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 야! 이 XXX야! (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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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배우님. 가시죠.”
통화를 마치고 돌아오신 변호사님이, 담당 경찰관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서류에 사인한 후에 나보고 돌아가자고 했다.
“어떻게 됐어?”
“아마 곧 나올 거야.”
“그럼?”
“어차피 ‘반의사불벌죄’라고 해서, 이번 사건 같은 경우는 피해자인 내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아 고소를 하지겠다고 하면, 사건 자체가 없었던 것처럼 되거든. 그러니 별일이 없을 거야.”
바깥으로 나오니 경찰서 앞마당에서, 민주를 비롯한 여선생님 몇 분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전 현장에 함께 계셨던 분들이시죠.”
“예.”
“한강수 배우님 소속사의 변호사 김민규라고 합니다.”
“아, 예.”
“조금 전 제가, 아까 사건이 벌어진 가게의 사장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 그곳 CC-TV 카메라에, 당시 상황이 그대로 녹화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하나 부탁을 드리려고요.”
“어떤 부탁이십니까?”
변호사님의 통화가 길어진다 싶었더니만, 아까 우리가 있었던 M 커피숍의 사장님과 통화를 해서 당시 상황이 녹화된 영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셨던 모양이었다.
“아마 지금쯤 아까 벌어진 상황을 찍은 동영상이, 이곳저곳에 유포되어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동영상 댓글에 우리 한강수 배우님을 비난하는 내용의 글들이 제법 올라오게 될 것입니다.”
변호사님이 걱정하시는 것이, 바로 조금 전 일로 해서 내가 받게 될 이미지 손상 그것이었다.
아무리 내가 가해자인 그 친구로부터 일방적인 폭행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그 동영상을 본 네티즌 중에서는 ‘한강수가 저 남자에게 뭔가 잘못한 것이 있으니, 저 남자가 저랬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추측이 하나하나 더해져서 다른 의혹을 재생산하는 등으로, 이번 사건이 일파만파로 퍼질 수가 있다.
“그 댓글들에 대응해달라는 말씀이시지요?”
“송구스럽지만 그렇습니다. 사실 저희 예담기획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공식입장을 내놓기는 하겠지만, 아무리 우리 예담기획이 진실을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대중들은 회사의 공식입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거든요.”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회사의 대응은 신속했다.
민주를 비롯한 선생님들과 헤어지고 회사 홈페이지에 접속하니, 이미 사건의 전반적인 개요에 대한 회사의 공식적인 입장이 올라와 있었다.
거기에다 잠시 후에, 현장 상황을 찍은 동영상을 업로드 할 것이라는 팝업창까지 올라와 있었다.
또한 회사의 견해를 밝힌 공지에는, 이번 사건을 악의적으로 왜곡해서 헛소문을 퍼트리는 사람들에게는 일체의 선처 없이, 엄중한 법적인 책임을 묻겠다는 경고까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A 튜브를 비롯한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는, 당시 현장에서 찍힌 동영상과 함께 그 남자가 내게 주먹을 휘두른 데는, 밝혀지지 않은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성 댓글이 난무하고 있었다.
“내일 오전 실검 1위는 내 이름이겠다.”
“이미 실검에 올라가 있거든.”
“벌써?”
“넌 포털 사이트 접속하면서, 실검 순위도 보지 않아?”
“나야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면 내 이름부터 검색하지.”
“잘났다. 이미 네 이름 아까부터 실검 1위였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가 아무리 Top급에 속한 배우가 아니지만 근래 들어서는 가장 핫한 배우 중 하나인데, 폭력사건에 휘말린 그것만으로도 대중들의 눈길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고로 구경 중에서 불구경과 싸움구경만큼, 재미있는 구경이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거기에다가 요상한 상상을 가능케 하는 여자까지 등장한 상황이니, 대중들의 상상력은 아예 하늘을 뚫을 기세가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아무리 그 여자와는 아무 상관도 없고, 그날 처음 만나서 단순히 커피만 마셨다고 해봐야, 지금 상황에서 내 말을 믿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자기 괜찮아?’
일단 회사에 들렀다가 양산으로 내려가려고 회사로 가고 있는데, 예나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직 안 자고 있었어?”
“자기가 없는데 어떻게 잠이 와. 그런데 정말 괜찮아?”
“괜찮지 않고. 물론 당분간 속은 좀 시끄럽겠지만, 며칠 지나고 나면 수그러들 거야.”
“혹시 경찰서에 잡혀 있는 것은 아니지?”
“경찰서에는 왜 잡혀 있어. 그 친구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나와서, 지금은 회사로 가는 길인데.”
“왜? 자기가 맞았잖아? 그런데 왜 가만히 놔둬?”
“다친 곳도 없고, 또 그 친구의 여자 친구가 지수 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이야.”
“아가씨 선생님의 남자 친구인데, 자기에게 왜 그랬대?”
예나가 불안해할 수도 있기에, 나는 가능한 한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그러는 사이에 차는 어느새 회사 사옥 앞에 도착했고, 나는 우선 선 대표님을 만나 뵙기 위해 7층을 눌렀다.
“자네 괜찮은가?”
“예.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됐어. 세상에 미친놈이 어디 그놈뿐인가. 그냥 액땜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게.”
“그러지 않아도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그런데 그놈 여자 친구가, 사돈처녀 학교 선생님이라고?”
“예.”
“그 선생님이라는 사람 입장도 난감해지겠구먼.......”
박 선생이라는 그 여자 선생님도, 당분간 사람들에게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아예 신상이 털려서, 2차 피해까지 감수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자 친구 하나를 잘못 둔 덕분에 학교 내에서 상급자들에게 눈총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얼굴조차 보지 못한 네티즌들에게 뭇매를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니, 그것도 걱정스러운 일이다.
“아무튼 자네가 잘못한 일은 전혀 없으니, 수일간 정리가 되겠지. 되도록 기자들이나 사람들과 접촉을 피하는 것이 좋겠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시간이 문제가 되겠지만, 어차피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게 되는 법이다.
물론 이번 일로 며칠 전에 오디션을 봤던 영화의 출연이 무산될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시간을 두고 다음 작품을 준비하면 될 일이니, 그냥 마음 편하게 지내기로 했다.
어차피 이렇게 뭇매를 맞으면 맞을수록 이번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을 때는, 지금까지 맞았던 뭇매의 몇 곱절은 될 이미지 상승이라는 보상은 따라오게 되어 있으니 말이다.
“좋지 않은 댓글은 뭐하려고 자꾸 봐.”
“재미있잖아.”
“90%가 네 욕인데 그게 재미있어?”
“도대체 사실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이렇게 찧고 까부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생각으로 저런 댓글을 썼을까 생각하니 오히려 재미있는데?”
“지랄! 완전 변태도 아니고.”
내가 잘못을 저지른 것이 없으니, 사실 이렇게 나를 악의적으로 까고 있는 댓글을 보면서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어딜 가려고 방향을 이리로 잡았어?”
“양산 가야지.”
“됐어. 오늘은 집에서 자고, 내일 아침 일찍 내려갈 거야.”
“너 없어서 제수씨 지금 잠도 못 자고 있다면서. 제수씨가 다시 그 무서움증이 도지면 어떻게 할래?”
역시 진수란 이 인간이, 내 진짜 친구가 맞긴 맞았다.
아무리 친하고 처음부터 내 매니저를 자처했다고 하더라도, 일 때문도 아닌데 이렇게 늦은 시간에 나를 태워주기 위해 양산까지 왕복하겠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지만, 그 이유가 예나 때문이란 사실이 더욱더 고마운 것이다.
어차피 내가 집에서 자고 내일 아침에 양산에 내려갈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잠시 눈만 질끈 감고 모른 척하고 있으면, 굳이 그 먼 길을 왕복할 일도 없을 것인데 말이다.
“오디션 본 영화는 날아갔다고 봐야겠지?”
“황우 감독님 그 양반 성격이 급하잖아. 아마 지금쯤 내가 맡기로 한 역할을 누구에게 맡겨야 할지, 이리저리 프로필 뒤적거리고 계실걸.”
“그래. 그냥 속 편하게 생각하자. 오늘 그런 황당한 꼴을 당한 것도 다 이유가 있겠지. 혹시 알아? 그 영화보다 좋은 것이 네 눈앞에 떨어지게 될지.”
그렇게 밤길을 달려, 중간보다는 조금 더 내려온 선산휴게소에 도착했다.
우리는 흡연 부스 옆에 있는 커피 자판기로 가서, 커피를 뽑아 주변 화단의 턱에 걸터앉았다.
“좋다!”
“뭐가?”
“하늘이 저리 파랗잖아.”
“미친놈! 이 밤중에 뭐가 보인다고.”
“난 잘만 보이는데. 저기 저 반짝이는 별이 내 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분명 그렇게 될 거야. 우리 한강수 배우님 저력 있잖아.”
“그렇게 잔뜩 하늘 높이 띄웠다가 탁 놓으려고? 그래서 누구 허리 뭉개지는 꼴을 보고, 시시덕거리며 놀리고 싶어서 그래?”
“지랄한다. 네가 저 별처럼 빛나는 별이 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다면, 내가 네 매니저를 하겠다고 설쳐대지도 않았었다.”
나도 믿지 못할 내 가능성을, 진수는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런 진수를 보면서, 이렇게 나를 전적으로 믿고 있는 친구가 내 옆에 있다는 사실에 새삼 행복함을 느낀다.
‘자?’
‘아니. 자긴 아직 자지도 않고 뭐하려고 톡을 해?’
‘마누라가 이 시간까지 서방님 품이 그리워서 잠조차 이루지 못하는데, 내가 어떻게 잘 수가 있겠어?’
‘치! 하긴 자기에게 안겨서 자고 싶긴 하다. 피곤할 텐데 빨리 자.’
‘지금 통도사 톨게이트 지나고 있어.’
‘뭐? 이 시간에 뭐하려고 내려오고 그래? 자기가 운전하고 오는 거야?’
‘아니. 진수가 운전하고, 나는 조수석 대시보드 위에 발 올리고 있는데.’
‘발부터 내려! 그거 운전하는 사람에게, 예의가 아닌 것 알잖아.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도, 그 정도는 조심해야지! 빨리!’
농을 했더니만, 아예 정색을 하고 덤벼들고 있었다.
‘농담이었어. 내가 그렇게 무식하고 예의 없는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다행이다. 그런데 배고파서 어떻게 해? 라면 물이라도 올려놓을까? 와서 진수 씨하고 끓여 먹게.’
‘콜!’
“누구하고 그렇게 톡을 해? 혹시 제수씨가 아직도 자지 않고 있는 거야?”
“응, 라면 물 올려놓겠다고 하네.”
“참 우리 제수씨도 정성이다. 사고치고 온 서방 놈 뺨이나 때려줄 준비를 하지 웬 라면씩이나.”
그렇게 이야길 하다가 보니, 어느새 눈앞에 예나와 내가 사는 아파트 입구가 나타났다.
“시동 끄지 않고 뭐해?”
“올라가야지.”
“지랄한다. 그냥 여기서 자고 아침에 가.”
“이 밤중에 신혼집에 가서 눈총 받을 일 있냐?”
“예나가 네가 먹을 라면 물까지 올려놨단다.”
새벽 시간에 신혼부부 집을 찾는 것은 아니라고, 고집을 부리는 진수를 끌고 엘리베이터에 태웠다.
‘띵~똥’하는 벨 소리가 울리자마자, 마치 현관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예나가 문을 열고 우리를 맞이했다.
“진수 씨. 저 사람 때문에 괜히 고생이 많네요.”
“제수씨. 아무리 이 아파트가 보안이 잘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확인도 하지 않고 문을 여시면 어떻게 해요?”
“치! 또 잔소리.”
진수는 예나의 인사에 답하는 대신에, 모니터로 확인조차 않고 문을 여는 예나를 향해 잔소리부터 시작했다.
아무튼 친구란 놈 하나는, 정말 잘 뒀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