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 영화 동아리 장산곶매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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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잘 다녀오셨나?”
“교수님께서 염려해주신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뭘 이런 걸 다......”
우선 학과장님 방에 인사부터 드리고, 담당 지도교수님 방을 찾았다.
황 교수님은 환한 얼굴을 하고 나를 맞아 주셨지만, 황 교수님에게서 느껴지는 느낌은 예전과 많이 달랐다.
결혼식에 참석하시기 전까지는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가 제자라는 것에 뿌듯해하는 표정이셨지만, 오늘 황 교수님의 표정은 자신과는 조금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대상에 대한, 무어라 표현하기 힘이 든 감정이 섞인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자네 장인 되시는 양반이, 기획사 대표라고 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배우를 전담하는 예담기획이라는 작은 회사입니다.”
“그런데 연예기획사 사장 따님의 결혼식에, 어떻게 장관과 국회의원이 다 참석했어?”
“그냥 서로 이용하고 이용당해주고 하는 관계일 뿐입니다.”
사실 황 교수님으로서는 아찔했을 것이다.
심하게 표현하자면 자기가 좋아하긴 하지만, 흔하디흔한 배우 그러니까 딴따라 중의 하나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놈의 장인이 장관도 국회의원도 초대할 수 있는 위치의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자네 직업이 배우가 아닌가?”
“이젠 학생과 배우 겸업이지요.”
“그럼 앞으로 연기활동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방학 기간에 찍을 수 있는, 짧은 작품을 골라볼 생각입니다.”
“그게 쉽겠나?”
“어쩔 수 없는 일 아닙니까. 그런 작품이 없으면 당분간 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그래서 내가 학과장님하고 학장님께 의논을 드렸다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아직 총장님 결재가 떨어지지 않아서 뭐라고 확답하긴 그렇지만, 자네가 꼭 필요한 작업을 할 때는 그 동안 출석 대신에 리포트를 제출하는 것으로 대신하는 방법 말일세.”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선례가 없는 것도 아니니까. 단 그렇게 된다고 해서 아예 학교에 나오는 것을 등한시하면 안 되네.”
나도 학교 수업을 등한시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른 일도 아니고 정치를 하려는 놈이 학교생활에서부터 특혜를 받았다는 구설에 오르게 되면, 그 자체로 내게는 치명타가 될 것이니 말이다.
“교수님. 그렇다면 특혜시비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특혜는 무슨. 리포트로 대체하는데.”
“제가 나중에 정치할 생각인 것은 지난번에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러니 아무리 리포트를 제출하는 것으로 출석을 대체한다고 하더라도, 어디선가 말이 나오지 않으란 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말인가?”
“이미 1학기는 지났으니 여름방학까지 상황을 보다가, 제가 꼭 출연해야겠다는 작품이 있으면 2학기에는 강의를 몰아서 듣고, 겨울 방학에 계절학기 신청하는 방법으로 학점을 맞추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담당 교수님들이 합의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방법이기도 했다.
내가 수강해야 할 과목을 연강을 하는 방식으로 해서, 내가 수강 신청한 수업들을 월요일부터 수요일이나 목요일까지 빼곡하게 채우는 것이다.
그리고 학년을 수료하는 데 필요한 이수학점 중에서 모자라는 학점은, 계절학기로 보충하는 방법도 있는 것이다.
“그게 가능하겠는가? 중간 중간마다 빠져야 할 수도 있는데?”
“감독님하고 의논해서 촬영 일정을 조정하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어차피 제가 매 신마다 나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강의를 한 곳으로 몰고 촬영일정을 조정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학점 이수에 필요한 모든 강의를 듣는 것이니, 학생들 사이에서 특혜시비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단지 감독님과 작가님 입장에서, 내가 꼭 필요하다는 인식이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아무튼 지도교수님과 학과장 교수님 그리고 단대 학장님까지 나서신 일이니, 총장님 결재를 받는 일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리고 이건 꼭 해야 할 일은 아니지만, 자네가 우리 대학에 입학한 재학생이기도 하고 또 총장님 결재를 받는 데도 도움이 될까 해서 하는 말인데, 혹시 학교 홍보영상에 출연해줄 수는 없겠나? 홍보실에서 자네가 우리 과인 것을 알고, 홍보실장이 사람을 피곤할 정도로 몰아붙이고 있어서 하는 부탁일세.”
“홍보영상이라면 제가 해야지요. 저도 B 대학교 학생 아닙니까.”
“정말인가? 자네 정도 급이라면, 출연료도 만만찮을 것이라고 하던데?”
“돈이야 다른 곳에서 벌면 되지요. 제가 할 수 있고 또 제가 꼭 필요한 일에는, 돈을 따지진 않습니다. 이미 독도 홍보 동영상도 찍었던 적이 있고요.”
“독도 홍보 동영상이라니?”
“제가 ‘마지막 황후’에 출연한 것 때문인지, 경상북도에서 요청이 왔더라고요. 그래서 아내와 함께 출연해서 찍었습니다.”
학교 관리자로서는 당연히 놓치기 싫은 기회일 것이다.
아무리 대학이라는 곳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라고 하지만, 학교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홍보업무 또한 등한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국립대학이라고 하더라도 돈 문제에 초연할 수 없는 법이고, 입학시험 때 지원자가 많아야 학교의 수준도 올라가고 또 재정수입 또한 늘어나는 것이다.
오죽하면 세간에 입학원서를 팔면, 건물을 한 동씩 올린다는 이야기가 돌아다닐 정도이니 말이다.
“우리 학교 홍보영상에 자네 안사람까지는 어렵겠지?”
“어려울 일까지 있겠습니까. 아내도 당분간 활동을 쉴 예정이거든요.”
“정말인가? 그럼 회사에는 어떻게 말하고?”
“회사에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아시고 추진하시면 됩니다.”
화끈할 정도의 내 대답에, 황 교수님 입 꼬리가 승천하는 것이 아닐까 할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마도 내가 교수실 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황 교수님은 홍보처로 뛰어가시든지, 아니면 홍보처장에게 전화를 걸어 교수실로 오라고 하실 것이다.
“한강수 배우님.”
“예?”
“한강수 배우님 맞으시죠?”
“예. 제가 한강수는 맞습니다만 혹시 누구신지?”
“영화 동아리 장산곶매 회장입니다.”
“그러십니까? 그런데 절 왜?”
교수님 방에서 나와 강의실로 향하는데,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아담한 체구의 예쁘장한 아가씨 하나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기세 좋게 나를 불러 세울 때와는 달리,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묻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혹시 저희 장산곶매에 가입해주실 수는 없나 해서요.”
“솔직히 제가 동아리에 가입한다고 하더라도, 제 처지가 처지인지라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있을지조차 모릅니다. 그러니 오히려 동아리에 민폐만 끼치게 될 걸요.”
내가 배우라는 직업 때문에 동아리 입회를 권유하고 있겠지만, 사실 나는 동아리 활동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도 없었다.
예전 영연과에 다닐 때야 선배들과 인맥을 쌓기 위해서라도 동아리 활동에 열성을 보였었지만, 이미 내가 배우란 직업을 전업으로 하고 있는 상황이고 또 이 B 대학교에는 영연과조차 없는 정말 명실상부한 취미활동의 동아리였으니, 내가 동아리에 가입한다고 해봐야 배우거나 도움을 받을 것이 거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선 이야기하기가 불편하니 잠시 밖으로 나갈까요?”
내가 동아리 활동에 아무리 부정적이라고 하더라도, 대놓고 거절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배우로서뿐 아니라 정치를 하기 위해서도, 이미지 관리는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잠시 앉아서 몇 마디 이야기하면서 양해를 구하면 충분히 웃으면서 헤어질 수 있는 일이었기에, 그냥 이 자리에서 거절하기보다는 잠시 이야기나 하고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복도를 오가는 학생들이 우릴 힐끗거리는 탓에, 나는 내게 동아리 가입을 권유하는 여학생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갔다.
“어! 학교 안에도 커피숍이 있었네요?”
“예. 생긴 지 제법 오래됐어요.”
“제가 앞에 학교를 다녔을 때는 휴게실 자판기가 전부였었는데......”
“다른 학교에 다니셨다고요?”
“예. H 대학 영연과를 졸업했습니다.”
“그럼 학부를 졸업하고 다시 입학하신 거네요?”
“예. 정치 쪽 공부를 해보고 싶어서요.”
종업원 아가씨에게 커피를 받아들고, 장산곶매라는 영화 동아리의 회장이란 여학생과 마주 앉았다.
그리고 내가 학부생활이 이곳이 처음이 아니란 것부터 이야기했다.
“그런데 정치를 공부하시려면 서울에서도 가능하잖아요?”
“집사람이 서울이 아닌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다고 해서요.”
“서예나 배우님께서요?”
“예.”
“그럼 서예나 배우님도 부산에서 사시나요?”
“집이 부산이 아니라 양산에 있습니다.”
예나 이야기를 하니, 이 친구 눈에서 레이저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아무래도 아직은 Top급이라고 할 수 없는 나보다는, 이미 예전부터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란 이미지를 가진 예나였기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아마추어라고 하더라도 영화 동아리를 운영할 정도라면, 다른 사람보다는 영화에 관한 관심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니, 이 여학생의 지금 보여주는 모습은 당연했다.
“서예나 배우님은 학교에 한번 안 오시나요?”
“그건 그 친구 맘이죠. 혼자 학교에 와서 할 일도 없고, 또 잘 아시겠지만 혼자 나다니기 힘이 드는 처지잖아요.”
“그렇지요. 대배우시니......”
“아직 그 정도는 아니고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영화 동아리를 하시게 되었어요?”
“제가 영화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고등학교 때 단편영화제에서 입상까지 했거든요. 그런데 집에서 반대하셔서.......”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는 일이다.
요즘이야 생각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영화뿐 아니라 예술을 하는 직업은 배가 고픈 직업이라는 인식이 사람들 뇌리에 박혀있는 것이 사실이고, 그런 인식 속에서 자식이 그런 배고픈 험난한 길을 가려는데, 말리지 않을 부모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고등학교 재학 중에 단편 영화제에서 입상했다는 것을 보면, 이 친구의 실력이 제법이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입상한 영화의 파일을 가지고 있어요?”
“예!”
“미안한 이야기지만, 혹시 제가 그 영화를 볼 수 있을까요?”
“정말이요? 얼마든지요!”
“학교 동아리 방에 스크린은 있어요?”
“아뇨. 그냥 벽에 스크린 대용으로.......”
대충 이해가 되는 상황이다.
대학에서 학교 재정이나 홍보에 전혀 도움이 되지도 않는 동아리 활동에, 지원할 여력이 없을 것이다.
그냥 동아리 방이나 하나 내주고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그냥 생색이나 내는 정도의 자금지원이 고작일 것이니 말이다.
“오늘 수업이 몇 시에 끝이 나요?”
“4교시가 끝입니다.”
“그럼 우리 집으로 가서 그 영화를 볼 수 있을까요? 집사람도 집에 있으니 걱정은 하지 마시고요.”
“정말이에요? 정말 한 배우님 집으로 가서요?”
“마땅히 볼 수 있는 곳이 없잖아요. 영화는 장비가 제대로 갖춰진 곳에서 봐야 제대로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럼 혹시 우리 회원들이 같이 가도 될까요?”
“몇 명이나 됩니까?”
“저까지 일곱 명인데요.”
“그렇게 하죠. 그럼 나머지 분들 수업시간은 어떻게 되죠? 전 3시나 되어야 끝이 나는데.”
“괜찮아요. 혹시 수업이 있는 애가 있으면 수업을 째라고 하면 되죠.”
“그럼 3시 반쯤에 교문 입구에서 만나죠.”
그렇게 약속을 하고 동아리 회장이라는 여학생을 보냈다.
옅은 분홍빛깔의 하늘거리는 치마를 펄럭거리며 달려가는 여학생의 뒷모습이 싱그럽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