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공익광고 그리고........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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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자고?”
“안동.”
“안동이라고? 갑자기 안동은 왜?”
“경상북도 도청이, 안동에 있잖아.”
“대구에 있는 것이 아니고?”
“안동 맞아. 구미하고 안동하고 서로 도청을 자기네 동네에 유치하려고, 승강이 벌인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거든.”
“아무튼 경북 도청이 거기에 있다고 치고, 갑자기 경북 도청에는 왜?”
“사람을 좀 만나려고.”
왕복 6시간은 족히 걸려야 하는 여정이었지만, 진수는 딱히 반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당분간 일이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라도 회사를 상대로 밥값이라도 하는 것이 진수에게는 부담이 훨씬 덜 되는 것이다.
“우리도 갈게.”
“됐어요. 그냥 사람만 만나고 후딱 올 생각이거든요.”
스태프 누나 둘도 함께 따라가겠다고 했지만, 왕복에 장장 여섯 시간이나 걸리는데 괜한 고생을 시킬 이유는 없었다.
“내려갈 때는 내가 운전을 할까?”
“됐어. 미선이하고 내가 교대로 하면 피곤할 일도 없어. 그리고 너 2종 보통이잖아.”
진수 말에 지금 내가 타고 다니는 차가, 밴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런데 너 오늘 오후에 서 배우하고 만나기로 약속했던 것 아니야?”
“아! 큰일 날 뻔했다. 잠깐만.”
오늘 예나가 일정이 없다기에, 오후에 만나서 데이트 약속을 한 것을 깜빡했다.
“응, 지금 뭐 해?”
“그냥 누워 있지. 왜 벌써 보고 싶어서?”
“그게 아니라 약속을 조금 미루면 어떨까 해서.”
“왜?”
“갑자기 안동에 갈 일이 생겼거든.”
“안동? 찜닭이 유명하다고 하는 그 안동?”
“응.”
“언제 가는데?”
“지금 출발해야 해서.”
“그럼 나도 같이 가.”
지난번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기 위해 러시아를 갔을 때 예나를 놔두고 간 죄도 있었기에, 나는 진수에게 예나가 사는 청담동으로 가자고 했다.
“누워 있었다면서 어떻게 벌써 나와?”
“그냥 기본만 발랐으니 그렇지.”
“하긴 본판이 예쁘니까.”
“그치!”
예나가 사는 아파트에 도착해서 전화를 걸자, 예나는 채 10분도 되기 전에 내려왔다.
그런데 예나 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예쁘다고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지겹지도 않은 것인지, 내가 예쁘다는 말에 반색한다.
“안동 가면 자기가 찜닭을 사주는 거야?”
“인마, 이럴 때는 얹혀서 가는 사람이 내야지.”
“정말? 나 카드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김 실장 언니 불러야 해?”
“네 얼굴이 카드잖아. 대한민국에서 서예나 모르는 사람이 간첩이지.”
아무튼 예나가 합류한 덕분에, 차 안 분위기는 훨씬 더 활기차게 변했다.
참 희한하게도 예나는 자기에게 달린 여자 스태프에게조차 불편함을 느껴서, 김 실장님 이외에는 전속 스태프조차 두지 않고 있으면서, 내 매니저인 미선이뿐 아니라 남자인 진수에게도 별 거리낌 없이 대하고 있었다.
“김상기 주무관님.”
“예. 배우님.”
“1시간쯤 후에 도착할 수 있는데, 그때도 시간이 될까요?”
“정말 내려오시는 겁니까?”
“약속했으니 당연하죠. 퇴근 시간까지 커피나 마시고 동네 구경이나 하면서, 시간을 좀 보내려고요.”
“저희 청사 위치는 알고 계십니까?”
“내비 아가씨가 잘 알고 있습니다.”
제천을 통과하면서 김상기 주무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이 양반이 업무 중이어서 퇴근 시간 전까지는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한다면, 단양을 들러 잠시 구경이라도 하고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김상기 주무관은 청사에 도착하면 바로 전화를 하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 했다.
그렇게 1시간쯤 달려서 드디어 도청 주변의 아파트와 도청건물만 아니라면, 시골 마을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경상북도 도청 청사에 도착했다.
“김 주무관님, 청사 앞에 도착해 있습니다.”
“제가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2분만 기다려 주세요.”
그렇게 전화통화를 끝내고 나는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면서 스트레칭을 했다.
“나와도 돼. 다니는 사람도 없어.”
“정말?”
“응. 솔직히 허허벌판이라고 하면 딱 맞겠는데. 무슨 도청을 이런 시골에다 세운 것인지?”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경상북도 도청은, 지리적으로나 사회기반 시설로나 이곳보다는 구미나 상주쯤이 훨씬 경북 도민들에게 유리하지 않았나 싶다.
말이 안동이지 안동시내에서는 한참이나 떨어진, 예천군이 훨씬 가까운 도청사가 너무 북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이다.
“한 배우님, 차 안에 계십니까? 그런데 청사 앞에는 차량도 보이질 않는데.......”
“예? 청사 현관 바로 앞에 있습니다. 검은색 밴인 걸요.”
“혹시 지금 계시는 지역이 어디십니까?”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경상북도 도청이요.”
“아이고! 저는 한 배우님께서 저희 청사를 이미 알고 계신다기에....... 이거 죄송해서 어쩌지요?”
김상기 주무관의 말에서, 정말 미안함이 절절 묻어 나오고 있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예. 저희가 본청 소속인 것은 맞긴 한데, 독도를 관장하는 부서여서 ‘환동해지역본부’ 전부가 포항에 사무실이 있습니다.”
내 잘못이었다.
경상북도 도청이 안동에 있다는 사실과 김상기 주무관이 경상북도 도청소속 공무원이라는 사실만으로, 이 양반이 사무실 위치를 알고 있느냐는 말에도, 대뜸 알아서 찾아갈 것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결국 다시 1시간 반쯤을 달려서 포항시 북구에 있는 ‘환동해지역본부’라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청사가 좀 그러네요.”
“임시 청사여서 그렇습니다. 조만간 흥해읍에 있는 신청사 공사가 마무리되면, 이전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찾아오실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나가시죠. 커피는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이왕 여기까지 오셨는데 사무실에 잠시 올라가셨다가 가시면 안 되겠습니까? 배우님께서 직접 찾아오신다고 이야기를 하니 직원들뿐 아니라 저희 과장님까지........”
그러고 보니 수많은 직원이 창가에 얼굴을 붙이다시피 해서, 우리가 있는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럼 올라가도록 하죠. 같이 온 사람들도 올라가도 되죠.”
“당연하지요. 어! 저......... 저분은........”
김상기 주무관이 밴에서 내리는 예나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입을 쫙 벌린 상태로 아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나야 이런 경험을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활짝 웃는 얼굴로 김상기 주무관 앞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배우 서예나라고 해요.”
“안....... 안녕하십니까. 김상기 주무관입니다.”
예나가 인사를 건네며 손을 내밀자, 김상기 주무관은 아예 몸까지 덜덜 떨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김상기 주무관의 그런 모습보다, 예나가 별 거리낌 없이 처음 본 남자에게 악수를 청하는 그 모습이 오히려 신기했다.
“예나야, 너 괜찮아?”
“응, 뭐가?”
“너 방금 악수했잖아.”
“자기가 내 옆에 있잖아. 자기가 옆에 있는데 내가 왜 겁을 내?”
예나의 말에 김상기 주무관은,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 이 친구가 모르는 남자분과는 말조차 잘 섞지 않거든요. 아마 김 주무관이 최초일 겁니다.”
“예? 정말입니까?”
“우리 쪽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저 친구들 표정 보세요.”
나만 놀란 것이 아니라 진수와 미선이 또한,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하고 아예 멍한 표정으로 예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 대수로울 것도 없는 일이었지만, 예나의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방금 예나가 한 행동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불가능한 그런 행동이었다.
아무튼 예나의 이런 변화는, 나나 예나 뿐 아니라 주변 사람 모두에게 아주 반가운 일이 될 것이다.
“이제 올라가시지요.”
“그럽시다.”
그렇게 잠시 김상기 주무관과 인사를 나누고, 우린 김상기 주무관의 안내에 따라 현관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저희 경상북도 행정부지사님이십니다.”
제법 연륜이 느껴지는 양반이 손을 내밀기에, 누구인가 하는 표정으로 김상기 주무관을 바라봤더니 경상북도의 부지사란다.
“이렇게 환대를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배우 한강수라고 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오신다는 연락을 받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에 계시는 분은?”
“서예나 배우입니다. 제 약혼자인데 바람을 쐬고 싶다고 해서 같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자, 부지사란 양반이 예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예나는 아까 김상기 주무관에게 한 것과는 달리 손을 맞잡는 대신에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고, 행정부지사는 머쓱하니 손을 도로 집어넣고 고개를 숙였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제 방에 가서 차라도 한잔.......”
“죄송합니다. 오늘 서울에서 일정이 있어서, 담당 주무관님과 잠시 의논을 한 후에 바로 서울로 올라가 봐야 합니다.”
예나의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았기에, 나는 스케줄을 핑계로 부지사의 청을 완곡하게 거절했다.
“주무관님 앞장서시지요.”
그리고 김상기 주무관에게 김 주무관이 근무하는 사무실로 가 달라고 부탁하고, 우리는 김상기 주무관의 뒤를 따라 독도 정책과가 있는 4층으로 향했다.
‘짝!’ ‘짝!’ ‘짝!’
독도 정책과 문을 열고 들어서니, 직원들이 모두 일어나 우리를 향해 박수를 치고 있었다.
나와 예나는 직원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면서 김상기 주무관 뒤를 따랐고, 김상기 주무관은 우릴 작은 회의실로 안내했다.
“차는 뭐로 하시겠습니까?”
“혹시 믹서 커피가 있습니까?”
“예. 믹서 커피야 있지만 설마.......”
“그걸로 주시면 됩니다.”
희한하게도 오늘 함께 내려온 모두가 믹서 커피 애호가였다.
내가 믹서 커피를 부탁하자, 김상기 주무관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한강수 배우님. 혹시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저희 과장님께서 잠시 인사라도 드리겠다고......”
“좋습니다. 나가죠.”
“아닙니다. 여기 앞에 와 계십니다.”
만일 거절이라도 했더라면 괜히 곤란할 뻔했다.
독도 정책과의 과장이란 분은, 나이가 40대 후반쯤으로 푸근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서예나 배우님, 사인을 하나 받을 수는 있겠습니까? 제 집사람이 서예나 배우님의 팬이거든요.”
머뭇거리면서 부탁하는 독도 정책과장이란 분의 표정이 좀 웃기긴 했지만, 예나는 다시 환한 얼굴로 과장님이 내민 종이를 받아 들었다.
“과장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이기훈입니다.”
이기훈 과장의 말이 끝나자, 예나는 A4용지 상단에 ‘이기훈 과장님 그리고 사모님 두 분 행복하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아래쪽에 사인을 해서 이 과장님께 건넸다.
“진수 씨, 우리 인증 사진 한 장만 찍어 줘요.”
그러고선 이기훈 과장을 중앙에 앉히고, 나와 예나가 양옆에 앉은 자세로 사진을 찍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 집사람이 서예나 배우님 사인을 보면 정말 기뻐할 겁니다.”
사진을 찍고 사인까지 받은 이기훈 과장은 마치 세상을 다 얻은 사람 같은 표정으로, 왕 앞에서 물러나는 신하처럼 뒷걸음질을 치면서 회의실을 나갔다.
그런데 조금 전 부지사와 인사를 나누었을 때와 또 이기훈 과장과 인사를 나눌 때의 예나 반응이, 확연할 정도로 달랐다.
마치 조울증 환자가, 조증과 울증이 반복되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