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첫 방송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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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잠시 지방방송은 끄고, 여길 주목해주세요.”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속속 음식점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배우 소속사 관계자들도 이곳저곳 기웃거리면서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 매국노인 해풍부원군 윤택영 배역을 맡으신 김지웅 배우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지웅 배우님은, 이번 드라마 출연진 중에서 가장 연장자시다.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뼈가 굵은 분이긴 하지만 이 바닥에서는 연기력만큼은 인정받는 배우셨고, 후배를 잘 챙기시기로 유명한 분이다.
단지 주로 악역을 맡으시면서 워낙 맛깔스럽게 연기를 하셨기에, 그 이미지 때문에 후배들이 김 배우님 앞에서는 기를 펴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지만.......
“원래 이것은 조감독님이 하셔야 하는데, 조감독님이 나보고 대신하라고 하셔서....... 아무튼 우리 드라마가 시작하기 전에,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 하나 있지요. 그걸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조감독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한 손에는 볼펜을, 그리고 한 손에는 A4 용지를 네 등분한 종이를 들고, 자리를 돌아가면서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거기 뭘 쓰는지는 잘 알죠. 지금부터 각자가 예상하는 시청률을 적어서, 만 원짜리 한 장과 함께 조감독님께 전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첫 방송 평균 시청률에 가장 근접한 사람이, 내기 돈을 모두 가져가는 겁니다. 소수점 한 자리까지이니 참고하시고요.”
김 배우님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옆자리 사람과 의논을 하면서도, 자기 나름 예상하는 시청률을 적어가기 시작했고, 그것은 배우 소속사 관계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긴 몇 %라고 썼어?”
“13%”
“에이~ 그건 아니다. 이게 로코도 아닌 사극인데, 어떻게 첫 방송에서 13%가 나와?”
“그냥 재미로 하는 거지. 그리고 내 희망 사항이기도 하고.”
요즘 시대에 아무리 공중파방송이라고 하더라도, 말이 13%지 시청률 13%는 꿈같은 수치였다.
더구나 드라마가 진행되어서 탄력을 받은 것도 아니고 거기에다 전작인 ‘삼거리 사람들’이 망한 탓에, 전작에서 유입되는 시청자도 거의 없을 것이란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내가 예상한 시청률이라고 써낸 13%는, 한 마디로 돈 만 원을 길에다 내버리는 것과 다름없는 행동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예나에게 이야기한 13%가 아닌, 실제로는 15.2%라고 써내는 미친 짓을 했다.
“에이~ 감독님께서 4.3%라고 써내시면 어쩝니까? 돈 만 원이 그렇게 아까우신가 보죠?”
“어허~ 김 배우님. 현실은 냉정한 겁니다.”
“그런데 감독님하고 조감독님, 두 분이 정말 짜셨나? 조감독님도 4.5%네요.”
“너 인마! 내 연출이 그렇게 엉망이라고 생각했어?”
자기는 조감독보다 더 짠 4.3%를 써냈으면서도 조감독이 4.5%를 써냈다고 하니, 감독님은 조감독을 향해 눈을 부라린다.
그렇게 김지웅 배우님은, 참석자들이 써낸 시청률 예상치를 일일이 공개했다.
“어! 우리 서 배우는 9.9%네? 자신 있어요?”
“우리도 20% 한번 찍어봐야죠.”
“그렇지! 역시 우리 서 배우가 씩씩해! 감독님께서 우리 서 배우에게 한 수 배우셔야겠습니다.”
나한테 불가능한 수치를 썼다고 입을 댔던 예나도, 요즘 시대에 사극으로서는 도저히 달성이 불가능한 수치인 9.9%를 써낸 것이다.
“이제 몇 분 남지 않았네요. 한강수 배우님.”
“예. 선생님.”
“에이~ 내가 선생 소리들을 수준은 못 되죠. 그런데 이거 맞아요?”
“예. 맞습니다.”
“미치겠네. 한 배우 돈 많아요?”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제 희망 사항을 적은 겁니다.”
김지웅 배우님 이야기에 참석자들은, 도대체 내가 얼마를 써냈기에 저러는 것인가 하는 표정으로 김 배우님의 입을 주시하고 있었다.
“도대체 몇 %라고 썼기에 그러십니까?”
“내 사위가 통은 커!”
“그러니까 몇 %냐고요. 우리 김 배우님 뜸들이시는 솜씨는 갈수록 더 느시네.”
“15.2%”
“헐~”
김지웅 배우님 입에서 15.2%라는 소리가 나오자, 모든 사람이 나를 반쯤 미친놈이 아닌가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 배우, 정말 15.2%가 가능할 거로 생각해서 쓴 거야?”
“아까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제 희망 사항이라고요. 하지만 첫 방송은 몰라도 중반 이후만 넘어가면 분명 그 수치 달성은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어째서?”
“촬영현장 분위기가 죽여주지 않습니까. 감독님을 비롯해서 이렇게 능력 있는 스태프들과, 연기력 탄탄한 선배 배우님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촬영하는데, 당연히 그 정도는 나와야죠.”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접대성 멘트를 날렸다.
어차피 요즘 시대에 두 자릿수 시청률을 올리는 드라마를 찾기가 힘든 시대인데, 대중들에게 별 인기도 없는 사극이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한다는 것은 그냥 꿈일 뿐이다.
하지만 그런 꿈이라도 있어야, 조금이라도 세상사는 재미도 있고 희망도 생길 것이 아닌가.
“마지막 광고입니다.”
“지금 시청률은?”
“3.1%랍니다.”
아무리 광고라고 하지만, 전작이 망한 탓인지 시청률이 역시 엉망이었다.
“3.3%로 0.2% 올랐습니다.”
1회가 시작되자, 미세하게나마 시청률이 소폭 상승했다.
그리고 조연출은 10분 단위로 시청률의 변화를 부르기 시작했고, 어느새 드라마는 중반을 향해 치닫고 이었다.
“조금 전 서 배우님 단독 샷에서 순간 시청률이 9.8%였습니다.”
“그래? 역시 우리 서 배우가 돈값은 하네.”
솔직히 순조로운 편이었다.
처음 3.1%, 3.3%로 시작했던 시청률은 감독님과 조감독이 예상한 4.3, 4.5%는 가뿐히 넘기면서, 5~6% 사이를 넘나들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아무튼 내가 처음 출연해보는 사극이었지만, 그림은 괜찮게 빠졌다는 느낌이었다.
출연진들의 연기도 아주 자연스러웠고, 비록 대사는 거의 없지만 이따금 툭툭 던지는 단역들의 연기 또한, 구멍이라고 할 부분이 보이질 않았다.
정말 이 정도라면 방송사에서 제대로 홍보만 해준다면, 어쩌면 평균 시청률 10%는 무난하게 기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평균 시청률 7.85%랍니다!”
“와~”
방송이 끝나고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던 참석자들은, 조연출의 말에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3.3%로 시작했던 드라마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시청률이 급등하기 시작해서, 평균 시청률이 초반의 배를 훨씬 넘긴 7.85%를 기록했으니, 참석자들이 흥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번 드라마가 7.85%를 기록할 것이라고는 이 자리에 참석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심지어 9.9%를 예상 수치로 써냈던 예나까지도, 분명히 희망 사항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오늘 내기의 승자는 서예나 배우님이십니다. 2등인 송림 엔터의 김환기 실장님과는 0.3% 차이입니다.”
또다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늘 회식은 저희 예담기획에서 쏘겠습니다.”
“예? 갑자기 그건 왜?”
“방금 대표님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우리 서 배우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이기도 하고, 서 배우가 내기에서 이긴 기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마음껏 주문하셔서 드셔도 됩니다.”
모든 사람이 환영할 수밖에 없는 김 실장님의 발표였다.
물론 오늘 참석자들이 한둘도 아니니, 그 비용을 생각하자면 예담기획의 대표이신 선 대표님으로서도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드라마의 주연이 예나인 것은 확실하고, 이번 드라마가 제대로 탄력을 받게 되면 예나 뿐 아니라 내 몸값도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니, 그걸 믿고 투자를 하는 것이다.
“감독님,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그래, 한 배우도 내일 봐.”
정말 즐겁고 잔뜩 흥분된 가운데 회식은 끝이 났고, 나는 매니저들과 함께 속속 도착하는 택시를 잡아서 감독님을 비롯한 스태프들, 그리고 선배 배우님들을 배웅했다.
그리고 언제 준비를 한 것인지 김 실장님은 진수와 함께 택시에 오르는 스태프들과 단역 배우들의 손에, 택시비하라고 5만 원짜리 지폐를 손에 쥐어주고 있었다.
“늦었지만 회사에 좀 들어왔다가 가라고 하시는데 괜찮겠어?”
“대장이 부르는데 가지 않으면 어쩌자고.”
모든 사람이 떠나고 예나는 밴에 그리고 나는 진수가 운전하는 승용차에 타자, 진수가 대표님이 부른다는 말을 했다.
“한 배우, 고생 많았어.”
“저야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직 퇴근도 하지 않으시고요.”
“차 바꾸자.”
“예?”
“같은 회사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예나는 밴인데, 한 배우에게 승용차를 타고 다니게 하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
“에이~ 괜찮습니다. 서 배우야 누구나 인정하는 대한민국 Top이니 밴을 타고 다니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이제 갓 데뷔한 제가 밴을 타고 다니면 사람들이 손가락질합니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일 때문에 나를 부르신 것이다.
하긴 나도 연예인이니 승용차보다 밴을 타고 다닌다면 폼도 날 것이다.
하지만 아직 대중들에게 제대로 얼굴조차 알려지지 않은 내가, 연예인이랍시고 밴을 타고 다니는 것도 우스운 일이란 생각이다.
“물론 한 배우가 타고 다닐 밴은 예나가 타고 다니는 밴하고는 차이가 있어. 그냥 국산 밴으로 하나 뽑았으니 내일부터는 그걸 이용해.”
“아닙니다. 이번 드라마가 끝나고 난 뒤에, 대중들이 저란 존재를 인정할 정도가 된 후에 타겠습니다.”
밴이 편하다는 것이야 나라고 왜 모르겠는가?
전생에도 질릴 정도로 타고 다녔던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닌 것이다.
선 대표님을 비롯한 예담기획의 식구들에게도 또 내가 만나게 될 사람들에게도, 아직은 내가 겸손한 신인배우라는 이미지를 심어줘야 할 때이다.
결국 밴은 내 생각대로 ‘마지막 황후’ 방영이 끝이 나고, 나란 존재가 대중들에게 나름 인정받을 정도가 되었을 때부터 사용하는 것으로 했다.
[사극의 새 역사를 쓴 ‘마지막 황후’]
[‘마지막 황후’ 순정효황후는 누구?]
[사극으로는 이례적인 시청률을 보인 ‘마지막 황후’ 성공의 이유는?]
집으로 돌아와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니, ‘마지막 황후’에 관련된 기사가 줄줄이 올라와 있었다.
그만큼 사극으로서 시청률 7%대를 기록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고, 그 말은 사극의 주된 시청자인 40~50대뿐 아니라 20~30대의 시청자들 또한 제법 유입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기사에 달린 시청자들의 댓글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철릭의 사나이가 뻥 이었던 거였음?
⌞카메오라고 함. 다음 주 3~4회에 나온다고 함.
⌞그런데 서예나와 철릭의 사나이가 사귀는 것이 맞음?
⌞그 문제는 이미 기자회견에서 밝혔었던 적이 있음. 사귀는 것 100% 레알임.
기사마다 예고편으로 뿌렸던, 철릭을 입고 사무라이들을 척살하던 이야기로 넘쳐났다.
어쩌면 그 예고편으로 인해, 사극에는 별 관심을 가지지 않던 20~30대 시청자들이 유입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또 예나와 내가 공개연애를 선언한 그것이 젊은 층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었다.
댓글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내 입에선 저절로 ‘좋네.’라는 소리가 흘러 나왔고, 그렇게 흐뭇한 기분으로 댓글을 확인하다가 나도 모르게 꿈속으로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