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뜻하지 않았던 가족여행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서울에서 강릉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야, 이제 도로가 잘 닦인 덕분에 2시간 반이면 충분하다.
지수가 따라가고 지수를 태워 돌아온다는 핑계로 진수가 합류하겠다고 했을 때, 이미 예상된 일이었지만 로드매니저 역할을 하게 된 미선이와 스태프인 누나 둘도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되었다.
“어차피 정동진에 갈 건데 숙소를 왜 여기에다 잡으려고 해?”
“내 경험으로 똑같은 돈을 주고도, 숙소나 식당이 관광지가 관광지 아닌 곳보다 좋았던 적이 없었거든. 그리고 여기서 정동진까지 가는데 20분이면 충분해.”
맞는 말이었다.
요즘은 인기가 시들해진 정동진이고 전국의 다른 관광지도 마찬가지지만, 전국 대부분 관광지가 같은 돈을 주고도 음식의 질이나 숙소의 질이, 관광지가 아닌 곳보다 엉망이란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랬기에 우리는 강릉 시내에 있는 호텔에 체크인한 후, 우선 강릉 시내 구경부터 하기로 했다.
강릉 시내 구경을 하면서 저녁도 먹고 예쁜 커피숍을 찾아 커피도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고, 내일 일출을 보러 가기로 한 정동진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와~ 둘이 같이 서서 찍으니 그 자체로 화보네. 우리 서 배우님 결혼하시더니 얼굴이 활짝 폈네요.”
“정말이요? 예전보다 더 예뻐요?”
“당연하죠. 결혼 전에도 대한민국에서 제일 예뻤지만, 이젠 정말 ‘넘사벽’ 그 자체다.”
“인마, 너 아부가 너무 심한 것 아니야? 그렇게 하다가 나중에 다른 배우들에게 총 맞는다.”
“네 말이 오히려 이상하네. 네 눈에는 우리 제수씨보다 예쁜 여자가 있는 모양이지?”
바다를 배경으로 우리 부부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어대던 진수가 너스레를 떨기 시작했다.
덕분에 오는 내내 조금 기분이 가라앉은 분위기였던, 예나의 기분이 훨씬 더 밝아진 것 같았다.
“안 잘 거야?”
“자야지. 그런데 잠이 오질 않네.”
“많이 피곤했나 보다. 내가 마사지라도 해줄까?”
“피! 또 온몸에 오일 떡칠을 하려고? 그러다가 내가 오르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여긴 집도 아닌데.”
“그거야 그때 가서 고민하면 되지. 뭐하려고 미리 고민부터 해?”
“창피하잖아.”
팔베개를 하고 있던 예나가, 슬며시 내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나는 예나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면서, 마치 아기를 재우는 것처럼 조용히 자장가를 불러줬다.
언젠가부터 예나의 새근거리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바뀌었고, 그걸 확인한 나도 스르르 눈을 감았다.
“해 뜬다!”
멀리 있는 바다의 표면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새벽 일찍 눈을 뜬 우리는 간단히 씻은 후 호텔을 나섰고, 일출 예정시각보다 훨씬 일찍 정동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해변을 산책하다가 날이 서서히 밝아진다는 느낌일 들 때쯤 먼 바다 저쪽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고, 잠시 후 ‘두둥실!’이란 표현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마땅한 단어가 없을 정도로, 붉디붉은 태양이 하늘로 서서히 치솟고 있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일출, 일출 하는구나.”
“일출을 본 적이 없었어?”
“아주 이따금 서울에서야 해 뜨는 것을 봤지. 그렇지만 자기도 알다시피, 내가 이런 새벽에 바닷가에 나와 있을 일이 어디에 있어.”
하긴 예나의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생각하면, 비록 서울에서라지만 해 뜨는 것을 보는 것조차 신기한 일이다.
촬영이 있는 날이면 밤늦게나 아니면 새벽녘이 되어서야 촬영장을 빠져나오고, 집에 도착해서는 쓰러지듯 침대에 몸을 던지고, 아침이면 시간에 쫓겨 촬영장을 가야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다가 작품을 잠시 쉬게 되면, 그동안 바쁘게 살았던 것을 보상이라도 받는 것처럼 온종일 침대 위에서 뒹굴 거리면서, 아예 거실에 나가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것이 배우의 삶인 것이다.
“소원은 빌었어?”
“무슨 소원을 빌어?”
“해 뜨는 것을 볼 때는 소원을 빌어야 하는데. 만약 해 뜨는 것을 보고도 소원조차 빌지 않으면.......”
“빌지 않으면?”
“똥꼬에 털 난다더라.”
“뭐?”
내 농담에 예나는 마치 억울한 일이라도 당한 것처럼, 잔뜩 뾰로통한 표정으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두 분, 사랑싸움은 댁에 가셔서 하시고, 우선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여기 있는 처녀 총각들 염장 지르는 것도 아니고, 도저히 눈꼴시어서 봐줄 수가 없네요.”
시간을 확인하니 서둘러야 하는 것이 맞았다.
어차피 숙박비에 조식 비용이 포함되어 있고, 또 이른 아침에 마땅히 아침을 해결할만한 식당을 찾는 일도 쉽지 않으니 말이다.
“운전 조심하고.”
“알았어. 무슨 걱정이 그렇게나 많아. 우리가 어디 어린앤 줄 알아?”
“나한테는 넌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 맞아. 지금까지 너 혼자서 여행을 다녀본 적도 없었잖아.”
“야! 그래도 비행기 타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까지 다녀온 몸이다.”
“현지에서 가이드 채용했다면서? 그런데 말이 통하고 말고가 무슨 상관이야.”
“아무튼 운전 조심하고, 양산 집에 도착하면 바로 전화해.”
진수의 잔소리는 끝이 없었다.
하긴 진수 말대로 나는 나 혼자서 여행을 다녀본 적도 없었고, 또 이렇게 장거리를 운전해본 경험도 없었다.
하지만 이곳이 다른 나라도 아닌 대한민국이고, 대한민국에서 예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니,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경찰이든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도움을 청하면 될 일이었다.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어느 누가 다른 사람도 아닌 예나가 도움을 요청하는데 그걸 거절하겠는가 말이다.
진수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예나와 나는 동해안을 타고 나 있는 도로를 향했고, 진수는 지수를 비롯한 식구들과 함께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자기 정말 괜찮겠어?”
“뭐가?”
“이렇게 우리 둘이서만 가는 것하고, 또 양산까지 운전해야 하잖아.”
“그게 뭐가 문제야?”
예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나 역시 속으로는 걱정되긴 했지만, 나는 아주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별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고 큰소리를 쳤다.
어차피 나 있는 도로를 따라 내비게이션 아가씨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일이고, 장거리라는 점이야 가다가 피곤하면 좀 쉬었다가 가면 될 일이 아닌가 말이다.
내비게이션으로는 2시간쯤이면 되는 거리인, 울진까지 내려오는데 세 시간이 넘게 걸렸다.
도로에 차가 많은 것도 아니었고 또 바다를 끼고 달리면서 차를 세우고 구경하느라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닌데, 이렇게 늦어진 것은 한 마디로 내 운전 미숙이 원인이었다.
차가 좀 있는 도로였다면 앞에 가는 차의 뒤꽁무니만 따라가면 되었을 것인데, 아예 차라곤 우리가 타고 있는 차 이외에는 없는 구간이 많았기에, 혹시나 하는 걱정에 이리저리 살피느라 거북이걸음을 했던 탓이었다.
“우리 여기서 좀 쉬었다가 갈까?”
“여긴 어딘데?”
“울진.”
“울진?”
“응. 이제 1/3쯤 왔거든.”
“그런데 자기 정말 괜찮아?”
“뭐가?”
“지금 자기 얼굴이 엄청 피곤해 보이거든.”
“피곤하긴 뭐가 피곤해. 여기 가까운 곳에 성류굴이라고 있으니까, 잠시 거기에 들러서 구경이나 하고 가자.”
말로는 끄떡없다고 했지만, 온몸이 뻐근했다.
시내에서 1시간쯤 운전을 해봤지만 이렇게 피로감을 느낀 적이 없었는데, 겨우 그 두 배정도 시간을 운전했다고 이렇게 온몸이 뻐근해질 정도였으니, 앞으로 남은 거리를 어떻게 가야 할지 슬며시 걱정되었다.
하지만 명색이 사내인 내가 앓는 소리를 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이곳 울진의 명소인 성류굴 구경을 가기로 했다.
아무래도 성류굴을 구경하려면 차에서 내려 한참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니, 운전으로 인한 긴장이 많이 풀어질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나 여기 싫어.”
“응?”
“자기야, 그냥 나가자.”
“갑자기 왜 그래?”
“분위기가 꼭 괴물이 나올 것 같아. 무서워서 더는 못 가겠어.”
성류굴 입구로 향한 진입로까지는 신기해하면서 사진을 찍자고 난리를 치던 예나는, 동굴 입구에 들어서 기괴한 모습을 보더니 몸서리치게 무서운 모양이었다.
하긴 내가 봐도 영화에서 나왔던 에일리언이나, 본 적도 없는 괴수가 출몰하지나 않을까 하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리고 내부가 따뜻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잔뜩 습기를 머금은, 동굴 안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끈적거린다는 느낌이었기에, 원래 한 바퀴 돌아서 따로 있는 출구로 나와야 했지만 바로 돌아 나오고 말았다.
“괜찮아?”
“응. 밖에 나오니 좀 괜찮네. 아~우 소름!”
“여기서 뭐 해? 벌써 구경을 끝낸 거야?”
“어! 네가 어떻게?”
예나는 마치 소름이나 돋은 것처럼 표정이었고, 얼굴이 약간 해쓱해진 느낌이어서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서 진수 목소리가 들렸다.
“운전할 만한가 싶어서.”
“정말 무슨 일이야?”
“너 운전하면서, 우리가 계속 뒤따라오는 것조차 보질 못했지?”
“.......”
솔직히 룸미러나 사이드미러를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러니 세 시간을 넘게 뒤따라왔음에도, 우리 밴이 따라온다는 것을 눈치조차 채지 못했던 것이다.
“세상에 아무리 초보운전이어도 그렇지, 두 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를 세 시간 넘게 걸려 오는 사람이 어디 있냐?”
“야! 그냥 주변 풍경을 구경하면서, 느긋하게 왔으니 그렇지.”
“꼴에 자존심은.”
“다른 사람들은 어디 가고?”
“먼저 구경한다고 동굴에 들어가 있다.”
혹시 어긋나서 우리가 또 먼저 출발할까 봐, 진수는 구경하는 대신에 주차장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입으로는 자신만만하게 떠들었었지만, 막상 진수가 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부터 마음이 편안해졌다.
“여기까지 와서 이제 어쩌려고?”
“그 상태로 양산까지 절대 운전 못 해. 그러니 우리가 양산에 갔다가 거기서 서울로 올라갈 거야.”
“충분히 우리끼리 갈 수 있는데......”
“쓸데없이 자존심 내세우다가 몸살 나지 않으면 다행일 거다. 그리고 그렇게 잔뜩 긴장해서 운전하면 오히려 사고 위험성이 더 높다는 걸 몰라?”
결국 진수에게 운전대를 맡기기로 했다.
자존심은 좀 많이 상하긴 했지만, 솔직히 나 스스로도 양산까지 내가 직접 운전해서 내려갈 자신이 없었고, 만에 하나 사고라도 나서 예나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그것 이상 큰 문제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하고 장인어른이 그 사실을 알기라도 한다면, 그 불똥이 진수를 비롯한 스태프들에게 향하게 될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냥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
“오빠, 나 내일 아침에 학교 가야 하거든.”
양산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올라가 차를 마셨다.
그런데 차를 마시고서는 지수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와 예나가 하룻밤 자고 내일 출발하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지수가 학교에 간다는 핑계로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괜히 내가 직접 운전한답시고 설쳐대다가, 엉뚱하게 많은 사람을 고생시키게 된 그런 하루였다.
식구들을 보내고 집으로 올라온 나는, 손가락조차 꼼짝하기 싫어 침대 속으로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