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 VIP 시사회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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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황후’ 2회의 시청률은, 순항의 조짐이 보인다고 이야기할 만했다.
전날 7.85%를 기록했던 시청률은, 첫날 방송으로 인해 시청자들의 기대가 반영된 때문인지 방송이 시작하면서 8%대 초반을 기록하더니, 방송의 중반부터는 안정적으로 9%대에 안착하게 된 것이다.
덕분에 ‘마지막 황후’ 촬영현장의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고,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촬영장 내부는 마치 봄날의 훈풍이 불어오는 듯했다.
“컷! 좋습니다. 그런데 이건 킵하고 한 번만 더 가봅시다. 준비되셨죠? 액션!”
드디어 내가 출연하는 마지막 장면을 촬영하게 되었다.
황후를 모시고 황후의 친정집 나들이를 가다가 습격을 받았던 것이다.
“마마~ 소관이 끝까지 마마를 지켜드리지 못해 송구하옵니다.”
“위장! 정신 차리세요!”
“마마~ 군사들이 오면 바로 환궁하셔야 하옵니다. 허~억!”
순간 순정효황후의 품에 안겨있던 내 목이 툭 떨어졌고, 팔 또한 힘을 잃고 늘어뜨려졌다.
“위장!”
이곳저곳에는 암습한 무리의 시신이 늘어져 있었고, 위장인 나는 순정효황후의 품에 안겨 마지막 숨을 거두게 된 것이다.
벌판에는 ‘위장’을 소리쳐 부르는 순정효황후의 절규만 가득했고, 순정효황후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컷! 오케이!”
그렇게 나는 순정효황후의 품에 안겨 최후를 맞는 것으로, ‘마지막 황후’의 촬영을 끝냈다.
물론 이 장면은 당장 편집이 되어 방영될 장면이 아니라, 이 드라마의 최종회에 방영될 분량을 미리 찍은 것이다.
이제 예나와 나는 ‘네 안의 야수’ 무대 인사를 위해 전국을 순회해야 하는 탓에, 김형국 감독님께서 예정된 촬영이 끝나면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예나와 내가 출연하는 분량을 따로 찍었던 것이다.
“감독님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편리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대 인사 잘하고, 나중에 제대로 한번 찍어봅시다.”
“예.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그러면 만사 젖혀두고 달려오겠습니다.”
“약속한 겁니다!”
그렇게 감독님과 인사를 끝내고 촬영 감독님과 오디오 감독님, 조연출을 비롯한 스태프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조감독님.”
“예. 한 배우님.”
“내일 밥차나 커피트럭이 예정된 것은 없죠?”
“아직은 예정에 없습니다.”
“다행이네요. 내일 서예나 배우와 제가, 커피 트럭하고 밥차를 주문해두었습니다. 감독님께 말씀드리고 맛있게 드세요.”
“아이고, 촬영도 마치셨는데 또 무슨 그런.......”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중간에 합류해서 함께 촬영한 기간이 그리 길지도 않았는데도, 조연출은 정이 든 것인지 나와 예나를 배웅하기 위해 차가 있는 곳까지 따라 나왔다.
그래서 예나와 사전에 조율하지도 않았지만, 내일 이곳 현장에 밥차와 커피 트럭을 보낼 것이라고 얘기했다.
“내일 예나하고 내 이름으로 커피 트럭하고 밥차를 좀 주문해줘.”
“뭐? 촬영도 끝났는데 뭐하려고?”
“끝이 났으니 보내려고 하지. 촬영하는 도중에 보내는 밥차나 커피 트럭은 당연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촬영을 끝내고 난 뒤에 보내는 것은 받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기분이 많이 다르잖아.”
“그래 밥차를 보내는 것은 좋은데, 이렇게 돈을 헤프게 쓰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진수는 내 씀씀이가 헤프다고 걱정이 많았지만, 나는 과히 걱정하지 않았다.
전생에 ‘마지막 황후’는 몰라도 ‘네 안의 야수’는 확실히 흥행에 성공했고, 전생에서 내 역할을 연기했던 그 친구는 사고를 치기 직전까지 인기 가도를 달렸던 것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황후’에 출연하게 된 것은, 전생에서의 그 친구보다 내가 훨씬 더 대단한 기회를 잡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드라마 ‘마지막 황후’가 한창 방영되고 있는 기간에 ‘네 안의 야수’가 동시에 개봉해서 상영될 것이니, 이 두 가지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가 있고, 만약 그게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면 내가 앞으로 받게 될 인기는 전생에서의 그 친구 훨씬 이상일 것이니 말이다.
아침 일찍 숍으로 출근했다.
우선 그동안 야외촬영을 하느라 퍼석해진 얼굴을 다듬은 후에, 진수가 가져온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회사에서 내게 배정하겠다던 밴을 타고, 오늘 VIP 시사회가 열리는 영화관으로 향했다.
[우리 ‘네 안의 야수’에서 장수한 감독님께서 꼭꼭 숨겨두셨던 비밀병기죠. 태권도, 유도, 합기도, 검도 도합 12단의 무술고수 한강수 배우를 모시겠습니다!]
사회자의 소개말이 끝나자, 나는 무대 위로 올라가서 주연배우들이 하던 것처럼 마이크 앞에 섰다.
“이번 ‘네 안의 야수’에서 강수 역을 맡은 신인배우 한강수입니다. 장수한 감독님을 비롯한 스태프들과 선배 배우님들의 도움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찍었으니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하고 부탁드립니다.”
아직 신인배우인 내가 나서서 설레발을 칠 이유는 없었기에, 간단히 인사를 끝내고 지정된 자리에 섰다.
그리고 모든 배우의 인사말이 끝이 난 후에, 감독님을 중앙에 두고 우리는 모두 서로 손을 잡고 VIP 시사회에 참석한 분들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를 드린 후, 무대에서 내려왔다.
러닝타임 126분짜리였다.
그리고 내가 출연했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126분 동안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었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까지, 나는 양손을 아프도록 꽉 쥐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 분위기가 왜 이래?”
“응, 무슨 소리야?”
“관객들이 너무 조용하잖아.”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객석에 불이 켜졌지만 영화관은 한동안 침묵 속에 빠져있었고, 관객들의 그런 반응에 주연배우를 비롯한 배우들은 당황해하면서 귀엣말로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한 쪽에서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영화관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박수는 한참 동안 계속되었고, 기자간담회를 위해 감독님을 위시한 우리 배우들이 무대 위로 다시 올라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장수한 감독님께 질문하겠습니다. 장 감독님께서는 신인을 기용하지 않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네 안의 야수’에서는 과감하게 신인을 캐스팅하셨는데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제가 신인을 기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못된 편견입니다. 신인을 기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제 영화에 캐스팅할 정도의 연기력을 갖춘 신인배우가 없었다는 것이 정답이지요.”
[그렇다면 장 감독님께서는, 신인배우인 한강수 배우의 연기에 만족하셨습니까?]
“제가 우리 한강수 배우를 처음 만난 곳이 오디션에서였습니다. 그리고 한강수 배우가 연기하는 것을 보고 ‘이 친구가 내가 찾고 있었던 배우다!’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원래 시나리오를 급히 수정하게 하기까지 했던 친구가 바로 한강수 배우였습니다.”
시나리오를 수정하셨다는 이야기는,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것은 내 전생의 기억에도 없었던 일이기도 했다.
[그럼 한강수 배우의 액션 연기 때문에 캐스팅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까?]
“액션 연기야 말할 나위도 없다는 것을 기자님들께서도 눈으로 확인하셨을 겁니다. 하지만 오디션 당일까지 한강수 배우의 액션 연기는, 제가 전혀 고려했던 사항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한강수 배우의 액션 연기가 저 정도라는 점을 사전에 알았더라면 한 배우를 액션스쿨에 입소시키지도 않았을 것이고, 시나리오 또한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그럼 어떤 점을 보시고 한강수 배우를 캐스팅하셨다는 말씀인가요?]
“한강수 배우의 눈빛입니다. 이번 영화 ‘네 안의 야수’에서는, 우리 한강수 배우의 액션 신에 시선을 빼앗겨서 한강수 배우의 본모습을 발견하시기가 쉽지 않으실 겁니다. 그래서 제게 또 한 번 한강수 배우와 작업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강수 배우가 가진 진짜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영화를 제작해보고 싶습니다.”
장수한 감독님은 극찬을 넘어, 아예 내가 부끄러워서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정도로 찬사를 늘어놓으셨다.
그리고 장수한 감독님께서 기회가 된다면 나와 다시 한 번 작품을 같이 해보고 싶다는 말이 나오자, 기자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로 객석이 시끄러울 정도였다.
그만큼 장수한 감독님의 그 한 마디는, 기자들에게는 충격으로 다가갔던 것이다.
[문지훈 배우께 질문하겠습니다. 문지훈 배우께서는 서예나 배우와 함께 주연으로 캐스팅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통상적인 경우와 달리 엔딩장면이, 주연이신 문지훈 배우와 서예나 배우가 아닌 서예나 배우와 한강수 배우의 신이었습니다. 그 점에 관한 문지훈 배우의 솔직한 심정을 듣고 싶습니다.]
“장 감독님과 한강수 배우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이서,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장 감독님께서 술값을 내셨지요. 그런데 술값을 내시고 싶어서 내신 것이 아니라, 내기에서 지셨기 때문에 술값을 내시게 된 겁니다.”
[.......]
나야 무슨 이야기인지 충분히 짐작하는 이야기지만, 기자들은 지훈이 형의 말에 갑자기 웬 생뚱맞은 소리를 하는가 하고 황당한 표정이었다.
“사실 영화를 모두 보셨으니 느끼고 계시겠지만, 이번 ‘네 안의 야수’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서예나 배우와 제가 아니라 한강수 배우가 원톱인 영화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분위기가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촬영이 진행될수록 우리 강수의 존재감이 남달랐습니다. 분명 시나리오 상에는 저하고 서예나 배우가 주연배우인 것은 맞는데, 촬영을 끝내고 난 후에 영상을 확인하면 강수 얼굴밖에 보이질 않았지요.”
[문 배우님의 말씀이 대충 어떤 뜻인지는 이해하겠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아성일보의 장 기자가 질문한 것에 대한, 충분한 답은 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술자리니 내기니 하는 말도요.]
“배우는 연기로 승부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번 ‘네 안의 야수’에서는 제가 우리 강수에게 완패한 승부였고요. 하지만 솔직히 이런 후배가, 우리 영화계에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기쁩니다. 분명 ‘네 안의 야수’는 우리 강수 때문에라도 흥행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제 몸값도 올라갈 것이 확실하니까요.”
[그런데 아까 말씀하신 내기라는 것은 무슨 이야기십니까?]
“아~ 최종편집을 앞두고 장 감독님께서 저를 찾으셨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주연배우인 저와의 인간관계를 생각해서라도 저와 서예나 배우가 나오는 장면을 엔딩으로 써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영화의 완성도를 생각하면 오늘 기자님들께서 보셨던 그 장면이 최고란 생각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시겠다고 고민을 토로하셨습니다.”
[그래서 문 배우께서 그 부분에 관해 동의하셨다는 말씀이십니까?]
“당연한 일이지요. 배우는 영화를 통해 다시 태어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탄생은, 영화를 봐주시는 관객들께서 열렬히 호응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도 배우임이 분명한데 가장 아름답게 태어날 기회를, 삿된 욕심으로 그르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요. 도대체 내기는 어떤 내깁니까?]
내기란 단어에 엄청 집착하는 기자였든지, 아예 조급증마저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기자의 조급증을 보면서도 지훈이 형은, 정말 멋있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은근한 미소를 보이면서 기자의 질문에 느긋하게 대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