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 새로운 인연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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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무슨 일이야?”
“지금 학교지?”
“응. 장산곶매 동아리에 일이 있어서.”
“그럼 거기서 기자들 좀 만나자. 대표님 지시야.”
지금쯤이면 서울에 도착해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진수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런데 진수는 다짜고짜 기자회견을 하자고 했다.
“갑자기 기자회견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리고 내가 기자회견을 하고 말고 할, 그럴 깜냥도 아니잖아.”
“서울 가다가 돌아왔고, 박 선생님이 기자들에게 사실을 밝혔어.”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일단 내가 지금 그 동아리방으로 갈 테니까, 일단 그렇게 알고 기다려. 지금 기자들에게 바로 연락한다.”
진수는 내 대답조차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잠시 바보처럼 멍해 있다가, 조금 전 진수에게 들었던 말을 하나하나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1. 진수가 서울로 올라가던 도중에, 회사로부터 전화를 받고 다시 양산으로 내려왔다.
2. 어젯밤 나를 주먹으로 친 그 남자의 여자 친구인 박 선생님이, 어젯밤 사건에 대해 기자들에게 사실을 밝혔다.
3. 그 사실을 확인한 회사에서, 내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결정했다.
대충 이 정도일 것이다.
사건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면, 나도 지금부터 기자회견을 위한 정리가 필요하다.
“예? 정말이에요?”
“응, 그렇다고 하네. 나도 자세한 내용은 아직 잘 몰라.”
“그럼 기자회견을 우리 동아리방에서 하시겠다고요?”
“이왕이면 동아리방이 좋지 않을까 해서.”
우선 동아리방으로 돌아와 회장인 은교에게, 신입 회원과의 대화를 이것으로 끝내야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진수를 통해 들었던 이야기를 전하면서, 여기서 기자회견을 할 수 있을지를 물었다.
“기자님들이 몇 분이나 오시는 데요?”
“확실한 것은 몰라. 하지만 부산주재 기자들이야 대부분 오지 않을까 싶네.”
“그러니까 몇 분 정도시냐고요?”
“응, 그러니까 보자. 공중파 방송국이 세 군데니 기자하고 카메라 담당 기사 이렇게 여섯, 그리고 지역 일간지가 두 곳이니 둘, 그리고 중앙 일간지 부산주재기자들하고 통신사에 소속된 기자들을 합하면, 대충 열 명쯤은 되지 않을까?”
“그럼 스무 명 가까이 된다는 말씀이네요?”
“확실하진 않으니 대충 그쯤 될 거야.”
다른 일로 기자회견을 한다고 했다면, 기자들이 그렇게 모여들지 않을 것이다.
내가 영화와 드라마에서 임펙트 있는 연기를 선보이고 있고, 그것 덕분에 대중에게 사랑을 받고 있지만, 기자들에게는 아직 흔하디흔한 신인 중 하나에 불과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사건의 규모와는 무관하게 연예인이 관련된 폭행사건인데다, 대중들의 관음증을 충족시킬 수 있는, 남자 연예인과 일반인 여자의 삼각관계에서 비롯된 사건으로 포장되는 중이었다.
덕분에 사건의 비중과는 무관하게 기자들의 관심이 몰렸고, 기자들은 기사의 트래픽을 높이기 위해 아예 우라까이 기사조차 아닌, 아예 소설을 써가면서 어젯밤의 사건을 확대재생산 하는 중이었다.
그 덕분에 사건은 사건의 본질과는 전혀 상관없이, 단순 폭행사건인 어제 일이 눈덩이처럼 부풀어 가고 있었다.
“그럼 우리 동아리방은, 좁아서 안 되잖아요?”
“응?”
“오빠는 앞에 앉은 상태에서 오빠를 보고 기자님들이 취재를 하셔야 하는데, 그 방에 어떻게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들어가겠어요.”
“그러고 보니 은교 네 말이 맞네. 어쩌지? 그럼 강의실을 빌려야 하나?”
“제가 학생처에 가서, 학생회관 휴게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볼게요.”
은교 말대로 기자가 스무 명이 아니라 열 명만 오더라도, 동아리방이 좁아 그곳에서 기자회견은 불가능했다.
우선 방송국의 카메라를 놓을 공간조차 부족할 것이니 말이다.
“예. 한강숩니다.”
“한 배우님, 정치외교학과 학과장실 조굡니다.”
“예. 선생님.”
“혹시 지금 어디 계세요? 댁이신가요?”
“아닙니다. 학교에 있습니다.”
“잘됐네요. M 방송국 부산본부에서, 한 배우님과 인터뷰를 하자고 하시는데 가능하시겠습니까?”
학과장 교수님 방의 조교 선생으로부터 연락이었다.
아마도 M 본부의 정치담당 기자가 학과장님과 친분이 있었던 것인지, 학과장님을 통해 나와 인터뷰 약속을 잡으려고 한 모양이다.
“그러지 않아도 지금 소속사에서 연락이 와서,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인터뷰가 아니라 기자회견이라고요?”
“예. 어젯밤 일로 기자회견을 해야 할 일이 생겼다고 하네요.”
“그럼 기자회견은 어디서 하시려고요?”
“영화동아리 방에서 할까 하다가 아무래도 장소가 협소해서, 학생처에 학생회관 휴게실 사용허가를 받으려고요.”
“잠깐만요. 금방 다시 전화를 하겠습니다.”
일은 나와 무관하게, 긴박하게 흘러가는 분위기였다.
“형, 동아리방에 지금 계세요?”
“응. 왜?”
“지금 그리로 올라갈게요.”
전화를 끊은 것이 20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진수하고 상호가 도착한 모양이다.
“그건 뭐야?”
“기자님들에게 돌릴 다과요. 다시 내려갔다 와서 말씀드릴게요.”
“가지고 오지 않아도 돼.”
“예? 왜요? 기자회견 하지 않으시려고요?”
“여기 동아리방은 공간이 좁아서 못해.”
“그럼 어디서?”
“진수는?”
“팀장님 운전 실력이라면, 지금쯤 울산 부근을 지나고 있을 걸요.”
정말 느지막이 일어나서 출발했던 모양이었다.
진수가 원래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는 놈은 아닌데, 내가 당분간 활동을 쉰다고 하니 진수 또한 아예 곰처럼 동면에 들어간 것인지........
“형, 여기 프린트를 할 곳이 없겠습니까?”
“뭐 필요한 것이라도 있어?”
“홍보팀에서 보도 자료를 메일로 보내왔거든요. 그런데 주변 피시방에는 흑백 잉크를 쓰는 곳이 없어서요.”
“잠깐만 기다려 봐.”
학생회관에도 복사하는 곳이 있지만, 구태여 수백 장이나 되는 것을 돈을 주고 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상호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학과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가자.”
“어디를 가시려고요?”
“우리 학과 사무실에. 거기 복사기가 깨끗하게 나오거든. 그런데 기자회견은 몇 시에 한다고 해?”
“오후 8시로 잡아 뒀답니다.”
시간은 충분했다.
나는 상호를 데리고, 학과 사무실로 올라갔다.
“안녕하세요.”
“예. 한 배우님 어서 오세요. 복사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
학과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조교 선생님뿐 아니라 학과장님까지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나는 조교 선생님에게 상호를 소개한 후, 학과장님을 따라 학과장실로 들어갔다.
“일이 잘 해결된 모양이더군.”
“예. 저도 조금 전에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무튼 걱정했었는데 잘됐네. 그런데 기자회견을 한다고?”
“예. 회사로부터 연락을 받고 영화동아리 동아리방에서 할까 하다가, 아무래도 공간이 너무 비좁을 것 같아서요.”
“자네가 학생회관 휴게실을 이야기했다면서?”
“예. 기자님들이 편하게 움직이시려면, 공간이 좀 넓은 곳이 필요해서요.”
“그럼 교수회관에서 하는 것은 어떻겠나? 총무처에서도 흔쾌히 사용하라고 하더니만.”
“교수회관 사용이 가능합니까?”
“당연히 가능하지. 총무처 말로는 필요하다면 다과 정도는 학교에서 제공할 수 있다고도 했고.”
“음료수하고 다과로 쓸 과자는, 매니저가 준비해 왔다고 합니다.”
“알았네. 그럼 총무처에 연락해서 교수회관에 준비를 시켜두라고 하겠네.”
아무리 국립대학교라고 하더라도, 학교 또한 장사를 하는 것이다.
물론 돈을 바라고 하는 장사라기보다는, 학교 홍보를 하는 것이 주목적이기 때문이겠지만.
그렇게 교수회관을 기자회견장으로 결정하고, 나는 상호에게 그 사실을 전했다.
이제 기자회견에 관련된 준비는 진수가 학교에 도착하기 전까지, 상호가 학교 총무처와 홍보팀의 도움을 받아 진행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나는 학과장님 방에서, 학과장님과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빠.”
“응, 말해.”
“지난번 영화 찍을 때, 오빠 메이크업을 담당했던 언니가 오셨는데 어떻게 할까요.”
“메이크업 선생님은 누가 불렀어?”
“제가요. 기자님들 오신다기에......”
“지금 우리 과 학과장님 방에 있거든. 바로 내려갈게.”
“아니요. 과 사무실 앞에 있거든요.”
나는 메이크업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는데, 은교가 메이크업 담당자를 호출한 것이었다.
“다른 곳에 갈 필요가 있겠나. 그 학생이 여기까지 왔다면 그냥 내 방에서 하게.”
“그래도 교수님 방에 분칠 냄새가 배게 되면 조금 그렇지 않습니까.”
“그게 뭐 어때서?”
학과장님께서 흔쾌히 이 방에서 메이크업을 받으라고 하셨기에, 나는 은교와 메이크업을 해줬던 아가씨를 방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오빠, 전화 왔는데요?”
“누군지 봐.”
“진수라고 되어 있어요.”
“그럼 네가 받아서, 여기로 오라고 해.”
한창 메이크업을 받는 중이라 내가 전화를 직접 받기에는 곤란했다.
그래서 은교에게 대신 전화를 받아서, 진수를 이곳으로 오라고 했다.
“어! 메이크업을 받고 있었네? 상호가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만.”
“상호가 아니라 이 친구가 모셨어.”
“잠깐, 우선 전화로 양해를 구하고 취소해야겠다.”
학과장실로 들어와 먼저 학과장님께 인사를 한 진수는, 내가 메이크업을 받고 있는 것을 보고 황당해 했다.
그리고 부산으로 오는 도중에 부탁한,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예약을 취소했다.
“그냥 듣기만 해.”
“응.”
“그 박 선생님이라는 분이, 네가 출연한 영화를 보고 그때부터 네 팬이 되었다고 했어.”
“응. 그래서 뭐가 문제가 되었는데?”
“대답하면 화장 엉망 되잖아. 입 닫고 듣기나 해.”
“.......”
“아무튼 그때부터 박 선생님이라는 분이, 네가 나온 방송을 일일이 챙기고 기사들을 스크랩했던 모양이야. 그리고 결정적으로 박 선생님 휴대전화 바탕화면하고 톡 프로필을, 네 사진으로 저장했던 모양이더라고.”
“응.”
“입 열지 마라니까! 여하튼 그걸 보고 어제 널 쳤던 그 사람이, 자기 여자 친구인 박 선생님에게 화를 냈고, 둘이 싸움까지 했지만 박 선생님이 고집을 꺾지 않았던 모양이야.”
“.......”
“그래서 결국 그 남자가 혼자서 망상에 빠져, 박 선생님에게 집착하면서 의심하고 나중에는 박 선생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던 모양이더라고. 그래서 같이 정신과를 찾아가서 진료도 받고 했는데 나아지질 않아, 이미 헤어진 상태라더라. 그러니 두 사람의 관계는 이미 아무 상관도 없는 남이란 말이지.”
진수가 한 말의 결론은, 그 남자는 이미 박 선생님의 남자 친구가 아닌, 단순한 스토커인 것이다.
그렇게 진수의 설명을 듣고, 오늘 기자회견에서 나올 질문 그리고 내가 해야 할 답변에 대해 정리했다.
메이크업을 마친 나는 진수와 함께 기자회견장으로 사용하게 될 교수회관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