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 공익광고 그리고........ (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죄송하지만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아까 부지사님하고는 왜 악수를 하지 않으셨습니까?”
방금 회의실은 나간 이기훈 과장에 대한 태도를 보면서 나도 살짝 의문이 들었지만, 김상기 주무관은 그것이 못내 궁금했던 모양이다.
“느끼하다고 할까 그런 느낌 있잖아요.”
“예?”
“그분이 절 보는 순간, 마치 뱀이 저를 훑어보는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아~ 역시! 서예나 배우님께서는, 촉이 엄청나게 좋으시네요.”
“예?”
예나의 대답에 김상기 주무관이, 그 대답에 공감한다는 듯 탄성을 내뱉는다.
그 때문에 나는 김상기 주무관의, 그 말에 숨은 뜻이 궁금해졌다.
“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여직원들 사이에서 부지사님이 기피 대상이거든요. 확인된 사실이 아니어서 더는 뭐라고 말씀드릴 수가 없지만.......”
김상기 주무관의 그 말에, 김 주무관이 하고자 하는 말이 어떤 내용인지 대충 짐작이 되었다.
결국 김상기 주무관의 말 속에는, 어쩌면 부지사라는 그 양반이 여직원들에게는 성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는 위험인물로 분류되고 있다는 뜻이 될 것이고, 예나 또한 그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는 뜻이 포함된 것이다.
“그런데 예산집행을 직접 하시겠다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우신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그걸 설명하시기 위해서, 여기까지 내려오신 것 같으신데요.”
솔직히 난감한 기분이었다.
이곳으로 내려오기 전까지만 해도 충분히, 이 양반 면전에서 ‘당신들이 국민 세금을 가지고 뒷주머니를 찰까 봐 그게 걱정이 되어서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쉽지 않은 것이다.
“그게 말씀드리기가 좀......”
“제가 듣기에 좀 많이 곤란한 내용이지요.”
“그게......”
“알고 있습니다. 저도 충분히 공감하고요. 그러지 않으셔도 회사로부터 연락을 받고, 솔직히 진짜 잘 됐다고 만세를 부르려던 참이었거든요.”
“예?”
“중간에서 삥땅을 치는 문제 때문이잖습니까?”
하긴 대충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분위기지만, 그렇다고 당사자 입에서 그 이야기가 나오니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한 배우님께서도 잘 알고 계시다시피, 제가 이곳에서 가장 하급자 중의 하납니다. 그런데 조직생활을 하다가 보면, 제가 원하지 않는 일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따금 있고요.”
“예.......”
“사실 이번 기획안이 올라가면, 또다시 한 배우님께서 걱정하시는 그런 상황에 직면할 확률이, 거의 90% 이상이었습니다.”
무슨 뜻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일들이 고위 공직자들의 돈줄이라는 말이고, 그 돈줄의 물줄기에 빨대를 꽂아 돈을 빨아들이고 위로 올려 보내는 역할이, 바로 김상기 주무관 같은 위치의 사람들이란 뜻이다.
관공서에서 사용하거나 아니면 관공서 주도의 사업을 추진하면서, 뻔히 눈에 보이는 것들도 금액을 부풀려서 예산을 청구하고 그 차액을 챙기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번 일 같은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기껏 3~5분짜리 영상 하나뿐이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장난이 가능한 것이다.
기획추진비라는 것이 눈으로 보고 계산할 수가 없는, 기획이라는 물건을 파는 사람이 자기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파는 것이고, 또 그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사람의 인건비와 기술을 파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김상기 주무관은, 역으로 내게 그걸 막아달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자기에게 떨어질 콩고물은 얼마 되지도 않는데, 만약 그것이 드러나 법적인 책임을 묻는 지경이 되면 그 책임의 대부분을 자기가 질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방금 말씀드린 사안은, 주무관님 생각이 어떻든지 간에 제가 먼저 요구한 사안입니다. 그리고 그걸 바꿀 생각이 없으니, 말씀드린 대로 진행될 겁니다.”
실무자도 원하고 있던 상황이니, 크게 문제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요구한 사안이 좀 무리한 요구이기는 하지만, 경상북도로서도 당장 홍보모델을 구하기 힘들다는 점 때문에라도, 우리 쪽 요구를 거절하기 힘든 상황이기도 했다.
우리 국민에게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독도가 우리 대한민국 영토임을 알리는 홍보영상이니, 그래도 어느 정도 알려진 연예인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그 정도 급의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해외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는 법인데, 별로 많지도 않은 돈 때문에 일본시장 진출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니 배우나 연예기획사나 연예인으로서는 그런 위험부담을 안아가면서, 굳이 이런 돈도 되지 않는 홍보영상에 출연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주무관 아저씨.”
“예. 배우님.”
“그런데 이 홍보 동영상에, 배우가 꼭 한 사람만 출연해야 하나요?”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저희 쪽 예산 때문에.......”
“개런티 때문에 그래요?”
“아무래도 영상을 제작하는 데 있어, 배우님 출연료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니까요.”
“그럼 나도 같이하면 안돼요?”
“예?”
“돈 문제 때문이라면, 제가 출연료를 받지 않으면 되잖아요.”
예나 입에서 정말 폭탄이 터졌다.
그리고 그 말은, 절대 내 선에서 해결할 수가 없는 문제다.
나야 이런 홍보 동영상에 출연한다고 해도, 아직 제대로 보여준 것이 없으니 회사에서 크게 손해가 날 일은 없겠지만, 예나 같은 경우는 아예 차원이 다른 것이다.
‘마지막 황후’에서의 이미지는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희석되고, 일본인들 기억에서 지워지는 것이 금방이지만, 지금 찍으려는 홍보 동영상은, 아예 대놓고 일본을 저격하는 것이니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그리고 예나 말대로 하자면, 예나가 그동안 일본에 닦아 두었던 활동 기반 자체를 뒤엎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예나야, 잠깐만!”
일단 예나의 말부터 중단시켰다.
“왜?”
“너하고 나하고는, 아예 처지가 달라.”
“뭐가 다른데?”
“나야 일본에 깔아둔 것이 하나도 없지만, 넌 아니잖아. 그걸 다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단 사실을, 생각이나 하고 하는 말이야?”
“그게 무슨 큰 문제라도 돼? 그냥 중국 쪽을 푸시하면 되지.”
“아무튼 이 문제는, 대표님께 허락부터 받아야 하는 일이다.”
내 말이 끝나자 예나는 바로 선 대표님께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전화를 끊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하래.”
“정말?”
“응, 믿지 못하겠다면, 자기가 다시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든지.”
이런 일을 두고 거짓말을 할 일이야 없을 것이지만, 솔직히 나는 이런 중차대한 일을 이렇게 별 고민도 없이, 쉽게 허락하는 선 대표님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정말 서예나 배우님께서 저희 홍보영상에 출연이 가능하다고요?”
“예. 우리 대표님께서도 허락한 일이니까요.”
“정말 고맙습니다. 영광입니다. 배우님!”
당연하겠지만 내가 출연하겠다고 할 때와 비교해서, 김 주무관의 반응은 아예 차원이 달랐다.
예나가 나와 함께 독도 홍보 동영상에 함께 출연하는 것으로 잠정적인 결론이 나자, 담당인 김상기 주무관보다 이기훈 과장이 훨씬 더 흥분하고 있었다.
이기훈 과장은 아예 허리를 반으로 접어 예나에게 절을 하다시피 했고, 이기훈 과장의 과한 행동 때문에 예나는 당황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퇴근 시간에 모시러 오겠습니다.”
“아까 스케줄 때문에 서울에 올라가셔야 하신다면서요?”
“아, 저도 부지사란 분이 조금 꺼림칙하더라고요. 그래서 거짓말을 한 겁니다.”
“그러셨군요. 역시 배우님들은 일반인들과는 촉이 많이 다른 모양입니다.”
업무적으로 할 이야기를 모두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계속 이곳을 차지하고 있으면, 김상기 주무관이 계속 우리를 챙겨야 할 것이기에 자기가 할 업무를 보지 못할 것이고, 독도 정책과 직원 모두의 신경도 우리가 앉아 있는 회의실에 집중될 것이니, 이들의 일에 방해만 될 것이었다.
“아무튼 퇴근 시간에 맞춰서 모시러 올 테니, 사무실에서 내려오시면서 전화를 주세요.”
“무슨 말씀을요. 사실 이 주변에는 마땅히 볼 만한 곳도 없으니, 호미곶 쪽으로 가셔서 바다 구경이나 하고 계시지요. 그럼 퇴근하고 바로 제가 그쪽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러죠. 그럼 나중에 오실 때, 함께 근무하시는 분 중에서 시간이 되신다는 분은 함께 모셔오세요.”
“예?”
“계약하고 일을 시작하게 되면, 자주 얼굴을 볼 분들이잖습니까. 미리 밥이나 한 끼 하자는 거죠.”
김 주무관은 퇴근 시간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시내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대신에, 이곳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호미곶을 추천했다.
호미곶 쪽에 도착한 우리는, 등대박물관을 잠시 구경하고 바닷가로 나왔다.
“여기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해가 빨리 뜬다는 곳이야?”
“응, 그렇다고 하네.”
“그런데 이름이 왜 호미곶이야?”
“호랑이 꼬리라고 호미곶이라고 했어.”
“호랑이 꼬리?”
“응, 내가 기억하기론 조선 시대 풍수지리학자인 남사고 선생이, 백두산은 호랑이 코에 해당하는 부분이고 이곳이 호랑이 꼬리 부분에 해당한다고 하면서부터, 이곳이 호미곶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해. 그리고 조선 시대 지리학자였던 김정호 선생이 이곳이 우리 한반도의 가장 동쪽 끝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호랑이 꼬리 부분이라고 기록했다고 하고.”
사실 나도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호미곶이란 이름의 유래에 관해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예나가 이따금 엉뚱한 곳에 집요할 정도로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혹시 몰라서 예나 모르게 인터넷으로 호미곶에 대해 검색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 전에야 기껏 내가 이곳 호미곶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이라고는, 매년 1월 1일 새해가 되면 일출을 보기 위하여 이곳으로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것과, 이곳에서 가까운 구룡포가 과메기로 유명하다는 정도가 전부였다.
“우리 과메기 먹을 거지?”
“왜? 먹고 싶어?”
“아무래도 인터넷으로 시켜서 먹는 것보다는, 여기서 먹는 것이 맛있지 않아?”
“그런데 여기 사는 사람들은 과메기가 지겨울 수도 있을 텐데.”
“그럼 다른 것을 먹든지.”
예나가 몸 관리에는 철저해서 항상 열심히 운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먹는 것을 이렇게 좋아하는 데도 살이 찌지 않는 것인지 정말 신기했다.
안동에 간다고 했을 때는 찜닭 소리가 먼저 나오더니, 포항에 오니 과메기가 생각나는 모양이다.
“김 위에 미역을 딱 올린 후에 거기에 마늘 한 쪽이랑 풋고추를 놓고, 과메기를 초고추장에 푹 찍어서 싸서 먹으면 맛이 끝내주는데. 거기에다 소주 한잔이면 죽여주잖아.”
“완전 술꾼 같은 소릴 하네.
말은 다른 것을 먹어도 된다고 했지만, 포항까지 내려와서 과메기 맛을 보지 않고 서울로 돌아갔다가는, 두고두고 원망을 들을 것 같았다.
물론 포항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과메기가 지겨운 음식일 수도 있고, 과메기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결국 저녁으로 어떤 것을 먹을 것인지는, 김상기 주무관을 비롯한 독도 정책과 직원들이 도착한 후에 정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