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공익광고 그리고........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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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하던 날 공항에서 한 발언, 파장은 제법 오래 지속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이 그렇게까지는 많지 않았는데, 그날 이후 내 사진들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공유되면서 이곳저곳에서 아는 척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호위무사로 나오는 분 맞으시죠?”
“예. 안녕하세요. 배우 한강수입니다.”
“사인 한 장만 해주실 수 있으세요.”
진수와 함께 집 부근 마트에 가면서부터, 바뀐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물건을 사기 위해서 마트 내부를 돌아다니면 힐끗거리는 주변의 시선을 느낄 수가 있었고, 어떤 용감한 사람은 내게로 다가와 사인을 요구하곤 했다.
그렇게 사인을 해주고 그 사람의 요구에 따라 같이 사진을 찍어주다가 보면, 어느새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진수는 그 사람들을 줄을 세우고 차례대로 사인을 해줘야 하는 장면이 종종 연출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는 선글라스하고 마스크라도 하고 다녀야겠다.”
“귀찮아.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일일이 사인해주고 사진 찍어주는 것은 괜찮고?”
“그 사람들이 전부 내 고객이잖아. 고객이 나란 물건을 사주겠다는데 그게 왜 귀찮아?”
“지금이야 덜하지만 앞으로 점점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 거야. 그러다가 보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고.”
“그건 그때 가서 걱정하자.”
그럴 때마다 진수는 나에게 얼굴을 가릴 수 있게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착용할 것을 이야기했지만, 아직은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대중들의 그런 반응을 즐긴다는 것이, 내 솔직한 생각일 것이다.
물론 언젠가는 안전을 위하여 얼굴을 가리고 또 그것도 부족해서 매니저들 틈에서 지내야 하는 날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크게 피해를 주지 않는 상황이라면 가능한 내 얼굴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얼굴을 보여주고, 사인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일일이 사인을 해주고 싶었다.
그 때문에 인터넷에는 내가 이따금 가는 마트와 편의점 그리고 우리 동네에 있는 커피숍까지 올라와 있었고, 특히 커피숍에는 내 얼굴을 보기 위해 커피숍에서 죽치는 사람까지 생겨나고 있었다.
“막가파 아저씨!”
“인마, 이왕이면 형! 내가 어디로 봐서 아저씨로 보여?”
지수가 이야기했던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 내가 ‘막가파 한강수’로 불린다는 말이 사실이었던 것인지, 길을 걷다가 보면 중고등학생 사내아이들은 장난처럼 ‘막가파 아저씨’로 부르는 아이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그러면 나는 그때마다, 아저씨가 아닌 ‘형’이라고 강변하면서 대거리를 해주곤 하는 것이다.
아직은 스타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지만 내가 대중들에게 스타라 불리는 날이 오더라도, 나는 하늘에 떠 있는 별이 아닌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고 살을 부대끼는 그런 스타로 남을 생각이다.
“한 배우, 광고출연 제의가 들어왔는데......”
“광고출연 제의가 들어왔다면, 반가운 것 아닌가요? 그런데 대표님 인상이 왜 그러세요.”
“돈이 안 되는 광고니까 이러지. 그렇다고 돈 때문에 거절하기도 곤란하고.”
그동안 회사뿐 아니라 진수의 개인 휴대전화로, 수없이 많은 광고출연 제의가 들어왔었고 지금도 그 제의는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선 대표님은 아직 광고주들이 제의하는 금액이, 내 몸값에 미치지 못하다는 이유로 광고출연에는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광고출연 제의가 들어왔다고 하시면서도, 그다지 기쁜 얼굴이 아니었다.
“누가 강제로 광고를 찍으라고 협박이라도 해요?”
“그게 공익광고야. 그래서 돈도 별로 되지도 않아.”
“그럼 스케줄 핑계로 거절하시면 되잖아요.”
“그게 독도 홍보 광고거든.”
무슨 뜻인지 대충 이해가 되었다.
다른 공익광고라면 출연료 때문에라도 대충 핑계를 대서 거절을 하겠지만, 지난번 공항에서의 인터뷰 이후로 생겨난 내 이미지 때문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선 대표님이 고민하시는 이유는 출연료가 아니라, 그 광고를 찍고 난 후의 상황을 염려하고 계시는 것이다.
‘마지막 황후’에서의 이미지, 거기에다 공항에서의 ‘쪽바리’ 발언 그것에 일본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독도 홍보영상까지 보태게 된다면, 내 이미지가 완벽할 정도로 ‘국뽕’ 배우 이미지로 고착될 수가 있다는 점을 염려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니 연예기획사를 운영하는 선 대표님 처지에서는, 당연한 걱정인 것이다.
한강수라는 상품의 콘텐츠가 한강수 개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담기획 전체의 콘텐츠가 될 수도 있으니, 자칫하면 예담기획 소속의 배우들 모두가 일본시장을 완벽하게 포기해야 할 수도 있는, 그런 위험부담을 안고 가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 못하겠다고 하세요. 회사도 먹고 살아야 하잖습니까.”
“거기서 회사가 왜 나오나.”
“저 하나 때문에, 우리 회사 소속 배우들의 일본 진출을 막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일본이야 자네 말대로 안 가도 돼. 일본시장을 포기한다고 우리가 굶어 죽을 일도 없고. 그리고 방송과 영화관 시장만 포기할 뿐이지 N 플릭스 같은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에서는 아무런 피해가 없거든.”
“그럼 뭐가 걱정이신데요?”
“자네 이미지가 너무 한쪽으로 고착될까 봐 그게 걱정이지. 그럼 들어오는 배역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고. 또 솔직히 출연료도 너무 적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제 한강수라고 하면 국민들 절반은 아는 배우인데 5천이 뭐야!”
“공익광고라면서요. 공익광고에서 5천이라면 그다지 적은 금액도 아니네요.”
솔직히 하고 싶었다.
물론 내가 세계적인 스타를 꿈꾸고 있다면 고민할 일일 수도 있겠지만, 배우로서 성공이 내 목표의 끝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오늘 이야기가 선 대표님의 본심이라면, 나는 이번 광고를 찍고 싶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어차피 나야 국내에서 인기만으로도 충분한 것 아닌가?
그냥 대한민국 국민들이 좋아하고 인정하는 국민배우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내 배우생활의 목표를 100% 이룬 것이니 말이다.
내 삶의 최종목표는 배우로서의 성공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인 한강수로서의 성공이니까.
“그 돈을 받고도 해볼 생각이 있어? 스튜디오에서 찍는 것도 아니고, 독도까지 왕복하려면 제법 피곤하기도 할 텐데.”
“에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돈을 받지 않더라도 해야지요. 회사만 아니면 아예 노 개런티라도 출연할 건데요.”
“돈이야 당연히 받아야지. 어디 가서 그런 소리는 절대 하지 마.”
돈이라는 것이 꼭 통장에 꽂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 같이 이미지로 먹고사는 배우는 인기라는 것이 돈하고 직결되는 법이고, 이런 공익광고에서 좋은 이미지를 쌓아두면 그것이 언젠가는 출연료보다 훨씬 큰 금액의 돈으로 돌아오게 될 수도 있다.
“아무튼 이번 공익광고 그냥 하죠.”
“정말?”
“예. 대신에 이왕 하는 것 제대로 찍고 싶습니다.”
“어떻게?”
“회사 이익금을 뺀 제 출연료를, 광고를 찍는 것에 투자해주세요.”
“그게 무슨 말이야?”
“보통 관에서 하는 일이 그렇잖아요. 대충 생색만 내는. 그러니까 계약서를 작성할 때, 광고를 기획하는 것하고 촬영업체 선정을 우리 쪽에서 한다는 조건으로요. 그래서 제대로 된 광고를 찍자고요.”
“그러니까 한 배우 자네 이야기는, 광고를 찍되 제작비에 돈을 더 투자하자는 말이지?”
“그 말도 맞기도 하고, 솔직히 관에서 하는 일을 믿지를 못해서요. 가령 예를 들자면 업체에 2천쯤 던져주고 예산은 5천으로 잡아서, 나머지 3천을 갈라먹기 하는 놈들이 공무원이란 놈들이잖아요.”
“에이~ 설마?”
물론 대한민국 공무원 모두가 그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주 많은 수의 공무원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 또한, 대한민국 공무원사회의 현실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인도와 차도를 나누는 경계석이다.
인터넷에서는 기껏 몇 만 원이면 쉽게 살 수 있는 그 경계석이, 시공비니 뭐니 하면서 잡다한 명목을 붙여 관에 10만 원이 넘는 금액으로 납품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그 차액은 업주와 공무원들의 뒷주머니를 채우게 되는데, 그 돈 모두가 국민의 혈세라는 점이다.
그랬기에 이왕 공익광고를 찍겠다고 결정한다면, 업체에도 제대로 된 돈을 지급하고 결과물 또한 제대로 된 것을 받아 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당장 그 주무관청인 경상북도에서 거래하는 업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또 그 자금을 집행하는 주체 역시 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독도 정책과 김상기 주무관입니다. 혹시 한강수 배우님 휴대전화가 맞습니까?”
“예. 제가 한강수입니다.”
전화를 걸어온 남자의 목소리가 아주 젊었다.
아마도 공무원에 임용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초임 느낌이 나는 것이, 나이가 많아 봐야 20대 후반쯤으로 보였다.
“예담기획에서 한강수 배우님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셔서, 이렇게 전화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혹시 지금 통화가 편하신가요?”
“예. 말씀하세요.”
“회사 담당자께 듣기로 독도홍보 영상을 촬영하는 것과 관련해서, 한 배우님께서 예산을 저희가 아닌 회사에서 직접 집행하는 것을 조건으로 내세우셨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그렇게 요구했습니다.”
“혹시 그 이유를 제가 알 수 있을까요?”
담당자로서 궁금하기도 또 의심받는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김상기 주무관이라는 이 사람은 일체의 감정을 배제한 상태로, 차분하고도 편안한 목소리로 내가 그렇게 요구한 이유를 물어 왔다.
“김상기 주무관님이라고 하셨지요?”
“맞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론 제 이야기가 주무관님께서 듣기에는 거북하고 기분이 나쁘실 수도 있겠지만, 제가 해야 할 말을 속에 넣어두고 혼자 끙끙 앓는 스타일이 아니어서요.”
“괜찮습니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먹고사는 공복이 공무원 아닙니까. 주인이 뭐라고 하시는데 그걸 두고 머슴이 화를 내서는 안 될 일이지요.”
말하는 것을 보니, 제법 재미가 있는 양반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유들유들하니 닳고 닳은 공무원 같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에 봉사하는 진짜 공무원으로서의 자세에 충실한 그런 사람일 수도 있는데, 아무튼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주는 말투를 가진 사람이었다.
순간 이렇게 전화로 떠드는 것보다 직접 얼굴을 마주 보면서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무관님, 퇴근이 보통 몇 시입니까?”
“공무원 퇴근 시간이야 전국이 똑같죠. 퇴근 시간 맞춰서 저한테 소주라도 사주시려고요? 그러다가 잘못하면 저 잘립니다.”
“청탁금지법 그러니까 소위 이야기 하는 김영란 법에 따르면, 3만 원 이내면 관계가 없지 않습니까?”
“배우님이 그런 것도 알고 계십니까?”
“저도 대한민국 국민이거든요.”
물론 이 주무관이라는 양반이 어떤 사람인지는, 직접 만나서 겪어봐야 알 일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내가 독도 홍보대사를 맡고 또 독도 홍보영상을 찍는 것이 확실하게 결정되면, 앞으로 몇 번은 만나게 될 것이다.
만나서 괜찮다고 판단이 들면 그 인연을 오랫동안 함께 할 인연으로 엮어 가면 될 일이고, 만약 그게 아니라면 그냥 안동까지 드라이브하러 다녀온 것으로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어차피 당분간은 별로 할 일도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예정에도 없었던 안동으로의 여행이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