정치하는 사람 그리고 그 정치인을 보좌하는 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것이 뭐라고 생각해?”
“제가 아직 그런 것까지는 알 수가 없잖아요. 그럼 형은 알아요?”
“예전에 정치력으로 우리나라 정치인 중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분을 만나본 적이 있어. 그리고 그분께 들었던 이야기고.”
“뭔데요?”
내가 이전의 생에서 정치인으로 생활하다가, 죽어서 다시 회귀했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솔직하게 이야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진호뿐 아니라 그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고, 그냥 농담으로 치부하거나 아니면 미친놈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랬기에 나는 콕 집어 누구라고 하는 대신에, 정치력이 뛰어난 정치인이라는 평을 받는다는 국회의원에게서 이 말을 들었다고 했다.
“정치인이나 정치인을 보좌하는 보좌진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딱 두 가지라더라.”
“그러니까 그 두 가지가 어떤 건데요?”
“여자 문제하고 돈 문제. 이 두 가지 중에서 단 하나만 걸려서 문제가 되더라도, 그 정치인의 정치인으로 생명이 완전히 게임아웃이라고 하시더라고.”
“에이~ 설마요? 요즘 세상에 여자 문제로, 그런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잖아요. 그리고 대한민국 국회의원 중에서 돈 문제가 깨끗한 국회의원이 몇이나 된다고요.”
진호가 가진 생각은, 내가 예상한 것에서 한 치도 벗어남이 없었다.
지금 저 말은 국회의원이라는 자 중에서, 단 한 사람도 깨끗한 사람이 없다는 말과 다름없는 것이다.
어차피 성이 개방을 넘어 자유분방한 시대가 되었으니, 국회의원들 또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란 것도 일정부분 사실이다.
그리고 돈 문제는 국회의원이 되기 위한 선거 때부터 시작일 것이니, 일반 서민의 관점에서는 크게 잘못된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진호는 유권자의 역할에 만족하는 일반 서민이 아닌, 정치현장에서 살아가겠다고 생각하는 친구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유권자와 동일한 시각으로 정치를 바라본다면 절대 답이 없는 것이다.
만약 저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국회의원 배지에 도전하게 된다면, 돈으로든 협잡을 해서든지 배지는 달 수 있겠지만, 정치인으로서는 완벽한 쓰레기일 수밖에 없다.
“그래 맞아. 정치인 중에서 돈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지. 그리고 여자 문제야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아무도 알 수가 없는 노릇이고.”
“그니까요. 그러니 별 대수로운 문제도 아니잖아요.”
“네 생각은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까 이야기했던 그분의 말에서 아예 하나를 더 추가했다.”
“예? 무슨 말씀이세요?”
“교육에 관한 비리를 추가했거든.”
내가 알고 있는 범주 내에서, 정치인이 정치인으로 삶에 게임아웃 되는 것은 바로 저 세 가지다.
여자에 관련한 문제가 공론화되면, 이길 장사가 없다.
대한민국 유권자의 절반이 여자이고 또 남자라고 하더라도,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가 불륜을 저지르면서도 남의 불륜에는, 손가락질하는 것이 일반적이니 말이다.
오죽하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을 줄여서, ‘내로남불’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냈겠는가 말이다.
그랬기에 대한민국 현역국회의원 300명 중에서 299명이 불륜을 저지르고 산다고 하더라도, 들킨 사람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결국 정치무대에서 퇴출당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돈 문제는, 그보다도 더 엄격하다.
일단 불법 정치자금이 드러나게 되면 바로 검찰에서 나서서 그 실체를 파헤치고, 그것이 사실로 확인이 되면 바로 형사처분을 받게 되어 구속되거나 최소한 벌금형으로 인해, 정치활동 자체가 불가능해지니 말이다.
그런데 교육 문제도, 거기서 절대 자유로울 수가 없다.
대한민국 유권자 중에서 20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본인이 대학입학시험이란 이름의 피 튀기는 경쟁을 하면서 산 사람들이다.
그리고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들은, 자기 자식을 그 피 튀기는 전장 속으로 내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다.
그랬기에 그 경쟁에서 자신의 자식이 살아남는데 장애요소가 되는, 불공정한 사안에 대해서는 더할 나위 없는 분노를 느끼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그 불공정함의 혜택을 받은 대상이 권력을 지닌 정치인이라면, 그들의 분노에 상대적 박탈감이 더해져 그 정치인을 완전히 매장시켜버리기까지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상황들을 진호에게 찬찬히 설명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선수로 뛸 것도 아닌데, 뭐 때문에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세요?”
“네가 보좌진을 하겠다면서?”
“예.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제 꿈이었거든요.”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 보좌진은 정치인과 한 몸이야. 그렇게 보좌진과 선수인 정치인 서로가 공동운명체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고서는, 결코 선거에서 이길 수가 없고. 그리고 설혹 당선 된다고 하더라도,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성공한 정치인으로 남을 수가 없어.”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국회의원과 그 국회의원을 보좌하는 보좌진 사이의 관계다.
그런 이유로 자칫 내 말을 오해를 해서, 나와 인간적인 관계까지 멀어질 수도 있는 진호에게, 지금 이 말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형이 오늘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이유가 뭔데요?”
“너, 나중에 내가 국회의원총선거에 출마하면 나를 돕겠다면서? 그리고 내 보좌관이 되어서 내 의정을 보좌하겠다고 했잖아?”
“예. 당연하죠.”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
“예?”
진호는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되물어 왔다.
“네가 가지고 있는 생각, 그리고 네 입에서 나오는 말을 바꿔야 한다고.”
“어떤 걸 말인데요?”
“다른 것은 아직 내가 겪어보지 못해서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여자와 성에 관한 인식은 바꿔야 할 것 같다.”
“제가 뭘요?”
“너한테 미안한 말이지만, 넌 농담처럼 성적인 발언을 자주 하는 경향이 있어. 솔직히 결혼한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넌 이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한 1학년이야. 그리고 사회 통념상 미성년자를 막 넘긴 성인이기도 하고.”
“에이~ 요즘 애들은, 저하고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성에 빠삭해요. 그리고 여자애들 섹드립도 장난이 아닌 걸요.”
진호는 지금 상황을 전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또 받아들일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진호야. 네가 정치 쪽에서 일할 생각이 없다면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정치 쪽에서 일하려는 생각이라면, 지금 네가 가진 생각은 아주 위험하다.”
“왜요?”
“쉽게 예를 하나 들어볼게. 학교 선생님이 어떤 사람들이야?”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요.”
“또?”
“그것 말고 또 있어요?”
“학교에서 지식을 전수하는 일은, 선생님들이 하시는 일 중에서 일부야. 물론 요즘 학교가 조금 이상하게 바뀌어서 뭐 그런 것까지 요구하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겠지만, 선생이란 단어의 본뜻을 생각한다면, 지금 학교를 바라보는 대부분 시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겠지.”
“예?”
“선생님은 영어 단어 하나, 수학 공식 하나를 가르치고 전수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알려주는 분들이라는 말이다. 그냥 쉽게 ‘착하게 살아라.’라든지 아니면 ‘도둑질은 하면 안 된다.’라든지 하는, 그런 간단한 것부터 시작해서.”
“......”
“그런데 그런 선생님이, 만약 자기가 가르치는 제자에게 못된 짓을 했다고 한다면 어떻겠니?”
“어떤 못된 짓이요?”
“네가 별것 아니라고 하는 섹드립을 해서 성희롱을 한다든지, 아니면 그 이상의 행위를 한다든지 하면 말이다.”
“그건 선생이 아니라 개새끼죠.”
갑자기 진호의 감정이 격해졌다.
진호가 지금 보이는 반응은, 진호가 아닌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이따금 현실에서 벌어져 기사화되기도 하고, 그 선생이란 자는 법원의 판결로 감옥생활을 하게 되된다.
그리고 본인이 수감되어 있는 동안, 그 가족은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에 시달려 이사를 하거나,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기도 한다.
학생들을 보호해줘야 할 선생님이 학생을 대상으로 그런 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일반 직장인의 행위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국민의 안녕을 보호 해줘야할 의무를 지닌 경찰관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이 배가 고프든지 아니면 다른 이유로 남의 집 담을 넘거나 법으로 금지된 행위를 하게 되면, 법에서 정한 합당한 형량을 받는 것 말고는 특별히 심한 비난을 받지 않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의무를 지닌 경찰관이 그런 범죄를 저지르게 되면, 그 사안의 정도에 따라서는 그 당사자인 경찰관뿐 아니라 아예 경찰조직 전체가 휘청거리기도 하는 것이다.
“형 말이 맞는 말인 것 같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형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힘이 드네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네 생각이 어떻든지 간에, 지금 네가 가진 생각을 그대로 가지고 말을 하고 행동하면서 산다면, 나는 네가 정치판에서 일하는 것을 말리고 싶다.”
“지금 형이 날 까는 건가요?”
“까는 것이 아니라, 네가 지닌 생각 그리고 말과 행동이 나뿐 아니라 다른 정치인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정치인생을 끝장낼 수 있는 위험한 폭탄일 수가 있다는 뜻이야.”
이제야 진호가 내가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눈치를 챈 것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눈치가 없는 진호의 모습을 보고, 나는 진호에게서 또 하나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정치를 하려면 말 한마디를 하면서도, 상대의 말 속에 숨겨진 것이 무엇이 있는지부터 파악할 수 있는, 감과 눈치 그리고 판단력이 필수다.
진호는 인간적인 면에서는, 크게 나무랄 데가 없는 성격이다.
하지만 내가 국회의원총선거에서 당선되고 진호가 지금과 같은 생각을 유지한다면, 과연 그때도 진호를 스태프 중 하나로 흔쾌히 데리고 있을지 그것조차 의문스럽다.
결국 나는 진호의 생각을 바꾸지 못했다.
물론 진호를 설득하기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을 했더라면, 다른 결과를 얻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호가 내 정치인생에서 꼭 필요한 유일한 존재도 아니고, 앞으로 나를 도와줄 사람을 찾지 못할 것도 아니었기에, 굳이 위험을 감수해가면서 안고 갈 생각이 없다는 것이 내 솔직한 마음이다.
아무튼 내 말에 수긍하지 못한 진호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강의실로 올라갔고, 나는 그런 진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커피를 머금었다.
아무래도 지금 이런 기분으로는, 이번 수업시간에는 참석하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