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막가파 배우 한강수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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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진수의 걱정은 덜어줘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의 막무가내 행동에 진수의 기분이 틀어질 수도 있고, 자칫하면 나에 대한 실망으로 기대치가 떨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마지막 황후’를 찍는 순간 일본 진출은 물 건너갔어.”
“그래서 막 가자는 것이었어?”
“막 가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을 대상으로 잘 먹고 잘살아 보자는 거지. 이왕이면 중국인들에게도 좀 뜯어 먹기도 하고.”
“중국인?”
“일본 놈들에 대한 감정이야, 중국과 동남아 쪽 국민은 비슷한 감정을 품잖아.”
“그럼 그 틈에 잔대가리를 굴렸던 거야?”
“어허! 어디서 감히 네놈이 모시는 배우님에게 잔대가리라니! 그냥 이 형님께서 큰 머리를 굴리신 것이다.”
“지랄한다.”
사실 처음 내질렀을 때는, 중국 쪽과는 연관시킬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내가 이제는 개인이 아닌 예담기획에 소속된 배우이니 회사 입장을 생각하지 않을 도리가 없고, 오늘 내가 한 발언이 예담기획으로서는 지극히 부담되는 발언임은 확실했다.
그랬기에 회사로 돌아가 선 대표님의 화살을 피할 핑계거리를 생각하다가, 중국시장을 떠올린 것이다.
“그런데 너희 둘은 나이가 들어도 어떻게 철이 들지 않냐? 말하는 것을 보면 아예 초등학생 수준이라니까.”
운전을 하면서 우릴 지켜보던 미선이가, 기어코 한마디를 던진다.
“우리 집 수도 배관 공사를 한 지 오래 되어서 그렇거든.”
“썰렁하다가 못해 펭귄이 튀어나오겠다. 어디서 80년대 개그를 치고 그래.”
역시 미선이의 말발은 죽질 않았다.
예전부터 곱상한 외모와 달리 입담이 걸쭉한 것이 마치 선머슴 같았는데, 이제 얼굴을 본지 며칠이 지나서 마음이 편해진 탓인지 다시 예전의 성격으로 돌아온 것이다.
“어디로 가?”
“집으로 가지 어딜 가긴.”
“회사로 가자. 대표님한테 잔소리는 미리 듣고 가야지.”
회사가 아닌 집 쪽으로 방향을 잡았기에, 나는 회사로 가자고 했다.
솔직히 선 대표님도 조금 전 내가 한 말 때문에, 속을 끓이고 있으실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한 배우님, 오늘 화끈하게 내지르셨던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좀 다혈질이어서요.”
“잘하셨습니다.”
“예?”
“지금 인터넷 반응이 정말 장난이 아니거든요. 졸지에 개념배우 등장입니다.”
회사에 도착하니 홍보팀 직원이 우리를 반겼다.
하지만 홍보팀 직원으로서는 이슈거리를 만들어줬으니 반가울 수도 있겠지만, 당장 수익에 관한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대표님으로서는,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지만 속에서는 천불이 날 것이다.
“계산하고 지른 거야?”
“어느 정도는요.”
“정치하려고?”
“그것도 있기도 하고 또 굳이 일본시장을 목표로 삼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요.”
예상했던 것과 달리, 선 대표님의 표정은 담담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그림을 그리고 계시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국내용이라는 판단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담담한 표정의 선 대표님을 보니 은근히 겁이 났다.
“그럼 어떻게 하려고? 그냥 대한민국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원하는 배우가 될 생각인가?”
“일본보다 큰 시장이 있지 않습니까.”
“중국?”
“예. 중국도 있고 또 대만이나 베트남 쪽에도, 우리 드라마가 많이 넘어간다면서요.”
“그러니 한 배우 말대로 하자면 반일 감정을 이용해서, 일본에 우호적이지 않은 시장에 진출 하겠다?”
“따지자면 그런 셈이지요.”
“하긴 그 생각도 일리가 있긴 한 생각이지. 어차피 ‘마지막 황후’로 인해서 일본 쪽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아서, 예나도 일본 쪽은 당분간 접을까 하고 고민하던 중이거든.”
걱정과는 달리 선 대표님은, 아주 담담한 반응을 보이셨다.
물론 내가 마음먹은 대로 일이 진행된다는 보장은 없겠지만, 일단 내가 해외로 진출한다면 일본 대신에 중국이나 대만 그리고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권역을 대상으로 하겠다는 내 생각을 밝혔으니, 회사에서도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일을 추진할 것이다.
“대표님은 뭐라고 하셔?”
“별말씀 없으시던데.”
“그래, 솔직히 난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걱정해봐야 뭘 해. 이미 저지를 것은 다 저질렀는데.”
“아무튼 항상 느끼는 거지만 속 편해서 오래 살겠다. 너 때문에 남 명줄 줄어드는 것은 생각도 않고.”
진수가 툴툴거리긴 했지만, 그건 기분 좋은 투덜거림이었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와 누나 둘과 인사를 나눈 후에, 소파에 드러누워 휴대전화를 열었다.
진수 말대로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한강수란 이름이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고, 이어서 ‘한강수 소신 발언’, ‘왜놈’, ‘위안부 할머니’, ‘강제노역 노동자’ 등이 줄을 잇고 있었다.
[한강수 배우, 막말인가? 아니면 소신 발언인가?]
[공인으로서, 왜놈과 쪽바리란 단어가 적합했나?]
[한강수 배우가 가진, 공평함과 공정함은 무엇?]
[역사의식이 남다른, 한강수 배우는 누구?]
아무튼 정말 열심히 소설을 써두긴 했다.
그리고 기자들은 ‘이때다!’ 싶었던 것인지, 내가 한 말 중에서 일본과 관계된 것뿐 아니라 러시아를 다녀온 것에 관한 내용도, 하나하나 끌어내 역사의식이라는 주제로 포장해서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덕분에 ‘왜놈’ ‘쪽바리’라는 자극적인 단어로 네티즌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그것에서, 한강수란 배우가 가진 역사의식(?)을 조명하는 쪽까지 외연을 확대하고 있었다.
⌞ 이런 사람이 왜 정치를 하지 않고, 배우를 하는 것임.
⌞ 배우가 역사의식, 민족의식까지 가지고 있으면 좋은 것 아님?
⌞ 한강수 얘는 학교 다닐 때부터, 국수주의 성향이었음. 나 한강수 대학 동기임.
⌞ 관종질 오지고요.
⌞ 나 H 예대 연영과 95학번인데 누구이심?
네티즌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기사마다 댓글이 몇 백 개씩 달릴 정도니, 설령 거기에 악성 댓글이 달렸다고 하더라도 결코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무관심보다는 악성 댓글이라고 할지라도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배우란 존재에겐 오히려 반가운 법이니 말이다.
하지만 악성 댓글에는 다른 네티즌들이 아예 떼로 몰려가서 성토하는 분위기가 보편적인 현상이었기에, 어떤 댓글은 아예 작성자 스스로 자기가 작성한 댓글을 삭제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웃긴 왜 웃어?”
“재미있잖아.”
“뭐가?”
“별 내용도 없는 일에 왜놈이라는 단어 하나 가지고, 이렇게 난리가 날 정도이니 웃기지 않아?”
“사람들이 네놈이 일본 맥주 애호가란 사실을 알아야 하는데......”
“어! 그것도 그러네. 지금 냉장고에 일본 맥주 남아 있지?”
“당연한 것 아니야? 지난번에 아예 편의점을 털어놓고선.”
“그거 후딱 마셔버리자. 그런데 그 맥주 다 마시고 나서는 뭐로 바꾸지?”
쇼를 하려면, 철저하게 그리고 제대로 해야 한다.
내가 지금까지 아무리 일본 맥주를 즐겨 마셨다고 하더라도 아직 그 사실을 우리 식구들만 알고 있는 것이니, 당장 오늘부터 우리 집에서 일본 맥주를 추방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튼 그걸 핑계로, 냉장고 안에 있는 일본 맥주 추방 운동을 시작했다.
어차피 내일 일정이 정해진 것이 없으니, 미정이 누나와 지민이 누나까지 불러서 일본 맥주 추방운동을 시작했다.
“그럼 앞으로 옷도 일본제품은 입지 말아야겠네?”
“당연하죠. 모르는 사람들이야 그냥 넘어가겠지만, 내가 입은 옷이 일본산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거잖아. 그러니 누나는 일본산 옷은 아예 박스에 넣든지 해서 눈에 뜨이지 않게 해줘. 그냥 걸어두었다가 실수할 수도 있잖아.”
어차피 일본 맥주를 마시지 않는다고, 일본에서 만든 옷을 입지 않는다고 불편할 일은 없다.
편의점에서 4캔 만 원에 파는 맥주도, 일본산 맥주가 아니어도 독일산도 또 우리나라 맥주도 많으니 말이다.
진짜 제대로 된 좋은 옷이라는 평을 듣는 옷과 액세서리들이야, 일본 제품보다는 패션의 본고장이라는 프랑스나 이탈리아 그것도 아니면 미국 제품을 훨씬 더 쳐주니까 말이다.
“어이! 막가파!”
“까분다. 학교는 잘 다녀온 거야.”
“응. 그런데 그거 내가 만든 말이 아닌데.”
“인마, 뜬금없이 막가파가 무슨 말이야?”
“우리 학교 애들이, 오빠보고 막가파 한강수래.”
“응? 졸지에 나를 조폭으로 만드네. 왜?”
“미친개에겐 몽둥이가 약인데,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 놈들에게는 외교니 뭐니 하는 것보다, 오빠처럼 막무가내로 치받는 것이 정답이라고.”
“인마, 그런 말은 진작해야지. 난 누가 내 욕하는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오빠 욕하다가 맞아 죽을 텐데? 오늘 야자 시간에 난리였거든.”
“왜?”
“일본 놈 중에서 우리나라 포털 사이트에 계정을 가지고 있는 애들이 댓글로 지랄해서, 그거 잡는다고 전국적으로 난리 났었다.”
일본인이 우리나라 포털 사이트의 계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처음 듣는 말이었고, 또 댓글 때문에 전국의 학생들이 난리를 쳤다는 말은 황당하기까지 했다.
“외국인도 얼마든지 가입할 수 있거든.”
“정말?”
“응, 그리고 우회해서 가입하는 방법이 있기도 하고.”
“그건 그렇다고 치고 전국에서 난리가 났다는 말은 또 무슨 말이야? 학생들이 무슨 협의체라도 조직한 거야?”
“그런 협의체가 있기는 할 거야.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식으로 어느 단체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단체 톡 방에서 다른 단체 톡 방으로 그리고 거기서 또 다른 데로, 이런 식으로 순간적으로 퍼져나간 거지.”
“아무튼 그래서 결론이 내가 졸지에 막가파가 된 것이고?”
“대충 그래. 단체 톡 방에서 오빠 별명이 ‘막가파 배우 한강수’로 아예 고정되었으니까.”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그 이름을 듣게 되면 내가 무슨 조직폭력배라도 되는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는 별명이지만, 특별히 그 별명이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일단 오늘 그 정도로 전국의 고등학생들이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면, 그중에서 1/100 정도는 한동안은 내 이름 한강수를 기억할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친구들이 2~3년 후면, 선거권을 가지는 유권자의 한 사람이라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그것도 내게 적극적인 호의를 가진 유권자가, 전국 곳곳에 퍼져 있는 그런.......
“집으로 가지 않고 왜 여기로 왔어?”
“자기가 귀국했는데, 내가 왜 청담동엘 가?”
“저녁은 먹었고?”
“아니, 오랜만에 자기가 끓여주는 라면 먹으려고, 우유만 한잔 마셨거든.”
“그럼 미리 전화라도 하지. 전화를 했으면 물이라도 올려 뒀을 텐데.”
밤 10시가 넘은 시간까지 저녁도 먹지 못했다고 했기에, 나는 서둘러 물부터 올렸다.
“그런데 밤중에 라면 먹어도 괜찮겠어? 내일 촬영은 없는 거야?”
“응. 내일 스케줄은 모두 미뤘어.”
“왜? 몸이 많이 피곤해?”
“아니, 내일은 자기랑 놀아야지.”
오랜만에 만났으니 내일 하루는 당연히 쉬고 나하고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예나의 말에, 나는 아예 할 말을 잃었다.
예나는 이제 일보다는, 내가 우선인 모양이었다.
예나의 그런 태도가 반갑기도 했지만, 아직 내 마음을 확실히 결정하지 않은 그것 때문에 부담이 되기도 했다.
결국 조만간 예나와의 관계에 대해 결론을 내리는 것이, 서로에게 현명함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