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 막가파 배우 한강수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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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라~라~라!’하는, 마치 낙엽 뭉치가 구르는 소리처럼 카메라 셔터 소리가 빗발치고 있었다.
그리고 눈을 뜨기조차 힘이 들 정도로, 카메라 플래시가 내 눈을 두들기고 있었다.
[한강수 배우님, 손 한번 흔들어 주세요!]
[한강수 배우님, 여기 좀 봐 주세요!]
[러시아 여행을 다녀오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여행의 목적이 무엇이었나요?]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가 궁금했다.
소속사뿐 아니라 진수에게까지 내가 귀국한다는 소식을 알리지 않았는데, 기자들이 어떻게 내가 도착할 시간을 미리 알고 있다는 말인가?
더군다나 러시아를 다녀왔다는 사실까지 말이다.
아무튼 다른 사람도 아닌 기자들이니, 아직 신인배우에 불과한 내가 그들을 무시하고 지나칠 수가 없었다.
“정말 여행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겨울철에 여행을 간다고 하면 조금 따뜻한 곳을 다녀오든지, 아니면 미국이나 유럽 등이 대부분인데 어떻게 러시아를 다녀오실 생각을 하셨나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러시아를 여행하려고 다녀온 것이 아니라,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기 위해서 러시아를 간 것입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기 위해서라니, 그게 무슨 뜻인가요?]
“어차피 조사를 해보시면 아실 수 있는 내용이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일정은 인천공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이틀은 블라디보스토크의 L 호텔에서 뒹굴 거리면서 체력을 회복하고, 바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탔습니다. 그리고 그제 모스크바에 도착해서 이틀을 쉬고 귀국한 것이고요.”
공항 대기실에서 기자회견이 아닌 기자회견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대답을 하는 동안에도 기자들은, 연신 내 모습을 찍기 위하여 셔터를 눌러대면서 플래시를 터트리고 있었다.
[굳이 고생스럽다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신 이유가, 따로 있었습니까?]
“그냥 제 로망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예전 지금보다 나이가 어렸을 때 B. 파스테르나크가 쓴 ‘닥터 지바고’를 읽으면서, 나중에 제가 돈을 벌면 그 양반처럼 꼭 겨울철에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보고 싶었거든요.”
사실 책 때문이 아니라 영화에서 본 그림과 같은 장면들 때문이었지만, 기자라는 양반들이 소설을 쓰기에는 영화보다는 책이 훨씬 좋을 것 같아서 책이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그렇게 기자들과 사이에서 질의·응답이 계속되자, 무슨 일인가 하고 지나던 사람들까지 몰려들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급기야 공항경찰까지 나서서 사람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강수 배우님, ‘닥터 지바고’를 읽고 느낀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음······. 뭐랄까요. 그냥 그때 잘 먹고 잘살던 사람들은, 지금도 잘 먹고 잘산다고나 할까요?”
[그게 무슨 뜻이죠?]
“‘닥터 지바고’의 시대적 배경은 기자님들께서도 잘 알고 계시는 것처럼, 제정(帝政)러시아가 붕괴된 후의 혁명기였습니다. 그 혁명기에 수많은 민초들은 목숨을 잃기도 했고 또 가난과 배고픔, 그리고 관리들의 노략질 때문에 시련을 겪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내용은 ‘닥터 지바고’에도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러시아 사회의 최상위 계층인 귀족들은, 민초들이 겪는 그런 고난과는 무관하게 잘 먹고 잘살고 있었다는 말이지요.”
순간적인 잔머리 덕분이었다.
이왕 이렇게 공개된 장소에서 기자들과 이야기하려면, 별로 아는 것이 없더라도 있는 척해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고나 할까?
내가 정치를 하기로 결심을 굳힌 이상, 앞으로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누군가의 머릿속에는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한 마디 한 마디가 언젠가는 내게 칼이 되어 돌아오든지, 아니면 화려하게 포장된 선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나로서는 이런 좋은 기회를, 헛되이 날려버릴 수 없는 것이다.
[도대체 한강수 배우님은. 언제 그 ‘닥터 지바고’를 읽으신 겁니까?]
“처음 ‘닥터 지바고’를 손에 쥔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세 번째 정독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 책을 세 번씩이나 읽었다는 말인가요?]
“제 나름대로 ‘닥터 지바고’ 그 책이, 제 인생 서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닥터 지바고’의 어떤 점이, 한 배우를 그렇게 끌어당겼던 것일까요?]”
“사회의 불공평함과 불평등함이라고나 할까요? 아직 제가 사회현상이나 정치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해서, 더는 설명이 힘드네요.”
[한 배우께서는 정치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닐까요?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정치인들의 행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정치인들이 알고 있어야, 정치인들이 국민을 무시하는 일도 생기지 않고 또 나쁜 짓을 하기가 힘들어진다고 알고 있습니다.”
능구렁이가 담을 넘는 것처럼, 슬며시 정치 쪽으로 말을 돌렸다.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오는 대답은, 현재의 정치판을 비판하는 것이 아닌 지극히 원론적인 수준에서의 대답이었다.
괜히 정치를 시작하기도 전에 적을 만들 필요도, 또 안티 팬을 만들 이유도 없으니 말이다.
[하나만 더 질문하겠습니다. 한강수 배우께서는 영화 ‘네 안의 야수’를 찍으면서, 동시에 드라마 ‘마지막 황후’에도 출연하셨었습니다. 대부분 배우는 겹치기 출연을 꺼리는 편인데, 한 배우께서 뒤늦게 드라마에 합류하시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혹시 연인인 서예나 배우 때문이셨습니까?]
“처음에는 단순한 카메오 출연이었습니다. 그렇게 카메오 촬영이 끝이 난 후, ‘마지막 황후’를 연출하시는 김형국 감독님께 전화를 받게 되어 출연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와 드라마의 겹치기 출연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요?]
“맞습니다. 기자님께서도 영화와 드라마를 보셨겠지만, 제가 연기한 대부분이 몸을 쓰는 역할이었습니다. 그래서 과연 체력적으로 가능할까 하는 고민이 많았지요. 그러면서도 ‘마지막 황후’란 드라마를 꼭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왜죠?]
드라마 ‘마지막 황후’에 관한 질문이 나오면서, 나는 기자 입에서 왜 이 드라마에 출연하기로 한 것인지 그 구체적인 이유를 물어봐 주길 기대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질문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내 입에서 나오는 대답이, 지금 질문한 기자의 머릿속에 있는 그 기대와는 전혀 무관한 대답이 되리라는 것이다.
“무능한 지도자나 나쁜 관료가, 얼마나 나라에 해악을 끼치는 것인가에 대한 것을 ‘마지막 황후’ 그 드라마에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극 중에서 제가 맡은 역할이, 시대의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는 한미한 역할이기는 했지만, 위장의 임무가 왜놈들로부터 황후 그러니까 대한제국 국모의 안위를 지키는 것이, 우리 민족의 정기를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배우께서 무슨 생각으로 ‘마지막 황후’에 출연하시기로 한 것인지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공적인 자리에서, 일본인을 대상으로 왜놈이라고 표현하신 것은 좀......]
기자의 반격(?)에 나는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기자님께서는 왜놈이라는 단어에 불쾌감을 느끼시는지 몰라도, 저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순종황제 이후 우리 민족이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강제로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여자들은 위안부란 이름으로 전쟁터로 끌려가서 왜놈 병사들의 성욕을 해결하는 배설도구가 되어 짓밟혔습니다. 또 남자들은 강제징용이란 이름으로 전쟁터에 끌려가, 활주로를 만드는 공사에 동원되거나 군수공장으로 끌려가 강제노동을 해야 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분들은 아직 일한 품삯조차 받지 못해서, 일본국 차원의 배상을 요구하고 있고요. 그런데 왜놈들 반응은 어떻습니까? 저는 그런 놈들은 인간으로 보지 않습니다!”
기자들이 내 과격하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의 발언에, 아예 넋을 놓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이 발언이 기사화된다면 세상이 제법 시끄러워지게 될 것이고, 나뿐만 아니라 내가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는 일본 수출 길이 완전히 막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일본에 종종 수출되는 로맨스 계통의 드라마 캐스팅은, 아예 물 건너갔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고 말이다.
[방금 하셨던 그 말을, 취소하실 생각은 없습니까?]
“제가 홍길동도 아닌데 왜놈을 왜놈으로 부르지 못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제 말이 틀렸다면 취소뿐 아니라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할 수도 있겠지만, 왜놈들이 저지른 만행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죄는커녕 자발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몸을 팔았다고 헛소리를 씨불이는 왜놈들이니, 제가 이 말을 취소하게 된다면 저 또한 인간이 아닌 짐승이라고 스스로 자인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발언이, 한강수 배우께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속 좁은 쪽바리들이 할 수 있는 짓거리라고 해봐야, 제가 출연하는 드라마나 영화는 수입하지 않을 것이고 또 제가 왜놈들 땅에 발을 디디는 것을 막겠지요.”
[그럼 그런 사실을 알고 계시면서도, 그런 발언을 하셨다는 말이네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존심과 긍지를 지닌 국민이라면, 누구나 똑같은 생각일 겁니다. 그깟 일본, 제가 굳이 가야 할 이유도 없고요.”
이것으로 게임 아웃인 것이다.
심지어 왜놈을 넘어 쪽바리라고까지 했으니, 내가 일본 땅을 밟을 기회는 영원히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반응은, 내가 가진 배우로서 위상 그 훨씬 이상이 될 것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 국민은 이런 일에는 누구보다도 더 광분하는, 그런 민족성을 지닌 국민들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왕 내가 출연한 드라마나 영화를 외국으로 수출한다면, 쫀쫀하게 섬나라 일본이 아닌 대륙이라 불리는 중국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죄송합니다. 길 좀 비켜주세요.”
군중들과 기자들 틈으로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하면서, 매니저인 미선이와 진수가 사람들을 헤치고 나를 향해 오고 있었다.
“귀국하면 한다고 연락을 해야지.”
“무슨 대단한 일을 했다고 연락까지 해. 어떻게 알고 왔어?”
“지금 SNS에 난리 났다.”
“왜?”
“차에 타서 직접 눈으로 확인해.”
진수는 황당하다는 표정이었고, 잠시 표정을 다듬은 후에 기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기자님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기자들 역시 내 입에서 들을 말을 다 들었다는 생각인지 순순히 길을 터주기 시작했고, 그런 가운데서도 군중들은 연신 휴대전화 플래시를 터트리며, 진수와 미선이 사이의 내 얼굴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너 왜놈이 어쩌고 했다면서?”
“응. 왜? 그게 문제 있어?”
“하~아~ 그냥 강수였으면 문젯거리가 될 일이 없지만, 지금은 배우 한강수잖아.”
“지랄한다. 배우 한강수하고 강수하고 뭐가 다른데?”
“일본이 돈 되는 시장이라는 것을 몰라서 그래?”
역시 진수가 매니저이긴 했다.
내가 한 말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인지를 짐작하고, 그걸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배우들에게 일본이란 시장은 분명 아주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이고, 지금까지의 예로 보더라도 일본 여성 팬들의 그것은 극성이라고 할 정도로 대단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