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 드레스덴 영화제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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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님들 여기 잠시만 봐주세요.”
국제선 청사에 도착하니, 기자들 몇이 우르르 달려왔다.
기자들은 우리에게 포즈를 취해 달라고 부탁했고, 나와 예나뿐 아니라 장산곶매 회원들 또한 기자들의 요구에 따라, 손 하트를 그리는 등의 포즈를 취했다.
[서예나 배우님. 이번 드레스덴 국제단편영화제에서 수상 가능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그 질문은 저보다 여기 감독님께 하셔야 할 질문 같습니다.”
기자의 질문에 예나는 은교를 앞으로 내세웠지만, 은교는 얼굴을 붉힌 채 아예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감독님께서 부끄러워서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제가 대신 대답을 드리겠습니다. 기자님들도 잘 아시다시피 이번 영화는, B 대학의 영화동아리 장산곶매 회원들 손으로 제작된 영화입니다. 그리고 장산곶매 회원 모두는 영화제 수상과는 무관하게, 오랜 역사를 지닌 저명한 영화제인 드레스덴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강수 배우님, 그럼 수상은 아예 염두에 두시지 않고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다니는 B 대학교는 영화 관련학과가 없습니다. 그 때문에 영화 동아리 장산곶매는, 말 그대로 영화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모인 순수하게 친목을 도모하는 동아리입니다. 물론 동아리 회원들을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를 전공하지 않은 학생들이 제작한 영화이다가 보니, 부족한 점이 많게 느껴질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상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 배우님 말씀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영화제 조직위원회 측에서 이 영화를 초청작으로 선정한 데는, 영화가 그만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젊은 청년들의 기지가 통통 튀는 그런 영화지요. 그 어떤 것에도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순수한 청년들의 재기발랄함, 그 점을 높이 사주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은교나 다른 회원이 기자들 질문에 답변해줄 수가 있었더라면, 조금 더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출연자에 불과한 내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려니,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자칫 아마추어인 장산곶매 동아리 회원들을 깎아내리는 발언이라고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한 마디 한 마디가 조심스러웠다.
아무튼 기자들의 질문을 끊이질 않았지만, 예나와 내가 영화에 출연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 말고는, 우리 두 사람에 대한 개인적인 질문에는 답변을 회피하면서 인터뷰를 끝냈다.
“자기 얘들을 너무 까 내린 것 아니야?”
“그러지 않아도 내가 말실수를 한 것이 아닐까 하고, 고민 중이야.”
내가 사뭇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렇게 이야길 하자, 가만히 옆에서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은교가 배시시 웃으면서 절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언니, 저 비행기 처음 타 봐요.”
“비행기 타는 것이 뭐 별거라고. 그냥 한번 타고나면 나중에 별거 없다고 느끼게 되어 있어.”
아이들은 처음 하게 되는 해외여행에 잔뜩 들떠 있었다.
지수는 아예 예나 옆에 딱 붙어서 꼼짝할 생각도 않고 연신 수다를 떨고 있었고, 은교를 비롯한 영화 동아리 장산곶매 회원들 또한, 잔뜩 들뜬 표정으로 공항청사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사실 이번 영화제에 정식으로 초청받은 인원은 넷이었다.
하지만 회원 중에서 누구는 참석하고 누군 빠지게 된다면 후일 팀워크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나머지 사람들의 항공료와 체류비용은 우리 부부가 대기로 하고, 회원 전부가 드레스덴행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다.
“지수 너 신발 벗어야지!”
“오빠, 지금 장난쳐? 내 나이가 몇 갠대. 오빠 눈에는 내가 아직 초딩으로 보이는 거야?”
게이트를 통과해서 비행기 입구에 다다랐을 때, 괜히 농담이랍시고 던졌더니 지수가 파르르 했다.
“자긴 무슨 농담을 그렇게 썰렁하게 해.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난 것을.......”
“그냥 지수가 비행기를 처음 타니까 혹시나 해서 해봤지.”
“그 농담 인터넷에 엄청 돌아다니거든.”
아무튼 썰렁한 가운데, 우리는 우리에게 지정된 좌석을 찾아 앉았다.
돈만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비즈니스석을 이용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대학생인 동생들까지 비즈니스석을 이용하는 것이 구설에 오를 수도 있는 일이고, 그렇다고 우리 식구만 비즈니스석을 이용한다는 것 또한 마음이 편한 일이 아니기에, 고생을 좀 하기로 했다.
“난감하네.”
8시간의 시차와 지금부터 자그마치 15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한다는 것이 문제다.
불편한 좌석 때문에 자다가 눈을 떴다가 하면서 시간을 보낸 끝에, 우린 드디어 독일 땅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아우~ 이제 더는 비행기 못 타겠어.”
“그럼 어떻게 하자고?”
“우리 그냥 기차나 버스를 타고 가는 건 어때?”
“비행기로 1시간만 버티면 되는데, 다섯 시간 가까이 걸리는 기차로 가자고?”
“응, 정말 더는 비행기는 타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래.”
예나가 비행기엔 질렸다는 것처럼, 아예 손사래를 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예나가 그런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사람들의 의견도 중요했다.
“너흰 어때?”
“저도 지쳤어요. 그냥 바깥 공기라도 마시면서 갈 수 있으면, 차라리 그렇게 할래요.”
“시간이 몇 배나 걸리는데?”
동생들도 모두 지친 표정이었다.
결국 비행기를 갈아타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비행기를 포기하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그냥 여기서 하룻밤 자고 내일 오전에 출발하자.”
“정말 그래도 돼?”
“어차피 시간은 많잖아. 당신도 그렇지만 애들 표정도 지쳐서 엉망이니, 여기서 하룻밤 자는 것이 나을 것 같네.”
결국 프랑크푸르트 역과 마인 강 사이에 있는, 호텔에 투숙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동생들은 침대에 쓰러졌고, 해외여행 경험이 많았던 예나 역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평소 비즈니스석만 이용하던 예나로서는, 몸을 꿈틀거리기조차 쉽지 않은 이코노미석으로 장거리 비행하는 일은 무리였다.
드레스덴 국제단편영화제는, 참가에 의의를 두자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물론 분야는 분류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전 세계 80여 나라에서 2,000편이 넘는 영화가 출품되는데, 거기서 수상을 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그냥 우리나라와는 다른 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그 축제를 즐기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정말 혼자 남겠다고?”
“뭐 어때? 며칠 더 있다가 가는 것이야 별문제 없잖아?”
한국에 있을 때부터 독일 독일하고 노래를 부르더니, 기어코 지수는 며칠 이곳에 남아서 유학을 할 만한 학교가 있는지 찾아보겠다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가 독일 땅에 발을 디딘 후, 독일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지수였기에, 별다른 사고만 없다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지수는 혼자 남겨도 될 정도이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직 고등학생인 지수를 이 먼 이국땅에 혼자 두고 귀국한다는 것은,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아가씨가 계속 혼자 남아 있겠다고 고집을 부려?”
“응. 어떻게 해야 할지 나도 모르겠다.”
“자기가 많이 불안하면, 자긴 여기 아가씨와 같이 남아 있다가 나중에 와.”
“당신 혼자 귀국하겠다고?”
“혼자는 누가 혼자야. 애들도 있는데.”
“그건 좀 그렇다. 우리가 결혼한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따로 떨어져서 지내.”
말은 저렇게 했지만, 실제 내 속마음을 달랐다.
기자 중에서 우리가 부부라는 사실을 모르는 기자는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도 아닌 독일까지 갔다가 다른 날짜의 비행기 편으로 입국하게 되면, 기자들은 우리 부부가 독일에 체류하는 동안 불화가 생겨 그렇게 된 것이라는, 엉뚱한 오해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차라리 애들하고 이야기해서, 애들이 문제가 없다고 하면 모두 같이 움직이는 것은 어떨까?”
“학교 강의는 어떻게 하고?”
“지수 말로는 사나흘이면 된다니, 그 정도는 큰 문제가 없잖아. 개인적인 사정이 있을까 봐 그러지.”
결국 그 방법이 가장 괜찮을 것 같았다.
체류비용 정도야 문제가 될 것이 없으니, 아이들만 괜찮다면 지수를 혼자 타국에 놔두고 귀국하는 것보다는 훨씬 마음이 편할 것이다.
“저희도요?”
“응. 개인적으로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쩔 수 없지만......”
“애들한테 한번 물어볼게요. 그렇지만 저희까지 같이 움직이면 비용이 엄청나잖아요?”
“그 문제는 걱정하지 말고 우선 물어는 봐.”
아이들로서는 개인적으로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다면 몰라도, 그게 아니라면 만세를 부를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고, 은교가 아이들의 의견을 묻자 아이들은 우리 방까지 찾아와서 만세를 불렀다.
“그렇게 결정했다면 지금 집에 전화를 걸어서,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허락을 받아. 혹시 우리 도움이 필요하면 이야기하고.”
아이들이 대학생이고 또 이곳에 며칠 더 체류하는 것을 아무리 좋아하더라도, 우선 부모님 승낙은 받아야 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내 휴대전화를 건네고, 내 눈앞에서 바로 전화를 걸게 했다.
“오늘은 라이프치히에서 묵을 거니까 그렇게들 알고 있어.”
그렇게 드레스덴을 떠나 라이프치히로 이동했다.
그리고 바그너의 출신학교인 라이프치히 대학부터 찾았다.
우리는 학교 주변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기로 하고, 지수는 대학으로 들어가서 지수가 궁금해 하는 내용을 알아보기로 했다.
“여긴 우리나라 대학 캠퍼스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네요?”
“나도 모르지. 나도 독일이라고는 이번이 처음이고, 또 다른 나라의 대학을 구경해 본 적도 없으니까.”
솔직히 어디가 대학인지 어디가 상가인지조차, 눈으로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유일하게 독일어가 가능한 지수가 없으니, 궁금한 점이 있더라도 물어볼 수조차 없었다.
결국 우리는 구경을 포기하고, 커피숍에 앉아서 지수가 나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왜 아직 오질 않지?”
“그러게.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 아냐?”
“전화라도 한번 걸어봐.”
“조금 전에 걸었는데 받질 않아.”
학교로 들어가고 두 시간이 넘게 지났음에도, 지수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화조차 받지 않았고, 그 때문에 우리는 점점 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말조차 통하지 않으니 직접 찾아 나설 수도 없어서, 속으로 걱정어린 한숨만 쉬고 있었다.
“오빠, 우리가 찾으러 가요.”
“여기 독일어가 가능한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 말도 통하지 않는데 어떻게 찾아?”
“방법이 있어요. 혹시 몰라서 다운받아 왔는데 번역기 있잖아요.”
그러면서 은교가 휴대전화를 내민다.
“오빠, 여기에 입을 가까이하고 말을 해보세요.”
문명의 승리였다!
정말 멍청하게도 말도 통하지 않는 곳을 여행하려고 했으면서, 이렇게 편리한 기기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니.......
우리는 휴대전화 번역기 애플리케이션을 의지해서, 지수가 가 있을 만한 곳을 물어물어 찾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