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입학 그리고 결혼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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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어떤 거로 할래요? 커피 아니면 녹차?”
“전 커피가 좋습니다.”
“옆에 계신 분이 서예나 배우죠? 서예나 배우는 어떤 거로 줘요?”
“저도 커피로 주세요.”
1학년 담당 지도교수란 양반 연구실에는, 예나와 나 둘만 따라 들어갔다.
“그런데 교수님, 무슨 일로 절 보자고 하신 것인지?”
“그냥 학부를 졸업해서 학사인 양반이, 그것도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뒤늦게 다시 정치를 공부하려고 하는 것이 신기해서요. 배우란 직업이 바쁜 직업 아닌가요?”
“저야 아직 바쁠 정도로, 인기가 있는 편이 아니어서요.”
“영화 ‘내 안의 야수’뿐 아니라 드라마에서도, 존재감이 확 드러나던데요. 아닌가요?”
“그 영화를 보셨습니까?”
“내가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그 영화에서 활약했던 배우가 우리 과에 입학한다고 하니, 내가 어떻게 호기심이 생기지 않겠어요.”
뜬금없이 나를 부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하긴 ‘내 안의 야수’가 600만 관객을 넘겼고 ‘마지막 황후’ 또한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했으니, 영화나 드라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호기심일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연기나 연출 관련 학과가 아니라, 정치를 선택했나요?”
“정치를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서 지원했습니다.”
“배우하고 정치하고는 딱히 매치가 되는 부분이 없는데?”
“연기 때문에 정치외교학과를 지원한 것은 아닙니다. 나중에 제게 기회가 온다면, 제가 직접 정치현장에서 뛰어보고 싶어서요.”
“국회의원총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말인가요?”
“예.”
“하지만 이론과 실제는 많이 다른데. 만약 이론대로 된다면 대한민국의 정치학 박사들은, 모두 국회의원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교수님 말씀이 맞으신 말씀은 맞습니다. 그런데 정치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면서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보다는, 이론적으로나마 정치를 배우고 난 후에 도전해보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하긴 국회의원총선거에서 당선되는 데는, 배우라는 직업이 다른 후보보다 훨씬 강점이 되겠네요.”
내가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을, 굳이 감출 이유가 없었다.
또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다고 하더라도, 생각만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아무튼 내게서 궁금증을 일부 해소한 이 교수라는 양반은, 타깃을 예나로 변경해서 이것저것 궁금한 것에 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나와의 이야기에서 이 양반이 정말 영화에 대한 관심도 많고, 또 광적이라고 할 정도로 열심히 영화를 찾아서 본다는 점도 느낄 수가 있었다.
‘똑!’ ‘똑!’
“들어오세요.”
“교수님, 말씀 도중에 죄송하지만, 저희 배우가 일정이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아! 그래요. 미안합니다. 내가 너무 반가운 나머지 결례를 했습니다.”
바깥에서 1시간가량 대기하던 진수가 연구실 문을 두드렸고, 다음 일정을 핑계로 우릴 지도교수 손에서 구원해줬다.
“진수 씨, 우리 자기에게 오늘 무슨 일정이 있었어요?”
“아뇨. 너무 오래 잡혀 있는 것 같아서요.”
“아, 그랬구나. 그런데 자기가 학교에 다니게 되면, 당분간 작품은 하지 못하겠네?”
“아마도 그렇게 되겠지. 방학 기간에 찍을 수 있는 영화나 찾아야지.”
예나 말처럼 당분간 작품 활동을 하긴 힘이 들 것이다.
기껏 작품에 참여한다고 해봐야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기간을 이용하는 것이 한계일 것이고, 그 조차도 촬영이 딜레이 된다면, 출석 일수를 맞추기 급급해 하면서 4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바로 가려고?”
“그럼?”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 집엔 들르지도 않고?”
“지금 한창 공사 중이어서 들어가지도 못해.”
“그래도 잠시 둘러볼 수는 있잖아.”
학교에서 나와 간단히 점심을 해결한 후, 차를 고속도로에 올렸다.
그리고 우리 신혼집이 있는 신 양산을 그냥 지나치자, 예나는 그 신혼집조차 가보지 않고 그냥 가느냐고 불만을 터트렸다.
결국 우리는 양산 IC에서 차를 돌려서, 우리 신혼집이 있는 양산 신도시로 향했다.
진수가 사서 한창 인테리어 공사 중인, 아파트는 양산천을 끼고 있었다.
그리고 아파트 1층에는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었고, 우리가 살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도 꽤 괜찮아 보였다.
“와~ 진수 씨. 집 고르는 눈이 있네요. 이렇게 View가 좋은 집을 고르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예나 씨 마음에 든다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먼지가 많으니 일단 나가죠.”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인부들이 한창 인테리어 개조작업을 하고 있었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 예나는 거실과 부엌 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저 집에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마음에 들어?”
“당연하지. 조용하면서도 전망도 좋고, 아기 키우기에도 좋잖아. 빨리 이사 와서 살고 싶어.”
“그런데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어떻게 할 거야?”
“거긴 그대로 놔둬야지. 어차피 나야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자기는 계속 활동을 해야 하잖아. 나중에 정치를 한다고 해도 그렇고. 그때를 생각하면 서울에도 우리가 살 집은 하나 있어야지.”
내 생각으로는 예나가 지금 살고 있는, 서울 아파트는 팔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서울에 올라갈 일이 있을 때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지내도 되잖아.”
“거긴 지수 씨랑 스태프 분들이 사용하고 있잖아. 괜히 우리가 찾아가면 그분들이 불편해할 수도 있어.”
물론 부모님께 물려받은 단독주택을 팔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집은 나나 지수에겐 부모님과의 추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니 그 집을 팔수는 없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휴게소가 나타나면 휴게소에 잠시 내려 간식거리를 사서 군것질도 하면서 오가 보니, 어느새 서울에 도착하게 되었다.
서울에 도착해서 집으로 함께 갔다.
그리고 오늘은 지수가 야간 자율학습 없는 토요일이었기에, 오랜만에 식구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삼겹살 파티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나 자기하고 함께 있으면 안 돼?”
“이제 기자들도 우리가 결혼할 거란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는데, 우리가 한집에서 지내게 되면 엉뚱한 기사 나온다.”
“치! 어차피 결혼할 텐데 무슨 그런 걱정까지 해. 난 자기랑 같이 있고 싶은데.”
“조금만 참아. 어차피 결혼하고 나면, 지겹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함께 지낼 테니까.”
밤이 늦어 집에 바래다주려고 하니, 예나가 칭얼대기 시작했다.
물론 예나 말처럼 어차피 결혼할 사이인데 다른 사람들의 눈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이지만, 그렇다고 괜히 구설에 오르는 것 역시 싫었다.
‘빨리 자기랑 결혼하고 싶다.’
‘이제 두 달만 기다리면 돼. 그러니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하고 빨리 자.’
‘자기가 옆에 없으면 잠이 잘 오질 않는단 말이야.’
‘또 까불지? 김 실장님께 들으니 요즘은 잠도 잘 잔다더니만.’
‘피~ 그래도 자기 집에서 자고 일어나야 몸이 개운하단 말이야.’
예나를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와, 예나와 톡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대부분의 경우 이렇게 톡을 하다가보면 예나가 스르르 잠이 들었기에, 예나가 잠을 쉽게 이루게 해주려고 자기 전에 톡을 하는 것이 우리 두 사람의 일상이 된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어느 순간 톡의 숫자가 사라지지 않았고, 그때야 나도 이불을 덮고 잠을 청했다.
“첫 수업인데 옷이 그게 뭐야?”
“이 옷이 어때서.”
“그래도 넌 배우잖아. 그런데 후드 티에 청바지라니.”
“괜히 튀게 입어서 좋을 일이 뭐 있다고. 그리고 지금은 배우가 아니라 학생이야. 그러니 너도 이제 서울로 올라가.”
“대표님이 당분간 네가 이곳 생활에 적응할 때까지, 이곳에서 같이 지내라고 하던데.”
“됐어. 내가 귀찮아. 그리고 집에 여자만 있잖아.”
결혼 전까지는 B 대학교 주변의 원룸을 단기로 임대해서 지내기로 했는데, 진수가 따라 내려와서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그렇게 토닥거리는 가운데, 내 두 번째 대학생활이 시작되고 있었다.
“강수 형, 저 강수 형 팬이에요.”
“에이~ 팬은 무슨 팬입니까. 그냥 동급생처럼 대해줘요.”
“그런데 형은 왜 대학에 입학하셨어요? 배우로 돈을 잘 벌고 있는데, 굳이 학교에 다닐 필요는 없잖아요. 이미 대학 졸업장도 있다면서요.”
“정치를 공부하고 싶어서요. 영연과는 배우가 되기 위해서 공부를 했던 것이고, 이제 다른 공부도 해보자 싶었거든요.”
“형, 저 강수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이미 부르고 있으면서 뭘 물어요.”
“그럼 앞으로 형, 저한테는 말 편하게 하세요. 제가 나이로도 한참 동생이잖아요.”
“그래, 그럼 그럴까?”
1교시 수업이 끝나고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벤치에 앉아 있는데, 강의실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친구가 내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제법 붙임성이 좋은 친구였고, 표정을 보니 제법 밝은 얼굴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대학신입생 모습을 하고 있었다.
“참, 제 이름은 진호라고 해요. 석진호.”
“아까 출석부를 때 들었어. 그런데 다음 수업이 없어?”
“저도 2교시는 공강이거든요.”
예전 내가 학부생활을 할 당시에는 1학년은 시간표가 줄줄이 엮인 것이 대부분인데, 이번에 수강신청을 하면서 시간표를 짜보니, 군데군데 강의 시간이 비는 경우가 있었다.
어차피 나야 취업을 걱정할 일은 없었기에 여유롭게 생활할 수 있지만, 대부분 신입생은 그 1시간의 빈 시간에도 취업에 대비하는 것인지,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진호 너는 취업시험 준비를 하지 않아도 돼?”
“1학년 때는 좀 여유를 가지고 지내려고요. 그리고 전 보좌관이 꿈이어서, 성적에는 크게 구애받지 않을 거고요.”
“보좌관?”
“예. 솔직히 제가 출마하는 것은 우리 집도 가난하고, 또 언제 돈을 벌어서 출마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딱히 제가 국회의원 배지를 달 생각도 없고요.”
“그럼 왜 보좌관을 하려고 해?”
“정치에는 관심이 많거든요. 그리고 보좌관이란 직업 역시 전문직이기도 하고, 국회의원을 보좌하면서 국회의원이 할 일을 대신 해주는 거잖아요.”
“돈만 있다면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할 생각은 있고?”
“그건 아무도 모르죠. 하지만 그럴 일이 생길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 우선은 현실에 충실해야죠.”
어차피 성적에 맞춰서 지원한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 정치에 관심이 있어서 정치외교학과에 지원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강의를 함께 받은 친구 중에서 일부는 가슴에 금배지를 다는 꿈을 꾸는 친구도 있을 것이고, 또 일부는 지금 옆에 있는 진호처럼 국회의원을 보좌하는 보좌진을 꿈꾸는 친구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강수 형은, 정말 무슨 이유로 정외과에 지원하셨어요?”
“너하고 비슷한 이유.”
“그럼 국회의원에 출마하시려고요?”
“꼭 국회의원이라기보다는 내가 직접 정치를 해보려고. 물론 그게 가능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럼 제가 형이 국회의원 일을 잘할 수 있게 보좌할게요.”
“아직은 꿈일 뿐이다.”
“꿈도 두 사람이 같이 꾸게 되면, 그 꿈을 이루기가 훨씬 쉽잖아요.”
의도적인 접근인지 아니면 정말 순수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진호라는 이 친구는 아예 내 곁에서 떨어질 생각조차 않고 연신 내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시간을 두고 지켜본다면 이 친구가 어떤 이유로 내게 친근함을 표시하는지 알게 될 터이니, 당분간은 지켜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