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나, 정치할거야.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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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어떻게 알았어?”
“예전에.”
“예전에?”
“응, 우연히 한 번 찾아왔었던 적이 있거든.”
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늘 붙어 다녔던 사이였기에, 서울도 아닌 부산 그것도 부산 외곽의 어촌마을인 연화리란 곳을,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에 진수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다고 내 전생에서 이따금 이곳에서 과음으로 인한 쓰린 속을, 전복죽으로 달랬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이곳은 2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변함이 없었다.
물론 진입도로는 예전과 달리 훨씬 깔끔하게 포장이 되었지만 말이다.
“내일 아침에 여기 다시 들러서 가야겠다.”
“왜?”
“서 배우도 전복죽 좋아하잖아. 그리고 회사 직원들에게도 나누어주면 좋아할 테고.”
“나보고 오지랖이라더니 넌 더하네.”
“오지랖이 아니라 정이란 거지. 회야 여기서 가지고 가봐야 물러 터질 것이 뻔하니, 서울서 사 먹는 것보다 오히려 맛이 없겠지만 전복죽은 아니잖아.”
어차피 20~30만 원 정도면 사무실 직원들이 모두 나누어 먹을 양은 될 것이니, 전복죽을 사 가서 구내식당에 전해주면 될 것이다.
“아무튼 너 때문에 출연료 받아봐야 정말 남는 것 없겠다.”
“지난번에도 얘기했잖아. 어차피 당장 먹고 사는 것에 지장이 없으니까, 이번 출연료는 투자하는 셈 치고 촬영장 스태프들에게 인심이나 얻자고. 그런데 외부 사람들에게 인심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우리 식구들 한테 인심을 얻어야지.”
입으로야 툴툴거렸지만 ,솔직히 진수 말에 불만은 없었다.
어차피 전생에서보다 이번 생의 삶에서의 형편이 훨씬 나은 것이 사실이고, 또 이번 ‘네 안의 야수’가 상영되고 나면 전생에서 내 배역을 맡았던 그 친구처럼, 나도 단숨에 제법 지명도가 있는 배우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흥행할 영화들을 이미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흥행할 영화를 알고 있다는 것은, 내가 스타로 등극하는 길이 이전 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빨라질 수 있다는 뜻이고, 그 말은 곧 제법 큰돈을 만질 기회 또한 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 상황이라면 감독님을 비롯한 스태프들뿐 아니라 배우들에게도, ‘저놈 제법 괜찮은 놈이네’라는 인상을 심어줄 필요가 있고, 그 이유로 오늘 아침에도 뜨거운 음료를 준비해서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돌렸던 것이다.
“이렇게 한적한 곳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마시는 커피도 괜찮네.”
“나중에 내가 양산에 내려오면 매일 오자.”
“양산으로 내려온다고?”
“응. 지난번에 내가 정치를 하겠다고 얘기했었잖아.”
“정말 정치를 할 생각이야?”
“물론 당장은 아니지만, 꼭 정치를 해보고 싶어.”
“왜 갑자기 정치하겠다고 하는 건데? 지금까지 정치에 관심을 가졌던 적도 없었잖아?”
“나도 잘 몰라. 그런데 언젠가부터 내가 꼭 정치를 해야 한다는 기분이 들어서......”
내가 정치외교학과에 편입하든지 아니면 아예 신입생으로 입학하든지 하겠다고 말은 했었지만, 진수는 그 뜻이 내가 직접 정치를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믿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실 전생에 내가 정치권의 입당권유를 받고, 가장 강하게 말렸던 사람이 바로 진수였다.
그리고 진수가 말리는 것을 듣지 않고 정당 입당을 강행했던 덕분에, 진수와의 사이에 감정의 골이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나중에는 그냥 이따금 안부 전화나 하는 그렇고 그런 친구 사이로 변했던 것이다.
만약 당시 진수의 말을 듣고 정치권에 발을 디디지 않았었든지 아니면 진수를 끝까지 설득해서, 국회의원 노릇을 하면서도 진수를 곁에 뒀었더라면, 어쩌면 내 전생의 삶도 달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랬기에 아직 제대로 된 연예계의 삶을 살기 전에, 아예 언젠가는 내가 정치를 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진수를 설득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건 그렇다고 하더라도 서울이 아니고 하필이면 양산에서 정치를 하려고 해?”
“여기가 아버지 고향이기도 하고 호적상으로 내 본적지거든. 그리고 서울보다는 아무래도 시골이 당선되기가 훨씬 쉽잖아.”
“정말 정치를 하려고 마음을 굳힌 모양이네?”
“당장은 불가능하겠지만 내가 스타 배우 소리를 듣고, 어딜 가더라도 열 명 중에서 한 명 정도는 내 얼굴을 알 정도가 되면, 본격적으로 해볼 생각이야.”
“하긴 그 정도가 되어서 준비만 제대로 한다면, 당선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너도 미리 준비를 해둬.”
“왜? 날 보좌관이라도 시켜주려고?”
“안 될 이유가 있기라도 해? 말이야 국회사무처에서 임명하는 것이지만, 실제 보좌관을 임명하는 사람은 국회의원이잖아.”
진수가 원한다면 보좌관 자리를 내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진수가 내 친족도 아니고 또 보좌관을 하는데 특별한 자격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우선 4급 보좌관 정원이 두 명이니, 그 둘 중의 한 자리를 진수에게 내주면 되는 것이다.
대부분 국회의원은 보좌관 중 한 명은 국회의원회관에 상주시키면서 정무 쪽을 담당하게 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지역구사무실에서 지역조직을 관리하면서 민원처리를 담당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진수 성격은, 지역구에 상주하는 보좌관으로는 그 누구보다 확실한 적임자이기도 하다.
아무튼 전생에서의 진수는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아예 입을 열지 못하게 할 정도였는데, 오늘 진수는 나중에 내가 본격적으로 정치를 하겠다고 하더라도 전생에서만큼 극렬하게 반대는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진짜 정치를 하려는 이유가 뭐야?”
“음....... 내 말 듣고 웃지 않기다.”
“왜?”
“세상을 바꿔 보려고.”
“뭐?”
“내 손으로 세상을 바꿔보고 싶다고.”
“국회의원을 하면 세상을 바꿀 수가 있나?”
“국회의원 한 사람 힘으로는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대한민국 300명 국회의원 중에서 100명 정도만 마음을 맞추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100명은 어떻게 만들고?”
“일단 나부터 국회의원 배지를 달아야지. 그리고 당선이 된 후에 사람들을 내 쪽으로 끌어들여야겠지.”
다행히도 세상을 바꿔보기 위해서 정치를 하겠다는 말에 웃지는 않았다.
하지만 진수 역시도 혼자서 세상을 바꿀 수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내 꿈이,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서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었다.
만약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진수는 나를 보고 미쳤다고 하든지, 아니면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을 아예 농담으로 치부하든지 할 테니 말이다.
물론 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나 혼자서는 절대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우선 대한민국의 권력의 1/3을 쥐고 있는 국회를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하고, 국회를 내 편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대한민국을 내 손으로 쥐고 흔들 수도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여론이니 말이다.
“네 말대로라면 돈을 엄청나게 벌어야 하겠다.”
“맞아. 정치를 하려면 돈 없이는, 제대로 된 국회의원 노릇을 하지 못할 테니까.”
“어떻게 벌 건데?”
“내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배우가 되어야지. 그래서 영화와 드라마에 계속 출연하고 돈을 많이 준다면 광고도 열심히 찍어야지.”
“아무튼 네가 정치를 하겠다면, 작품 선택도 신중하게 해야 하겠네?”
“아무래도 그렇겠지. 아무리 배역이라지만 그 배역이 지닌 이미지의 영향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네가 정치를 한다고 하면 대표님이 가만히 있을까?”
“이미 그 양반에게는 정치할 것이라고 이야기했어.”
“하지만 막상 네가 정치를 한다고 나서면, 반대가 만만찮을 텐데?”
“그 양반이 왜? 만약 그렇게 반대를 한다면, 그때는 재계약을 포기해야지.”
“그게 아니잖아. 서 배우는 어쩌고?”
진수가 걱정하는 것이 따로 있었다.
그리고 선 대표님이 반대할 것이라는 이유 또한, 배우와 소속사 대표로서가 아니라 사위의 출마 때문에 딸이 힘들어할 그것을 걱정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에 대한 확고한 결심이 이미 서 있는 상태다.
그랬기에 이미 몇 차례나 기회가 있었음에도, 나는 책임질 일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내 본능을 억제하고 또 억제했던 것이다.
아무리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시대라고 하더라도, 남자와 여자 그리고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성 관념은 분명 다를 것이니 말이다.
더구나 예나와 같은 경우는 예전의 나쁜 기억 때문에, 다른 사람에 비해 성적인 면에서는 훨씬 더 느끼는 강도가 다를 것이다.
그러니 예나와 나 사이의 관계가 100% 결혼한다고 확정되기 전에는, 순간적인 욕정 때문에 일을 저지를 생각은 전혀 없었다.
“네가 정치를 하면 난 뭘 해야 할까?”
“뭘 하긴 뭘 해. 나하고 쭉 같이 가야지.”
“정치에 대해선 쥐뿔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같이 가?”
“네가 잘하는 것 있잖아.”
“뭐?”
“사람들 끌어 모으는 거.”
“사람들을 끌어 모으다니?”
“지랄! 자기가 가진 능력도 모르는 놈이 무슨 매니저를 한다고. 내가 지금까지 너를 보면서 느낀 게 뭔지나 알아?”
“뭔데?”
“네 옆에는 항상 사람이 끓는다는 거야.”
“그거야 내가 워낙 헛소리를 잘하니 그렇지. 내가 놀기 좋아한다는 것이야 예전부터 알고 있었잖아.”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그렇게 놀기 좋아하니까.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이 기분 나빠하지 않으니까, 사람이 주변에 끓지.”
“아무튼 사람을 끌어 모으는 것하고 정치가 무슨 상관이 있다고?”
“당연히 상관이 있지. 정치가 사람 장사라는 말도 있거든.”
방금 내가 진수에게 한 말은 100% 사실이다.
내가 정치판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선배 정치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도 ‘정치는 사람장사’란 말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다지 길지 않은 국회의원 생활을 하면서, 그 말이 확실한 사실이라는 것도 직접 체험했고 말이다.
선거란 것이 유권자들의 표를 얻는 일이고, 그렇게 유권자들에게 표를 얻으려면 정당의 인기도 중요하고 또 선거 때마다 뱉어내는 공약 또한 중요하지만, 그런 모든 것들 위에 있는 것이 유권자들에 의한 입소문이었다.
그리고 그 입소문이라는 것이 나를 지지하는 누군가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그 누군가를 조직하고 또 그 누군가가 되는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들고 세뇌시키는 일을, 가장 잘할 사람이 바로 진수인 것이다.
결국 이 말은 진수가 가진 자기 주변에 사람을 끌어들이는 그 능력이, 나를 국회로 보내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말이기도 한 것이다.
참 어리석은 생각이지만, 내가 왜 전생에서는 진수의 이런 능력을 미리 알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진수가 가진 능력이 내가 정치인으로 살아가는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하는 후회가 든다.
만약 그 당시에 진수가 가진 능력의 가치를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전생의 내 삶이 훨씬 더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또 어쩌면 믿지 못할 놈을 측근이랍시고 데리고 있다가 죽임을 당하지도 않았을 텐데........