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 500만 가자!(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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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예나가 원하고 나도 그렇게 하면 편하겠다 싶었지만, 그렇다고 미정이 누나와 지민 누나의 생각을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두 사람도 분명 개인적인 사생활이 있을 것인데, 이렇게 한 집에서 생활하게 되면 불편한 또한 분명히 있을 테니 말이다.
“누나들 생각은 어때요?”
“나는 좋아.”
“나도. 그런데 월세는 얼마나 내야 하는데?”
“월세는 무슨 월세예요. 그런데 누나들은 남자친구한테 허락부터 받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얘는. 우리 같은 사람이 남자친구가 있을 수 있겠니? 남친 만날 시간도 없겠지만, 웬만한 남자들은 아예 남자로 보이지도 않는데.”
“아무튼 그렇다면 편하신 날 정해서, 아무 때나 이삿짐을 정리해서 오세요.”
“정말이지? 정말 내일 이사해도 돼?”
“예. 내일 청소기로 한번 밀고, 걸레로 닦기만 하면 되거든요.”
사람이 살지 않으면 집이 상한다는 말이 있어서 그동안 비워 두긴 했지만 일부러 이따금 청소를 하곤 했으니, 이 양반들이 입주한다고 해서 특별히 준비할 것은 없었다.
분위기에 휩쓸린 것인지 로드매니저를 하기로 한 미선이도 이 양반들과 함께 지내기로 했기에, 당장 내일부터 집안이 북적거릴 것 같았다.
미정이 누나와 지민 누나 그리고 미선인 아버지가 작업실로 사용하시던 건물 2층에서 생활하고, 이따금 예나가 집으로 오는 날에는 김 실장님과 예나가 지수와 함께 본채 2층에서 지내기로 결정되었다.
뜬금없는 예나의 제안 덕분에, 나를 도와주게 될 팀원들이 졸지에 한 식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집 문제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장 지수가 걱정되었다.
이제 나뿐 아니라 예나도 무대 인사를 위해 전국 투어를 하게 되는데, 집에 지수 혼자 남겨두고 가야 하는 것이다.
“걱정할 일이 뭐가 있어? 혼자 있는 날은 내 아파트로 가서 지내면 되지. 아파트엔 보안요원들이 통제하고 있으니까 외부인은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잖아.”
그렇게 모두 모여서 앞으로의 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이 되었고,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수는 집안이 북적거리는 것을 내심 반기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무대 인사 때문에 당분간 집을 떠나 있어야 하고, 그동안에는 예나가 사는 아파트에서 학교에 다니라고 이야기를 하니, 내 걱정과는 달리 오히려 환호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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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 시사회의 반향은 적지 않았다.
그 덕분인지 개봉 첫날부터, 수도권을 비롯한 부산과 대구의 영화관은 매진행진이 계속되고 있었다.
“조금만 더 푸시하면, 500만 돌파도 가능하겠는데?”
“설마 500만까지야 가겠어. 시간이 좀 지나면 점유율이 하락 추세를 보일거야.”
“홍보에 조금만 더 치중한다면, 500만은 가능할 것도 같아.”
“그런데 지금 무대 인사 말고는, 딱히 더는 홍보할 것도 없잖아.”
“한강수 배우를 주인공으로 해서, 이벤트를 할 만한 것이 없을까?”
VIP 시사회 이후 기자들의 기사도 호의적이었고 평론가들의 영화평 또한 호의적이었던 덕분인지, 관객의 유입 추세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3주 만에, 손익분기점인 350만은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제작사에서는, 이왕이면 상징적일 수 있는 500만 관객을 찍겠다는 의욕에 무엇인가 화끈한 이벤트를 고민했지만, 딱히 이슈거리가 될 만한 것을 찾지 못해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물론 400만을 넘기면서 점유율이 조금씩 하락하고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500만 관객 돌파가 허무맹랑한 꿈은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지훈이 형님과 예나, 그리고 나를 비롯한 출연 배우들은 전국을 순회하면서 무대 인사에 바빴고, 제작사뿐 아니라 소속사에서도 거의 매일 같이 언론사에 보도 자료를 배포하면서, 지금의 좋은 분위기를 이어나가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예나와 내가 출연한 ‘마지막 황후’ 또한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2회 만에 9%대에 안착한 ‘마지막 황후’는, 3회에 순정효황후를 시해하기 위하여 궁궐 담을 넘어온 사무라이들을 내가 혼자서 처치하는 장면이, 순간시청률 17%를 기록하면서 평균시청률 10% 초반 대에 안정적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4회의 평균 시청률은, 15%를 눈앞에 둔 13.8%까지 치솟아 올랐다.
“무슨 전화야?”
“이번에도 광고. 아웃도어 업체야.”
“그런데 그 사람들은 왜 회사로 하지 않고, 너한테 전화를 해? 어차피 우리가 마음대로 결정하지도 못하는데.”
“예전에 내가 깔아두었던 명함을 보고 건 전화들이니 어쩔 수 없지.”
영화 ‘네 안의 야수’와 드라마 ‘마지막 황후’가 동시에 인기몰이를 하게 되자, 진수의 휴대전화는 쉴 틈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내가 예담기획에 소속되어 있으니, 광고에 출연하고 싶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또 당장 돈이 급한 것도 아니니 싼값에 광고를 찍을 생각도 없었다.
지금 추세라면 ‘마지막 황후’가 중반 이후로 가면 시청률 20%대 진입은 확실할 것이고, 전생의 기억을 생각하더라도 ‘네 안의 야수’ 또한, 손익분기점을 훨씬 넘긴 480만을 기록하면서 스크린에서 내려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영화로 인해 당시 내 역할을 맡았던 그 친구는, 드라마 없이도 ‘네 안의 야수’ 한 작품으로 단숨에 스타로 자리매김했었다.
그러니 이번 생에서의 나는 ‘네 안의 야수’에다가 ‘마지막 황후’ 카드까지 손에 쥔 상황이니, 내 전생에서 ‘네 안의 야수’에서 내 역할을 맡았던 그 친구보다는 내가 훨씬 더 유리한 상황이다.
“예. 한강숩니다.”
“홍보팀장 강수민입니다.”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예담기획 홍보팀장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시도 때도 없이 계속되는 인터뷰와 강행군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무대 인사로 인해 지쳐 있었기에, 순간적으로 ‘또 귀찮게 인터뷰야?’라는 생각이 들어 짜증이 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 갓 데뷔한 신인 배우에 불과한 내가, 그걸 대놓고 내색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일 해운대 AGV 무대 인사죠? 지금 고생 많으신 것은 알고 있지만, 하나만 부탁할까 해서요.”
“말씀하시지요.”
“영화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내일 무대 인사에서 500만 관객을 돌파했을 때를 대비한, 공약을 하나 해달라고 합니다. 가능할까요?”
일단 뭘 해야 하나 하는 고민부터 들었다.
어차피 나로서는 이미 이번 영화에서 얻어야 할 것은 이미 다 얻은 상황이었다.
처음 얼굴을 내민 영화에서 손익분기점을 훨씬 넘은 영화를 찍었고, 그 영화에서 주연배우 이상의 존재감을 내보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러닝개런티 계약을 하지 않았기에, 영화가 50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내게 직접적인 이익이 될 것은 없었다.
다만 관객들에게 ‘한강수’라는 이름의 배우가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각인시켰고,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긴 것은 확실했기에, 투자자들은 자기들 재산에 손해를 끼치지 않은 배우라고 기억되리라는 것이 가외의 소득인 것이다.
하지만 소속사 홍보팀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 부탁해온 것이니, 아무리 귀찮다고 하더라도 그 부탁을 가볍게 생각할 수는 없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고민 해봐도, 당장 대중들의 관심을 확 끌어당길 수 있을 이벤트가 생각나지 않았다.
“뭘 그렇게 고민하고 그래.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
“이왕 공약을 내걸려면,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것으로 해야지.”
“단순한 것에 정답이 있는 법이야.”
“도대체 무슨 말이야? 단순한 것에 답이 있다니?”
“그냥 500만 관객 돌파하면, 광역시 단위로 프리 허그 행사를 벌인다고만 해도 충분할걸.”
“허그를 하라고?”
“여성 팬들에게 그것 이상으로 확실한 것이 뭐가 있어. 만약 그걸 공약으로 내건다면, 여자들뿐 아니라 액션영화를 좋아하는 남자 관객들도 우르르 영화관으로 몰릴걸.”
500만 관객돌파를 조건으로 내건 공약은, 나한테만 제안한 것이 아니라 예나와 지훈이 형에게도 했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진수 말대로 프리 허그를 공약으로 내걸기로 내심 결정하고, 진짜 주연인 지훈이 형과 예나 이렇게 셋이 만나서 결정하기로 했다.
“강수 넌 뭘 하기로 했어?”
“매니저 말로는 프리 허그 어쩌고 하는데, 과연 그게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형님은요?”
“나도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네. 예나는 뭘 하기로 했다던데?”
“오면 물어보려고요.”
“너희 둘은 확실한 것이 하나 있는데.”
“확실한 거라고요?”
“너희 둘이 사귄다는 것은 이제 대한민국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이야기잖아. 그러니 500만 관객을 돌파하게 되면, 광화문 광장에서 키스를 하겠다고 공약을 내걸면 관객들이 줄을 설걸.”
“에이~ 형님도. 사람들이 무슨 관음증 환자도 아닌데요.”
아무리 우리가 광대라고 할지라도, 애정 행위를 대중들 앞에서 내보일 수 없다는 생각이다.
애정 행위라는 것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가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결과물일 뿐이니 말이다.
“오빠, 안녕하셨어요.”
“응, 오늘은 컨디션이 괜찮은가 보다.”
“어제 하루는 푹 쉬었잖아요.”
“그러게. 그런데 내일부터 또다시 빡세게 굴릴 모양이던데 괜찮겠어?”
지훈이 형과 공약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예나가 도착했고, 예나는 당연하다는 듯 내 옆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예나야.”
“예. 오빠.”
“500만 공약, 그냥 광화문에서 너하고 강수가 키스하는 거로 가자.”
“예? 키스라고요?”
“광화문 광장에서 너하고 강수가 키스하겠다고 하면, 난리가 나지 않겠어?”
“음........ 그거 괜찮긴 하겠네요. 그런데 안 돼요.”
“왜? 괜찮다면서?”
“저야 얼마든지 가능한데, 강수 씨는 절대 하지 않으려고 할 거거든요. 이 사람이 경상도 남자잖아요.”
“강수 네 고향이 밀양이었어?”
“아버지 고향이 밀양이고, 전 서울에서 태어났어요.”
“그래서 얼마나 갑갑한 데요. 이 사람은 매니저나 스타일리스트가 있으면, 그때도 스킨십을 절대 못 하게 해요.”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하는 속담도 있는데, 예나가 딱 그 짝이었다.
예나는 나를 만나기 전에 하지 못했던 것을 한꺼번에 다 해치우려는 것처럼, 시도 때도 없어 걸핏하면 스킨십을 해오는 통에, 스태프들 앞에서 얼굴이 벌게지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예나는 나의 그런 반응을, 내가 경상도 사람의 피를 지니고 있기 때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야.”
“응?”
“혹시 지난번 사무라이들하고 싸울 때처럼, 목검으로 그거 하는 것은 많이 힘들어?”
“그거야 상대에 따라서 다르지. 액션스쿨 사람들하고는 이미 충분히 합을 맞춘 상황이니, 그다지 힘이 들일은 없지만, 다른 사람이라면 합을 맞춰봐야지.”
“그럼 김 감독님께 부탁해서, 그걸 무대에서 하면 어떨까?”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내용이, 예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예나의 그 말에 지훈 형도 ‘이거 괜찮네?’하는 표정으로, 예나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