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VIP 시사회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생각하시는 것만큼 대단한 내기는 아니었습니다. 감독님과 엔딩장면을 그렇게 하기로 하고 그 사실을 한강수 배우에게 통보하기 위해 만나려고 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제가 감독님께 내기를 제안했던 것입니다. 우리 강수가 감독님의 결정을 그냥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거부할 것인지를 말입니다.”
[그래서 결론이 어떻게 됐습니까? 바로 받아들였던가요?]
“그럼 제가 내기에서 당연히 졌겠죠. 장 감독님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한강수 배우는, 엔딩장면은 자기가 나오는 장면이 아니라 저와 서예나 배우가 나오는 장면이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게 인간적인 도리라나 뭐라나.......”
[그런데 문 배우님께서는 이따금 한강수 배우를 지칭할 때, ‘우리 강수’라고 자주 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시는지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아! 제가 그랬나요? 죄송합니다. 원래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호칭을 제대로 해야 하는데, 평소 우리 한강수 배우와의 인간적인 관계 때문에, 제가 실수를 한 모양입니다. 다시 한 번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두 분이 짜기라도 한 것처럼 장 감독님과 지훈이 형은,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우리’라는 표현을 자주 하셨다.
어쩌면 그것이 두 분이 내게 가진 호의라는 생각에, 새삼 고마운 생각이 든다.
[서예나 배우께 질문하겠습니다. 서예나 배우께서는 문지훈 배우와 한강수 배우, 어느 쪽이 연기하기가 편하셨나요?]
“지훈이 오빠는 오빠처럼 편했고, 강수 씨야 기자님들도 잘 아시잖아요. 그러니 제가 두 사람과 연기를 하면서 편하지 않을 이유가 없겠지요.”
[영화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질문이지만, 한 가지만 질문하겠습니다. 한강수 배우와 어떻게 사귀겠다고 결심하신 겁니까?]
“강수 씨를 보는 순간, 그냥 편했어요. 기자님들 중에서 제가 예전의 한 사건 때문에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던 것을 아시는 분도 있으시잖아요. 그리고 그 사건 이후에 남자를 만나는 것은커녕 집 밖 출입조차 거의 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강수 씨를 처음 만나던 날, 그냥 뭐랄까....... 음....... 그냥 편했어요. 흔히 이야기하는 한눈에 반했다는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저 사람을 보면 편하고 또 아무 걱정 없이 잠이라도 편하게 잘 수 있겠구나 하는 그런 안도감. 아무튼 그런 것이었어요.”
[제가 알고 있기로도 서예나 배우께서는, 그동안 드라마나 영화에서 손을 잡는 연기조차도 거절해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네 안의 야수’를 보니 키스신이 나오던데 그때는 괜찮았나요?]
“분명히 밝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동안 사소한 스킨십이 있는 장면에서조차 거절했다는 것이, 거절이 아니라 저한테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스킨십은커녕 남자분이 가까이만 다가서도 온몸이 떨리는데 어떻게 스킨십을 해요?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기자님들께서도 알고 계시는 분이 계실 것이고, 궁금하신 분은 제가 친하게 지내는 지훈이 오빠에게 물어보셔도 확인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럼 서예나 배우께서는, 한강수 배우를 천생연분으로 생각하고 계신다는 말인가요?]
“천생연분이라는 단어를 사전적으로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는 강수 씨와의 관계는 그 천생연분이라는 단어로조차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강수 씨가 옆에만 있어도 편하다는 것, 저 사람이 바로 곁에 있지 않아도 제 불면증까지 가져가는 사람이라는 것, 그것에 제가 아는 것 전부입니다.”
[기자님들, 개인적인 질문은 여기서 끝을 내주시죠. 영화에 관한 질문 부탁드리겠습니다.]
결국 사회자가 나서서, 예나와 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막았다.
[한강수 배우께 묻겠습니다. 한강수 배우께서는 무술 도합 12단이라고 하시던데, 이번 영화에서 그 무술이 도움이 됐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지요. 창피한 이야기지만 검도 공인 4단인 제가, 액션스쿨에서 공인 2단이라는 분께 처참할 정도로 깨졌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상식적으로 공인 2단과 4단인데, 4단이 하수인 2단에게 질 수가 있습니까?]
“처음에는 저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혹시 저 양반이 저를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했었지요.”
[그래서요?]
“좀 많이 맞다가 보니 결국 차이점을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저를 가르쳐주신 사범님께는 죄송한 이야기지만, 그동안 제가 배웠던 검도는 보여주기 위한 검도였던 것이지요. 그러니 당연히 실전에 특화된 분을 이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실전 검도와 그냥 보기에 좋은 검도의 차이일 뿐이었습니다.”
[한 배우께 질문하겠습니다. 액션 장면이 화려하기까지 하던데, 그 액션 장면 중에서 몇 %나 본인이 직접 하셨습니까?]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당사자보다 제가 대신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영화 ‘네 안의 야수’에서는, 단 한 장면도 대역배우를 쓴 장면이 없습니다.”
[그럼 한강수 배우가 나오는 장면 모두가, 한강수 배우가 직접 연기를 했다는 말인가요?]
“맞습니다. 그래서 그 화려한 액션 때문에, 제가 우리 한강수 배우의 진면목을 이번 영화에서 보여드릴 수가 없어서 안타깝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장수한 감독님께서 질문에 대한 답을 가로채셨다.
어쩌면 나 스스로 내 얼굴에 금칠하는 그 부끄러움을 없애주려고 나서신 것인지도 몰랐다.
장 감독님의 답변에 기자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면서, ‘정말 저 양반 말이 사실일까?’라면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장수한 감독님과 한강수 배우께는 죄송한 이야기지만, 솔직히 방금 장수한 감독님께서 답변하신 그것을 믿기가 힘이 듭니다. 혹시 이 자리에서 우리 기자들이 의심을 지울 수 있도록, 그 장면을 직접 보여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시사회에서 나올 수준의 요구가 아니었다.
하지만 질문을 한 기자뿐 아니라 오늘 이 자리에 초대받은 관객 모두는, 잔뜩 기대 어린 눈빛으로 장수한 감독님과 내 입을 빤히 주시하고 있었다.
“사범님, 혹시 가능하시겠습니까?”
“왜? 여기서 한 판 뜨자고?”
“기자도 기자지만 관객들 눈빛이.......”
“구두를 신고 괜찮겠어? 바닥 컨디션이 영 아닌데?”
“구두야 벗으면 되죠.”
“콜!”
기자의 질문에 장수한 감독님께서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계셨고, 그걸 확인한 나는 하수경 사범에게 혹시 이 자리에서 대련할 수 있겠는지 의사를 물었다.
그리고 하 사범님 역시 기자의 그 질문에 심히 불쾌했든지, 내 제안에 흔쾌히 동의했다.
“기자님께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이런 부탁을 하실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해서 저희가 사전에 목검을 준비하지 못했는데, 혹시 괜찮으시다면 맨손으로 합을 맞춰도 되겠습니까?”
하수경 사범과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검술 대신에 맨손으로 합을 맞추겠다고 하자, 기자들뿐 아니라 관객들은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우선 합을 맞추려면 장내를 정리해야 했기에, 의자들을 한쪽으로 치워 무대 중앙을 비웠다.
그리고 하수경 사범과 나는,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신발을 벗었다.
‘핫!’하는 소리와 함께 하수경 사범이 높이 날았고, 나 역시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리고 서로 주먹을 교환한 후에 나는 낙법을 이용해서 바닥을 굴렀고, 하수경 사범은 그런 나를 향해 발길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타~닥!’하는 소리와 함께 내 발길질에 정강이를 까인 하수경 사범이 비틀거리자, 나는 그 기회를 놓칠세라 하수경 사범의 안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렇게 몇 차례 주먹을 교환한 후에, 마지막 피날레를 공중제비를 도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와~아~ 완전히 날아다니는구먼.”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이건 액션영화가 아니라 아예 무협영화네.”
“이러다가 대한민국에 예전 70년대 이소룡이나 성룡시대가 다시 돌아오는 것 아니야?”
무술 시연을 요구했던 기자뿐 아니라 관객 대부분은, 우리 둘의 액션시연에 완전히 얼이 빠져 있었다.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방금 저와 합을 맞춰주신 분은, 이번 ‘네 안의 야수’에서 은향이 누님 역으로 열연하셨고, 개인적으로는 액션스쿨에서 저를 지도해주셨던 하수경 사범님이십니다.”
내가 하수경 사범을 소개하자 ‘와~’하는 함성과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늘씬한 몸매에 갸름한 얼굴을 지니고 전혀 싸움이라고는 할 줄도 모를 것처럼 보이는 여자가, 방금 전과 같은 격렬한 액션을 아무런 무리도 없이 해냈으니, 관객들이 열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예기치 않은 액션에 기자들과 관객들은, 더는 기자간담회를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열광했다.
그리고 어차피 시사회라는 것이, 기자들과 평론가들에게 영화에 대한 호감을 선사해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평가를 얻어낼 목적이었으니, 지금 분위기라면 굳이 기자간담회가 더는 필요가 없었다.
[장수한 감독이 신인배우 한강수를 잡은 이유는 있었다.]
[주연의 존재감을 넘어선 한강수 배우, 과연 누구인가?]
[믿기지 않는 액션, 기자와 관객들 앞에서 시범을 보이다.]
[한강수 배우, 이소룡을 능가하는 무술 실력을 선보이다.]
VIP 시사회가 끝나자마자, 포털 사이트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리고 예나와 지훈이 형뿐 아니라 하수경 사범과 나도,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우리 한 배우, 완전히 떴구먼.”
“그렇지. 김 매니저 자네가 열심히 도와준 덕분일세.”
“그럼 한 배우님께서 매니저에게 보너스라도 좀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럼세. 천 원이면 되나?”
“지랄!”
“어허! 천만 배우 앞에서, 무슨 그런 불경한 언사란 말인가?”
“됐고. 아무튼 차 죽여준다. 우리 그냥 앞으로는 계속 이거 타고 다니자.”
VIP 시사회를 마치고 잠시 회사에 들러야 했다.
기분이 잔뜩 고양된 진수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덕분에 우리 둘은 회사로 가는 내내 시답잖은 말장난을 해가면서 낄낄거렸다.
“우선 인사부터 하게. 오늘부터 한 배우를 전담할 메이크업 담당자일세.”
“한강수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장미정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그리고 여기는 스타일리스트인 서지민이고.”
그렇게 내 전담 스타일리스트와 메이크업 담당자가 생겼다.
“그리고 자네 이름이 김진수라고 했지?”
“예. 대표님!”
“혹시 자네가 아는 친구 중에서, 로드를 뛸 친구가 있나?”
“찾아보면 있을 겁니다.”
“그럼 당분간은 회사 소속 로드 중에서 한 사람을 데리고 다니게. 언제까지 혼자서 한 배우를 케어 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리고 오늘 이 시간부로 자넨 한 배우를 담당하는 팀의 팀장일세.”
진수가 졸지에 실장도 건너뛰어, 바로 한 팀을 책임지는 팀장으로 승진했다.
내가 아무리 신인이긴 하지만, 그동안 ‘네 안의 야수’와 ‘마지막 황후’에서의 활약을 선 대표님께서 인정해주신 결과인 것이다.
아무튼 선 대표님의 이번 결정은, 진수와 내가 예담기획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