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짧은 여행을 마치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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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지역에서의 여행은,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뭘 하나 사기 위해서도 번역기를 동원해야 했고, 그 번역기 또한 완전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다.
덕분에 나는 점점 말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대신 혼자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낮에는 이곳 블라디보스토크를 여행했던 사람들이 올린 글을 휴대폰으로 보면서, 그들이 꼭 가봐야 한다고 하는 곳을 찾아다니면서 구경을 했고, 밤에는 숙소인 호텔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틀이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외롭다는 생각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오르고 난 이후부터 더욱 강하게 내 머릿속을 지배했고, 괜히 여행을 떠났다는 후회가 드는 동시에 ‘진수라도 데리고 올걸.’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내가 정치를 하게 되면 정말 잘할 수 있을까?’
‘내가 꼭 정치를 다시 해야 하나?’
‘성공한 배우로 사는 것보다, 정치인으로서 성공하는 삶이 더 행복할까?’
시베리아 횡단 열차 안에서의 내 생각과 고민 대부분은, 내 전생의 삶이기도 하고 또 몇 년 후부터 시작하게 될 새로운 도전에 대한 생각이었다.
전생에서도 배우로서의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었다.
대한민국 그 어느 배우보다도 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살았고, 수많은 국민들에게 ‘국민배우’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환대를 받지 않았던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전생의 삶은, 점수를 매기기가 모호했다.
정치에 입문한 직후부터 총선용이니 뭐니 하면서 비아냥거림을 들었으며, ‘딴따라’가 딴따라 노릇이나 하지 정치에 대해서 뭘 안다고 정치판에 끼어드느냐는 반발도 심했던 것이다.
물론 그동안 내가 얻었던 인기 덕분에, 국회의원총선거에서는 양산시민들과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 압도적인 표 차이로 가슴에 국회의원 배지를 달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국회의원으로서 행보는, 내가 생각해도 낙제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내게 처음 배정된 상임위원회가 국방위원회였다.
그런데 일개 병장 출신에 불과한 내가, 한 국가의 안보의 초석이 되는 국방정책에 관해서 무얼 알겠는가?
겨우 보좌진들이 만들어주는 질문지를 앵무새처럼 읽어대면서, 그게 마치 내가 가진 생각인 것처럼 조잘거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던가 말이다.
물론 그 이후 하반기에 당 원내대표에게 간청하다시피 해서, 그래도 내가 약간이나마 현장의 현실을 알고 있는 문체위에 배정되면서 숨통이 트였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체위원으로서의 일도, 생각만큼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비록 전문분야는 아니었지만 그나마 조금이나마 맛을 알고 있었기에, 내가 데리고 있던 보좌진들에게 상임위원회 자료를 구하는 것을 진두지휘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상임위원회에서 나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자, 그때부터 동료의원의 견제가 들어오기 시작했었던 것이다.
“한 의원! 그렇게 예산을 혼자 독차지하려고 하면, 체육계 쪽은 손가락만 빨란 말이오?”
“의원님, 예산을 독차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문화계 현실에서 이것만큼은 꼭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일입니다. 이번 예산을 문화계 쪽으로 돌린다고 하더라도, 체육예산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체육이야 잘하면 올림픽 같은 데라도 나가서 금메달이라도 따서 국위를 선양하기라도 하지, 그 연극이라는 것에 돈을 쏟아 부어 봐야, 딴따라 애들 배나 채우는 것 아니오?”
“일단 배라도 채워야지 예술을 제대로 할 것 아니겠습니까. 부탁드리겠습니다.”
“예술이 우리나라를 먹여 살려주기라도 한답니까?”
물론 면전에서야 아니었지만, 딴따라 소리를 듣는 것은 비일비재했다.
아니 국회의원이라는 양반들은 선거 때나 연예인들, 그 수많은 연예인 중에서도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배우나 가수의 인기를 이용할 생각만 했지, 선거가 끝나면 자기 선거를 도왔던 연예인까지 인간으로 대접해주지 않았다.
그들에게 연예인은 그냥 적당히 이용하다가 버려도 될 존재, 그러니까 딴따라 또는 광대일 뿐이었다.
그러니 그들과 같이 가슴에 무궁화 문양의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있는 나 역시도, 그들의 동료의원이 아닌 자기네가 시혜를 베풀어서 일정 기간 동안 인간 노릇을 하게 만들어 준, 장난감이었을 뿐이었다.
‘시파!’
전생에서의 내 모습을 기억하니, 나도 모르게 입에서 저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그 덕분에 창밖을 스치는 풍경은, 아예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실 이번에 여행지를 고민하면서 고되기만 할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는 것을 집어넣었던 이유는, 예전 고등학교 시절에 봤던 ‘닥터 지바고’란 영화가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다.
당시 그 영화에서 봤던,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넓디넓은 시베리아 대륙을 횡단하면서 보여주었던 그 장관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서였는데 말이다.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은 흘러갔고, 그 시간 동안 내 머릿속은 서서히 정리되어 가고 있었다.
다른 동료 국회의원들에게 배운 것이 없다고 손가락질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일단 대학에 입학해서 정치외교를 전공하겠다는 생각은, 앞으로 내가 꼭 해야 할 과제란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그렇게 학교에 다니면서도, 영화 일 또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대한민국에 수많은 정치지망생이 존재한다.
또 내가 출마하려고 생각하고 있는 아버지의 고향인 양산에도, 분명 경쟁자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 경쟁자들과 경쟁하여 배지를 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중적인 인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그 대중적인 인기란 것은, 내가 정치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큰 무기가 될 수가 있을 것이다.
1. 귀국 후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양산으로 주소를 옮긴다.
2. 귀국해서 주소를 옮기는 대로 정당의 지역위원회에 당원으로 입당해서, 자연스럽게 지역위원회 사람들과 교류한다.
3. 정치외교학과에서 일반 학생들과 똑 같이 강의를 받으면서 졸업한다.
4. 천만 영화에 도전한다.
5. 비례대표가 아닌 선출직 국회의원에 도전한다.
별 대수로울 것도 없지만, 저렇게 앞으로의 시간을 정리했다.
물론 당분간은 양산에 내 소유의 집이 아닌 전세를 얻든지 해서, 주소만 옮겨둔 상태로 서울과 양산을 오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정치를 하려고 한다면, 우선 내가 출마하고자 하는 지역에 뿌리를 내리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지역주민들에게 알려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장 첫 행동을 주소지만 옮기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주민들 눈에 자연스럽게 내 존재를 드러내면서, 나란 사람이 뜨내기가 아니라 이곳에 지역주민이라는 사실을 각인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학교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솔직히 연극영화과라면 당연하게 허용이 되겠지만, 정치외교학과라고 하더라도 담당 교수님에게 내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한다면, 얼마든지 출석 문제는 조율이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학교를 졸업하고 학위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언젠가 내가 조금 더 큰 정치를 꿈꾸게 되는 때가 되면 그런 과거의 일들이 특혜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고, 결국 그것이 내 발목을 옥죄는 사슬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랬기에 배우로서의 일을 계속하더라도, 출석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활동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내 앞으로의 미래에 마이너스가 될 이유가 없다.
연극영화과 인맥이야 이른바 딴따라라고 하면서 의례 그러려니 하겠지만, 정치외교학과의 인맥과 그 대학의 인맥은 후일 내가 정치판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디게 되었을 때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엄청난 무기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연극영화라는 특수한 분야가 아닌 정치외교라는 학과를 전공하면서 맺은 선후배 관계는, 내가 정치인으로서 지지 세력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젊은 청년 지지자 확보에도 아주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아무튼 나는 배우로서의 인기 덕분에 정치권에서 러브콜을 받고 정치에 입문한 지난 생과는 달리, 이번 생에서는 내 의지로 정치를 시작하고, 내가 갖춘 순수한 능력으로 배지를 달기로 했다.
물론 귀국 후의 상황이, 내가 지금 계획한 대로 흘러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능한 한 이번에 세운 계획에 맞춰서, 하나하나 준비를 해나갈 생각이다.
당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은 가능한 높은 몸값으로 영화에 출연하고, 그 영화에서 내 몸값 이상의 역할을 했다는 평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내 가치를 증명해야, 다작을 하지 않아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삶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무리 내가 화려한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기 위해서는 돈이라는 것은 꼭 필요했고, 무엇보다 내가 꿈꾸는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남에게 손을 내밀지 않을 정도는 되어야 하니까.
“언제 돌아올 생각이야?”
“응, 내일이면 모스크바에 도착하니까, 모스크바에서 하룻밤 자고 난 후에 고민을 좀 해보고.”
어느새 일주일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거의 대부분 시간을 기차 안에서만 보내야 했음에도, 나는 내 미래에 대해 고민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또 지겨운 줄도 모르고 지낼 수 있었다.
어쩌면 지금 당장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떠나올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변해 있을 것이다.
여행이란 것이 사람을 변하게 하는 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의 하나이니 말이다.
모스크바에 도착해서 숙소를 잡으니, 한 마디로 삭신이 쑤시는 기분이었다.
덕분에 구경이고 뭐고 모든 것이 귀찮았고, 우선 편안한 침대에 몸을 눕히자는 생각만 간절했다.
체크인을 마친 후 객실로 올라가 욕조에 물부터 받았다.
사실 바깥의 숙소에서 욕조에 몸을 담그는 것은 거의 하지 않는데, 횡단 열차를 타고 오면서 제대로 씻지 못했던 그것 때문에 온몸이 찝찝했기도 했고, 몸의 피로를 푸는 데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자기 언제 와?”
“응, 며칠만 더 있다가 갈 예정인데. 그런데 목소리가 왜 그래?”
“내가 러시아로 갈까?”
“촬영 스케줄은 어쩌고?”
“위약금 물면 되지. 자기 보고 싶단 말이야.”
“알았어. 내가 빨리 갈게.”
“언제?”
“지금 몸 컨디션이 엉망이어서, 내일 당장은 힘들고 모레 아침에 출발할게.”
“정말이지? 아니면 내가 러시아로 간다. 그런데 지금은 어디야?”
“방금 모스크바에 도착해서 숙소에 들어왔어.”
샤워까지 마치고 몸을 닦고 나오니, 때맞춰 휴대전화의 벨이 울렸다.
그런데 예나의 목소리가 울먹울먹하고 있었다.
예나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야 유난을 떤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예나가 과거 겪었던 일과 그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예나의 살아온 과정들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예나의 지금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예나는 한강수라는 나란 존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이유모를 이유로 나란 존재가 자신의 삶에 있어서 편안함을 주는 대상이었기에, 그 대상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위기감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어차피 관광을 목적으로 떠났던 것이 아니라, 머릿속을 비우고 새롭게 정리하자는 생각에 떠났던 여행이었고, 횡단 열차를 타고 오면서 그 대부분을 얻었다는 생각이었기에,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예나와의 관계에 관해서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